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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는 신화 | 시간의 여신?

저승 다녀온 세민황제 ‘개과천선’

죽은 백성들 원성에 혼쭐 … 매일이와 장상의 만인적선에 큰 감동

  • 류이/ 문화평론가·연출가 nonil@korea.com

저승 다녀온 세민황제 ‘개과천선’

저승 다녀온 세민황제 ‘개과천선’

한 그림에서 이승과 저승의 모습을 모두 보여주는 대흥사 감로탱. 매를 맞는 형벌 장면이 양쪽에서 전개되고 있다.

매일이와 장상 도령은 오늘이 덕분에 백년가약을 맺었다. 매일 장상은 그 후 어떻게 살았을까? 매일 장상은 어떤 신일까? 우리 선조들은 ‘오늘 오늘 오늘이여/ 오늘 날은 날이 좋아/ 달도 좋아 오늘이여/ 날도 좋아 오늘이여/ 매일 장상 오늘이면/ 성도 얼마나 가실 것인가’ 이렇게 노래했다.

오늘날까지 전해오는 매일이와 장상 도령 이야기가 전하는 본풀이가 있다. ‘세민황제본풀이’가 바로 그것이다. 사실 이야기 자체가 매일이와 장상 도령에 대한 것이므로 ‘매일장상본풀이’라고 봐도 크게 어긋나지 않을 것이다.

자, 이야기를 들어보자.

세민황제가 인간 세상에서 임금으로 있었는데, 고집이 세고 마음이 사나운 자였다. 만민 백성을 괴롭히고 불법(佛法)을 무시하여 불도(佛道) 믿는 사람을 험한 벌로 처단하며 포악한 짓을 하다가 죽었다.

이승에서 한 일 저승에서 갚아라



죽어서 저승에 가보니, 죽어 저승 간 인간들이 방망이를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세민황제가 죽어 온다 하니, 가슴 한복판을 두드리며 이승 때의 원수를 갚아주고자 덤벼들었다.

저승차사가 이를 말려 세민황제를 대별왕에게 데리고 들어가니 그만 지옥에 갇혀버렸다.

대별왕이 만사를 생각하며 수심에 잠겨 있을 때였다. 그전부터 죽어 저승 가 있던 백성들과 새로 저승 간 백성들이 그저 대별왕 앞에 수없이 모여들어 탄원을 했다.

“세민황제는 이승에 있을 때 우리들에게서 억울한 돈을 많이 빼앗았으며 죄 없는 사람에게 죄 있다고 하여 못 견디게 굴고 죽여버리곤 했습니다. 그는 표독한 짓만 하였으니 원수를 갚게 해주십시오.”

대별왕이 세민황제를 불러다가 이렇게 말하는구나.

“너 이 고약한 놈아, 이승에서 못할 짓을 많이 하여 죄 없는 사람을 괴롭히고 죽이고 남의 돈을 공짜로 뺏어 먹었구나. 그때에 못할 짓 한 만큼 못사는 사람 잘살게 하고, 죽은 사람 살리고, 공짜로 먹은 돈을 죄다 갚아주어라.”

세민황제가 난감하여 하는 말이,

“옳은 일을 하라 하시니 할 수 있겠습니다.”

세민황제가 자기의 저승 궤에 가보니 단지 나락 한 단밖에 없었다.

“어찌하여 나의 저승 궤에는 나락 한 단밖에 없습니까?”

“너는 세상에서 남의 공것만 많이 먹고 남에게는 공것을 주어본 적이 없다. 어릴 때 동네 늙은이에게 나락 한 단을 준 것밖에 없으니 그것뿐이다. 살았을 때 사람의 목숨을 살리는 활인(活人)을 많이 해야 저승 궤에 재산이 많아지는 것이다.”

“그러면 어떤 것이 활인의 덕입니까?”

“배고픈 사람에게 밥 주고, 옷 없는 사람에게 옷 주고, 가난한 사람에게 돈 주는 것이 활인의 덕이다. 즉 만인(萬人) 적선을 해야 하는 것이다.”

“이승에서는 과연 잘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참으로 난감하구나! 대별왕이 이승에서 뺏은 돈을 다 갚으라고 했는데, 어떻게 갚는단 말이냐! 세민황제는 별 수 없이 대별왕에게 가서 하소연을 한다.

“대별왕님! 돈이야 저승 어디에 있어 빚을 갚겠습니까?”

대별왕이 용심을 내면서 하는 말이,

“네가 이승에서 공짜로 모은 돈은 다 어찌했단 말이냐? 만 년 동안 뱀 통에서 살아도 좋단 말이냐?”

세민황제가 대별왕에게 손이 발이 되도록 비는구나. ‘이승에서는 과연 잘못하였습니다!’ 하고 빌고 또 비는구나.

저승 다녀온 세민황제 ‘개과천선’

길눈이 어두운 노인, 어린이, 독사에게 물린 사람, 창을 겨누고 싸우는 사람 등 복잡한 인간 군상을 보여주는 쌍계사 감로탱 그림 중 아래 부분.

“대별왕께서 돈을 얼마만 빌려주고 저를 살려주시면 이승에 가서 나쁜 버릇 고치고 선한 마음 먹어 만인적선하겠습니다. 그리고 돈도 벌어 갚아드리겠습니다.”

대별왕이 말했다.

“이승의 매일이와 장상을 아느냐?”

세민황제가 알 턱이 있나.

“모르겠습니다.”

“매일, 장상의 궤에 돈이 많으니 빌려 쓰고 이승에 가서 그 사람에게 빚을 갚아주라.”

대별왕이 돈궤지기를 불러서 세민황제에게 내어주라고 명령하여 빚을 갚도록 했다. 세민황제가 그 돈을 빌려서 많은 사람들에게 빚을 갚았다.

대별왕은 어쩔 수 없이 세민황제를 다시 이승으로 보내어 세민황제가 빚을 갚게 하는구나.

“어서 이승으로 나가 적선을 많이 하고 오라. 가다가 송아지가 나서서 길을 인도해주겠다고 하리라. 그러나 송아지의 말을 듣지 말고 곧은길로만 나아가거라. 또 가다 보면 흰 강아지가 길을 인도해주겠다고 하리라. 그러나 그 말도 듣지 말고 곧은길로만 바로 가다 보면 검천낭(劒天郞)이라는 차사가 있을 터이니 그 차사에게 물으면 이승으로 갈 수 있을 것이다.”

세민황제가 이승으로 오다 보니 과연 어린 송아지가 그리하고, 흰 강아지가 그리하는구나. 저승왕이 시킨 대로 하여 곧은길로만 오다 보니 검천차사를 만났구나. 길을 물어보려 하는데, 먼저 알아본다.

“당신이 세민황제입니까?”

세민황제가 그렇다고 하니,

“그러면 이리로 따라오시오.”

세민황제가 얼마쯤 쫓아가니 문을 하나 열고는, 캄캄한 데로만 들어가면 이승으로 갈 수 있다고 말한다.

“속히 가시오.”

검천차사가 세민황제의 등을 세게 걷어차네. 세민황제가 천지못 같은 데로 텀벙 하고 떨어져 깜짝 놀라 깨어보니 이승이로구나.

남편은 신장수 마누라는 술장수

세민황제는 즉시 만조백관을 모아 조회를 열고 매일과 장상이 어디에 사는지 조사하게 했다.

남편은 신을 만들어 팔고, 마누라는 술장사를 하면서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세민황제는 험하게 옷을 입고 밤길을 가서 매일 장상의 집으로 들어갔다.

“외지에서 온 사람입니다.”

매일이와 장상 도령이 다정스럽게 맞아들였다.

아니 그런데 술 한 잔에 두 푼밖에 받지 않는 게 아닌가?

매일이가 술상을 정성스럽게 차려 가져다놓거늘, 세민황제가 술 석 잔을 먹고 술값을 물어본다.

“한 잔에 두 푼씩, 육 푼만 내십시오.”

매일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무슨 술값이 이렇게 싸오?”

“다른 집에서 두 푼을 받으면 우리 집에서는 한 푼을 받고, 다른 집에서 너 푼을 받으면 우리는 두 푼을 받고 하는 것은 내 집에서는 그 전부터 항상 있는 일입니다.”

세민황제는 ‘이것이 적선인가?’ 하고 생각하며 며칠 후에 다시 매일 장상의 집으로 가서 신을 한 배 팔아달라고 했다.

그런데 값은 한 켤레 값을 냈는데 두 켤레를 내어주었다.

“왜 신발을 두 켤레나 주시오?”

“신 한 켤레 사는 자에게 두 켤레를 내주고 두 켤레 사는 자에게 네 켤레를 내주는 것은 우리 집에서 전부터 해온 일입니다.”

세민황제는 ‘이것도 적선인가’ 하고 생각했다.

세민황제는 또 며칠 후에는 매일 장상의 집으로 가서,

“돈을 열 냥만 빌려주시오.”

매일 장상은 선선히 열 냥을 내어줬다.

세민황제가 묻기를,

“모르는 사람에게 돈을 주었다가 안 가져오면 어쩌리요?”

“옹색하시거든 가져가서 썼다가 또 생기거든 갚아주시오. 그러나 돈이 생기지 않으면 언제까지라도 안 가져다주어도 좋으니 조금도 걱정하실 것 없소.”

매일 장상이 기꺼이 웃으면서 대답한다.

세민황제가 돈 열 냥을 받고 나오면서 생각했다.

‘이런 것이 정말 만인적선이로구나!’

이렇게 하면서 매일 장상은 수만 명의 불쌍한 사람들을 살려주고 수만 냥의 돈을 다른 사람들에게 잃어주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니 매일 장상의 저승 궤에는 돈이 그득히 차는 것이로구나!’

세민황제는 감탄하고 또 감탄했다.

세민황제가 만조백관을 모아 조회를 열고 매일 장상을 불렀다.

매일 장상이 앞에 오자 자신이 저승에 갔을 때 당한 일을 상세히 이야기하고 이승에 온 후에 변장하여 매일 장상의 집에 찾아가던 일까지 모두 말했다.

“네가 그렇게 많이 적선을 한 것은 나에게 큰 교훈이 돼서 나도 이 다음부터는 활인의 덕을 베풀게 되었다.”

온 세상 불쌍한 자 모두 구제하리

세민황제는 이렇게 매일 장상을 칭찬하고 고마워했다.

그러고는 ‘저승에서 빌려 쓴 돈을 갚아 주노라’ 하고 돈에 이자를 채워서 내어주니 매일 장상이 굳게 거절한다.

“소인은 지금까지 남에게 빌려준 돈을 이자까지 합하여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세민황제가 강제로 맡긴다.

“이것은 저승왕의 명령에 의하여 주는 바이니 반드시 받아야 한다.”

그러나 매일 장상은 끝까지 거절하며 이자를 받지 않는구나. 세민황제가 그것을 보고는 더욱 감탄하여,

“너희는 나에게 칭찬받는 것보다도 죽어 저승에 가면 그 칭찬이 몇 곱절은 될 것이다. 너의 저승 궤는 내가 본 때보다도 지금에는 더욱 불어나 있을 것이며 네가 죽어 차지할 때는 다시 몇 곱절이나 더 불어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매일 장상은 오히려 비웃는 듯 불쾌한 듯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소인은 칭찬받기를 즐거워하지 않습니다. 그뿐만 아니오라 오히려 부끄러워합니다.”

세민황제가 이상스럽게 생각했다.

“그것은 어찌된 일인고? 네가 일삼던 만인적선, 활인의 도가 장하지 아니한가. 네 덕분으로 나까지도 이제는 착한 마음을 먹어서 착한 일을 해 저승에서 칭찬을 받게 되지 아니하였는가?”

매일 장상이 머리를 가로 흔들면서 말했다.

“소인은 원래부터 남에게 칭찬 듣기를 싫어합니다. 소인이 생각한 만인적선, 활인의 도는 수만 분의 일도 닦지 못하였습니다. 아직도 밥 없이 굶는 사람, 옷 없이 떠는 사람, 온갖 불쌍한 사람이 세상에 가득하니 어찌 만인적선을 하고 활인의 덕을 닦았다고 하겠습니까. 소인은 세상에 모든 불쌍한 사람들을 구제하지 못한 오늘 저승을 간다고 할지라도 낯이 없어서 저승왕을 대할 수가 없겠습니다.”

세민황제는 크게 감동하여 지금까지 자기가 얼마나 잘했는지 매일 장상에게 떠들던 것을 부끄러워하고는 온 세상의 불쌍한 사람들을 모조리 구제해야 한다는 사실을 새삼스러이 통감했다.



주간동아 2004.07.29 445호 (p44~46)

류이/ 문화평론가·연출가 nonil@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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