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2월 한 · 일 위안부 합의 이전에 냉정했던 한일 정상의 모습 [뉴시스]
문재인 정부는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배상하라는 한국 대법원의 판결 이행 문제를 놓고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그러다 절충안을 내놓았지만 이것 역시 외면당하고 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통시적(通時的)으로 살펴보자.
문재인 정부는 박근혜 정부가 타결한 한일 위안부 합의와 한일군사보호협정을 사실상 부정했다. 2018년 10월 11일 제주 해군기지 관함식에 오기로 한 일본 해상자위대 함정에게는 일본 해군기를 떼고 입항하라고 요구해 결국 일본이 불참했다.
양승태와 박근혜 만남 밝혀져
한국 대법원이 내린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우리 정부의 입장을 밝힌 외교부 보도자료. 2항이 바로 일본 전범 기업과 한국 포스코 등이 출연한 돈으로 강제징용자에게 위자료를 주자는 내용이다(왼쪽). 2015년 12월 18일 한 일 위안부 합의를 발표하는 한일 양국 외교장관. [외교부, 뉴시스]
당초 한일기본조약을 위해 협상할 때 일본은 일제로부터 피해를 본 한국인들에게 개별 배상을 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한국은 정부가 일괄 배상을 받아 피해를 본 한국인들에게 나눠주겠다며 ‘정부 대 정부’ 배상을 주장해 관철시켰다. 그리고 한국 정부는 일제로부터 피해를 본 이들의 신고를 받아 소정의 심사를 한 후 배상했다.
그러나 그때 위안부 여성은 단 한 명도 신고를 하지 않았다. 옛 일본군이 위안부 조직을 운영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인데도 성폭력에 대한 개념이 없고 여성의 정절을 강조하던 시절인지라 피해자와 그 가족들은 부끄러워 나서지 못한 것으로 추정돼 그냥 넘어가고 말았다.
한국 정부는 개인 배상을 해주고 남은 돈으로 포스코 전신인 포항제철을 만들었다. ‘산업사회의 쌀’인 철을 생산하게 한 것인데, 이것이 성공해 산업화의 기반을 닦았다. 20여 년이 지난 1980년대 윤정옥 이화여대 교수가 획기적인 발굴을 했다. 한국은 물론이고 일본과 동남아 각국을 돌며 말로만 전해지던 일본군 종군위안부를 만나 증언을 채록하고 1988년 4월에 열린 세미나에서 발표한 것.
아베를 굴복시킨 박근혜의 외교력
그러자 한국과 동남아, 일본에서도 단체가 만들어져 일본군의 성범죄를 비난하고 배상을 촉구하는 여론이 조성됐다. 이에 대해 일본은 한일기본조약 체결 때 모두 배상했다며 버텼다. 그러나 옛 일본군 자료에도 종군위안부를 운영한 내용이 있었기에 사실 자체는 부인하지 못했다. 여론에 밀린 일본은 1993년 8월 4일 당시 고노 요헤이 관방장관으로 하여금 옛 일본군이 여성의 의사를 묻지 않은 채 강제로 위안부로 동원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했다(일명 고노 담화).그러나 위안부에 대한 배상은 한일기본조약 체결 때 일괄 처리된 사항이라며 강력히 거부했다. 이 문제를 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 정부도 해결하지 못했다. 그 시절 일본은 정부 차원의 배상은 한일기본조약 체결로 끝났으니, 민간 성금을 거둬 위안부에 대한 배상을 하겠다고 제의했는데, 박근혜 정부는 일본 정부의 예산으로 배상하고 일본 정부가 사과하라며 몰아붙였다.
박 전 대통령은 이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상대국을 방문해 일대일로 일본 총리를 만나는 정상회담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국제 여론마저 불리해지자 결국 총리의 사과와 함께 일본 정부 예산으로 기금을 만들어 위안부에 대한 배상을 하기로 결정했다. 박근혜 정부는 훗날 일본이 이러한 사과를 뒤집지 못하도록 ‘불가역적’이라는 단어를 넣어 종군위안부 합의를 타결했다. 그러나 이 합의는 일본과 야합했다는 비판을 받았고,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일어난 촛불집회에 가려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오른쪽)이 2017년 10월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쉼터인 ‘평화의 우리집’과 ‘나눔의 집’을 방문해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게 안부인사를 하고 있다(왼쪽). 2017년 11월 필리핀 마닐라 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동아시아정상회의(EAS) 정상회담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문재인 대통령. [뉴스1, 뉴시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강제징용에 대해 배상받는 것은 주권적 문제라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한국에 있는 일본 기업들로부터 강제징수를 해야 하는데, 일본의 경고 메시지로 문재인 정부는 실행하기 어려웠다. 결국 7개월 만에 정부가 내놓은 해법은 일본 기업과 한국 기업이 낸 출연금으로 위자료를 지급하는 것이었다. 사실 한일 기업의 출연금으로 공동기금을 조성해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보상하자는 제안은 대법원 강제징용 판결 직후 일부 한일관계 전문가들이 제시해온 해법이다. 하지만 청와대는 1월 한일 기업과 양국 정부가 참여하는 공동기금 조성에 대해 “발상 자체가 비상식적”이라고 부인한 바 있다.
배상금 대신 위자료?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외신기자들과 인터뷰에서 한일 기업의 자발적 기금으로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위자료를 주자는 우리 측 제안에 대해 “당사자 간 화해가 이뤄지게 하면서 한일관계도 한 걸음 나아가게 하는 조치”라고 말했다. 하지만 고노 다로(河野太郞) 일본 외무상은 6월 24일 한국 정부의 강제징용 해법 제안에 대해 “일본 정부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며 중재위원회에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거부 의사를 밝혔다.또 일본 기업들이 성금을 낼지도 의문인 데다, 성금을 내 재원을 마련했다 해도 이는 위자료이지 배상금은 아니다. 더구나 한국 포스코가 성금을 내는 것은 대법원 판결과 무관한 것이다. 한 법조인은 “사법부는 박근혜 정부 시절 기업들이 K재단과 미르재단에 낸 성금을 뇌물로 판단한 바 있다”며 “이에 비춰보면 외교부의 권유로 포스코가 성금을 내는 것 역시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