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85

2007.05.15

현대미술 어디로 가고 있나

서사의 회복, 매체다변화, 영역 확장

  • 김준기 미술비평가 www.gimjungi.net

    입력2007-05-14 15: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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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미술 어디로 가고 있나

    백남준의 ‘스키타이왕 단군’.

    21세기 초반의 동시대 미술은 20세기 미술 개념과 제도를 이어받으면서 새로운 시각문화 환경에 맞춰 진화하고 있다. 그 변화 양상의 특징은 ‘서사의 회복’ ‘매체의 다변화’ ‘미술영역의 확장’ 등 세 가지로 요약된다.

    동시대 미술의 첫 번째 양상은 서사(이야기)의 회복이라는 탈근대적 흐름이다. 흔히 포스트모더니즘 미술을 패러디, 혼성모방, 키치 등의 요소로 정리하곤 한다. 이러한 흐름을 주도하는 가장 큰 모태는 모더니즘 미술의 환원주의 경향을 극복하기 위해 대두된 탈분화 양상이다.

    환원주의란 미술의 문제의식을 가장 본질적 요소인 형식실험에 두는 경향을 말한다. 환원주의는 미술의 근본적 구성요소인 형태와 색채·볼륨·물질 등의 문제에 천착하고, 형식적으로는 진보주의를 채택하며 20세기 중반기까지의 미술을 지배해왔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의 미술 개념과 제도가 점점 소통 가능성을 상실하면서 미술과 미술 바깥, 예술과 실재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되짚어보려는 반성적 경향이 나타났다. 서사의 회복은 이러한 흐름을 대변한다. 미술을 소통 불가능한 자폐적 언어로 내몰았던 모더니즘 미술에 대한 반성에서 비롯된 포스트모더니즘 미술은 서사구조를 예술적 소재와 주제로 끌어들인다.

    미술에서 서사 구조의 도입이란 미술작품에 특정한 형상과 사건을 다루는 이야기 구조를 끌어들인다는 얘기다. 포스트모더니즘 미술은 미술이라는 시각적 표현물이 실재의 삶과 사회 및 자연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할 것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접근한다. 이러한 흐름은 회화나 조각, 설치는 물론 사진과 영상, 설치 분야에서도 나타난다.



    매체의 다변화는 새로운 미술 흐름을 주도하기 위한 전제 조건이다. 여기서 말하는 매체환경의 다변화 양상이란 전통적인 미술 개념을 뛰어넘는 다양한 방식의 시각문화 소통체계가 전개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진의 발명이 전통적인 미술 개념과 제도에 던진 충격파는 수천년간 지속돼온 미술의 재현 기능을 흔들어놓았다. 미술은 사진과 다른 길을 선택해야 했고, 그 결과 앞서 말한 모더니즘 미술의 형식실험에 치중해왔다.

    그러나 새로운 미술은 오히려 새로운 미디어를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는 과정에서 탄생했다. 사진뿐만 아니라 영상과 디지털, 인터넷 문화를 바탕으로 이뤄지는 시각이미지 소통환경의 급속한 변화는 근본적으로 미술의 정의와 관행, 개념, 제도를 바꿔놓고 있다. 특히 텔레비전을 비롯한 대중매체의 발달은 시각예술 영역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대중매체와 구별되는 영역을 구축하기보다 그러한 매체환경을 예술적 방법론으로 끌어들임으로써 미술은 훨씬 다양하고 풍부한 시각문화로 재정립되고 있다.

    현대미술 어디로 가고 있나

    피카소의 ‘인형을 안고 있는 마야’.

    마지막으로 꼽을 수 있는 변화의 양상은 미술영역의 확장이다. 거시적으로 볼 때 오늘날의 미술은 사적 영역의 미술과 공공영역의 미술이 공존하는 모습이다.

    특히 주목해야 할 대목은 공공미술이라는 흐름이 형성됨으로써 미술의 전통적 가치가 더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새로운 미술 개념이 생기면서 삶의 현장에서 공적인 의제를 다루는 미술이 공동체의 형성과 새로운 합의 도출 등에 일정한 소임을 맡게 됐다. 이런 미술은 갤러리 전시장에서 선보이는 작품들과 같이 사적인 컬렉션의 대상이 아니라는 점도 흥미롭다.

    20세기 미술영역이 작업실에서의 작품 생산과 전시장에서의 작품 감상에서 사적 방식의 컬렉션으로 이어지는 데 머물러 있었다면, 동시대 미술은 더 다양한 소통채널을 확보하며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그만큼 현대미술은 미술문화의 ‘종다양성’이 보장되는 건강한 ‘미술환경’을 꾸려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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