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에 나온 영화 ‘아메리칸 싸이코’를 보면 인수합병 회사의 부사장 4명이 명함을 갖고 서로 경쟁하는 장면이 나온다. 같은 회사, 같은 직급의 동료지만 명함에 어떤 서체와 디자인을 넣었느냐는 사소한 차이에 아주 민감하게 반응한 셈이다. 주인공 패트릭 베이트만(크리스천 베일 분)이 명함을 새로 인쇄했다며 자랑의 포문을 연다. 옅은 베이지색에 실리안 레일 서체를 썼다고 으스대며 자신의 안목과 명함의 품격을 과시한다.
그러자 동료 한 명이 자기 명함을 꺼내며 로말리안 서체에 달걀 껍데기를 갈아 넣는 방식으로 만들었다며 당당하게 응수한다. 그 옆에 있던 또 다른 동료가 자기 명함이 더 낫다는 듯한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명함을 꺼내 든다. 흰색 바탕에 페일 님버스라는 양각 문자를 넣었다고 한다. 그리고 마지막 동료의 명함이 나오자 베이트만은 혼잣말로 감탄했다. 상대의 명함이 정교한 금색에 두께가 세련되고 투명 무늬까지 들어갔다며. 심지어 땀까지 흘린다. 그 명함이 ‘끝판왕’이었던 셈이다.
사실 이렇게까지 명함의 디테일에 민감한 사람이 있을까. 솔직히 우리는 상대의 명함을 받아 들고 그게 어떤 서체인지, 어떤 종이인지 그다지 따지지 않는다. 하지만 아주 짧은 순간, 그 첫인상과 느낌을 기억한다. 원래 매력은 아주 미세한 차이에 의해 만들어진다.
명함 꺼내기 화룡점정은 명함지갑
명함을 꺼낼 때 금속으로 된 명함지갑을 멋지게 여는 장면은 ‘명함 신공(神工)’의 화룡점정 같은 거다. 얼마나 세련된 명함을 가지느냐와 더불어 어떤 명함지갑을 쓰느냐도 중요하다. 명함지갑도 명품 브랜드를 쓰는 이가 많다. 내 안목이 모자라니 명품 브랜드의 안목에 편승하자는 식이다. 가장 무난한 경우로, 적어도 들인 돈만큼의 값어치는 한다. 실제 고가는 아니어도 깔끔하고 세련된 명함지갑으로 자신만의 인상을 만드는 사람도 있다. 좀 더 안목이 있는 경우다. 남들이 한 번도 못 봄직한 ‘특별 명함지갑’을 선택한다면 명함을 건네는 순간 이야깃거리가 하나 더 생긴다.
요즘 나는 네덜란드 디자이너 사미라 분(Samira Boon)이 두꺼운 컬러 비닐로 만든 후로시키 시키라는 명함지갑을 쓴다. 비싸지는 않지만 흔하지도 않다. 일본 보자기(후로시키)를 응용해 만든 다용도 주머니에서 출발한 명함지갑의 매력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과 일본 도쿄, 서울을 오가는 디자이너가 만든 동서양 결합형 디자인 제품이다. 이탈리아의 소형 가죽제품을 잘 만드는 조르조 페돈(Giorgio Fedon)의 명함지갑도 꽤 오래 썼다. 아내와 같이 사서 쓰던 거라 십여 년 손때가 묻어 낡았어도 여전히 아껴두고 있다.
심플한 알루미늄 케이스도 여전히 애용하고, 이 밖에도 다른 디자인의 명함지갑이 꽤 있다. 비즈니스맨은 이탈리아나 프랑스 명품 브랜드의 명함지갑도 많이 쓰지만 몽블랑 명함지갑도 꽤나 선호한다. 하여간 지갑에 아무렇게나 넣고 다니지만 않으면 된다. 두툼한 지갑을 꺼내 돈과 각종 신용카드 범벅 사이에서 끄집어내는 명함은 솔직히 멋이 없다. 명함은 단순히 이름 적힌 종이가 아닌, 자신을 드러내는 도구이기에 좀 더 신경 쓸 필요가 있다. 중요한 건 자신만의 안목을 담아내는 것이다.
명함은 비즈니스 카드다. 비즈니스를 할 때 자신을 드러내는 이름표이자, 자신의 가치이자, 지위를 드러내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종이를 발명한 중국에서 아주 오래전부터 명함처럼 이름을 적은 쪽지를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지금의 명함과는 조금 다른 용도일 수 있다. 본격적인 명함의 역사는 17세기 유럽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당시에는 부유하고 지위가 있는 사람만 사용했다. 19세기 들어서야 명함이 중산층에서도 널리 쓰이기 시작했다.
명함은 시대별로 크기나 내용은 조금씩 달랐지만 네모난 흰색 종이가 기본이었다. 그리고 자기 이름이자 얼굴이 된다는 점도 같았다. 작은 종이에 불과하지만 함부로 버려선 안 되는 건 상대에 대한 예의 때문이기도 하다. 예전에 어떤 외국 부자가 명함을 금으로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특이하긴 하지만 멋지지는 않았다. 그런 명함을 건네면 뇌물로 여길 수도 있겠다 싶었다. 세계적인 명사나 대통령의 명함도 종종 인터넷에서 볼 수 있는데, 한결같이 우아함과 세련미를 살리려고 꽤나 신경 쓴 모습이다. 그리고 심플하다. 역시 최고의 우아함은 단순함에서 나온다.
나는 명함을 오프셋(offset) 인쇄기로 만든다. 인쇄 품질을 높인 고급 명함을 취급하는 곳이 여럿 있는데, 같은 명함이라도 오프셋 인쇄기로 찍어낸 건 좀 다르다. 컬러를 만들기 위해서는 4가지 색을 조합하는데, 오프셋 인쇄는 종이 한 장에 4가지 컬러를 4번 인쇄해 색을 덧입혀 구현하는 식이다. 가장 큰 장점은 색상 구현의 정확성이 높고 글자가 훨씬 정교하게 나온다는 점이다. 잡지나 카탈로그 등 각종 상업 인쇄물은 오프셋으로 많이 찍는다. 물론 시간이 더 걸리고, 더 비싸다.
반면 요즘 사용하는 명함은 대부분 디지털 인쇄로 만든다. 한 번에 프린트돼 나오면 그게 끝이다. 그래서 즉석명함이라는 표현도 쓴다. 시간이 얼마 안 걸리고 가격도 싸다. 분명 두 가지의 차이는 있다. 같은 명함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찍어내 보여준다면 누구라도 오프셋 인쇄로 찍은 명함을 고를 것이다. 미세한 차이지만 기왕 자신을 드러내는 데 좀 더 신경 쓰고 싶다면 고려해볼 일이다. 실제로 회사에서 만들어주는 명함 대신 직접 서울 충무로의 고급 명함 인쇄소에서 따로 명함을 만드는 이들도 있다. 명함에서도 자기만의 작은 사치를 드러낼 수 있는 셈이다.
겨우 5mm, 작지만 큰 차이
명함 크기는 대개 90×50mm이다. 자기 명함 사이즈가 어떤지 잘 모른다면 꺼내서 자로 재보면 거의 이 크기일 거다. 내 명함은 90×55mm로 가로는 같지만 세로가 5mm 크다. 5mm 차이지만 다른 명함과 함께 있으면 확실히 크고 도드라져 보인다. 이게 명함지갑에 들어가는 최대 크기다. 이것보다 크면 들어가지 않는 경우가 많다. 내 명함지갑이야 더 큰 걸 쓰면 되지만, 내 명함이 상대방 명함지갑으로 들어가는 순간 구겨질 수 있다. 그래서 쓸 수 있는 최대치가 5mm 차이다. 두께도 내 건 좀 더 두껍다. 손에 잡히는 미세한 느낌에서 차이가 있다. 물론 둔한 사람에겐 그냥 똑같은 명함으로 보이겠지만 말이다. 상대방이 알아달라고 명함에 투자하는 게 아니다. 자기 이름이 들어간, 자기 얼굴이 되기에 좀 더 신경을 쓰는 것뿐이다.
당신은 어떤 명함을 가졌는가. 명함에 어떤 정보가 담겼는지도 중요하지만, 어떤 안목을 담았는지도 한 번쯤 생각해보면 어떨까. 명함은 때때로 당신의 첫인상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그러자 동료 한 명이 자기 명함을 꺼내며 로말리안 서체에 달걀 껍데기를 갈아 넣는 방식으로 만들었다며 당당하게 응수한다. 그 옆에 있던 또 다른 동료가 자기 명함이 더 낫다는 듯한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명함을 꺼내 든다. 흰색 바탕에 페일 님버스라는 양각 문자를 넣었다고 한다. 그리고 마지막 동료의 명함이 나오자 베이트만은 혼잣말로 감탄했다. 상대의 명함이 정교한 금색에 두께가 세련되고 투명 무늬까지 들어갔다며. 심지어 땀까지 흘린다. 그 명함이 ‘끝판왕’이었던 셈이다.
사실 이렇게까지 명함의 디테일에 민감한 사람이 있을까. 솔직히 우리는 상대의 명함을 받아 들고 그게 어떤 서체인지, 어떤 종이인지 그다지 따지지 않는다. 하지만 아주 짧은 순간, 그 첫인상과 느낌을 기억한다. 원래 매력은 아주 미세한 차이에 의해 만들어진다.
명함 꺼내기 화룡점정은 명함지갑
명함을 꺼낼 때 금속으로 된 명함지갑을 멋지게 여는 장면은 ‘명함 신공(神工)’의 화룡점정 같은 거다. 얼마나 세련된 명함을 가지느냐와 더불어 어떤 명함지갑을 쓰느냐도 중요하다. 명함지갑도 명품 브랜드를 쓰는 이가 많다. 내 안목이 모자라니 명품 브랜드의 안목에 편승하자는 식이다. 가장 무난한 경우로, 적어도 들인 돈만큼의 값어치는 한다. 실제 고가는 아니어도 깔끔하고 세련된 명함지갑으로 자신만의 인상을 만드는 사람도 있다. 좀 더 안목이 있는 경우다. 남들이 한 번도 못 봄직한 ‘특별 명함지갑’을 선택한다면 명함을 건네는 순간 이야깃거리가 하나 더 생긴다.
요즘 나는 네덜란드 디자이너 사미라 분(Samira Boon)이 두꺼운 컬러 비닐로 만든 후로시키 시키라는 명함지갑을 쓴다. 비싸지는 않지만 흔하지도 않다. 일본 보자기(후로시키)를 응용해 만든 다용도 주머니에서 출발한 명함지갑의 매력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과 일본 도쿄, 서울을 오가는 디자이너가 만든 동서양 결합형 디자인 제품이다. 이탈리아의 소형 가죽제품을 잘 만드는 조르조 페돈(Giorgio Fedon)의 명함지갑도 꽤 오래 썼다. 아내와 같이 사서 쓰던 거라 십여 년 손때가 묻어 낡았어도 여전히 아껴두고 있다.
우리의 첫인상을 좌우하는 명함을 넣어다닐 수 있는 명함 지갑.
명함은 비즈니스 카드다. 비즈니스를 할 때 자신을 드러내는 이름표이자, 자신의 가치이자, 지위를 드러내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종이를 발명한 중국에서 아주 오래전부터 명함처럼 이름을 적은 쪽지를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지금의 명함과는 조금 다른 용도일 수 있다. 본격적인 명함의 역사는 17세기 유럽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당시에는 부유하고 지위가 있는 사람만 사용했다. 19세기 들어서야 명함이 중산층에서도 널리 쓰이기 시작했다.
명함은 시대별로 크기나 내용은 조금씩 달랐지만 네모난 흰색 종이가 기본이었다. 그리고 자기 이름이자 얼굴이 된다는 점도 같았다. 작은 종이에 불과하지만 함부로 버려선 안 되는 건 상대에 대한 예의 때문이기도 하다. 예전에 어떤 외국 부자가 명함을 금으로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특이하긴 하지만 멋지지는 않았다. 그런 명함을 건네면 뇌물로 여길 수도 있겠다 싶었다. 세계적인 명사나 대통령의 명함도 종종 인터넷에서 볼 수 있는데, 한결같이 우아함과 세련미를 살리려고 꽤나 신경 쓴 모습이다. 그리고 심플하다. 역시 최고의 우아함은 단순함에서 나온다.
나는 명함을 오프셋(offset) 인쇄기로 만든다. 인쇄 품질을 높인 고급 명함을 취급하는 곳이 여럿 있는데, 같은 명함이라도 오프셋 인쇄기로 찍어낸 건 좀 다르다. 컬러를 만들기 위해서는 4가지 색을 조합하는데, 오프셋 인쇄는 종이 한 장에 4가지 컬러를 4번 인쇄해 색을 덧입혀 구현하는 식이다. 가장 큰 장점은 색상 구현의 정확성이 높고 글자가 훨씬 정교하게 나온다는 점이다. 잡지나 카탈로그 등 각종 상업 인쇄물은 오프셋으로 많이 찍는다. 물론 시간이 더 걸리고, 더 비싸다.
반면 요즘 사용하는 명함은 대부분 디지털 인쇄로 만든다. 한 번에 프린트돼 나오면 그게 끝이다. 그래서 즉석명함이라는 표현도 쓴다. 시간이 얼마 안 걸리고 가격도 싸다. 분명 두 가지의 차이는 있다. 같은 명함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찍어내 보여준다면 누구라도 오프셋 인쇄로 찍은 명함을 고를 것이다. 미세한 차이지만 기왕 자신을 드러내는 데 좀 더 신경 쓰고 싶다면 고려해볼 일이다. 실제로 회사에서 만들어주는 명함 대신 직접 서울 충무로의 고급 명함 인쇄소에서 따로 명함을 만드는 이들도 있다. 명함에서도 자기만의 작은 사치를 드러낼 수 있는 셈이다.
겨우 5mm, 작지만 큰 차이
명함 크기는 대개 90×50mm이다. 자기 명함 사이즈가 어떤지 잘 모른다면 꺼내서 자로 재보면 거의 이 크기일 거다. 내 명함은 90×55mm로 가로는 같지만 세로가 5mm 크다. 5mm 차이지만 다른 명함과 함께 있으면 확실히 크고 도드라져 보인다. 이게 명함지갑에 들어가는 최대 크기다. 이것보다 크면 들어가지 않는 경우가 많다. 내 명함지갑이야 더 큰 걸 쓰면 되지만, 내 명함이 상대방 명함지갑으로 들어가는 순간 구겨질 수 있다. 그래서 쓸 수 있는 최대치가 5mm 차이다. 두께도 내 건 좀 더 두껍다. 손에 잡히는 미세한 느낌에서 차이가 있다. 물론 둔한 사람에겐 그냥 똑같은 명함으로 보이겠지만 말이다. 상대방이 알아달라고 명함에 투자하는 게 아니다. 자기 이름이 들어간, 자기 얼굴이 되기에 좀 더 신경을 쓰는 것뿐이다.
당신은 어떤 명함을 가졌는가. 명함에 어떤 정보가 담겼는지도 중요하지만, 어떤 안목을 담았는지도 한 번쯤 생각해보면 어떨까. 명함은 때때로 당신의 첫인상을 좌우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