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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분신 시련은 이제부터”
박지원 대통령비서실장이 김대중 대통령으로부터 ‘동교동’ 해체와 관련한 메시지를 받은 것은 2002년 12월31일. 이날 오전 대통령 전용 별장인 청남대로 내려가 휴식을 취하던 김대통령은 오후 박실장을 불러 이 지시를 내렸다. 그래서…
20030116 2003년 01월 09일 -

“夢, 선거 광고 제작비 갚아라”
1월6일 서울 여의도 CCMM 빌딩 3층. 대통령선거 기간 동안 이 빌딩 세 개 층을 썼던 국민통합21측은 일주일 동안 한 층으로 줄이는 이사를 마무리한 뒤 이날 ‘시무식’을 했다. 대통령선거일 하루 전 정몽준 대표의 노무현 후보 …
20030116 2003년 01월 09일 -

리모델링 개혁, 소리없는 혁명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별관 6층.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이하 인수위) 집무실이 있는 이곳을 기자들은 ‘크렘린’이라 부른다. 출입이 통제된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진행되는지 도통 알 수 없기 때문이다.…
20030116 2003년 01월 09일 -

정치개혁 ‘盧心林心’ 시작되나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는 ‘정치개혁’을 새로운 대한민국의 ‘화두’로 던졌다. “정치개혁만 연구하라”며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이하 인수위) 내에 ‘정치개혁연구실’을 두도록 한 것이다. 이 기구에 노당선자가 힘을 실어줄 것은 분명하다. 노…
20030116 2003년 01월 09일 -

노무현 전자정부는 ‘CUG’
1995년 서울 여의도 미성아파트 노무현 전 의원 자택. 노 전 의원은 천호선 비서관이 들어온 줄도 모르고 서재에서 386급 PC와 씨름하고 있었다. 그는 효율적 인력관리를 위한 컴퓨터 프로그램 메뉴를 설계하는 중이었다. 얼마 뒤 …
20030116 2003년 01월 09일 -

‘통추’인맥 盧心 타고 뜰까
2002년 11월6일, 후보단일화 협의를 위해 유인태 전 의원과 이강철 특보(노무현 후보측), 이철 강신옥 전 의원(정몽준 후보측) 등 비공식 채널들이 나섰을 때 단일화에 대한 기대감은 크지 않았다. 그러나 노후보 주변인물들 가운데…
20030109 2003년 01월 02일 -

민정계·개혁파 동거 잘 될까
”뚱뚱하고 못생긴 저와 잘생기고 훤칠한 홍사덕 의원이 힘을 합쳤습니다.”(한나라당 현경대 의원) 민정계와 개혁세력의 어색한 ‘코아비타시옹(동거정부)’은 ‘농담’으로 개막됐다.한나라당은 2002년 12월27일 ‘당과 정치개혁을 위한 …
20030109 2003년 01월 02일 -

벼랑끝 동교동 “아 옛날이여”
몰락의 위기가 가져다준 부담감 때문일까. 동교동 좌장, 한화갑 민주당 대표가 마침내 눈물을 흘렸다. 2002년 12월27일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의원총회. 재야 출신인 심재권 의원이 “그동안 애타게 당을 지켜온 한대표에게 물러나라는…
20030109 2003년 01월 02일 -

“변화와 개혁 기대해봐야제”
”제 처가가 김해인데 대통령선거 이후 낙담한 분위기가 역력했습니다. 저로서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한나라당 지지자들의 정신적 충격은 가히 ‘공황’에 가까운 것 같았어요.” 경남 창원의 한 기업체 과장인 탁모씨(36). 서울 출신…
20030109 2003년 01월 02일 -

일요일에 단일후보 물어본 까닭은
2002년 9월 중순 서울시내 한 커피숍에서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와 김한길 전 의원이 만났다. 노당선자는 민주당 서울 구로을 지구당위원장인 김 전 의원에게 “대선 때 미디어본부장을 맡아달라”고 요청했다. 김 전 의원은 1997년 김…
20030109 2003년 01월 02일 -

“잊혀진 사람, 조용히 사라지겠다”
2002년 12월20일 서울 여의도 한나라당 당사 6층 대통령후보실. 2층에서 ‘눈물의 정계은퇴 기자회견’을 마친 이회창 전 대통령후보가 올라와 자리를 잡았다. 첫번째 방문객은 이 전 후보 개인후원회인 부국팀 회장단. 이들의 뒤를 …
20030109 2003년 01월 02일 -

김정일 核도박 갈 데까지 가나
2002년 10월 켈리 차관보의 방북을 계기로 시작된 북핵 사태가 점점 더 심각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한국 정부는 “전쟁은 안 된다.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을 뿐, 사태를 통제할 고삐를 잡아채지 못하고 있…
20030109 2002년 12월 31일 -

노무현 시대 개혁 이끌 ‘조타수’
”새로운 시대의 개혁과 변화의 청사진을 그리는 데 주력하겠다.”2002년 12월25일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로부터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이란 중책을 임명받은 임채정 의원의 일성이다. 대통령 취임식 전까지 어떻게 준비하느냐에 따라 노무현 …
20030109 2002년 12월 31일 -

그는 김민‘새’다.
▶ 그는 김민‘새’다.김민석 전 의원 홈페이지에서 한 네티즌네티즌들의 계속된 공격에 김 전 의원측은 김민새를 입력하면 자동으로 김민석으로 바뀌는 프로그램을 가동했지만 역부족. 네티즌들이 ‘김민bird’ ‘김민조(鳥)’ ‘kimmin…
20030109 2002년 12월 31일 -

국정원 엽서광고 눈총 받은 사연은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의 대공신고 안내 전화번호가 실린 우편엽서가 논란이 되고 있다. ‘대공간첩 및 좌익사범 신고상담전화 111’을 알리는 국정원 광고가 실린 엽서가 판매되자 인권단체에서 시대착오적인 불신감을 조장한다며 이를 문제…
20030109 2002년 12월 31일 -

노무현 대통령을 만든 사람들
12월19일 밤 10시30분, 민주당사를 찾은 노무현 당선자는 두 팔을 높이 쳐들었다. TV에서는 “노무현 후보의 당선이 확실시되고 있다”는 앵커의 발표가 들려왔다. 당사는 기쁨과 환희의 도가니였다.잠시 후 감정을 추스른 노당선자는…
20030102 2002년 12월 26일 -

‘3金정치’ 마침내 아듀!
자민련 김종필 총재는 2002년 11월23일 “후보단일화추진협의회(이하 후단협)와 교섭단체를 구성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하루 만에 후단협은 교섭단체 구성을 거부했다. 이 무렵 JP는 정몽준 의원 지지를 밝혔는데 정의원도 단일후보…
20030102 2002년 12월 26일 -

진보정당, 희망을 쐈다
제16대 대통령선거에서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는 3.9%(95만7000표)의 득표율을 기록해 제도권 안에서 정치세력화하는 데 성공했다. 비록 민주당 노무현 당선자나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와는 크게 차이가 났지만 1997년 대선에서 권…
20030102 2002년 12월 26일 -

‘한나라號’ 메인 스트림 바뀔까
대통령선거 개표가 진행된 12월19일 밤, 한나라당 한 고위 당직자는 ‘선거 패배를 언제 인정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밤 10시30분”이라고 답했다. 이날 오후 6시 투표가 끝난 뒤 시작된 개표에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가 처음에 …
20030102 2002년 12월 26일 -

‘오전 李, 오후 盧’ 세대 대결
12월19일 개표를 지켜보고 있던 노무현 당선자에게 운명의 시각은 이회창 후보를 앞지르기 시작한 오후 8시40분이었다. 그렇다면 투표가 진행되는 동안 출구조사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던 노당선자에게 운명의 시각은 언제였을까. 바로 1…
20030102 2002년 12월 2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