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등
등안도현내 눈 밑으로 열을 지어 유유히 없는 길을 내며 날아가는 기러기 떼를 내려다본 적 있다. 16층이었다. 기럭아, 기럭아나 통증도 없이 너의 등을 보아버렸구나내가 몹시 잘못했다등을 본다는 건 통증을 유발한다. 연인의 등, 아버…
20121119 2012년 11월 16일 -
국수 공양
국수 공양 ―이상국 동서울터미널 늦은 포장마차에 들어가이천원을 시주하고 한 그릇의 국수 공양(供養)을 받았다가다꾸리가 풀어진 국숫발이 지렁이처럼 굵었다그러나 나는 그 힘으로 심야버스에 몸을 앉히고천…
20121112 2012년 11월 09일 -
그 꽃
내려갈 때 보았네올라갈 때 못 본그 꽃 ―고은이 시를 소리 내서 읽으면 종소리가 들린다. 아주 먼 곳에서 나에게만 들려오는 마음의 종소리, 언젠가 젊은 날 들었던 깊은 산사의 늙은 저녁 종소리였다. 이 시의 마침표는 그렇게 종소리로…
20121105 2012년 11월 02일 -
사막
그 사막에서그는 너무나 외로워때로는 뒷걸음질로 걸었다자기 앞에 찍힌발자국을 보려고―오르탕스 블루이 시는 ‘파리 지하철공사 시 콩쿠르’ 수상작이다. 하이쿠(일본 정형시의 일종)의 성인 바쇼의 시로 착각할 뻔했다. 이 시에 찍힌 발자국…
20121029 2012년 10월 26일 -
고백
내 그대에게 사랑을 고백함은 입속에 작은 촛불 하나 켜는 것과 같으니입속에 녹아내리는 양초의 뜨거움을 견디며아름다운 동그란 불꽃 하나 만들어그대에게 보이는 것과 같으니아무리 속삭여도불은 이윽고 꺼져가고흘러내린 양초에 굳은 혀를 깨물…
20121022 2012년 10월 22일 -
외로운 섬
고깃배들 붐비는 앞바다굽어보는 울릉도.곧 지나겠군, 독도, 외로운 섬-일본말로는 타께시마관두세, 영토분쟁이라니-삼만 피트 위에서 보면 부질없는 짓.쬐끄만 저게 독도라고?돛단배가 틀림없군.아니 배라면 자취가 있을 텐데?크기도 딴 배들…
20121015 2012년 10월 12일 -
귀뚜라미
산(山)바람 소리 찬비 듣는 소리그대가 세상 고락(苦樂) 말하는 날 밤에숫막집 불도 지고 귀뚜라미 울어라―김소월‘숫막’은 ‘주막’의 북한 방언이다. 주막에서 귀뚜라미 소리를 듣는 소월을 생각하니, 이 가을이 너무 깊다. 요즘은 입에…
20121008 2012년 10월 0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