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016.02.17

특집 | 시한폭탄 한국 제조업

포스코 너마저… 수출 효자들의 배신

공장 평균가동률 외환위기 이래 최악…중국 제조업 회생 여부가 관건

  • 김수빈 객원기자 subinkim@donga.com

    입력2016-02-16 15:5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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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제조업이 위태롭다. 공장의 지난해 평균가동률은 외환위기 이후 최악이다. 1월 수출 실적은 휴대전화, 자동차를 비롯한 주요 수출 품목 전 부문에서 일제히 하락했다. 한국 제조업의 침체는 중국 제조업의 부진이 결정적인 원인인데, 아직까지 중국 제조업의 회복세는 불투명할 따름이다.
    제조업 평균가동률은 현재 한국 제조업의 침체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공장의 생산설비를 얼마나 이용했는지 보여주는 이 지표는 경기가 호황일 때는 높아지고 침체일 때는 낮아진다. 제조업 평균가동률이 낮으면 투자 위축과 실업 등으로 이어지는데 2015년 제조업 평균가동률은 74.2%였다. 지난 10년간 제조업 평균가동률이 이때보다 낮았던 기간은 외환위기를 맞았던 1998년이 유일하다(그래프1 참조).
    제조업은 대한민국 경제를 지금의 위치까지 이끌어온 원동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조업을 앞세운 수출 위주의 경제성장 전략은 협소한 내수시장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게 만들었다. 지금도 제조업은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의 31.1%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는 미국, 일본, 영국 등 선진국은 물론이고 전통적으로 제조업에 강하기로 유명한 독일보다도 높은 비중이다. 이 때문에 제조업의 침체는 한국 경제에 직격탄이 될 수밖에 없다.



    휴대전화, 자동차, 선박 줄줄이 하락세

    국내 주요 제조업 기업 가운데 하나인 포스코는 창사 이래 처음으로 적자를 내면서 시장에 큰 충격을 안겼다. 포스코는 1998년 외환위기 당시에도 흑자를 기록했던 기업이다. 2015년 초 28만 원으로 출발했던 주가는 현재 17만 원 수준까지 떨어졌다.
    사실 포스코의 적자는 현재 배임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정준양 전 회장 시절 계열사를 무분별하게 인수하며 확장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증권가에서는 2015년   4분기로 포스코의 실적이 저점을 찍었으며 2016년 1분기 실적은 개선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러나 철강 부문의 업황 전망은 아직까지 불투명하다. 김윤상 LIG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철강 업황 부진은 당분간 지속될 것”이며 “글로벌 수요 부진으로 수출시장도 포화 상태에 진입해 의미 있는 실적 개선은 불투명하다”고 분석한다.
    삼성전자의 최근 실적도 시장에 충격을 안겼다. 2015년 매출이 200조 원대를 기록하면서 4년 연속 매출 200조 원을 돌파했지만 4분기 영업이익은 전분기보다 17%가량 감소했다. 무엇보다 삼성전자의 대들보나 다름없는 반도체·부품 부문의 영업이익이 대폭 감소했다는 것이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한때 효자였던 모바일 부문이 부침을 거듭할 때도 반도체·부품 부문은 실적을 선방해왔기 때문. 삼성전자 반도체·부품 부문의 영업이익은 2015년 3분기에는 3조6600억 원이었다 4분기 2조8000억 원으로 떨어졌다.
    향후 전망도 음울하기는 매한가지다. 시장조사기관들은 한목소리로 반도체·메모리 시장의 위축을 예측하고 있다. 일반 개인용 컴퓨터(PC)와 기업용 서버는 물론이고 모바일을 비롯한 반도체 관련 전 영역에서 수요 부진과 가격 하락을 점치고 있다.
    또한 세계 최대 스마트폰 시장인 중국의 수요 증가세가 최초로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중국의 스마트폰 수요 증가세는 2013년 82.9%, 2014년 33.6%로 매년 급격히 감소해왔으며 2015년 4분기에는 스마트폰 판매량이 전년도 같은 기간에 비해 2.6% 감소했다. 이는 그렇지 않아도 중국의 후발주자들에게 추격당하고 있는 모바일 부문의 전망을 더 어둡게 만들고 있다. 증권가는 일제히 삼성전자의 실적 전망을 하향 조정했다. 이가근 KB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모바일과 반도체, 디스플레이 전 부문에 걸쳐 전년 대비 이익이 하락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원인도 해결책도 모두 중국에

    제조업의 침체와 수출 부진은 몇몇 주요 기업에게만 국한된 상황이 아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이달 초 발표한 ‘2016년 1월 수출입 동향’에 따르면 반도체부터 가전, 선박, 자동차, 석유, 섬유 등을 비롯한 13대 수출 품목의 2016년 1월 수출액이 모든 부문에서 일제히 감소해 2015년 1월 대비 평균 18.5% 하락했다.
    타격이 가장 큰 부문은 석유다. 국제유가 급락으로 휘발유, 경유 등의 석유제품 수출은 35.6%나 감소했고 석유화학제품의 수출 또한 18.8% 감소했다. 그러나 석유제품의 수출액 감소는 유가 하락에 따른 수출 단가 하락의 영향이 크고 수출 물량 자체는 전년 대비 증가한 상태라 크게 우려할 만한 것은 아니다.
    이보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휴대전화와 자동차, 선박 등 주력 수출 품목의 뚜렷한 감소세다. 휴대전화는 2015년 11월 이후부터 꾸준히 수출이 줄어들었는데 그 원인은 크게 두 가지다. 중국의 후발주자들이 저렴한 가격을 앞세워 중저가 시장을 공략하고 있는 것이 첫 번째 이유이고, 스마트폰 보급이 포화 상태에 가까워지면서 시장 내에서 수요가 감소하고 있는 것이 두 번째 이유다. 대표적인 수출 효자 품목인 자동차 또한 주력 수출시장인 신흥국의 구매력 저하와 글로벌 업체들과의 경쟁 심화 등으로 전년 수출같은 기간에 비해 수출액이 21.5% 감소했다. 선박 수출은 전년 대비 32.3% 감소했는데 이는 저유가로 해양플랜트 발주가 급감한 탓이 크다. 유가가 어느 정도 높아야 플랜트라는 값비싸고 복잡한 시추장비를 사용해 석유를 채굴하는 데 채산성이 맞기 때문이다.
    한국 제조업·수출 부진의 원인을 부문별로 하나씩 따져가다 보면 필연적으로 중국에 다다르게 된다. 중국은 한국의 최대교역국이다. 한국의 2015년 대중국 수출액은 1371억 달러(약 166조 원)에 달한다. 미국과 일본, 그리고 유럽연합에 대한 수출액을 전부 합쳐야(1435억 달러) 대중국 수출액을 넘는다. 한국 경제는 어떤 식으로든 중국 경제에 종속돼 있는 상태를 피할 수 없는 것이다.
    한국 제조업의 대중국 수출은 중간재가 상당 부분을 차지해 최근의 중국 제조업 경기 악화로 직격탄을 맞고 있다. 중간재란 최종 물건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사용되는 원료나 부속품 등과 같이 중간에 소요되는 재화를 뜻한다. 석유화학제품이나 철강, 그리고 전자·기계 부품이 대표적인 중간재다.
    금융과 무역으로 전 세계가 연결된 오늘날에는 거의 모든 국가의 경제 상황이 서로에게 영향을 끼친다. 13억 인구의 중국 경제 침체가 단지 한국에만 영향을 미칠 리 없다. 전 세계가 다음과 같은 메커니즘으로 그 영향을 받는다. 중국의 공급 과잉으로 제조업 부진이 발생했고, 제조업이 부진하면서 원자재와 중간재 수요가 감소했다. 이는 산유국과 남미, 러시아를 비롯한 원자재 수출국의 경기 침체와 한국, 일본, 대만을 포함한 중간재 수출 국가의 경기 침체로 이어진다(그림1 참조). 그나마 유럽연합과 일본은 양적완화 덕에 상대적으로 제조업 상황이 양호한 편이다. 이는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 같은 지표에서도 드러난다(그래프2 참조). PMI란 기업 구매담당자를 대상으로 신규 주문, 생산, 재고, 고용 현황 등을 조사한 다음 각 항목에 가중치를 부여해 만드는 지표로, 경기 전망을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PMI가 50 이상이면 경기가 확장되는 것을, 50 미만이면 경기가 위축되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과 중국, 말레이시아, 브라질 등 신흥국의 제조업 침체가 상대적으로 양호한 미국, 일본, 유럽연합과 대비된다.
    여기에 지난해 미국의 금리인상에 따른 신흥국 자본 유출도 신흥국 경기 침체에 한몫했다. 캐리트레이드 자금이 신흥국에서 철수하게 됐기 때문. 캐리트레이드란 자금 조달 비용이 낮은 곳에서 돈을 빌린 다음 고수익 지역에 투자하는 것을 뜻하는데, 통상적으로 금리가 낮은 달러·엔·유로화를 빌려 금리가 높은 편인 신흥국에 투자해 수익을 추구한다. 선진국과 신흥국의 금리 차가 클수록 수익성이 높아지는데 미국이 금리를 인상하면서 수익성이 떨어진 캐리트레이드 자금이 신흥국에서 빠져나가고 있는 것. 신흥국 자본시장 내에서 풍부하게 돌던 해외자금이 빠져나가면 디레버리징(deleveraging·부채 축소)이 일어나면서 시장에서 흐르는 자금이 줄어들고, 이는 경기 침체로 이어진다.
    현 상황은 중국의 과도한 설비투자에 따른 경기 침체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미국 금리인상으로 인한 신흥국 자본 유출까지 겹치면서 신흥국 수출 비중이 큰 한국이 연이어 타격을 입은 것(그림2 참조). 짧은 기간 내 타개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한국의 제조업 부진은 중국 제조업의 부진에 따른 영향이 절대적”이라고 단언하면서 “한국 제조업이 반등하기 위해서는 중국 제조업의 회복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中 제조업 회복에 기대…위안화 약세는 복병

    한국 제조업의 회생은 결국 중국 제조업에 달려 있다. 가장 이상적인 시나리오는 중국이 공급 과잉으로 인한 재고를 줄이고 수요를 진작시키는 데 성공하는 것. 재고 조정은 원활하게 이뤄지고 있다. 성연주 대신증권 애널리스트는 연초 중국 정부의 강도 높은 과잉생산 구조조정 언급으로 산업 재고조정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제조업 PMI에서 완성품 재고지수는 2009년 이후 최저치까지 떨어졌다. 관건은 부진한 수요의 회복 여부. 성 애널리스트는 “수요 회복의 관건은 고정자산투자에서 비중이 큰 부동산 투자의 회복 여부”라면서 “도시 주택 거래량 반등폭이 컸고, 은행관리감독위원회가 부동산 담보대출 비율을 상향 조정하는 등 부양정책을 발표하면서 점진적인 수요 회복이 가능하다”고 전망한다.
    그러나 제조업 전반의 수출 부진과 특히 위안화의 약세는 중국 제조업의 앞날에 큰 위험 요소로 남아 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지금과 같은) 달러화 강세가 지속되면 위안화 평가절하가 불가피하다”며 “위안화가 평가절하될 경우 신흥국의 경기 부진은 더욱 심화돼 중국과 한국 제조업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서비스업이 제조업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 기술혁신 견인하는 제조업 중시 시각도 여전
    신흥국에서 시작해 세계 경제의 키 플레이어가 된 한국과 중국 모두 제조업을 필두로 한 성장 전략을 채택해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다. 그러나 여기에도 한계는 존재한다. 한국은 이미 수년 전부터 성장률에 한계를 보여왔고 중국 또한 최근 그러한 양상을 드러내고 있다.
    제조업을 통한 성장이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하면서 앞으로 서비스업을 주력으로 경제성장을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많다. 제조업 부문이 서비스업에 비해 규모가 축소되고 있고, 두 부문 사이 상관관계가 그리 크지 않아 제조업이 부진하더라도 서비스업을 통한 경제성장이 가능하다는 것. 박근혜 정부 초대 경제부총리였던 현오석 전 기획재정부 장관 또한 “서비스산업 발전이 우리 경제의 명운과 관련돼 있다”고 피력한 바 있다. 서비스업을 통한 새로운 경제성장을 긍정하는 논자들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경기가 회복됐을 때 제조업 부문이 기여한 바가 적었으며, 미국 애플 같은 기업의 출현으로 제조업과 서비스업의 구분도 불분명해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반면 여전히 경제성장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제조업이라고 주장하는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 같은 학자도 있다. 생산성 향상에 결정적인 기술혁신은 대부분 제조업 부문에서 발생하며 서비스업은 그 특성상 국제교역이 어렵기 때문. 회의론자들은 제조업이 부진했을 때 미국 경제도 함께 부진했으며, 서비스업도 결국 제조업의 동력에 의해 움직인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최근의 실증적인 지표는 흥미로운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아시아지역에서 제조업이 침체기에 빠진 반면, 서비스업 부문은 여전히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 제조업과 서비스업의 구매관리자지수(PMI)가 대조적인 수치를 보여주는 것이 한 사례. 중국 경제매체 ‘차이신’ 집계에 따르면 중국의 2016년 1월 서비스업 PMI는 52.4로 최근 6개월 중 최고치를 기록했다. 반면 제조업 PMI는 48.4로 11개월째 기준선인 50을 밑도는 상태. 중국 경제의 중심축이 서비스업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홍콩상하이은행(HSBC)의 분석도 비슷하다.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 국가의 부문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비교해보면 장기적으로는 제조업의 성장률과 서비스업의 성장률이 높은 상관관계를 보여주고 있으나, 최근 들어 제조업의 성장률이 서비스업의 성장률보다 뒤처지는 모습을 계속 보여주고 있다는 것. 게다가 제조업과 서비스업의 이러한 격차는 최근 들어 더욱 확대되고 있다(그래프3 참조).
    HSBC에 따르면 제조업과 서비스업의 상관관계는 아시아 국가별로 상이하다. 한국, 태국, 대만의 경우에는 서비스업과 제조업 성장률의 장기적인 상관계수가 높다. 반면 인도네시아, 필리핀, 인도, 말레이시아는 상관계수가 낮은 편. 중국은 그 상관계수가 아시아 국가 가운데 중간 수준이나 제조업의 성장 둔화가 지속될수록 서비스업 부문의 성장에도 부담이 될 것이라고 HSBC는 전망했다. 결국 제조업 부문의 안정화가 이뤄져야 서비스업도 꾸준히 성장할 수 있다는 것.
    그러나 제조업이 근시일 내 회복될 수 있을지 여부에 대해 HSBC 측 전망은 비관적이다. 제조업은 전 세계적으로 약세를 보이고 있다. 또한 아시아지역의 제조업은 수출이 중요한데 수출이 계속 악화되고 있다는 것도 비관론을 부추기는 한 요인이다. HSBC는 아직 수출이 증가할 것이라는 단서는 보이지 않는다며 당분간 제조업 침체가 계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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