1 아파치 헬기. 2 무인정찰기 글로벌호크. 3 미국의 최신형 전투기 F-35.
2008년 3월 12일 이명박 대통령이 이상희 국방부 장관을 면담하는 자리에 배석한 청와대 보좌진이 한 말이다.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주한 미대사관 자료에 나오는 내용이다. 당시 이상희 장관은 상당한 모욕을 느꼈을 법하다. 이후 현 정부는 미국의 글로벌호크 무인정찰기 구매를 전격 취소했다.
노무현 정부 때 9%대이던 국방예산 증가율도 4~5%로 낮아졌다. 그중에서도 무기 구매 예산은 더 많이 줄었다. 예산이 줄자 2009년 국방개혁안을 다시 작성해 대통령 재가를 받은 국방부는 최소 6% 이상의 예산 증가를 요구했다. 이에 대한 청와대 답변은 “리베이트만 안 받아도 무기 도입비의 20%는 깎아도 된다”는 이 대통령의 언급이었다. 대통령의 이 말은 2009년 8월 이상희 장관이 청와대에 대한 항명성 편지를 작성하기 이전인 7월 말 ‘장관에게 보고 없이’ 청와대에 다녀온 장수만 차관을 통해 국방부에 알려졌다.
방위력 증강에 긴급예산 투입
그랬던 현 정부가 연평도 사건을 겪은 후 “서북도서에 세계 최강의 무기를 배치하라” “북한의 비대칭 위협에 적극 대처하라”는 이 대통령의 지침에 따라 갑자기 미국 무기를 대량 구매하는 방향으로 돌아섰다. 안보 위기가 이명박 정부의 해외 무기 구매에 대한 태도를 정반대로 바꿔놓은 것이다. 글로벌호크 무인정찰기를 다시 구매하는 것으로 방향을 전환한 데 이어 지난해부터 제5세대급 전투기, 대형공격헬기, 해상작전헬기, 장거리 공대지 유도탄, 다목적 정밀유도탄 등을 해외에서 직도입하기로 하고 총 14조 원의 사업비를 중기 국방예산에 반영했다.
해외로부터 무기를 도입하는 것 외에도 한국군이 자체 개발하는 크루즈 미사일, 활강 유도폭탄 등 유도탄의 증강에도 2조5000억 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했으며, 북한 해안을 정밀 타격할 수 있는 함대지 미사일과 특수부대 장비 보완, 서북도서 방위력 증강에도 긴급히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이런 사업들은 유사시 북한 핵미사일을 선제 타격하고, 북한의 비대칭 위협을 제압하며, 북한에 있는 핵심시설을 정밀 타격한다는 ‘적극적 억제전략’이라는 이름으로 추진 중이다. 이와 함께 2020년으로 예정된 육군 병력 감축을 2030년으로 연기하고, 서북도서 방위를 위한 서북도서방위사령부를 창설하며, 북한의 사이버 도발에 대비하는 사이버사령부를 창설하는 등 새로운 조직 창설로 국방예산 소요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정권 초기라면 상상조차 못 했을 정책이다.
안보 위기가 무기 소요를 증가시키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러나 무기 구매가 집권 초부터 체계적으로 국방정책을 준비한 데 따른 것이 아니라, 안보위기를 겪은 뒤 갑자기 늘어났다는 점에서 우려가 큰 것도 사실이다.
먼저 국방예산은 여전히 낮은 증가율로 묶어놓은 채 첨단무기 구매만 늘린 탓에 장차 그 재원을 감당하기가 만만치 않다. 한국의 무기 구매가 다급하게 이뤄진다는 점을 간파한 해외 무기 공급국들이 한국을 상대로 무기 가격을 일제히 올려 바가지를 쓸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4기를 구매하는 글로벌호크 무인정찰기는 예산 4800억 원으로 추진하던 사업이지만 미국은 2배인 9600억 원을 내라고 배짱을 부리고 있다. 8대를 도입하는 해상작전헬기도 5000억 원으로 예상했으나 미국은 자체 문서에서 2배가 넘는 10억 달러(1조1810억 원)를 부르고 있다. 36대를 도입하는 대형공격헬기는 1조8000억 원을 예상하고 있었지만 실제 가격은 3조 원이 넘을 전망이다. 한국은 아파치 공격헬기를 대당 400억 원대에 도입하려고 한다. 하지만 미국이 이미 대만과 사우디아라비아에 900억~1200억 원에 판매한 점을 고려한다면 사업비 상승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가장 논란이 큰 미국산(産) 스텔스 전투기 가운데 대상 기종으로 거론되는 F-35의 경우 8조3000억 원에 60대를 구매한다는 계획이다. 그럼 대당 가격이 1억4000만 달러가 되지만, 최근 일본은 동일 기종을 2억 달러에 사들였다. 그것도 전투기 무장을 뺀 가격이다. 같은 기준을 적용하면 한국의 전투기 도입 예산은 최소 13조8000억 원에 육박한다. 재미 언론인 안치용 씨는 지난해 정부가 국회 승인을 받은 주요 무기 구매비용 14조 원이 실제 도입 과정에서 24조 원으로 불어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천문학적 운영비 돈 먹는 무기
차기전투기 후보 기종인 유로파이터.
게다가 현 정부가 고려하는 무기체계는 도입 이후에 천문학적 운영비로 악명이 높은 돈 잡아먹는 기계다. 기존의 B-2, F-117 스텔스 전투기의 경우 운영비가 너무 많이 들어 미국도 퇴역을 고려하고 있다. 현재 개발 중인 F-35 운영비는 예측조차 할 수 없다. 첨단무기를 30년간 운영하는 비용은 도입비의 3~5배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30조 원 규모의 국방예산으로 이들 무기를 전부 구매하면 한국군은 향후 야전의 필수전력을 운영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약 900종의 무기체계와 70만 종의 군수품을 운용하는 데 필요한 예산을 몇몇 첨단무기가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면 야전의 전투 효율성은 그만큼 저하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막대한 무기 구매 사업을 강행하려면 당연히 시간을 충분히 갖고 기종을 꼼꼼히 검토해야 한다. 그러나 현 정부는 이들 무기체계 도입을 대통령선거를 두 달 앞둔 10월까지 완료한다는 계획이다. 이럴 경우 부실한 검토와 파행적 도입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11월 국회 국방위원회의 권기율 수석전문위원은 ‘방위사업청 소관 2012년 예산안 검토보고서’를 통해 조기에 강행하려는 정부의 무기 도입에 대해 △짧은 검토 및 협상 기간 설정 △부정확한 가격 정보에 기초한 예산 편성 △무기 운용 개념의 타당성에 대한 검토 부족 등을 이유로 “현실성이 결여됐다”고 진단했다.
예를 들어 현재 차기전투기(F-X) 사업의 경우 3월에 사업설명서를 개최한 이래 6월 제안서를 접수하고 7~9월에는 F-35, F-15SE, 유로파이터 3개 기종을 평가한다. 그런데 전투기 운용 적합성, 즉 운영에 관한 사항을 검토하는 데 기종별로 단 나흘이라는 기간이 책정돼 있다. 작전 성능을 검토하는 시간은 기종별로 4주일이다. 김대중 정부 시절 이와 비슷한 전투기사업을 2000년 착수해 2002년에 기종을 결정한 것과 비교하면 파격적인 속도가 아닐 수 없다.
더 놀라운 것은 일부 대상 기종의 경우 아직 개발이 완료되지 않아 실제 비행시험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총 115개 성능평가 항목 가운데 실제 비행시험은 이착륙 거리를 측정하는 3개 항목밖에 없다. 실제 비행기를 타보지도 않고 미국 정부의 성능 보증서로 대체하거나 설명 자료만 받은 뒤 끝내겠다는 부실한 평가방식이다. 전투발전단장을 역임한 이희우 예비역 준장은 “제대로 평가하려면 올 10월에 있을 기종 선정을 최소 6개월 정도 연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투기를 도입하면서 우리 항공산업 발전을 위한 기술이전, 즉 절충교역(off-set)의 경우도 실제 계약서에 기술이전 항목에 대한 구속력을 담보하지 않고 “계약 체결 후 14개월 이내에 기술이전 기관과 양해각서(MOU)만 체결하면 된다”는 파격적인 양보 조건을 달았다. 2002년 F-15K를 도입할 당시 합의했던 절충교역 이행률이 40%에도 미치지 못하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런 느슨한 방식의 절충교역은 이행된다는 보장이 없고, 그 실효성에도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전투기 도입을 통한 기술 습득으로 한국형 전투기(KFX)를 개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날리게 된다.
게다가 방위사업청이 추진하는 절충교역은 한국형 전투기 개발예산을 30% 이상 절감하려는 치밀한 계산과 전략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국내 중소기업들에 매우 제한적이고 단편적인 기술이전만 제시한다. 전투기 가격 평가도 비정상적이다. 우리의 예산 규모를 초과하는 고가 전투기는 입찰에서 탈락시키는 것이 아니라 단지 점수만 달리함으로써 그 자격을 유지시킨다는 방침이다. 이렇게 되면 도입 계약에서부터 예산 부족 문제가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 도입 대수를 줄여서라도 고가 전투기 기종 선정을 밀어붙이겠다는 복안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다음 정부가 사업을 재검토하지 못하도록 단단히 대못을 박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
2010년 11월 이명박 대통령이 연평도 포격 도발과 관련, 현황보고를 받기 위해 합동참모본부 지휘통제실에 들어서고 있다.
이렇듯 급격한 무기 도입은 북한 도발에 대한 응징은 물론, 유사시 북한 정권을 교체하는 치명적 공격력을 보유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장기적으로는 한반도에 대한 잠재적 위협에 대해서도 응징할 수 있는 우수한 성능의 무기체계를 갖추겠다는 뜻이다. 그러나 육·해·공군 간 중복된 임무를 수행하는 무기를 도입해 예산을 낭비한다든지, 국산 무기보다 외국산 무기를 선호함으로써 국내 방위산업과 항공산업 발전에 역행하는 어리석음을 저지를 가능성도 크다.
바로 이런 문제 때문에 정권 초기에 청와대는 ‘무기체계 소요검증위원회’를 설치해 국익에 반하는 무기 도입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려 했다. 그러나 정권 말기에 이러한 검증 절차 없이 청와대가 직접 대형 국방사업을 밀어붙이는 모습을 보면 초심을 잃은 것 같다. 특히 정권 말기라는 시점은 이제까지 역대 정권의 대형 무기 도입 사업이 그러했듯 그 순수성과 투명성에 우려를 표할 수밖에 없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간 무기를 거래할 때도 총 거래액의 4% 정도는 비밀 영업비로 그 사용처를 밝히지 않는 관행이 있다. 총 20조 원 규모의 무기 거래라면 약 8000억 원에 해당하는 돈이다.
무기 도입은 북한에 대한 억제력을 발휘한다는 긍정적 측면을 지닌다. 하지만 미국 방위산업체의 심각한 경영난을 우리가 해결해주는 식의 굴절된 한미동맹 논리에 따른 무기 도입이라면 국익에 반한다. 미국 방위산업체 공장 조립라인의 일자리를 한국 정부의 세금으로 지켜주는 꼴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