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51

2006.09.05

나이 50… 내 뇌는 한물간 걸까?

주간동아·한국뇌학회 공동기획

  • 김종성 울산의대 서울아산병원 신경과 교수

    입력2006-09-04 14:57: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나이 50… 내 뇌는 한물간 걸까?

    게이트볼을 즐기는 노인들. 나이가 들수록 뇌를 꾸준히 써야 한다.

    “주차한 뒤 차를 어디에 세워뒀는지 몰라 헤맸다.” “동창을 만났는데 이름이 생각나지 않아서 애먹었다.”

    오십 넘은 사람들이 흔히 호소하는 증세다. 나 역시 예외가 아니어서 비슷한 정도의 건망증을 가지고 있다. 다만 내가 환자들과 다른 점은 이런 현상이 ‘치매’가 아닌 ‘건망증’이며, 중년을 넘어선 사람에게 흔한 정상적인 현상임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모르는 사람들은 죽을 병에라도 걸린 것으로 생각해 나를 찾아오는데 설명을 듣고는 안심한다.

    하지만 기억력 감퇴는 좋은 것이 아니다. 일종의 노화현상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건망증이 지나치다면 질병이 아닌지 의심해봐야 한다.

    우울증 있으면 ‘가성치매’ 빠질 수도

    중년이 넘어 깜박깜박하는 사람들의 뇌를 건강하게 할 수 있는 방법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나이가 들면 흔히 수면장애가 찾아오는데, 이런 경우 잠이 깊이 들지 못하고 자주 깬다. 수면 부족은 집중력을 떨어뜨리므로 건망증의 요인이 된다. 잠을 제대로 못 잔다면, 뇌의 활동이 극대화되는 낮 동안에 자신의 뇌 기능 중 일부밖에는 사용하지 못한다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단기 기억이 장기 기억으로 저장되는 과정이 수면 중에 이뤄진다는 학설도 있다. 따라서 평소 운동을 많이 하고 스트레스를 피해 잠을 깊이 잘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커피 같은 각성 작용이 있는 식품을 (특히 오후에) 피해야 함은 물론이다.

    비만한 사람들에게 많은 코골이, 수면무호흡증은 중년 이후의 집중력 부족, 건망증, 두통, 졸림의 중요한 원인이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의 뇌에 이상이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자기공명영상촬영(MRI)을 찍기 위해 외래를 찾아온다. 하지만 수면검사를 받는 것이 바람직하다. 지나친 코골이나 수면무호흡증은 깊은 잠이 들 수 없도록 방해할 뿐 아니라 고혈압과 뇌중풍(뇌졸중)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증세가 심하다면 적극적으로 치료해야 한다.

    중년 및 노년기에는 우울증에도 쉽게 빠진다. 특히 폐경기에 접어든 여성들은 갑자기 삶이 허무하게 느껴지고, 다른 사람들에게 서운한 감정이 드는 소위 화병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 이런 우울증이나 신경증은 숙면을 해칠 뿐 아니라 기억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된다. 우울한 사람은 바깥 세상에 대한 관심을 잃고 자신의 내면에서 헤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실제로 뇌기능은 정상인데도 치매 환자처럼 깜박깜박하거나 일을 효과적으로 수행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현상을 가성치매라고 한다.

    우울한 기분 자체가 기억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증거도 있다. 예컨대 우울한 기분, 과도한 스트레스는 기억 기능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해마의 크기를 감소시킨다는 주장이 있다. 이 주장의 진위 여부를 떠나 중년 이후에 불안과 우울을 겪는다면 이는 업무능력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고, 결국 불안 및 우울 증세가 더 심해지는 악순환에 빠져든다.

    이뿐만 아니다. 최근 연구에 의하면 우울한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뇌중풍 같은 뇌질환에 더 잘 걸리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주장에 대해서는 다소 논란이 있지만 어쨌든 중년 이후에 우울한 상태에 빠지지 않도록 취미생활을 하고 규칙적인 운동을 하는 등 평소에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채소, 과일, 종합비타민 복용 권장

    나이 50… 내 뇌는 한물간 걸까?
    우리나라에는 ‘머리를 좋게 하는’ 특별한 음식을 찾는 사람이 유난히 많다. 하지만 이런 음식은 없다. 다만 비타민 C나 E가 뇌의 손상과 노화에 관여하는 유리산소기를 제거한다. 또한 비타민 B는 뇌혈관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호모시스텐을 낮춘다. 따라서 나이 들어 종합비타민을 복용하는 것은 권장할 만하다. 이보다 더 바람직한 것은 채소, 과일 등 비타민과 항산화 물질이 풍부하게 함유된 음식을 많이 섭취하는 일이다. 등 푸른 생선(고등어, 참치, 연어 등)에 많이 포함돼 있는 오메가3 지방산은 뇌 조직에 필요한 요소이므로 이런 생선을 섭취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다만 뇌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동물성 지방을 함유한 햄버거, 감자튀김, 도넛 등 패스트푸드는 피하는 것이 좋다.

    카페인은 각성 작용이 있어서 단기적으로 집중력을 증진시킬 수 있지만 먹으면 중독이 되기도 한다. 예컨대 아침에 일어나 커피를 한 잔 마시지 않으면 정신이 들지 않는다고 하면 이는 일종의 중독 증세로 봐도 좋다. 게다가 과도한 커피 섭취는 부적절한 판단을 내리게 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따라서 커피를 마시는 것은 좋지만 하루 한두 잔 정도로 제한하는 것이 좋다. 과도한 카페인 복용은 교감신경계를 활성화해 혈압을 올리고 심장 박동을 빠르게 하므로 고혈압, 심장병, 뇌중풍 등이 있는 사람은 주의해야 한다. 홍차와 녹차에도 카페인이 들어 있는데 커피보다 유리한 점은 항산화 효과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암페타민이나 도파민 같은 각성제를 사용하면 짧은 기간에 기억력을 향상시킬 수는 있다. 그러나 효능을 나타내는 기간이 짧으며, 습관성 중독에 빠지기 쉬우므로 이런 약물의 복용은 피해야 한다.

    포도당은 뇌세포의 중요한 영양원인데 주로 탄수화물에 들어 있다. 업무 도중 간식으로 비타민과 포도당이 많이 든 사과, 포도, 자두 등을 섭취하는 것은 두뇌를 깨우는 효과가 있다. 다만 당뇨병이 있는 사람은 당 섭취를 주의해야 한다.

    나이 50… 내 뇌는 한물간 걸까?

    코골이 환자를 치료하는 모습.

    우리나라 사람들 중에는 아침을 거르는 사람이 많은데, 아침식사를 잘하는 것이 두뇌를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데 유리하다. 아침을 거른 채 업무를 시작하면 뇌가 탈진한 상태에서 일하는 것이므로 온전한 집중력을 유지할 수 없다. 아침에 밥이든 빵이든 탄수화물이 든 음식을 섭취해서 밤새도록 굶은 뇌에 활력을 줘야 한다. 실제로 아침식사를 거르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우울증에 빠지기 쉬우며, 수학 점수가 낮다는 보고가 있다. 특히 저혈압인 노인들은 아침식사가 부실하면 혈압이 더 내려가 어지러운 증세를 호소할 수 있다.

    폐경기가 지난 여성이 심한 우울증이나 건망증에 시달린다면 여성호르몬을 당분간 투여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하지만 장기적 투여는 유방암 증가의 원인이 되므로 바람직하지 않다. 머리를 꾸준히 사용하는 것은 기억력 유지에 도움이 된다. 일반적으로 교육수준이 낮은 사람이 높은 사람보다 치매에 더 잘 걸리는 경향이 있지만, 과연 교육 자체가 이런 차이의 원인이 되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교육수준이 높은 사람들은 건강관리도 잘하고 영양 상태도 좋을 것이므로 혈관성 치매 같은 만성질환에 잘 걸리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논란에도 두뇌를 자주 사용하는 것은 기억 기능의 유지에 유리할 것으로 생각된다.

    흔히 나이가 들면 “쉬겠다”고 하지만 나이를 먹은 뒤라도 끊임없이 지적 활동을 유지하고 무슨 일에든 적극적으로 관심을 갖는 것이 좋다. 예컨대 독서, 대화 등을 자주 하고 바둑, 컴퓨터, 영어단어 외우기, 산수문제 풀기 등을 지속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친구나 동료들과 노래방 등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도 좋을 듯하다. 가사를 외우느라 언어중추가 자극되고 감정의 뇌도 자극될 것이다. 한 연구에 의하면, 치매에 걸린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발병 전 일기를 비교해보니 미사여구를 사용한 사람보다 단순한 글밖에 못 쓰던 사람이 더 치매에 잘 걸렸다고 한다. 어쩌면 미사여구를 사용하며 매일 일기나 편지를 쓰는 것도 치매 예방에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뇌 기능의 유지, 그리고 치매 예방에는 특별한 비법이나 기막힌 약이 있는 것이 아니다. 평소의 건전하고 자연적인 삶에 그 비결이 있는 것이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