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93

2021.06.11

지구촌 독재자 뒤에 中·러시아 있다

루카셴코·마두로·아사드 뒷배 역할… 자국 안보·미국 견제 의도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입력2021-06-16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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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9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오른쪽)이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마두로 트위터]

    2018년 9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오른쪽)이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마두로 트위터]

    알렉산드르 루카셴코(67) 벨라루스 대통령의 별명은 ‘유럽의 마지막 독재자’다. 옛 소련 붕괴 이후 중·동유럽 국가 모두 민주화됐음에도 루카셴코만 벨라루스에서 철권통치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루카셴코는 최근 이런 별명에 걸맞게 전투기를 동원해 반정부 언론인을 체포하는 만행까지 저질러 국제사회를 깜짝 놀라게 했다. 벨라루스 공군 소속 전투기들은 5월 23일 자국 영공을 지나던 아일랜드 국적 라이언에어 여객기를 수도 민스크국제공항에 강제 착륙시켰다. 이 여객기는 그리스 수도 아테네에서 출발해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로 가던 중이었다. 당시 이 여객기에는 루카셴코를 비판해온 반정부 언론인 라만 프라타세비치와 그의 여자친구를 비롯해 12개국 승객 170여 명이 타고 있었다. 벨라루스 관제 당국은 “폭발물 테러 위협이 있으니 민스크국제공항으로 향하라”고 명령했고, 전투기들이 이 여객기의 주위를 선회하면서 위협 비행을 했다. 이 여객기가 착륙하자 벨라루스 경찰은 프라타세비치와 그의 여자친구를 체포했다.

    공군 전투기 동원 反정부 언론인 체포

    미국과 유럽연합(EU)은 이런 사태가 벌어지자 벨라루스에 강력한 제재 조치를 단행했다. EU는 6월 4일 0시부터 벨라루스 항공사 소속 여객기의 역내 영공 비행과 공항 착륙을 금지하는 조치를 내렸다. 또한 모든 회원국에 여객기가 벨라루스 영공을 비행하지 말 것을 권고했다. 말 그대로 벨라루스의 하늘 길을 봉쇄한 것이다.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회원국 정상들이 이번 사태를 벨라루스 정부에 의한 납치 행위로 규정했다”면서 “앞으로 더욱 강력한 추가 제재 조치도 내릴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정부도 자국 국민에게 벨라루스 여행 금지 경보를 내렸고, 자국 항공기에도 벨라루스 영공을 통과할 경우 극히 주의할 것을 지시했다. 또한 6월 3일부터 벨라루스 국영기업 9곳에 대한 경제제재 조치를 발효했다.

    하지만 루카셴코는 미국과 EU 등 서방 국가의 제재 조치를 아예 무시하고 있다. 벨라루스 정부는 자국민의 해외 출국 금지 조치를 내리는 등 맞불을 놓았다. 벨라루스 정부는 코로나19 방역을 위한 조치라고 밝혔지만, 실제로는 반정부 인사들의 해외 망명을 막으려는 것이다. 지난해 8월 실시된 대선에서 루카셴코가 80% 득표율로 압승하면서 6연임에 성공하자 벨라루스 국민과 야권은 부정선거와 개표 조작 등에 항의하며 대규모 시위를 수개월간 벌였다. 벨라루스 정부는 시위를 강경 진압하고 3만5000여 명을 체포하기도 했다.

    2020년 9월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이 취임식을 하고 있다(왼쪽). 2014년 취임식을 하고 있는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 [벨라루스 대통령궁, SYRIA TV]

    2020년 9월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이 취임식을 하고 있다(왼쪽). 2014년 취임식을 하고 있는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 [벨라루스 대통령궁, SYRIA TV]

    차관은 물론 식량, 무기까지 제공

    옛 소련 시절 집단농장 관리인 출신인 루카셴코는 벨라루스 독립 이후인 1994년 치른 첫 대선에서 초대 대통령에 당선했다. 이후 2004년 3선 금지 조항을 삭제하는 내용의 개헌을 단행한 그는 대선 때마다 압도적 득표율을 올리며 연임에 성공해왔다. 루카센코는 그동안 대선에서 각종 불법 행위를 저질렀다. 또한 반정부 민주화 운동가들을 체포해 고문을 가하는 등 체제 유지를 위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러왔다. 특히 그는 서방 국가의 각종 제재 조치에도 지금까지 버티고 있다. 루카셴코는 서방 국가들이 대선을 부정선거로 규정하고 자신을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자 지난해 9월 비밀리에 취임했다. 루카셴코를 대통령으로 승인한 국가는 러시아와 중국 등 몇 개국밖에 없다. 게다가 러시아와 중국 정부는 벨라루스에 대규모 차관을 지원하는 등 루카셴코의 든든한 ‘뒷배’가 돼왔다. 이번 사태가 벌어지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벨라루스 정부에 5억 달러(약 5573억 원) 차관을 긴급 지원하라고 지시하는 등 루카셴코에게 또 한 번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다. 푸틴 대통령은 국경을 맞댄 벨라루스가 민주화할 경우 자국 안보에 위협이 될 것을 우려해왔다.

    니콜라스 마두로(59) 베네수엘라 대통령도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국민과 야권의 대규모 시위 등으로 한때 쫓겨날 위기에 처했으나 중국·러시아의 지원에 힘입어 권력을 유지하고 있다. 14년간 집권했던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이 2013년 사망하자 후계자 마두로가 대통령에 취임했고, 이후 지금까지 야당을 탄압하고 반정부 인사들을 투옥하는 등 철권통치를 해왔다. 이 때문에 마두로는 남미에서 ‘최악의 독재자’라는 얘기를 들어왔다. 특히 그는 석유 산업 국유화와 과도한 무상 교육·의료 등 차베스 전 대통령 시절부터 시행돼온 포퓰리즘 정책을 더욱 강화했다. 이로 인해 한때 세계 4위 산유국이던 베네수엘라는 경제가 완전히 파탄 나면서 사실상 국가부도 상태에 빠졌다. 연 2600% 넘는 살인적 인플레이션으로 화폐는 휴지조각이 됐으며, 국민의 3분의 1이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다. 국민은 화폐 대신 물물교환으로 살아가고 있다. 최근 6년간 국민 5분의 1에 해당하는 550만 명이 살길을 찾아 이웃 나라 등으로 떠났다.



    마두로는 2018년 대선에서 재선에 성공했지만 야권은 물론, 미국과 EU 등 국제사회는 부정선거라며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야권이 장악한 l의회에서는 지난해 1월 후안 과이도 의장이 임시 대통령으로 선출돼 마두로에 맞서왔다. 미국과 EU는 그동안 마두로와 베네수엘라 정부에 강력한 제재 조치를 취했고, 과이도 임시 대통령을 합법적 최고통치자로 간주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두로는 지난해 12월 총선을 실시해 의회까지 장악했다. 당시 집권 여당인 통합사회당이 67.6%를 득표해 승리했다고 주장하지만, 야권은 부정선거를 우려해 아예 총선을 거부했다.

    마두로가 이처럼 권력을 강화해온 것은 중국과 러시아의 엄청난 지원 덕분이다. 특히 중국 정부는 베네수엘라에 지금까지 수백억 달러에 달하는 차관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 원유 개발과 정제권 등을 따냈다. 여기에 더해 식량 등도 지원하고 있다. 러시아 정부도 무기 등을 대량 제공했다. 중국과 러시아가 이런 지원을 아끼지 않는 이유는 미국이 뒷마당으로 간주하는 중남미에서 베네수엘라를 교두보 삼아 미국을 견제하려는 의도 때문이다. 마두로는 코로나19 확산으로 희생자가 늘어나자 러시아와 중국에 ‘SOS’를 보내 백신을 지원받기도 했다. 베네수엘라의 코로나19 누적 확진자는 지금까지 24만여 명에 달한다.

    러시아 군사 지원받아 반군과 싸우는 시리아

    유엔난민기구(UNHCR)가 시리아 북부에 설치한 대규모 난민 캠프. [UNHCR]

    유엔난민기구(UNHCR)가 시리아 북부에 설치한 대규모 난민 캠프. [UNHCR]

    중동지역에서 ‘도살자’로 불리는 바샤르 알아사드(56) 시리아 대통령은 5월 26일 10년째 내전이 벌어지는 가운데 치른 대선에서 95.1% 압도적 득표율로 4선에 성공했다. 아사드는 1970년 쿠데타로 집권한 아버지 하페즈 알아사드가 2000년 6월 69세로 사망하고 한 달 만에 치른 대선에서 97% 득표율로 당선한 이후 지금까지 시리아를 통치해왔다. 이에 따라 51년간 시리아를 철권통치하고 있는 이른바 ‘아사드 왕조’는 앞으로도 상당 기간 유지될 것이 분명하다. 아사드는 2028년까지 집권한다. 서방 국가들은 이번 대선을 ‘불공정 선거’로 규정하고 대선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미국, 독일, 영국, 이탈리아 외무장관 등은 공동성명을 내고 “시리아 대선은 공정하지도, 자유롭지도 않았다”면서 “우리는 선거 절차가 불법이라고 규탄한 시리아 야권과 국민의 목소리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반면 러시아와 중국은 아사드에 축전을 보내고 협력을 강조했다.

    아사드는 2011년 ‘아랍의 봄’ 민주화운동이 벌어지자 시위에 나선 국민을 무자비하게 탄압했다. 이 때문에 국민 중 일부가 반정부 무장투쟁으로 맞서면서 내전이 벌어졌다. 국제인권단체들은 내전으로 희생된 시리아 민간인 수를 최소 38만 명에서 최대 59만 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유엔난민기구(UNHCR)는 시리아 인구의 절반이 넘는 1300만여 명이 난민이 된 것으로 본다. 이들 중 660만 명이 터키 등 다른 국가로 피신했고, 670만 명은 국내에 흩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국민의 80% 이상이 빈곤층으로 전락했으며, 국토는 대부분 폐허가 됐다. 국제민간구호 단체 월드비전은 시리아 내전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을 1조2000억 달러(약 1337조6400억 원)로 추산하고 있다. 이는 시리아 국내총생산(GDP) 추정치인 370억 달러(약 41조2430억 원)의 32배가 넘는 수치다.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은 그동안 아사드와 시리아 정부를 강력하게 제재해왔지만, 아사드와 시리아 정부는 러시아의 군사 지원으로 영토의 60%를 차지하는 등 최근 들어 반군에 대한 공세를 대폭 강화하고 있다. 아사드는 러시아 정부가 제공한 스푸트니크V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하기도 했다. 중국 정부도 시리아에 식량과 자금 등을 지원해왔다. 러시아와 중국의 의도는 시리아를 전진 기지 삼아 중동지역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견제하려는 것이다. 이처럼 독재자들을 향한 중국과 러시아의 ‘끝없는 사랑’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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