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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 연봉 5500만 원의 사회학 03

포용적 번영·생활임금 위기의 한국 경제 살린다

‘소득 주도 성장’은 합리적 분배에 대한 국제적 고민의 결과물

포용적 번영·생활임금 위기의 한국 경제 살린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올 초 국정연설에서 국정 목표로 ‘중산층 경제(middle-class economics)’를 제시했다. 그는 중산층 경제란 “모든 사람이 공정한 시도를 할 수 있을 때, 모든 사람이 공정한 몫을 받을 때, 모든 사람이 똑같은 규칙을 준수할 때 이 나라가 가장 잘된다는 생각”이라고 설명하면서 부유층에 치우친 기회를 저소득층과 중산층에 공정하게 분배하는 개혁을 제안했다. 구체적으로 자본소득 세율 인상, 부유층에 유리한 상속세 제도 개혁 추진 계획 등을 밝혔고, 저소득층과 중산층에게는 세제 혜택을 주기로 했다. 또 저소득층의 교육 기회 확대를 위해 2년제 커뮤니티 칼리지 무상교육을 추진하기로 했다. 오바마의 ‘중산층 경제’ 정책은 금융위기로 무너진 미국 중산층의 소득을 높여 경제 회복과 사회통합을 추구하려는 정치적 기획이다.

중산층을 늘리는 포용적 번영

이 선언은 최근 미국과 영국에서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는 ‘포용적 번영(inclusive prosperity)’ 아이디어와도 맥이 통한다. 1월 미국진보센터(CAP)와 영국 공공정책조사연구소(IPPR)는 공동으로 보고서를 냈다. 로런스 서머스 전 미국 재무부 장관과 에드 볼스 영국 예비내각 재무부 장관이 공동의장을 맡은 ‘포용적 번영위원회(Commission on Inclusive Prosperity)’에서 작성한 이 보고서에는 △1950년 이후 선진 산업국가에서 생산성과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꾸준히 증가했지만 △상위 10%를 제외한 저소득층과 중산층 소득은 늘지 않았으며 △중산층이 없으면 자본주의의 지속적 발전이 위협받을 것이라는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보고서에서 해당 문제의 해결책으로 제시한 것이 바로 연대와 개방성, 안전과 역동성, 평등과 혁신을 결합한 ‘포용적 자본주의(inclusive capitalism)’다.

한국에서도 중산층은 최근 중요한 정치적 용어가 됐다. 정부와 야당이 중산층 관련 정책을 놓고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1997년 외환위기 전에는 전체 가구의 70~80%가 스스로 중산층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2013년 현대경제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자신이 중산층에 속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응답자의 46.4%에 불과했다.

그 배경에는 첫째 직업구조의 변화가 있다. 안정적인 정규직의 감소세가 뚜렷하다. 특히 대기업, 은행 등에서 근무하는 화이트칼라의 고용이 불안정해졌다. 외환위기 이후 노동 유연화가 진행되면서 정리해고, 조기퇴직이 늘어나고 비정규직 비율이 급증했다. 정규직 몰락은 자영업 증가를 유발했다. 한국의 자영업자 비율은 전체 경제활동인구의 약 35%인데,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의 3배 수준이다.



둘째, 한국 노동시장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 임금 격차가 급속히 커지고 있다. 소수의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는 높은 임금을 받는 반면, 중소기업 노동자가 받는 임금은 대기업의 50% 수준에 불과하다. 한 연구에 따르면 한국의 상위 10%가 전체 소득의 44.9%를 차지한다. 한국은 소득 불평등이 미국 다음으로 심각한 나라다.

이런 상황에서 소득 분배가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최저임금(minimum wage) 인상을 제안했고,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도 최저임금 대폭 인상을 요구했다. 최저임금은 국가가 법률로 정한 근로자 임금의 최저 수준을 말한다. 현재 우리나라 시간당 최저임금은 5580원으로 커피 체인점에서 파는 커피 한 잔 가격과 비슷하다.

임금 주도 성장론이 대세인 이유

최저임금은 프랑스가 가장 높은 편이고, 미국과 한국은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최근 소득 불평등이 세계은행, 국제통화기금, 세계경제포럼 등에서 현안으로 부각되면서 최저임금은 중요한 의제가 됐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해 최저임금을 시간당 7.25달러에서 10.10달러로 올리는 행정명령을 발표했다. 영국, 독일, 일본도 잇달아 최저임금을 높였다.

생활임금(living wage)도 중요한 의제가 되고 있다. 생활임금은 노동자가 주거, 교육, 문화 영역에서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는 수준의 임금을 뜻하는 말로, 보통 최저임금보다 30~40% 높다. 현재 생활임금제는 서울 노원구 등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 시행하고 있으며, 점차 확산하는 추세다. 미국의 경우 20개 이상 주에서 생활임금을 법제화했고, 영국 12개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시행 중이다. 영국 정치권에서는 보수당과 노동당 양당 모두 생활임금제를 지지한다고 발표했다. 보수당 출신인 보리스 존슨 런던 시장도 생활임금 적용 대상을 일반 기업으로까지 확대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많은 나라에서 생활임금을 통해 빈곤과 불평등을 완화하거나 예방할 수 있다는 생각이 확산되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과 생활임금제 도입은 2012년 국제노동기구(ILO)가 발표한 ‘임금 주도 성장론’ 제하의 보고서와 일맥상통하는 개념이다. 이 보고서는 ‘이윤 주도 성장이 세계 경제의 주기적인 위기를 야기했다’고 지적하며, 앞으로 ‘임금을 인상해 성장을 주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임금 인상 정도에 대해서는 무조건적인 인상이 아니라 노동 생산성이 향상된 속도만큼 임금 인상 속도도 따라가야 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지난 10년 동안 한국의 실질임금 상승률은 경제성장률에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최근 박근혜 대통령과 문재인 대표 모두 ‘소득 주도 성장’을 경제 정책의 새로운 방향으로 삼는 데 동의해 정책 변화가 예고되고 있다. 궁극적으로 노동시장의 소득 격차를 줄이고 중산층을 복원하려면 임금 분배 체계를 개혁해야 한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지적한 대로 부유층과 빈곤층보다 중산층이 튼튼해야 사회가 유지될 수 있기 때문이다. 소득 증대가 경제 회복을 위한 밑거름이 될 수 있도록 여야가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주간동아 2015.03.30 981호 (p26~27)

  •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 yunkim@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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