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35

2016.04.27

커버스토리 | 초등생 부모 되기 두렵다

돈으로 상장 사는 교내 과학대회

300만 원짜리 R&E, 과학상자·에어로켓도 과외받아야 수상…최종 목표는 대학 입시

  • 김유림 기자 mupmup@donga.com

    입력2016-04-25 15:2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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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 21일 ‘과학의 날’을 맞아 전국 초중고교에서 과학 관련 각종 대회가 열렸다. 대표적으로 한국과학창의재단(미래창조과학부 산하)에서 실시하는 글로벌(전국)청소년과학탐구대회와 한국과학교육단체총연합회가 주최하는 한국학생과학탐구올림픽 등이 있다. 어떤 대회를 치를지는 학교장 재량이다. 두 대회 모두 교내 대회를 거쳐 시도 대회와 전국 대회로 이어지는 만큼 해마다 4월이면 교내 수상을 목표로 전국 아이들이 각축을 벌인다.

    글로벌(전국)청소년과학탐구대회는 희망자에 한해 참여 가능하며 대회 종목은 융합과학, 기계공학, 항공우주, 탐구토론 등 4개 분야로 나뉜다. 올해부터 과학미술 종목은 폐지되고 융합과학 종목에 초등 부문을 신설했다. 물론 이 대회와 무관하게 자체적으로 과학상상그리기 대회를 이어가는 초등학교가 많다.  

    기계공학은 2인1팀으로 과학상자 6호와 공구를 준비해 당일 제시되는 과제에 따라 설계도 및 작품설명서를 작성해 제출한다. 항공우주는 2인1팀으로 당일 에어로켓을 제작해 발사하는데, 제작하는 비행체의 제작 원리와 비행 원리 등을 기록하는 작품설명서도 함께 내야 한다. 과학·기술·공학·예술·수학(STEAM) 등 학문 영역 간 다양한 융합을 목표로 하는 융합과학은 3인1팀으로 출전하며 이 역시 작품설명서와 설계도 제출이 필수다.

    3인1팀으로 출전하는 과학탐구토론대회는 영재학교·과학고 진학을 목표로 하는 아이들 사이에서 ‘뜨거운 감자’다. 이 대회를 통해 R&E(Research&Education), 즉 ‘청소년 소논문 대회’ 경험을 쌓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과학탐구토론대회는 흔히 과학실험탐구대회, 자연관찰탐구대회, 영재학급산출물대회 등으로 나뉘는데 이때 제출하는 보고서가 R&E 형식이다. 특수목적고교(특목고) 진학을 위한 초석으로 여겨지는 영재교육원의 학생 선발 전형 또한 대입이나 영재학교·과학고 입시와 유사해지면서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R&E 열풍은 날로 거세지고 있다.

    문제는 교내 대회 경쟁이 뜨거워질수록 사교육 의존도도 높아진다는 점이다. “교내 대회를 위해 얼마를 썼느냐에 따라 상 종류도 달라진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돌 만큼 이제는 사교육 없이는 교내 대회 수상도 기대하기 힘든 시대가 됐다.





    4월이면 몸값 뛰는 과학 강사

    대회 요강은 보통 3월쯤 학교별로 발표되지만 학원가는 그보다 앞선 2월 봄방학 때부터 본격적으로 대회 준비에 들어간다. 교내 과학대회 특강반을 개설해 학생 모집에 나서는 것. 학원가와 과외 종사자들에게는 이때가 ‘대목’이다. 인기 강사는 비싼 돈을 주고서라도 서로 모셔가려 하기 때문에 학원에 다니는 아이들에게 우선권이 주어진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있는 유명 과학 전문학원에 특강반 수강을 문의하자 “팀이 다 꾸려져 자리가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 학원에 아이를 보내고 있다는 주부 A씨는 “학원 건물에 플래카드를 걸고 특강반 개설 홍보를 하긴 하지만,  그보다 훨씬 전 수강생에게 교내 대회 준비를 할지 말지 선택권을 준다. 그게 당연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특강반에 들어가지 못했다고 기회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일부 강사는 학원 강의와는 별도로 과외 수업을 진행하는데, 학원 수업이 끝난 뒤 시작하다 보니 밤 10시를 훌쩍 넘기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4월 마지막 주 열리는 교내 대회를 목표로 한 달 전부터 과학상자 조립 과외를 시키고 있다는 주부 B씨는 과외 강사와 시간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기분이 상했다고 털어놓았다. B씨는 “처음에는 모든 스케줄을 우리 아이에게 맞춰줄 것처럼 하더니 4월이 가까워오자 태도가 돌변했다. 갑자기 수업 일수가 늘었다면서 막무가내로 일정을 변경하고, 시간 약속도 잘 지키지 않아 항의했더니 오히려 요즘 같은 때 서로 타협해서 조율해야 하지 않겠느냐며 당당하게 얘기해 황당했다”고 말했다.  

    과외비도 부르는 게 값이다. B씨의 경우 1회 방문(2시간 수업)에 5만 원을 지급하고 있는데 이 또한 처음 얘기할 때와 비교해 1만 원이 오른 금액이라고 한다. 물로켓, 에어로켓 특강반은 학원에서 할 경우 회당 3만 원 정도. 보통 2~3회 수업을 진행하는데 1회 차는 로켓을 만드는 연습을 하고, 2~3회 차는 인근 체육관이나 운동장에서 직접 로켓을 날리며 실전에 대비한다. 물로켓과 에어로켓은 얼마나 멀리 나가느냐에 따라 점수가 매겨진다.

    사생대회를 제외하고 모두 2인 이상 팀별 대회이다 보니 팀을 꾸리는 과정에서 학부모 간 눈치작전도 치열하다. 자녀가 사립초 4학년에 다니는 한 ‘직장맘’은 “올해 처음 과학상자대회에 나가기로 했는데, 아이가 같이 팀을 짜고 싶은 친구가 있다고 해서 물어봤더니 이미 학기 초 다른 아이랑 하기로 했다고 하더라. 두 번째로 말한 아이도 마찬가지였다. 어쩔 수 없이 별로 친하지 않은 아이와 짝을 맺어줬다. 이래서 엄마 네트워크가 중요하구나 싶었다”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교내 과학대회 지역별 온도차 커    

    시간과 비용이 가장 많이 투여되는 탐구토론대회는 팀 결성부터 ‘007 작전’을 방불케 한다. 초등 고학년생과 중고교생은 엄마들의 물밑 작업이 필수로 여겨지는 분위기다. 또래 가운데 누가 과학에 소질이 있는지를 알아채는 것도 엄마의 몫이다. 서울 서초구 반포동에 사는 주부 C씨는 “아이끼리는 잘 몰라도 엄마들 사이에서는 누가 잘하는지 금방 소문이 돈다. 그 아이와 짝을 지어주려면 엄마끼리 관계가 좋아야 한다. 오히려 친한 애들은 탐구에 집중하지 않고 잡담이나 할까 봐 떼어놓는 경우가 많다”고 귀띔했다.

    탐구토론대회에 드는 과외 비용은 300만 원 선이다. 인당 100만 원꼴. 일찌감치 팀을 꾸리고 과외 강사까지 섭외해둔 상태에서 주제가 공고되는 날만 기다린다. 보통 학교에서는 대회 2주 전쯤 주제를 알려주지만 발 빠른 학부모는 대회 한 달 전 한국과학창의재단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주제를 확인한 뒤 바로 과외에 들어간다. 그래야만 대회 전 제출해야 하는 탐구계획서 등을 꼼꼼히 준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용에 따라 실험과 체험 스펙트럼도 달라진다. 최근 가장 인기 있는 실험은 서울 시내 대학 실험실에서 하는 것이라고 한다. 대학 실험실을 섭외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과외 강사의 실력이 판가름 나기도 한다.

    반면 심화탐구과정을 생략한 채 과외 강사가 미리 결론을 도출해놓고 아이들에게 역으로 주입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중학교 2학년생 학부모 D씨는 “대회 2주 전 부랴부랴 팀을 꾸렸는데 아이들이 직접 머리를 맞대고 탐구할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더라. 심지어 중간고사까지 있어서 한 달 전쯤 준비해놓지 않고서는 아이들끼리 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실험도 인터넷 사이트 유튜브에서 관련 영상을 찾아보는 것으로 대신했다”고 털어놓았다.

    지역별로도 교내 과학대회에 대한 관심도에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수학·과학에 목매는 강남 학군과 달리 서울 강북지역, 지방 소재 학교들은 교내 과학대회에 대한 열의가 그리 높지 않다는 평이다. 심지어 학교에 몸담고 있는 교사 중 탐구토론대회 내용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고. 강북 소재 한 중학교 교사는 “탐구토론대회가 더는 혼자 할 수 있는 수준의 것이 아니어서 학원이나 과외에 상대적으로 취약한 계층의 아이들은 교내 과학대회가 그림의 떡이다. 교내 대회는 전국 대회를 위한 예선전이라 할 수 있는데 어차피 달걀로 바위 치기나 마찬가지여서 아예 교내 대회를 열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교내 과학대회에 참가하는 주요 목적은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에 한 줄 넣기 위해서다. 최근 입시에서 자기소개서(자소서)와 학생부Ⅱ(비교과영역) 비중이 커지면서 영재학교·과학고 지원 시 변별력을 가지려면 비교과활동에 신경 쓸 수밖에 없다. 연중 열리는 R&E대회는 많지만 그중 교내 대회 수상 사실만 학생부에 기록될 수 있다는 점 또한 교내 과학대회 경쟁을 부채질하는 요인으로 볼 수 있다.



    영재학교·과학고 진학 필수코스 

    이에 대해 한 과학 전문학원 관계자는 ‘자소서와 학생부 기록’을 거론하며 교내 과학대회 참가를 독려했다. 그는 “모든 영재학교·과학고의 자기소개서 양식을 살펴보면 수학과 과학에 얼마나 많은 관심과 재능이 있고, 또 이와 관련해 어떤 활동을 지속적으로 해왔는지를 적는 항목이 있다. 교내 대회 도전 경험은 자소서에 자신이 연구한 것을 구체적으로 적을 수 있는 기회”라고 말했다. 결국 수상 여부와는 상관없이 거금을 들여 대학 논문 뺨치는 보고서 하나만 만들어내면 자소서는 자동적으로 채워지는 시스템인 것이다. 더욱이 이 과정의 상당 부분이 학부모 몫이라는 점 또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서울 대치동에 사는 한 학부모는 “주변에서 영재학교·과학고에 지원한 경우를 많이 봤는데, 결국은 엄마의 능력이 중요하더라. 어떤 학부모는 학생부와 자소서 채우는 작업을 두고 ‘뼈를 깎는 고통’이라는 표현까지 쓰더라. 학생부에 몇 줄이라도 더 써주십사 하고 선생님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것도 결국 엄마다. 아이들도 어느 순간부터 당연히 부모가 해줘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문제점을 토로했다.

    모든 아이가 영재학교·과학고에 진학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너도나도 수학·과학에 목매는 이유는 특목고 진학에 실패하더라도 일반고에서 해당 과목 상위권을 점령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혹자는 이를 두고 “남는 장사”라고 표현했다. 그는 “일반고에서 하는 과학·수학경시대회 수상자를 보면 영재학교·과학고를 목표로 공부했던 아이들이다. 보통 아이들은 범접할 수 없는 일종의 ‘넘사벽’(넘을 수 없는 4차원 벽의 줄임말)을 만든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이는 교내 과학대회를 두고 “어려서부터 탐구 주제를 결정하고 보고서 작성, 발표 및 토론 능력을 키워야만 최종적으로 원하는 대학에 골인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남에게 의존하는 방법만 터득하는 것은 아닌지 깊이 고민해봐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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