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53

2016.08.31

커버스토리 | 빛바랜 의약분업

반복되는 주사제 사고 알고 보면 의약분업 탓?

의사·약사 힘겨루기에 바닥난 건보 재정…‘시민을 위한 정책’ 찾아야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16-08-29 15:5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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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매 예방과 혈액순환 개선에 좋은 은행엽주사-은행잎으로부터 추출한 생약제제로 (중략) 기억력 감퇴, 어지러움 등의 치료에 사용할 수 있습니다.’

    최근 C형간염이 집단 발병한 것으로 확인된 서울 한 병원에 붙어 있던 안내문이다. 해당 병원에서는 ‘은행엽주사’ 외에도 마늘주사, 포도당주사 등 수많은 수액주사를 ‘판매’했다. 환자는 자신에게 주입되는 약물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지 못한 채 주삿바늘을 몸에 꽂았고, 그 결과는 일부에게 원인 미상의 C형간염 감염으로 나타났다.



    전문의약품, 의사 마음대로 처방·조제

    질병관리본부는 이번 사건의 배경에 ‘주사제 반복 사용’이 있을 것으로 의심한다. 병원 측이 주사제 혼합액을 미리 대량으로 만들어놓은 뒤 여러 사람에게 나눠 주입했고, 그 과정에서 집단 감염이 발생했다는 얘기다. 의료계에 따르면 수액주사를 주력 ‘상품’으로 삼는 병·의원은 의사가 여러 약물을 혼합해 자체적으로 수액을 제조하는 경우가 있다. 지난해 C형간염이 집단 발병한 ‘다나의원’에서도 원장이 이뇨제, 진통소염제, 스테로이드제 등을 섞어 ‘다이어트 주사’나 ‘갱년기 주사’를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주사를 맞은 환자 가운데 일부가 건강 이상을 느끼고 병원 측에 주사제 성분 처방전을 요구했다 거부당한 일도 있었다고 한다. 이에 대해 한 약사는 “의약분업이 제대로 시행됐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지극히 후진적인 사건”이라고 지적했다.

    “의약분업의 본질은 전문의약품 처방을 의사에게 맡기고 이를 약사가 검증하게 하는 겁니다. 그런데 현재 전문의약품에 해당하는 주사제는 의약분업 대상에서 빠져 있어요. 병원이 처방, 조제, 투약을 독점하고 자체적으로 약품까지 관리하니 통제가 안 되는 거죠.”



    해당 약사의 주장이다. 그는 “우리 약국은 하루에 몇 건씩 처방전 오류를 발견해 바로잡는다. 어제도 용법과 용량이 잘못 기재된 처방전이 들어와 병원 측과 통화하고 수정했다”며 “의약품 상호 검증이 의약분업의 기본 취지인 만큼, 이번 일을 계기로 정책이 바로잡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눈여겨볼 것은 2000년 의약분업 도입 당시에는 주사제도 다른 약처럼 분업 대상에 포함돼 있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2001년 7월 국회는 약사법을 개정해 주사제를 의약분업 대상에서 제외했다. 약품을 구매한 뒤 투약을 위해 다시 병원을 찾아야 하는 환자의 불편을 줄인다는 게 이유였지만, 약사들은 이를 ‘의사를 상대로 한 약사의 패배’라 여기고 있다. 의약분업이 의사 이익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추진돼왔음을 보여주는 한 사례라는 것이다.

    서울 송파구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한 약사는 “의약분업 시행 이후 의사는 갑, 약사는 을이 됐다”며 인터넷 홈페이지를 하나 열어 보여줬다. 약사들이 약국 매매 정보를 주고받는 해당 사이트에는 매물 사진과 함께 ‘1층 도로변에 있는 유일한 약국으로 (중략) 소아과 역시 독점적 위치여서 일처방 100매 내외는 기대됨’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 또 다른 사이트에 올라온 매물 안내문에서도 ‘소아과 독점 약국이며 처방전은 60건 이상’이라는 설명이 한눈에 들어왔다. 이 약사는 “적나라하게 말하자면 의약분업 시행 이후 약국의 운명은 근처에 있는 병원이 좌우한다. 병원과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 약사가 해당 병원 원장과 사이가 좋은지 등이 약국 수입을 결정짓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어느 정도 규모를 갖춘 병원 앞에는 여기 매물처럼 ‘독점적 위치’를 가진 약국이 많지 않다. 서너 개의 경쟁 약국 사이에서 처방전을 최대한 많이 받아내려면 의사 눈에 들어야 한다”는 게 이 약사의 말이다.



    수조 원대 의약품 리베이트의 온상

    현행 약사법은 약국 개설자(약사)가 의료기관 개설자(의사)에게 처방전 알선의 대가로 금전, 물품, 편익, 노무, 향응, 그 밖의 경제적 이익을 제공하는 행위를 금지한다. 이를 위반할 경우 징역, 벌금 또는 약국업무정지 같은 행정처분에 처해질 수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약국이 있는 건물에 병원이 입주하면 인테리어는 약사가 담당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금품 수수가 널리 행해지고 있다는 게 업계 측 설명이다. 이 경우 약국은 병원에서 처방약 정보를 미리 제공받는 등 유·무형의 ‘혜택’을 받는다.

    한 약사는 “현행 의약분업 제도는 의사가 처방한 약품이 약국에 없을 경우 약사가 환자에게 이 사실을 알린 뒤 성분, 함량, 제형이 동일한 다른 의약품으로 약을 조제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하지만 환자 처지에서는 의사가 먹으라는 바로 그 약을 먹어야 마음이 놓이지 않겠나. 그러다 보니 약사는 의사가 선호하는 제품명을 모르면 비슷한 성분의 약을 종류별로 들여놓아야 하고, 약 구매 비용과 재고 관리의 어려움을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고 밝혔다.

    의약분업 도입 당시 약학계는 이를 막고자 의사가 처방전에 약품 이름을 적지 않는 이른바 ‘성분명 처방’을 요구했다. 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약사의 조제권까지 크게 제한되면서 약품 선택권은 의사들 손으로 넘어가게 됐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동시에 제약회사가 의약품 구매 비용의 일부를 구매자에게 되돌려주는 불법 리베이트 ‘혜택’도 의사에게 넘어갔다는 게 약사들의 의견이다.

    정부는 2000년 의약분업 도입 당시 목표로 의약품 오·남용 방지와 더불어 불법 리베이트 근절을 꼽았다. 그러나 지금도 제약회사 매출액의 15~30%는 리베이트로 쓰인다고 의료계 종사자들은 말한다. 한 약사는 “일부 대형약국 약사는 여전히 리베이트를 받는지 모르겠지만, 리베이트는 대부분 병원 원장들에게 집중된다. 한 동료 약사는 제약사 영업사원이 ‘원장님에게 리베이트를 드리려면 약국에서 의약품을 구매한 명세가 있어야 한다’며 주문하지도 않은 약품을 약국에 쌓아놓아 골치를 앓았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전했다.

    보건복지부는 의약분업 도입 후 10년이 지난 2010년, 다시 “불법 리베이트를 없애겠다”며 리베이트를 준 사람과 받은 사람을 둘 다 처벌하는 ‘쌍벌제’를 도입했다. 하지만 지난해 국민권익위원회가 45개 공공의료기관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 응답자의 22%는 여전히 리베이트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과정에서 의약품 오·남용을 줄이고 약제비를 절감해 국민건강보험 재정을 건실화하겠다는 정책 당국의 목표는 빛을 잃은 지 오래다.

    관련 통계에 따르면 국민건강보험 재정지출 규모는 2001년 13조 원에서 2014년 44조 원으로 증가했다. 정부는 의약분업 시행 후 늘어난 국민건강보험 지출을 메우기 위해 2002년부터 5년간 건강보험료 예상 수입의 50%(정부 예산 40%, 건강진흥기금 10%)를 국고에서 지원했다. 2007년부터 올해까지는 20%(정부 예산 14%, 건강증진기금 6%)에 상당하는 액수를 지급하고 있다.



    누구를 위한 의약분업인가

    의사들은 이처럼 국민건강보험 재정 지출이 늘어난 한 원인으로 약사들의 조제료를 지목하기도 한다. 서울시의사회는 지난해 신문광고를 통해 ‘의약분업 이후 13년간 약국관리료, 조제기본료, 복약지도료, 조제료, 의약품관리료란 5가지 명목으로 약값을 빼고 약국에 지불한 돈이 무려 30조 원’이라고 주장했다. 대한의사협회 정책이사를 지낸 내과의사 김홍식 원장은 서울시의사회가 주최한 ‘의약분업 재평가 촉구 토론회’ 자리에서 자신이 진료한 여성의 사례를 들며 “내가 해당 환자에게 갑상샘 기능 저하증 검사 결과를 설명하고 왜 약을 먹어야 하는지, 주의할 점은 무엇인지 등을 11분에 걸쳐 설명한 뒤 국민건강보험으로부터 받은 진찰료는 9710원이다. 반면 이 환자에게 처방전에 적힌 대로 두 달 치에 해당하는 약 60정을 건네준 약사는 조제료로 1만3130원을 받았다”고 밝히기도 했다.

    실제로 올해 책정된 수가에 따르면 환자가 약국에서 내복약을 지을 때 국민건강보험에서 약국에 지불하는 비용은 △약국관리료 520원 △조제기본료 1360원 △복약지도료 880원 △의약품관리료 560원 △조제료 1340원 등 4660원에 이른다. 투약 일수가 길어지면 비용도 늘어나지만, 약값에 포함돼 소비자가 바로 알지는 못한다.

    이에 대해 한 의사는 “의약분업 도입 당시 정부가 약사들의 반발을 무마하려고 수가를 대폭 높여 발생한 일”이라며 “세계적으로 의료보험제도를 운용하는 나라 가운데 약사에게 다섯 가지 항목의 기술료를 주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고 들었다. 그러나 과연 약사들이 현장에서 복약지도를 제대로 하는지는 의문”이라고 밝혔다. 그는 병원 바로 앞에 이른바 ‘문전약국’이 성행하고 동네약국이 사라지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도 조제료 때문이라며 “약사들이 일반의약품을 팔아 생기는 수익보다 처방약을 조제할 때 얻는 수익이 월등히 높다. 대중은 병원이 해당 약국을 상대로 ‘갑질’을 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상 의사들이 열심히 진료하고 처방전을 발행하면 수익은 고스란히 약사가 챙겨간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정책당국은 의약분업 도입 당시 의사들이 집단 파업에 돌입하는 등 강력하게 반발하자 의료 수가도 40% 인상한 바 있다. 이 여파로 2001년에만 4조 원대 국민건강보험 적자가 발생했을 정도다. 일부에서는 이 과정에서 의사 수입이 급증해 2000년대 이후 대학 입시에서 의대 선호 현상이 뚜렷해졌다는 분석도 내놓는다. 의료계와 약업계 모두 의약분업 도입으로 손해 본 것이 없다는 얘기다.

    반면 의약분업 도입으로 의약품 오·남용 감소, 불법 리베이트 근절, 국민건강보험 재정 건실화를 노렸던 정책 당국의 목표는 이뤄지지 않았다. 여전히 병·의원에서 성분도 모르는 주사제를 맞고, 약국에서 제대로 된 복약지도를 받지 못하며, 오히려 더 막대한 의료비를 부담하게 된 국민에게도 득이 된 게 없어 보인다. 의약분업 정책 입안 당시 이를 적극적으로 지지한 한 학계 인사는 “2000년 이전과 비교해보면 최소한 환자가 약국에서 아무 약이나 임의로 사 먹는 일이 사라졌다는 점은 높게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이외에는 기대에 못 미치는 면이 많다”며 “지금이라도 정부가 의사와 약사의 이해관계에서 벗어나 우리 의료를 선진화하고 제약산업을 정상화하는 방향으로 의약분업 체계를 개편해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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