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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조건女’를 아십니까

데이트·잠자리 등 조건 걸고 ‘남성 구함’ … 돈 벌고 연애까지? ‘그릇된 유혹’

  •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입력
2003-10-15 15: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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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조건女’를 아십니까

인터넷 ‘조건女’를 아십니까
남: “얼마?”

여: “아까(채팅 때) 20만원이라고 했는데….”

남: “좀 깎자.”

여: “좀 ‘쿨’해져봐요. 난 돈 약속 안 지키는 사람이 제일 싫더라!”

10월10일 오전 1시30분경, 서울 강남역 뉴욕제과 앞에서 만난 낯선 여성은 능숙하게 기자를 인근 모텔로 안내했다. 그리고 맥주 두 병을 주문한 뒤 초면의 어색함조차 보이지 않고 말문을 열기 시작했다.



여: “오빠는 무슨 일 해요? 돈 많이 벌어요?”

남: “…넌 몇 살이니? 애인 없어?”

이런 일을 왜 하느냐는, 초면에 하기엔 좀 실례인 질문이 나오려다 목구멍에서 멈췄다. 이름은 희정(가명)이고 24살인 이 여성은 전문대학을 졸업하고 화장품 판매원으로 일한다고 했다. 1000여만원의 빚이 있지만 단순히 돈벌이 때문에 ‘ㅈㄱ(조건)’일을 하는 것은 아니라고 운을 뗐다.

“재미있잖아요. 난 남자친구들도 많지만 걔네들하고는 (섹스) 안 해요. 용돈도 벌고 매일 새로운 남자들도 만날 수 있는데…. 한번 절 만난 남자들은 꼭 다시 연락하더군요. 그럼 연애도 하고….”

올해 서른 살인 기자는 정치와 사회 문제에 있어 그다지 시각이 보수적인 편에 속하지 않는다. 하지만 성에 있어서는 꽤 보수적인 축에 속한다. 한마디로 말하면 한 여자와 백년해로하겠다는 ‘다부진’ 꿈을 갖고 있다.

연애인가 성매매인가

인터넷 ‘조건女’를 아십니까

인터넷에서 자신을 홍보하는 데 여념이 없는 조건녀들의 프로필 사진.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미혼 여성인 이들의 개방된 성의식은 성매매의 개념을 바꿔놓았다.

그러나 최근 성의 영역에 있어 ‘교환의 호혜성’이 사회변화를 주도하고 있어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주목할 만한 현상은 역시 정보통신과 성의 만남이다. 인터넷과 휴대전화의 등장은 성 산업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보다 정확하게는 의사소통이 쉬워질수록 매춘과 연애의 구분은 모호해져 갔다. 그리고 2002년 초 ‘ㅈㄱ’ 이라는 정체불명의 ‘외계어’가 통신상에 등장했다.

그동안 온라인 성매매 현상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인터넷이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1999년 이후 ‘즉석만남’, 즉 ‘번개’를 통한 성매매가 계속돼왔다. 그러나 2002년 이후의 만남은 오로지 ‘ㅈㄱ’으로 통일됐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청량리 588과 미아리 텍사스가 “조건녀 때문에 망했다”는 말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상황이다. 연애와 매춘의 경계에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는 ‘조건만남’. 이런 배경에서 기자는 ‘ㅈㄱ’ 취재에 나섰다(조건녀와의 만남에서 기자는 항상 ‘취재기자’임을 밝혔다).

“난 이상형의 남자를 찾고 있어요. 잘생기고 매너 좋고…. 당연히 돈도 많아야죠.”

강남 신사동에서 만난 K양(20)은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이성관이 확실하게 정립돼 있었다. 그는 추파를 던지는 많은 남자들 중 기자를 택했고 바로 사진을 보내줬다. 그러나 가격 협상은 쉽지 않았다. 처음에는 절대 20만원 이하는 안 된다고 우겼지만 그 같은 조건을 갖춘 남자를 만나지 못했는지 2시간 뒤 순순히 밥만 먹자는 조건에 응했다. 새벽 5시가 지나서였다.

강남 인근에서 살고 있는 그는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미용학원에 다니고 있다고 했다. ‘ㅈㄱ’을 하는 이유는 처음부터 남자들이 돈을 주겠다고 나서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는 것. 물론 낯선 남자에 대한 호기심이 발동했음도 숨기지 않았다.

“강남은 대체로 20만원, 강북은 15만원 내외에서 합의를 보던데요. 물론 남자들이 여자 있는 장소로 달려오고.”

갓 미성년자 딱지를 뗀 K양은 꽤 오랜 기간 채팅하다 만난 남자들과 연애를 해왔다고 말했다.

“옷도 사주고 만날 때마다 용돈도 주니까 편하잖아요. 그냥 같이 있어주고 같이 자기만 하면 되는 건데…. 근데 미성년자 때는 멋모르고 그랬는데 지금은 이상형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곧 좋은 사람이 나타나겠죠.”

인터넷 ‘조건女’를 아십니까

강남의 모 나이트클럽 주위의 여성들. 강남-강북지역 조건녀의 문화 차이도 주목할 만한 현상이다.

‘섹스는 스포츠’라는 요즘 젊은이들의 보편적 성관념을 가진 그는 이 같은 만남이 연애의 일종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헤어지면서 그가 한마디 던졌다.

“오빠, 집이 이 근처면 잠만 재워주세요.”

채팅창에 ‘답십리 ㅈㄱ, 169-48, 8만원에 돼요’라고 띄운 Y양(20)을 답십리에서 만났다. 그를 만나는 순간 생활고에 찌들려온 가출소녀라는 느낌이 바로 들었다. 실제 Y양은 경기 북부 중소도시에 있는 집을 가출해 성동구 답십리 근처에서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어왔다. 친구 4명과 함께 생활해온 그는 자신과 친구들의 예쁘장한 외모가 돈벌이에 쓰일 수 있다는 걸 깨닫는 데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고 했다.

이들에게 가장 시급했던 일은 저렴하면서 가방을 맡아줄 수 있는 PC방과 자신들을 경찰에 신고하지 않을 ‘주거래 여관’을 확보하는 것. 결국 주변에 신용이 쌓여가면서 PC방 한구석에 마련된 골방을 독점적으로 제공받고, 여관도 하루에 1만5000원까지 할인받게 됐다. 직장과 잠자리가 ‘보장’된 이들의 원칙은 내일의 생활을 위해 하루에 한 번은 무조건 남자를 잡는 것. 그러니 비싸게 부를 수가 없었다.

강남女는 없고 강남男은 많다

“조건만남의 경우 밤 12시경이 제일 비싸고, 날이 밝아오면 가격이 떨어져요. 그렇다고 제가 딴 지역으로 출장 가기도 어렵고…. 그냥 이곳으로 오겠다는 남자 한 명만 찾아 7만~8만원이라도 받으면 내일 돈 걱정은 말끔히 사라지죠.” 포주를 끼지 않고 1인 기업처럼 움직이는 조건녀의 특성상 무리수를 둘 가능성은 적어 보였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것도 돈이 오가는 거래인지라 조건녀들이 ‘돈 떼일 위험’에 심심치 않게 노출된다는 점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남자가 경찰이라고 하는 등 협박해 준 돈을 다시 빼앗아가는 험한 꼴을 당하는 일도 다반사라는 것.

“그래서 다급할 때는 미리 사귀어둔 오빠에게 도움을 청해요. 도망친 남자의 휴대전화 번호를 알고 있으니까 그 오빠가 협박하면 대개 돈을 부쳐주거든요. 오빠랑 사귀는 건 아니고 가끔 만나주고, 용돈도 좀 주고….”

그들에게도 사창가의 ‘삼촌’ 같은 존재는 필요했다.

미아리에서 만난 한 젊은 여성은 강남에 대해 노골적으로 반감을 표시했다.

“전 강 건널 일 거의 없어요. 저희들하고는 노는 물이 다른 애들인데요 뭐. 사서 자존심 상할 필요도 없고…. 대신 강남 남자애들은 많이 만나봤죠. 자가용을 끌고 오니까….”

그러고 보니 신기한 사실은 서울지역의 경우 남녀 간 만남을 원하는 장소가 다르다는 점이다. 조건녀들이 주로 활동하는 지역은 미아-화곡-천호동으로 이어지는 서울의 변두리 삼각 꼭지점. 이곳은 이른바 서울 외곽에 사는 젊은이들이 주로 모이는 장소다. 그러나 ‘ㅈㄱ’을 원하는 남성들은 강남-서초-잠실지역에 편중돼 있다. 물론 경제적 여건 때문이다. ‘ㅈㄱ’을 원하는 남성들은 적어도 여성에게 줘야 할 15만원 내외의 조건비, 2만~5만원의 여관비, 거기에 교통비까지 대략 20만원 이상을 지불해야 하는데 이는 경제력이 없는 이들에게는 큰 부담이다. 따라서 20대 후반과 30대 초반의 전문직 종사자들이 ‘ㅈㄱ’을 원하는 남성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들은 채팅을 해 약속하고 대개 차를 이용해 여성들이 원하는 장소로 이동한다.

강남구 삼성동의 한 벤처회사에서 프로그래머로 일하는 K씨(30)는 친구들 사이에 ‘ㅈㄱ 마니아’로 통한다. K씨가 ‘ㅈㄱ’에 열중하는 것은 성적인 욕구를 풀어줄 애인이 없는 탓도 있지만 밤에 마땅히 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사창가에는 가본 적 없어요. 품격이 떨어진다고 생각해서. 그렇다고 룸살롱에 가서 놀기는 너무 부담스러우니까 자연스럽게 채팅을 통해 여자를 찾게 되죠. 밤에 만나 영화도 보고 술도 마시고…. 그러다 몇 번 만나면 질리니까 다른 여자로 바꾸고….”

소비자본주의에 빠진 젊은 남성들이 편리하게 애인을 구하고 버릴 수 있는 길을 인터넷을 통해 발견한 셈이다. 적어도 조건녀는 헤어지면서 질질 짜고 매달리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생계형 조건녀가 대부분

“오빠! 제발 PC방비 좀 내주세요….”

서울의 대표적인 저개발지구의 하나인 모래내에서 만난 20세의 C양과 J양은 만나자마자 돈 이야기부터 꺼냈다. 친구와 이틀간 PC방에서 채팅과 게임을 위해 쓴 돈이 무려 6만원. 이들은 게임비를 내줄 사람을 찾기 위해 그토록 온라인 상에서 남자들에게 추파를 던졌던 것이다. 물론 이틀간은 허탕만 쳤다.

강서구의 한 고등학교를 중퇴했다는 이들의 꿈은 아르바이트를 해서 생계를 유지하는 것. 하지만 대책 없이 노는 게 좋았던지 둘은 함께 PC방에서 살면서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옷차림이 매우 허름한 이들은 허겁지겁 고기를 먹으며 자신들의 험한 인생을 담담하게 얘기했다. 그리고 자조 섞인 한마디를 던졌다.

“누가 저 같은 외모의 여자한테 ‘ㅈㄱ’하자고 그러겠어요? 앞으로 그냥 좋은 오빠 동생으로 지내요. 굳이 잠자리를 원한다면 싫지는 않지만….”

조건녀의 대부분은 남자와 달리 단순히 즐거움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돈을 얻기 위해서 조건녀로 나선다. 온라인의 특성상 의사소통을 통해 원하는 것을 금세 해결해줄 수 있는 남성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잘 데가 없다고 하면 재워주겠다는 남자, PC방비가 필요하거나 술 마시고 싶다면 대신 돈을 지불해주겠다는 이들이 온라인상에 넘쳐난다.

미성년자의 경우 경찰의 추적을 받기도 하지만 주민등록번호를 얼마든지 위조할 수 있어 적발되는 일은 별로 없다. 게다가 연애와 매춘의 모호한 경계는 경찰의 행정력이 끼어들 여지를 없애버렸다. 인터넷 업체들은 음란성 대화나 성매매를 조장하는 이들에 대해 ID 정지라는 강수를 쓰고 있으나 수백만명의 ‘색티즌’을 전부 감시할 수는 없는 처지다.

기자가 처음으로 만난 조건녀 희정씨의 경우 모텔에 들어가서 조건녀에 대해 취재하고 있는 기자임을 밝혔지만 별로 개의치 않았다. 대신 자신의 권리를 잊지 않고 챙겼다.

“그래도 만났으니까 돈은 꼭 받아야겠어요.”

택시를 타고 돌아가면서 던지는 한마디.

“오빠, 나중에 기회 되면 연락 주세요. 알죠? 사랑엔 돈이 든다는 거.”

모 CF에서 들어봤던 말이 매우 서글프게 다가왔다.







주간동아 406호 (p56~58)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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