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44

2014.06.30

북한 신형무기 잇단 공개 ‘反상륙전’ 능력 과시

유사시 한미연합군 상륙 저지 만만찮은 ‘재래식 전력’ 평가

  • 황일도 기자·국제정치학 박사 shamora@donga.com

    입력2014-06-30 10: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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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 신형무기 잇단 공개 ‘反상륙전’ 능력 과시

    북한 해군 제167부대를 방문해 로미오급 잠수함에 승선한 김정은 북한 조선노동당 제1비서. 6월 16일자 ‘노동신문’ 2면에 실린 사진이다.

    #1 말 그대로 찰나다. 5월 말 북한 ‘조선중앙TV’가 보도한 선전영화 ‘백두산 훈련 열풍으로 무적의 강군을 키우시어’. 6월 초 유튜브에도 올라온 이 영상의 끝자락인 49분 17~20초 지점에는 함선에서 발사된 미사일 한 대가 불을 뿜으며 날아오르는 모습이 담겨 있다. 문제는 이 미사일이 1990년대 러시아가 개발한 사거리 130km 수준의 함대함 크루즈미사일 Kh-35와 꼭 닮았다는 사실. 군 정보당국자들이 수 초에 불과한 이 장면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2 5월 중순 북한 군사전문가인 조지프 버뮤데즈 영국 IHS 제인스그룹 선임분석관은 지난해 말과 올해 초 북한 해군기지를 촬영한 민간위성 사진을 검토하다 뜻밖의 장면을 만났다. 서해 남포와 동해 나진에서 헬기 이착함이 가능한 길이 76m, 너비 11m 크기의 1300t급 프리깃함이 각각 1대씩 정박한 모습이 포착된 것. 동일한 설계로 제작된 이들 프리깃함 앞쪽에는 대(對)잠수함 로켓발사기가 설치돼 있다. 버뮤데즈 분석관은 북한이 2006~2007년 이들 함정 개발을 시작해 2012년쯤 건조를 완료한 것으로 보인다고 풀이했다.

    #3 “적 함선의 등허리를 무자비하게 분질러놓으라.” 6월 중순 함경남도 신포 앞 마양도 잠수함 기지를 방문한 김정은 북한 조선노동당 제1비서가 남긴 말이다. 6월 16일 북한 관영언론은 이날의 현지 시찰을 일제히 보도하면서 김 제1비서가 직접 잠수함에 올라 잠망경을 들여다보며 훈련을 지휘하는 모습을 공개했다. 북측 언론이 ‘제167부대’로 부르는 마양도 잠수함 기지는 로미오급 4개와 상어급, 위스키급 각각 1개 등 총 6개 잠수함 부두가 자리한 북한 동해함대의 대표적 전략기지. 상업용 위성사진을 연도별로 살펴보면 이 기지에는 상시적으로 20~30척의 잠수함이 배치돼 있다. 북한 전체 잠수함의 절반에 육박하는 숫자다.

    4월 이후 김 제1비서의 육·해·공군 주요 부대 시찰 행보가 속도를 내고 있다. 4월 27일 공개된 제681부대 포병 구분대의 장거리 포사격 훈련 지도, 5월 14일 공개된 항공 및 반항공군 제447부대 현지 시찰 등이 연일 이어지고 있는 것. 눈여겨볼 대목은 이 와중에 북한이 그간 정체 상태에 놓여 있다는 게 정설이던 재래식 전력의 신형 무기체계를 하나 둘씩 공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름 하여 ‘재래식 전력 강화’가 최근 북한군의 핵심 키워드인 셈이다.

    소련이 붕괴한 1990년대 이후 북한은 핵과 탄도미사일로 대표되는 대량살상무기 개발에 주력해왔을 뿐, 그 외 무기체계에는 상대적으로 소홀했다는 게 북한 군사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분석이었다. 전력 개발의 초점이 핵과 탄도미사일에 맞춰지면서 군사전략 역시 이에 무게중심을 두는 쪽으로 옮겨갔다는 시각이었다. 한마디로 재래식 전력에는 더는 관심도 없고, 여력도 없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최근 확인된 북한의 신형 무기체계들은 이러한 정설이 근본적으로 잘못됐을지 모른다는 개연성을 강하게 시사한다. 앞서 살펴본 크루즈미사일과 프리깃함, 잠수함 기지에는 이를 관통하는 하나의 기조가 숨어 있으며, 이는 북한 군사전략 흐름의 변화 징후일 수 있다는 것. 최근 20여 년간 탄도미사일을 제외하고는 북한이 새로 도입하거나 배치한 무기체계가 사실상 전무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최근 사례는 극히 이례적이고, 더욱이 국제사회의 강력한 금수조치에 시달리는 북한이 어떤 경로로 이들 무기체계를 개발 혹은 도입했는지는 상상하기조차 쉽지 않다.

    북한 신형무기 잇단 공개 ‘反상륙전’ 능력 과시

    5월 말 공개된 북한 선전영화에 등장한 함대함 크루즈미사일(왼쪽). 러시아제 Kh-35(오른쪽)와 제원, 보조날개 위치 등이 사실상 동일하다.

    위성사진에 포착된 프리깃함

    바다 위를 낮게 날아가 상대 함정을 격파하는 Kh-35는 요격이 쉽지 않아 우리에게는 치명적인 무기체계다. 북한은 그간 스틱스 함대함 미사일과 실크웜 지대함 미사일로 우리 측 해군 전력을 위협해왔지만, 이들은 각각 1960년대 소련과 중국에서 도입된 ‘고물’에 가까웠다. 사거리가 훨씬 긴 Kh-35 도입이 사실이라면 50여 년간 정체 상태였던 북한의 대함(對艦)작전 능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했다는 뜻이 된다.

    문제의 영상이 공개된 후 일부 미국 전문가들은 “북한이 이를 도입할 경로가 없다”며 기존 영상을 짜깁기한 것일지 모른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그러나 영상 속 크루즈미사일의 노즐 모양 등이 Kh-35와 부분적으로 다르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조작설은 급속도로 사그라지는 분위기. 러시아가 미얀마 등에 수출한 Kh-35를 입수한 뒤 이와 유사한 형태로 모방해 만들었을 공산이 크다는 게 군 당국의 설명이다. 이 경우 미사일의 위력 자체는 Kh-35에 다소 못 미칠 수 있지만, 영상 속 비행장면만 봐도 기존 함대함·지대함 미사일을 능가하는 위력을 갖추고 있음은 명확하다.

    위성사진에 포착된 프리깃함 역시 최근 25년간 북한이 건조한 수상함 가운데 최대 규모다. 옛 소련의 잠수함 추적용 헬기 Mi-4PL이나 Mi-14PL을 탑재할 수 있는 이 함정에 대해 버뮤데즈 분석관은 “북한 해군 전략의 극적인 강화를 상징한다”고 평가한 바 있다. 이들 헬기의 작전반경이 각각 465km와 1135km임을 감안하면 사실상 동해와 서해 전역을 작전범위에 포함할 수 있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 실전 배치 여부를 단언하기에는 이르지만, 한미 양국군의 잠수함 운용이 만만치 않은 장애물을 만나게 됐음은 분명해 보인다.

    군사전략 차원에서 따져보면 최근 공개된 무기체계들은 주로 해상전, 그중에서도 특히 상대의 상륙을 저지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른바 ‘반(反)상륙전’이다. 강력한 함대함 크루즈미사일과 잠수함 전력으로 유사시 해안에 접근하는 상륙전단을 격파하고, 이들을 호위하는 상대의 잠수함 전력은 새로 배치한 프리깃함의 헬기로 차단하는 작전이 가능하기 때문. 쉽게 말해 한반도 유사시 동해와 서해에 상륙할 한미연합군 전력을 막아내겠다는 의도다.

    걸프전 이후 미군의 전쟁 수행 방식이 크게 두 단계로 나뉘어 왔음은 잘 알려진 사실. 정밀유도무기로 수도와 사령부 등 상대 핵심을 공격하는 1단계 작전으로 전의(戰意)를 꺾은 다음, 대규모 지상군을 투입해 영토를 점령해나가는 2단계 작전이 진행되는 식이다. 한반도 유사시에 대비한 미군 측 작전계획 또한 이에 발맞춰 변화해왔다는 게 전직 군 당국자들의 설명이다.

    이러한 이유로 북한은 그간 한미연합군의 상륙전 수행능력에 유독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1단계 작전에 동원될 장거리 미사일과 스텔스 전폭기에는 뾰족한 대응 수단이 없지만, 2단계 작전의 서막이 될 상륙작전에는 충분히 타격을 입힐 수 있기 때문이다. 3월 31일 서해 북방한계선(NLL) 이남으로 해안포와 방사포 100여 발을 쏘며 도발한 사건은 그 대표적 사례 중 하나다.

    이날 오전 한미 양국군은 경북 포항에서 총 1만2500여 명의 병력이 참가한 상륙연습 쌍용훈련을 진행한 바 있다. 1993년 팀스피리트 훈련 이후 최대 규모였던 이 훈련이 유사시 북한 지역 상륙을 전제한 것임은 불문가지.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연구교수는 “이날 북측의 포 사격연습은 전형적인 반상륙전 능력 과시”라고 잘라 말한다.

    거부(denial)와 응징(punishment). 군사전략에서 상대 공격을 억제하기 위해 구사하는 두 개의 큰 줄기다. 거부가 상대의 공격이 실효를 거둘 수 없게 만드는 방어에 초점을 맞춘다면, 응징은 섣불리 공격할 경우 더 큰 보복을 당할 것이라고 위협하는 방식이다. 전자는 상대로 하여금 ‘공격해봐야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 후자는 ‘공격하면 더 큰 희생을 치러야 한다’고 두려워하게 만드는 것이 목표다.

    미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핵 개발 국가는 핵무기가 완성되고 나면 국가 전체의 통합군사력 구조를 이 두 갈래에 맞춰 재구성하는 길을 걸어왔다. 이를테면 핵과 재래식 전력의 역할을 분리하는 작업이다. 대량살상무기라는 강력한 수단을 활용해 응징을 위협하는 대신, 재래식 무기체계는 거부 혹은 방어 수단으로 활용하는 군사전략을 채택하는 것이다. 서유럽 국가들이 제한적 핵 능력을 보유하게 된 1960년대 이후 실행한 3단계 전쟁계획이 대표적이다.

    북한 신형무기 잇단 공개 ‘反상륙전’ 능력 과시

    2013년 12월 7일 미국 상업용 영상위성에 포착된 북한의 신형 프리깃함.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SAIS)이 운영하는 북한 전문 웹사이트 ‘38노스’가 공개한 사진이다(왼쪽). 함경남도 신포 앞 마양도 잠수함 기지를 찍은 구글어스 위성사진. 로미오급으로 추정되는 잠수함 6척이 부두에 정박해 있다. 2013년 10월 30일 촬영된 사진이다.

    안보 당국의 성찰 절실

    앞서의 신형 무기체계는 평양 역시 이러한 고민에 접어든 게 아니냐는 관측을 낳는다. 보복응징을 가하는 일은 핵무기로 충분히 가능해졌으므로, 재래식 전력은 주로 한미연합군의 상륙이나 진격을 저지하는 용도로 활용하는 역할 분담이다. 엄청난 희생 없이 북한 영토를 지상군으로 점령하는 일이 불가능해지면, 북한은 전쟁이 벌어진 후에도 체제를 유지할 수 있게 되기 때문. 걸프전이 끝난 뒤에도 살아남았던 이라크의 후세인 체제가 바로 그런 경우였다.

    ‘수뇌부의 생존 가능성을 극대화’하는 이러한 전략에 대해 북한은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아 왔다는 게 그간 전문가 사이의 정설이었다. 장사정포 같은 재래식 무기체계마저 ‘서울 불바다’를 공언하며 위협하는 데 사용하는 게 평양의 주된 행동패턴이었기 때문. 그러나 앞서의 신형 무기체계는 이러한 기조에서 한걸음 벗어나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핵 개발을 완수했다고 판단한 김정은 체제가 이전의 다른 핵개발 국가들처럼 새로운 통합 군사력 구조를 만들어가기 시작한 징후로 볼 수 있는 까닭이다. 한 전직 군 정보당국 고위관계자의 말이다.

    “문제는 만약 북한의 군사전략이 이렇게 ‘진화’할 경우 한국의 처지가 한층 곤혹스러워진다는 점이다. 주지하다시피 1990년대 이후 워싱턴은 한반도 유사시 미군 지상전력 투입을 최소화한다는 기조를 견지해왔다. 미국이 상륙작전의 대규모 피해를 우려해 주저한다면, 한국은 전쟁이 끝난 후에도 북한 정권이 계속 존속하는 상황을 감수해야 한다. 이처럼 최근 북한의 신형 무기체계 공개에는 단순한 전력 과시나 지도자 체면 세우기 이상의 심각한 함의가 숨어 있을 수 있다. 안보 당국의 깊은 성찰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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