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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이 쓰는 조선통신사 길 ⑧

혼 빼놓은 거센 물과 벼랑길

문경~예천 사행길 중 최고 난코스 … 사람과 말 일부 피해 문경현 관리 문책

혼 빼놓은 거센 물과 벼랑길

혼 빼놓은 거센 물과 벼랑길

주요 부분이 완벽하게 복원된 고모산성.

일찍 출발하여 10리를 갔는데, 앞내가 창일(漲溢)한 탓에 세 사신이 모두 조련장에 모여 잠시 얕아지기를 기다렸다가 일제히 건넜다. >>

문경읍을 나서면 오른쪽으로 지금은 열차가 다니지 않는 문경선 기찻길이 보인다. 한국철도공사 측에 따르면 ‘폐지’가 아닌 ‘휴지’. 잠시 운행을 멈추고 있는 길이라 시설은 그대로 남아 있다. 그러나 탄광은 없어지졌으므로 백두대간을 넘어 충청도 쪽과 연결되지 않는 한 다시 열차가 다닐 일은 없을 것 같다.

진남관과 고모산성 복원 한창

왼쪽으로는 예전엔 논이었던 곳에 수많은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새로 개발된 문경온천이다. 문경새재도립공원을 다녀간 여행객들이 문경온천에서 묵어가면 좋겠는데 중부내륙고속도로의 전면 개통으로 인해 서울, 부산과 문경의 여행길이 하루면 충분할 정도로 가까워져버렸다. 문경온천에서 자고 가게 하는 ‘플러스알파’의 재밋거리가 있어야 할 것이다.

물이 ‘창일해서’ 조엄이 건너지 못했던 나루는 다리가 놓여 단숨에 건널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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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 빼놓은 거센 물과 벼랑길


혼 빼놓은 거센 물과 벼랑길

길손들의 발자국으로 인해 반질반질해진 ‘관갑천 잔도’(왼쪽). 용궁 근방의 의성포. 안동 ‘하회마을’처럼 강물이 마을을 휘감는다. 가은 은성탄좌로 연결된 기찻길 흔적(작은사진).

하루 종일 종종걸음을 쳤는데도 좁은 문경현 내를 빠져나오지 못한 까닭은 이곳이 통신사 사행로 가운데 가장 험한 구간인 데다 기상 조건도 매우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신원참은 이 어려운 길을 가기 전 잠시 쉬면서 준비 하는 작은 농촌마을인데, 험한 산세가 눈앞을 가로막고 있다. 여기서부터 기찻길 오르막을 따라가면 선로는 터널 속으로 사라진다.

필자가 처음으로 이 옛길을 걸었던 1999년에는 여기서 길이 끊어졌다. 마을 사람의 안내 없이는 더 이상 갈 수가 없었다. 70년대 이후 걸어서 장을 보러 가는 사람들이 없어지면서 이 험한 길은 기능을 잃어버렸다고 한다. 지금은 나무들을 모두 베어내 앞이 훤히 보인다. 고갯마루에는 성벽과 관문이 복원되고 있다. 바로 진남관이다. 말 그대로 남쪽, 즉 일본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관문이었다.

유난히 큰 찰방역 유곡 흔적만

성벽은 오른쪽 능선을 따라 올라간다. 산꼭대기에는 규모가 제법 큰 고모산성이 있다. 삼국시대부터 이 요충지를 지키던 성이다. 99년에 왔을 때는 산성의 윤곽만이 간신히 남은 채 방치돼 있었다. 성의 가치를 몰랐던 마을 아이들은 산성의 석벽을 돌 던지기 놀이에 쓰고, 어른들은 논두렁을 만드는 데 썼다고 한다. 지금은 주요 부분이 완벽하게 복원되어 있고 나머지도 한창 복원 중이었다.

옛길은 진남관을 나서 왼쪽 성벽을 따라간다. 성벽이 끊어지면서 벼랑의 중간을 깎아서 겨우 한 사람이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만들어낸 벼랑길이 시작된다. 좁은 부분에는 나무로 선반처럼 매어 만든 잔도(棧道)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닌 탓에 바위에는 발자국 무늬가 있고 반질반질 윤이 난다. 구두 신고 이 길을 지나려 했다가는 미끄러지기 십상이다.

이 구간은 사행로 가운데 가장 어려운 길이라 할 수 있는 ‘관갑천 잔도’로 토끼비리, 토끼벼루라고도 불린다. 이 길이 만들어진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진남관과 마찬가지로 방위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고, 또 하나는 평지보다 훨씬 가까운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다니기 쉽고, 막기 쉬운 길. 이것이 한국 옛길의 근본이다.

원래 견탄(수탄)까지 벼랑길이 계속되었는데, 지금은 고속도로가 생기면서 막혀 도중에서

3번국도로 내려가야 한다. 그리고 견탄에서 다시 한 번 강을 건너는데 지금 그 자리에 다리는 없다. 교각의 흔적이 문경선 불정역 앞에 있을 뿐이다. 지금 보아도 물이 많을 때는 건너기 힘들 었을 지형이다. 그러나 아무리 문경현 측의 도하 준비가 소홀하고, 일행이 한밤중에 갈라졌다 하더라도 다음과 같은 처벌은 과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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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탄을 지나 고개를 하나 더 넘으면 유곡역에 도착한다. 드디어 산길을 벗어나 경상도의 넓은 들판에 들어서는데 여기에서 길이 통영, 울산, 영해, 동래 등 여러 갈래로 갈라진다. 현대식으로 말하면 유곡역은 경상도 초입의 ‘허브’ 구실을 했던 곳이다. 그래서 유곡역은 찰방역(察訪驛)으로서도 유난히 컸다. 현재 역 터는 초등학교 앞의 비석거리 외에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지만, 역제사가인 경기대 조병로 교수에 의해 길 위에 원형에 가깝게 복원되었다.

혼이 완전히 빠진 조엄 일행은 유곡에서 단잠을 잘 수 있었을까.

맑음. 예천에 닿았다.일찍 출발하여 용궁에서 쉬는데 주수 정재량, 금산군수 이정환, 비안현감 홍대원이 보러 왔다. >>

유곡에서 문경시청이 있는 점촌을 지나면 가장 먼저 산양이라는 시장 마을이 나온다. 산양은 예전에 상주의 속현이었다. 이어 작은 내를 건너면 용궁읍이 나온다. 이렇게 큰 도시가 불과 10km 사이에 연달아 나오는 것이 이상하지만, 점촌은 일제강점기에 생긴 도시이고 용궁도 원래 더 동남쪽에 있었던 옛 읍자리에서 조선 후기에 옮겨온 것이라 그렇다. 용궁에서 고개를 하나 더 넘으면 예천이다.



주간동아 2005.04.19 481호 (p52~53)

  • 도도로키 히로시/ 숭실대 일본학과 강의교수 hsto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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