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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바리’ 근성으로 일군 ‘샐러리맨 성공기’

삼성 이경배 부장, 신체장애 극복하고 끊임없는 자격증 도전 … 사내외 굵직한 상도 휩쓸어

  • < 성기영 기자 > sky3203@donga.com
입력
2004-11-01 15: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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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바리’ 근성으로 일군 ‘샐러리맨 성공기’

‘악바리’ 근성으로 일군 ‘샐러리맨 성공기’
입사시험과 면접을 위한 이력서에 이 정도 이력을 적어 넣을 수 있다면 평균 한국인 정도로는 취급받을 수 있었다. 적어도 3∼4년 전까지만 해도. 그러나 상황은 빠르게 바뀌었다. 자신의 첫 직장을 위한 이력서에 해외연수 경험을 적어 넣을 수도 없고, 정보기술(IT) 관련 자격증도 없는 데다 그럴듯한 인턴십 경력도 적어 넣을 수 없다면 입사시험의 관문을 뚫었다 해도 직장에서 그 사람의 성장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임직원 수 18만명의 거대 기업 삼성그룹의 인트라넷 개선 T/F를 책임지고 있는 이경배 부장(42). 이부장이 삼성에 입사할 당시 이력서에도 이 같은 기본사항 외에는 적어 넣을 것이 없었다. 20년 전인 1982년 삼성생명 전산실에 입사할 당시의 일이다. 동국대 전자계산학과를 졸업했으니 이른바 명문대 출신으로 분류될 만한 형편도 아니었다. 게다가 그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 하나 있었다. 그는 어릴 적 앓은 소아마비의 후유증으로 지금까지도 다리를 저는 장애인이다.

대략 이렇게 보자면 이부장은 ‘관리해야 할’ 경력조차 변변치 않은 평범한 중년 샐러리맨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경배 부장은 지금 삼성 내에서 입지전적인 경력관리의 성공 사례로 꼽힌다. 남들보다 불편한 신체조건에도 불구하고 경영혁신 대통령상 수상, 삼성그룹 기술상, 삼성SDS 최우수 프리젠테이션상, 정보통신부 장관 표창 등 굵직굵직한 상들을 휩쓸었다. 최근 들어 정보통신 분야에서 가장 각광받는 자격증 중 하나인 정보처리기술사 자격으로도 그는 ‘삼성 내 1호’를 기록했다.

“당시는 이건희 회장이 신경영을 도입하면서 ‘7`-`4제 근무 방식’을 채택한 직후였습니다. 몇몇 계열사에서는 오후 4시가 되면 사원들을 회사 밖으로 몰아낼 정도로 철저하게 ‘7`-`4제’를 지켜 나가던 시점이었습니다. 남들이 대부분 급작스레 생겨난 여가를 어디에 써야 할지 몰라 방황할 때 저는 자격증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경력관리가 이직(移職)이나 전직(轉職)을 위해 몸값을 높이는 수단이라고만 인식하는 사람에게 이부장의 사례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준다. 그에게 현재 직장은 예나 지금이나 ‘평생직장’이다. 그가 평생직장론을 신봉하는 데는 남들이 모르는 숨겨진 이유가 있다.



‘악바리’ 근성으로 일군 ‘샐러리맨 성공기’
직장생활을 처음 시작한 82년, 최종 신체검사에서 그는 불편한 다리 때문에 사실상 불합격 판정을 받았다. 취업을 포기하려던 순간 믿기 어려운 일이 벌어졌다. 자신의 신체검사장에 우연히 함께 있었던 당시 모 방송사 뉴스 앵커가 이 광경을 보고 그날 밤 9시 뉴스에서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신체검사에서 떨어뜨리는 경우가 있다’며 이씨 사례를 오프닝 멘트에서 언급한 것. 그러자 회사가 부랴부랴 나서 이씨를 합격시키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때부터 그는 충실한 삼성맨으로 변신했다. 평생직장론의 실마리가 형성된 것도 이때부터.

그러나 아무리 이부장이 평생직장론을 주장한다 하더라도 전업이나 이동이 빈번한 정보통신 분야의 특성상 20년 가까운 직장생활 동안 스카우트 제의나 창업 유혹을 받아보지 않았을 리 없다. 게다가 그는 테헤란로에서 보지도 않고 데려간다는 삼성SDS 연구소장 출신 아니었던가. 인터넷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이해진 사장, 디지털 저작권 관리(DRM) 전문업체인 파수닷컴의 조규곤 사장, 한솔텔레콤의 유화석 사장 등 이름만 대면 알 만한 테헤란로의 쟁쟁한 최고경영자(CEO)들이 모두 삼성SDS 연구원 출신.

“유혹이 없었던 것은 아니죠. 코스닥에 올라간 동생 회사로 가면 대우도 더 잘 받을 수 있었고…. 하지만 신체검사에서 떨어진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에서 뒤늦게 합격이 결정된 만큼 이 회사에서 승부를 보자고 마음먹었지요. 그렇게 결심하고 나니 ‘악바리’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남들이 모두 나를 주시하고 있다는 부담감도 느꼈고요. 그런 책임감과 부담감이 저를 이 자리까지 오게 한 원동력이라고나 할까요.”

벤처 바람을 타고 독립을 포기한 대신 그는 특유의 악바리 근성으로 그룹 내의 핵심요직만 두루 거쳤다. 삼성전자 전략기획실, 삼성SDS 신경영추진팀 등을 거치면서 신사업이나 경영평가 작업을 벌일 때마다 참여했고 정보기술 관련 저서와 역서도 3권이나 펴냈다.

그와 함께 근무했던 한 직원의 기억을 더듬어보면 이부장이 한 직장에서의 경력관리를 위해 어떤 공을 들여왔는지 엿볼 수 있다.

“그는 대부분의 엔지니어들이 자기 분야에만 정통한 것과 달리, 어떤 분야의 누구를 만나도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끌어 나갈 수 있을 만큼 해박합니다. 말하자면 엔지니어로서 문무(文武)를 겸비한 관리자라는 말이지요.”

그러나 최고경영자도 아닌 그가 가만히 앉아 문무를 겸비하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 그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몇 년 전부터 집요할 정도로 계획적인 책읽기를 시작했다. 지금도 그의 수첩에는 한 달에 5권씩 매달 읽은 책의 제목이 빼곡하게 적혀 있다. 최근 들어 이부장이 읽은 책은 잭 웰치 전 제너럴일렉트릭(GE) 회장의 ‘끝없는 도전과 용기’, 허브 코헨의 ‘협상의 법칙’, 제프리 J. 폭스의 ‘How to become a CEO’ 등이다. 그러나 그의 독서 리스트에 기업 관련 서적만 있는 것은 아니다. ‘배워서 남 주나’ 같은 시사꽁트집도 있고 ‘금식으로 병 고치는 방법’과 같은 건강서적도 있다. 고객이나 동료들과의 대화 소재를 넓히기 위한 방편으로 읽는 독서에서 가려야 할 분야는 없기 때문이다.

그는 기자 앞에서도 책상 위에 놓여 있는 니시무라 아키라의 저서 ‘CEO의 다이어리엔 뭔가 비밀이 있다’라는 책을 가리켰다.

“저 책에는 1시간을 4등분해서 25분 단위로 쪼개 쓰는 시간관리 기법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회사에서 어영부영 보내는 시간이 얼마나 많습니까. 목표의식만 뚜렷하다면 그런 무미건조한 직장생활은 당장 때려치워야지요.”

한 직장에서 승부하겠다고 결심한 이상 당연히 그의 꿈은 CEO가 되는 것이다.

“흔히들 새로운 직장을 찾는 것을 경력 전환의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지금 직장 내에서 제 능력과 적성에 맞는 업무로 전환하면서 새로운 전환점을 찾는 것도 보람 있는 길입니다. 부단한 노력이 필요한 일이기는 하지만요.”

‘난 가방끈도 짧고, 변변한 자격증도 없고…’ 하면서 ‘생존’과 ‘버티기’만이 직장생활의 유일한 방편이라고 생각하는 직장인이 있다면 이부장의 경험담을 듣고 자신의 자세를 다시 한번 점검해 볼 일이다.





주간동아 331호 (p44~45)

< 성기영 기자 > sky320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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