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93

..

유럽·미국 원자력발전 ‘신(新)르네상스 시대’ 도래

2050년까지 총 700기 이상 신규 원전 건설 전망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입력2025-06-17 09:00:02

  • 글자크기 설정 닫기
    한국수력원자력이 수주한 체코 두코바니 원전 5호기와 6호기 조감도. 한수원 제공

    한국수력원자력이 수주한 체코 두코바니 원전 5호기와 6호기 조감도. 한수원 제공

    스웨덴은 유럽에서 대표적으로 재생에너지 비중이 큰 국가 중 하나다. 전력 생산에서 수력발전이 40%, 원자력이 30%, 풍력이 20%를 차지하고 화석연료 비중은 없다. 원자력 비중이 큰 것은 1970~1980년대 건설된 원전 6기를 운영해왔기 때문이다. 이 원전들은 단계적으로 폐쇄될 계획이었다. 스웨덴에선 1979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스리마일섬 원전 사고로 안전성 우려가 커지자 이듬해 국민투표로 원전의 단계적 폐지를 결정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스웨덴 정부가 지난해 탈원전 정책을 폐기하고 5000㎿(메가와트) 규모의 원전 4기 또는 동일한 규모의 소형모듈원전(SMR)을 새로 건설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스웨덴 정부가 이런 결정을 내린 이유는 2022년 2월 발발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에너지 안보가 무엇보다 중요해지고 탄소중립을 위한 현실적 대안이 원자력밖에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스웨덴 의회는 5월 21일 신규 원전 건설 자금을 지원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스웨덴 원전계획위원회는 신규 원전 건설에 380억 달러(약 52조 원)가 들어갈 것으로 추산했다.

    원전 재도입으로 돌아선 유럽

    유럽에서는 원전 재도입을 선언하는 국가가 늘어나고 있다. 벨기에 의회는 5월 5일(이하 현지 시간) 새로운 원자로 건설 허용 등을 내용으로 한 정부의 원전산업 부활 계획을 찬성 102표, 반대 8표, 기권 31표로 통과시켰다. 벨기에는 2003년 탈원전을 선언하고 원전 가동 기한을 40년으로 제한하는 등 올해까지 모든 원전 가동을 단계적으로 중단할 방침이었다. 덴마크도 40년 만에 탈원전 정책 재검토에 들어갔다. 덴마크는 1985년 탈원전을 선언하고 2006년에는 연구용 원자로마저 폐기했다. 전체 발전량의 90%를 태양광·풍력 같은 재생에너지로 충당해온 덴마크는 SMR 등 차세대 원전 도입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세계 최초 탈원전 국가인 이탈리아도 원전 건설에 적극 나섰다. 이탈리아 정부는 마지막 원전이 폐쇄된 지 25년 만인 올해 3월 원자력 기술 사용을 허용하는 법안을 제정했다. 이탈리아 정부는 의회의 법안 통과 절차를 거쳐 2027년까지 원전 재개를 위한 법적·기술적 준비를 마칠 계획이다. 네덜란드도 2035년까지 1000∼1650㎿급 원전 2기를 건설해 운영할 예정이다. 또 체코, 폴란드, 슬로베니아, 핀란드, 헝가리, 불가리아, 루마니아 등도 신규 원전 건설에 나서고 있다. 

    스페인에선 4월 28일 대규모 정전 사태 이후 2035년까지 원전 7기를 폐쇄하겠다는 기존 방침을 놓고 찬반 논의가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스페인 산업계는 원전 폐쇄 계획을 철회하라고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탈원전 대명사로 불린 독일도 유럽연합(EU) 차원에서 원자력을 친환경 에너지로 인정하는 분류 체계를 만드는 것에 더는 반대하지 않기로 했다. 

    전통 원전 강국인 프랑스도 원전 14기를 추가로 건설할 계획이다. 프랑스는 EU 27개 회원국 가운데 원전에서 전력을 가장 많이 생산하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2050년까지 탄소배출량 제로를 달성하고, 전기 에너지를 싸면서도 안정적으로 공급하려면 원자력발전 외엔 선택지가 없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프랑스 정부는 2050년까지 신규 원전을 최대 14기까지 건설할 계획이다. 당초 6기를 건설하겠다는 계획보다 8기나 늘어난 것이다. 영국도 신규 원전을 비롯해 SMR 건설에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현재 전체 에너지 수요의 15%를 맡고 있는 원전 5기 중 4기가 노후화로 2030년까지 순차적으로 가동을 멈추게 되지만, 신규 원전 건설은 더디게 진행돼 재정 부담만 늘었기 때문이다.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는 “1956년 첫 원전을 짓고 10년 만에 21기를 지었지만, 지난 15년간은 신규 원전 건설이 완전히 정체돼 있었다”며 “앞으로 신규 원전 건설에 적극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유럽에선 이처럼 ‘원자력발전의 신(新)르네상스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국제원자력기구(IEA)는 원전의 신르네상스 시대 도래에 따라 원전 발전능력이 계속 증가해 2026년에는 1.5%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에 대처하고자 탄소배출을 줄이려는 국제사회의 노력에 더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각국이 에너지 대란을 겪으면서 원자력발전이 부활하는 추세라고 지적했다. 또한 IEA는 각국의 인공지능(AI) 사용 확대로 데이터센터 건설이 늘어나면서 전력 수요가 크게 증가한 것도 원전의 신르네상스 시대 도래의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5월 24일(현지 시간) 원전 확대에 관한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5월 24일(현지 시간) 원전 확대에 관한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뉴시스

    블룸버그 “한국 최대 수혜국 될 것”

    세계 최대 원전 국가인 미국도 원전을 대폭 늘릴 계획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5월 23일 자국 원전산업을 대대적으로 확대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해당 행정명령에는 미국의 원자력발전 용량을 2050년까지 지금의 4배인 400GW(기가와트)로 확대하는 것을 목표로 △미국 내 우라늄 채굴 및 농축 확대 △규제 완화(18개월 내 신규 원전 허가 결정 등) △연방정부 토지 내 원전 건립 추진 등 내용이 들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30년까지 대형 원전 10기를 우선 착공하는 계획도 추진한다. 현재 원전 94기를 가동 중인 미국이 1979년 스리마일섬 원전 사고 이후 조지아주 보글 원전 3호기와 4호기 등 단 2기의 대형 원전만 건설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트럼프 대통령의 계획은 매우 이례적이고 파격적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군사 기지 내 최소 1기의 원전 건설도 지시했다. 이는 국방시설과 AI 데이터센터에 지속적인 전력 공급원을 확보하려는 조치라고 분석할 수 있다. 

    차세대 원전으로 불리는 소형모듈 원전(SMR). GETTYIMAGES

    차세대 원전으로 불리는 소형모듈 원전(SMR). GETTYIMAGES

    IEA와 세계원자력협회(WNA)는 2050년까지 전 세계 원전 발전용량이 최대 2.5배까지 확대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미국 에너지부도 2028년까지 자국 전력 생산량의 최대 12%가 데이터센터에서 소비될 것으로 예상했다. WNA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에서 도입을 계획하고 있는 신규 원전은 307기로, 인허가 등이 진행 중인 원전과 미국의 이번 계획까지 포함하면 2050년까지 총 700기 넘는 신규 원전이 건설될 전망이다. 

    이에 따라 한국은 앞으로 각국의 원전 건설 시장에 적극 진출해 수주할 수 있는 호기를 맞게 됐다. 한국은 설계부터 시공·운영까지 가능한 미국, 중국, 일본, 프랑스, 러시아, 캐나다 등 7개 원전 수출국 중 하나다. 미국 블룸버그 통신은 “전 세계에서 계획·제안된 원전 사업 400여 건을 분석한 결과 한국이 그중 43%를 수주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며 “원전의 신르네상스 시대가 도래하면서 한국이 최대 수혜국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새 정부 재생에너지 기조… 원전 제동 우려도

    실제로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을 중심으로 한 ‘팀 코리아’가 6월 4일 체코 신규 원전 2기 건설 사업을 수주했다. 한수원에 따르면 체코 두코바니 원전 프로젝트는 총사업비 4070억 코루나(약 25조7000억 원)를 투입해 1000㎿급 신규 원전 2기를 건설하는 것으로, 2036년 첫 가동이 목표다. 한국은 2009년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 이후 16년 만에 원전을 수출하게 됐다. 

    한국은 체코 원전 건설을 발판 삼아 폴란드와 루마니아 등 유럽 각국은 물론, 미국에서도 원전을 수주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블룸버그 통신은 한국이 향후 10년간 최대 원전 기술 수출국 중 하나로 발돋움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그 이유는 한때 업계를 선도했던 미국·프랑스는 비용과 건설 기간이 늘어난 전력이 있고, 현재 강자인 중국·러시아는 서방 국가들의 안보 우려로 공사를 수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중국은 2030년쯤 세계 최대 원전 가동 국가가 될 수 있지만, 중국 원전산업은 내수 위주로 제한될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 후쿠시마 원전 사고 여파에서 여전히 회복 중인 상황이다. 

    엔지니어링·건설·유틸리티·금융 등 유관 분야가 ‘팀 코리아’를 이뤄 움직이면서 네트워크 효과를 발휘하는 것도 한국의 강점으로 꼽힌다. 하지만 원전 확대보다 재생에너지에 더욱 적극적인 지원 의지를 보이는 이재명 정부가 향후 한국 원전 수출의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유튜브와 포털에서 각각 ‘매거진동아’와 ‘투벤저스’를 검색해 팔로잉하시면 기사 외에도 동영상 등 다채로운 투자 정보를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