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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조사받던 베트남 동포 통역하다 시작된 19년 봉사 인생

귀화 외국인 최초로 ‘서울시 봉사상’ 대상 받은 응우옌 티 땀띵

  • 이슬아 기자 island@donga.com

경찰 조사받던 베트남 동포 통역하다 시작된 19년 봉사 인생

2022년 ‘서울시 봉사상’ 대상 수상자로 선정된 응우옌 티 땀띵 씨는 2003년부터 꾸준히 통역 봉사를 하고 있다. 사진은 병원에서 베트남 환자의 통역을 돕는 땀띵 씨. [서울시 제공]

2022년 ‘서울시 봉사상’ 대상 수상자로 선정된 응우옌 티 땀띵 씨는 2003년부터 꾸준히 통역 봉사를 하고 있다. 사진은 병원에서 베트남 환자의 통역을 돕는 땀띵 씨. [서울시 제공]

“그때 알았어요. 오직 먹고살려고 한국으로 온 동포들이 있다는 걸. 유학생인 저에게는 낯선 세상이었죠.”

귀화 베트남인 응우옌 티 땀띵(45) 씨는 2003년 경기 광주경찰서로부터 “한 베트남인을 조사하고 있는데 말이 통하지 않으니 통역을 도와달라”는 전화를 받았다. 땀띵 씨가 재학 중이던 중앙대 국제경영대학원을 통해 온 연락이었다. 같은 나라 사람이 조사받고 있다는 얘기를 들은 그는 곧장 경찰서로 향했다. 한국 체류 베트남인이 지금처럼 많지 않던 시절이라 ‘내가 거절하면 도와줄 사람이 별로 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구체적인 사건 내용은 밝힐 수 없지만 한국 농가에 일하러 온 베트남 노동자와 고용주 사이에 심한 갈등이 있었어요. 공부하러 한국에 온 저와 달리 열악한 처지에 놓인 베트남인도 있다는 걸 알게 된 순간이었죠.”

“나는 한국에서 받은 게 많은 사람”

2022년 11월 15일 서울 중구 시청 본청 다목적홀에서 열린 서울시 봉사상 시상식에서 땀띵 씨가 수상하고 있다. [서울시 제공]

2022년 11월 15일 서울 중구 시청 본청 다목적홀에서 열린 서울시 봉사상 시상식에서 땀띵 씨가 수상하고 있다. [서울시 제공]

‘통역 봉사를 계속해야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지만 경찰서로 달려가기를 반복한 시간은 어느덧 19년이 됐다. 한국어가 서투른 베트남인을 앞에 두고 곤란해하던 한국 경찰관의 얼굴도 눈에 밟혔다. 땀띵 씨는 “대학원 전액 장학금도 그렇고 한국에 와 받은 게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양쪽 모두를 돕고 싶은 마음이 컸다”고 ‘주간동아’와 서면 인터뷰에서 말했다. 서울시는 이 같은 땀띵 씨의 노고를 치하하고자 11월 14일 그를 2022년 ‘서울시 봉사상’ 대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귀화 외국인이 이 상을 받은 건 1989년 시상을 시작한 이래 처음이다.

“저보다 더 대단한 봉사를 하는 분이 많다는 걸 알기에 부끄러워요. 작은 일이지만 꾸준히 봉사해왔다는 의미로 준 ‘개근상’이라고 생각해요.”



유학생으로 한국에 온 땀띵 씨는 2017년 귀화를 택했다. 원래대로라면 석사학위를 끝마친 2004년 고향 하노이로 돌아가야 했다. 출국 전 한국에서 짧게나마 경험을 쌓으려 자동차 부품을 수출하는 회사에 취업했는데, 지금 이 업체에서 18년째 근무하고 있다. 현재 해외영업팀 차장인 그는 입사 당시 회사의 유일한 외국인이자 외국어 능통자였다. 그는 “해외 출장이 잦은데 그때마다 비자를 발급받아야 해 불편했다”며 “무엇보다 일하면서 한국에 계속 살아야겠다는 확신이 커져 귀화하게 됐다”고 말했다.

“다문화가정 위한 봉사하고파”

땀띵 씨는 결혼과 출산을 하면서도 봉사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그는 2017년 귀화와 함께 친구로 지내던 호찌민 출신 남성과 결혼했다. 이듬해에는 딸 응우옌 하아잉을 낳았다. 일과 육아를 병행하며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와중에도 퇴근 후, 주말 등 개인 시간을 쪼개 봉사를 계속했다. 현재도 경찰 조사 통역은 물론, 대학원생 때부터 인연을 이어온 서울 성동구 외국인노동자센터에서 통번역을 돕고 있다.

“자주 가던 아시안 식료품점 사장님 소개로 (외국인노동자센터에서) 봉사를 시작하게 됐어요. 학생 때는 센터에 찾아온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국어·컴퓨터 교육을 하고 노무 상담도 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했어요. 지금은 회사 다니면서 5세 딸까지 키우다 보니 집에서 할 수 있는 통번역 위주로 도와드리고 있어요.”

대학원생 때부터 통역 봉사를 해온 그는 말을 전하는 과정에서 통역을 받는 사람의 내밀한 사정을 잘 알게 됐다. 그래서인지 기억에 남는 사연도 많다. 대학원생 시절 한국선의복지재단의 ‘개발도상국 심장병 어린이를 위한 무료 수술’ 사업에서 통역을 맡았을 때가 대표적이다. 가난한 나라 아이들이 심장병으로 얼마나 힘들게 생활했는지, 어떻게 기회를 잡아 한국에 오게 됐는지 등을 알 수 있었다.

“베트남에서 온 아이가 있었는데 이런저런 사정을 듣다 그 가족과 친해져 지금까지 연락하며 지내요. 아이는 수술받은 뒤 한국에 대한 관심이 커져 대학도 한의학과로 진학했죠. 이제는 어엿한 청년이 돼 베트남에서 한의사로 일하는데 아무래도 그 친구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땀띵 씨의 서울시 봉사상 수상 소식에 가장 먼저 축하를 전해온 곳은 국내 체류 베트남인 커뮤니티다. “베트남인에 대한 인식 개선에 앞장서줘 고맙다”는 말이 땀띵 씨의 마음을 울렸다. 그는 “외국인 혹은 귀화자도 한국에서 봉사하며 살 수 있다는 걸 보여준 것 같아 뭉클했다”며 “딸이 좀 더 커서 시간적 여유가 생기면 다문화가정을 위한 봉사에도 앞장서고 싶다”고 말했다.

“베트남에서 온 결혼이주여성이 한국에 많아졌어요. 다문화가정에서 발생하는 갈등은 결국 언어와 문화 차이에서 온다는 걸 경찰서에서 자주 느껴요. 한국인 남편에게는 베트남 문화를 알려주고 베트남인 아내에게는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가르쳐주는 무료 수업을 해보고 싶어요. 언어에 능통한 외국인이 봉사할 기회가 정말 많이 늘었기 때문에 저뿐 아니라 다른 외국인, 귀화자도 이런 일에 나섰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주간동아 1371호 (p48~49)

이슬아 기자 islan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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