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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노래’ 읽는 盧, 칼날 위에 선 野

한·민 공조 193표 탄핵 부메랑 民心 소용돌이 …고건 총리 띄우며 여론 되돌리기 안간힘

  •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김기영 기자 hades@donga.com
입력
2004-03-18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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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노래’ 읽는 盧, 칼날 위에 선 野

‘칼의 노래’ 읽는 盧,  칼날 위에 선 野

3월12일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을 막기 위해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국회본회의장 의장석을 둘러싸고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왼쪽). 이날 박관용 국회의장은 경호권을 발동, 의장석에 앉았다.



3월12일 오전 11시56분 국회의사당 본회의장에서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가결시킨 한나라당 의원들은 열린우리당(이하 우리당) 의원들의 절규를 뒤로 한 채 본회의장을 황급히 빠져나갔다. 의원총회를 위해 2회의실로 이동하는 이들을 한나라당과 민주당 당직자 및 의원 보좌진들이 인의 장막을 쳐 보호했다. 분노한 우리당 관계자들과의 불필요한 마찰을 막기 위한 2차 한·민공조였다. 어떤 이는 “수고하셨습니다”며 박수를 치기도 하고, 더러는 “만세”를 외치며 기쁨을 나타냈지만 대부분의 의원들은 무덤덤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의총장에 들어선 한나라당 의원들의 표정은 금세 달라졌다. 여기저기서 아껴두었던 웃음이 터져나왔다.

“오래 걸릴 줄 알았는데…. 50분 만에 해냈네.”

“잘했어. 오늘에야 한나라당의 저력을 보여주었다.”

“소장파들도 잘했어. 큰일을 한 거야.”



“선거 편하게 치르게 됐어.”

홍사덕 원내총무, 최병렬 대표에 이어 김기춘 국회 법사위원장이 탄핵 절차를 설명했다.

4년간 일군 총선 표밭 ‘탄핵’ 한 방에 초토화

“국회의 탄핵소추결의안 정본을 헌법재판소에 보내고 사본은 청와대에 보내는데, 청와대에 사본이 접수되는 순간 대통령의 권한이 정지됩니다.”

한 의원이 “그럼, 빨리 보냅시다”며 조급증을 보였다. 듣고 있던 다른 의원이 “팩스가 가장 빠릅니다”고 맞장구를 쳤다. 뒤따라 ‘와’ 하는 웃음과 박수 소리. 말 그대로 승자의 축제이자 잔치였다. 그러나 ‘그들만의 축제’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이 싸늘하게 식어가고 있음을 그들은 미처 간파하지 못했다. 국민들의 분노는 ‘나 홀로 축제’의 열기가 채 사라지기도 전인 그날 저녁부터 여의도를 강타했다.

다음날 오후, 서울에 지역구를 둔 한나라당 A원외위원장은 경악했다. 4년 동안 일군 표밭이 ‘탄핵’ 한 방에 초토화됐기 때문이다. 3월10일 ARS를 통한 한나라당과 우리당에 대한 당 호감도 조사결과는 24%(우리당) 대 23%(한나라당). 반면 후보 지지도는 34%(한나라당) 대 11%(우리당)로 특별한 변수가 없다면 총선 승리는 무난해 보였다. 그러나 탄핵 다음날 ARS를 돌린 A위원장은 참담한 결과를 보는 순간 바닥에 주저앉아 엉엉 울고 말았다. 당 지지도는 44% 대 22%로 벌어졌고 무명의 우리당 후보 지지율이 30%로 치솟은 반면, 자신은 22%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지난 4년간 밤낮 없이 일군 표밭을 한 방에 날려버린 당 지도부가 원망스러웠다. 그는 곧바로 당 지도부를 찾았다. ‘도대체 다음 수순은 무엇이냐’고 묻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 시각, 당 지도부는 없었다. 대부분 전화연결이 되지 않았고 당 사무처는 “책임자가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하루 전 천하를 얻었던 한나라당이 단 하루 만에 나락으로 떨어졌음이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정치권 주변에서는 그런 그들에게 ‘무뇌 집단’이라 이름 붙이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칼의 노래’ 읽는 盧,  칼날 위에 선 野

3월12일 새벽 탄핵에 반대하는 시민이 자신의 차를 국회로 돌진, 전소시켰다.

한나라당 인사들은 사실 노대통령 탄핵 후의 부메랑에 크게 주목하지 않았다. 30%대 지지도의 대통령을 탄핵하면 반대하는 70%가 박수를 칠 것이란 단순논리가 주류를 이뤘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내린 이 판단은 최악의 악수임이 곧바로 드러났다. 수도권은 이미 탄핵 부메랑으로 초토화됐다. 이 부메랑은 기수를 바꿔 영남을 향하고 있다. 3월13일 현재 각 언론사가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탄핵 반대 의견은 60~70%대를 넘나든다. 15일 현재 우리당은 TK(대구ㆍ경북)를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여유 있게 1위를 달린다. 더 큰 문제는 지지율이다. 우리당의 경우 50%를 위협하며 치고 올라가지만 한나라당은 10% 초반을 향해 거꾸로 질주한다. 민주당은 이미 한 자릿수로 전락, 존재조차 찾기 힘들다.

위기감이 한나라당을 자극했다. 자연 과장된 몸짓이 나올 수밖에 없다. 최병렬 대표는 앞으로 총선 구도를 ‘노무현 대통령 살리기 대 나라 살리기’로 만들어 나가겠다고 선언했다. 정면돌파론이다. 그는 “지금 이 나라는 혼란을 만들어서 헌법재판소가 정상적 판결을 하지 못하도록 간섭하는 세력과, 말없이 나라의 어지러운 모습을 걱정하면서 묵묵히 지켜보는 안정을 바라는 세력으로 양분되어 있다”며 “이번 총선은 이들 두 세력 사이의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가 걸린 전투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내부는 매우 심각한 자기 모순과 문제점에 봉착해 있다. K, J, H 의원 등 한나라당 일부 전략가들이 대안을 찾자며 14일 모였다. H의원은 “한나라당이 정상적이라면 다음 수순은 대통령 하야 투쟁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당이 X판이니…”라며 현실적인 어려움을 덧붙였다. 그는 여론도 부담스럽다는 투다. “가는 것이 맞지만 갈지 안 갈지는 모르겠다”는 모호한 입장이 그가 내놓은 결론. 흔들리는 한나라당의 현주소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탄핵안 가결 이후 한때 당 지도부 일각에서 선거 연기 및 개헌이라는 추가공세를 구상하는 흐름도 포착됐지만 비난여론에 바로 묻혔다(상자기사 참조).

‘칼의 노래’ 읽는 盧,  칼날 위에 선 野

3월12일 오전 민주당 유용태 의원이 탄핵안 표결에 앞서 메모를 보며 작전을 짜고있다.

한나라당은 “시간이 약이다”고 말한다. 탄핵 충격에서 벗어난 민심이 제자리로 돌아오기를 기다리자는 것이다. 홍사덕 원내총무는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10여일 정도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중진 H의원의 진단은 이와 달리 비관적이다. 그는 “출렁거린 민심이 일부 조정국면을 거쳐 총선에 그대로 반영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지난 대선 때 후보단일화 이후의 현상과 같이 대세로 굳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

한나라당은 ‘고건 효과’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국민들은 당장 대통령이 탄핵됐다는 불안감에 분노를 나타내지만 대통령권한대행인 고건 국무총리가 국정을 안정적으로 이끌면 불안감이 해소될 것이라는 믿음이다. 이를 위해 대대적인 홍보전을 펼칠 계획이다. 방송 내용이 편파적이라며 항의단도 구성했다. 당내 행사도 가급적 자제한다는 입장에 따라 임시전당대회도 연기했다. 소장파의 반발이 쏟아지지만 당 지도부는 ‘마이 웨이’만을 고집한다.

“다음 수순은 대통령 하야 투쟁, 그러나 당이 ×판이니”

탄핵안 후폭풍의 피해는 한나라당보다 민주당이 심각하다. 민주당이 당초 기대했던 호남표 결집은 대신 호남 지지도 급락으로 나타났다. 탄핵정국을 주도했던 조순형 대표는 애초 구상과 다른 현실 흐름이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민주당의 한 40대 수도권 출마자는 당의 강경노선을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당의 강세로 호남 유권자가 양분되면서 민주당이 어려움을 겪어왔다. 탄핵안 가결은 민주당 입장에선 호남 유권자에 대한 일종의 통고와 같은 것이었다. ‘어느 당을 택할 것인지 선택하라’는 것이었다. 이제 곧 호남 유권자의 뜻이 나타날 것이다. 솔직히 민주당과 우리당 두 당이 좁은 호남에서 공존하기란 어렵다. 민주당은 ‘반(反)노무현’을 분명히 했고 탄핵 가결은 친노의 우리당과 반노의 민주당 가운데 호남 유권자들이 선택을 분명히 하라는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칼의 노래’ 읽는 盧,  칼날 위에 선 野

고건 대통령권한대행이 3월14일 오전 충남 논산시 노성면 죽림리의 폭설 피해 현장을 시찰했다.

민심은 민주당의 양자택일 요구에 우리당 선택으로 나타났다. 믿었던 호남 표심도 민주당의 낭떠러지 전략을 외면했다. 탄핵 직후 조순용 전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 등의 탈당은 시작에 지나지 않았고 시간이 지날수록 이탈자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한나라당이나 우리당에 비해 가진 자산이 원래 부족했던 터에, 있는 자산마저 날아가는 모습에 당 관계자들은 경악하고 있다. 김경재 상임중앙위원과 강운태 사무총장 등이 잇따라 여론조사 조작설을 주장하면서 언론의 보도성향을 문제 삼고 나선 것이나 조대표가 방송사들을 항의 방문하는 ‘극단적’ 선택을 한 것 모두 민주당이 처한 위기상황의 방증이다. 내홍 조짐도 조대표를 위협한다. 설훈 조성준 정범구 의원 등 수도권 출신 의원들은 당 지도부의 사퇴를 요구하고 나섰다. 수도권 출마후보들의 불만도 갈수록 커져가는 상황이다. 특히 수도권의 경우 밑으로부터의 단일화 움직임이 급속도로 퍼지고 있어 출마후보들을 긴장시킨다. 강북 지역에서 출마를 준비하고 있는 민주당 한 원외위원장은 “탄핵 후 민주당과 한나라당을 한 묶음으로 보는 여론이 퍼지고 있다”며 생각지도 못한 역풍과 부메랑 현상에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런 출마후보들의 고민과 불만은 고스란히 조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에 전달된다. 대표로서 답답한 심정을 표현하기는 힘들지만 조대표도 힘들기는 마찬가지.

조대표는 기회 있을 때마다 고총리를 “안정감 있는 행정전문가”로 추켜세운다. 노대통령 탄핵 사태가 결코 사회적 불안을 부추기는 요인이 아니며 오히려 “노대통령 없는 것이 안정적”이라는 여론을 이끌어내기 위한 치밀한 접근전이다. 그러나 이런 행보를 주목하는 민심은 거의 없다. 조대표는 한나라당이 헌법재판소의 신속한 재판을 요구한 것과 반대로 “시간에 쫓기지 말고 차분하게 검토하고 판단할 것”을 주문했다. 헌재의 판결이 총선에 미칠 정치적 영향력을 면밀히 분석한 결과로 보인다.

헌재의 결정 시기는 총선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헌재의 결정은 두 가지 방향으로 좁혀진다. 먼저 국회의 탄핵을 수용하는 결정이 첫 번째다. 특히 총선 전 탄핵 수용 결정이 날 경우 총선판은 지각 변동이 불가피하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명분을 얻어 대역전승을 바라볼 수 있다. 반대로 헌재의 결정이 총선 전 기각으로 나올 경우 정치 상황은 정반대로 흐를 수밖에 없다. 야당은 초토화되고 우리당의 대승이 예상된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 정치권이나 전문가들의 대체적 전망은 헌재 결정이 총선 후에 이뤄질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쪽이다. 따라서 ‘4·15’ 총선은 친노 대 반노 진영으로 갈리는 극명한 대립 속에 전개될 게 분명하다. 직무가 정지된 노대통령은 요즘 ‘칼의 노래’를 읽고 있다. 반면 야당은 칼날 위에 선 형국이다.







주간동아 427호 (p14~17)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김기영 기자 hade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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