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35

2016.04.27

커버스토리 | 초등생 부모 되기 두렵다

돌잔치 이후 최고 이벤트 ‘생파’

호텔 파티, ‘런닝맨’ 게임, 마술쇼, 수영장 대여…‘친구도 부모가 만들어준다’

  • 김유림 기자 mupmup@donga.com

    입력2016-04-25 15:2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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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 학기가 시작되고 한 달쯤 지나면 초등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들이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간다. 이들 사이에서 가장 핫한 이슈는 ‘생파’라 부르는 생일파티다. 지극히 개인적인 이벤트라 할 수 있는 생일파티가 요즘은 의무사항처럼 돼버려 부담감을 토로하는 이도 늘고 있다. 초등 저학년일수록 생일파티에 의미를 크게 부여하는 학부모가 많다. 아이가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려면 교우관계가 좋아야 하고, 그러려면 생일파티만큼 좋은 기회가 없다는 생각에서다. ‘친구도 부모가 만들어준다’는 통념이 그대로 반영된 결과라 할 수 있다.

    올해 첫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한 학부모는 “생일파티에 누구는 초대하고 누구는 초대하지 않는 것보다 엄마들이 나서서 다 같이 하는 걸로 정하니까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 3월 중순쯤 처음 학부모 모임을 가졌는데, 그 자리에서 바로 생일파티 얘기가 나왔다. 한 반에 학생 30명이 있으니 2~3개월씩 끊어 5개 조를 만들었다. 이렇게 반강제로 생일파티를 해야 하나 싶기도 하지만 모든 엄마가 다 하는데 나만 안 하겠다고 할 수도 없지 않으냐”고 했다.

    문제는 학부모의 경제적 부담이 날로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각자 형편에 맞게 생일파티를 하던 과거와 달리, 여러 명이 조별로 파티를 준비하다 보니 분에 넘치는 비용을 강요받는 경우가 생긴다.

    이로 인해 생일파티가 학부모 간 갈등 촉매제로 작용하기도 한다. 새 학기가 시작되면 학부모 반대표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대화방을 열고 의견을 주고받는데, 유독 생일파티와 관련해 갑론을박이 치열하다.

    서울 강서구 염창동에 사는 주부 A씨는 “얼마 전 생일파티 비용을 두고 엄마들 간 보이지 않는 기 싸움이 있었다. 태권도장처럼 무료인 곳으로 하자는 의견과 대관료를 40만~50만 원 주더라도 좋은 데서 하자는 의견이 엇갈렸기 때문이다. 결국 대관료를 내는 곳에서 하기로 했는데, 반대한 엄마들이 언짢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부르는 게 값, 생파업체들의 배짱영업

    반 전체가 한꺼번에 하는 생일파티의 경우 아이들이 다니는 체육관, 수영장이나 키즈카페 등을 빌리고 레크리에이션 강사 2~3명을 붙여 반나절 동안 체육활동과 게임을 하는 게 일반적이다. 비용은 지역과 시설에 따라 천차만별. 생일파티 장소가 정해지면 그다음은 음식과 행사 스케줄을 정해야 한다. 식사의 경우 아이들에게는 수제도시락을 나눠주고 엄마들은 따로 카페를 빌려 커피와 샌드위치 등을 먹거나, 출장 뷔페를 불러 아이와 함께 식사하기도 한다.  

    최근 아이의 첫 생일파티를 했다는 A씨는 “6명이 같이 준비해 그나마 부담이 덜했지만 인당 50만 원 가까이 들었다. 이 정도면 아주 저렴하게 끝낸 편이다. 음식이 너무 부실했다고 엄마들이 뒤에서 수군거리지는 않을지 은근히 걱정된다”고 말했다.

    요즘 서울 강남에서 가장 인기 좋은 N스포츠클럽의 생일파티 대관 비용은 반나절(3시간) 기준 인당 5만9000원이다. 물론 시간이 추가될 때마다 비용도 늘어난다. 반나절로는 시간이 부족하다 싶어 2배 가격을 내고 한나절 코스를 선택하는 경우도 적잖다. 최소 인원은 15명.  

    수영장 생일파티도 인기다. 아이는 대부분 물놀이를 좋아하기 때문에 여름철에 생일을 맞는 아이의 학부모가 주로 선택한다. 이것도 반나절, 한나절 코스가 있으며 보통 수영 강사 2명이 투입된다. 한 명은 아이들을 지도하고 나머지 한 명은 사진촬영을 해준다고. 아이들은 물놀이 전후로 엄마들이 준비한 도시락과 간식을 먹으며 생일파티를 즐긴다. 수영장 생일파티에 드는 비용은 아이당 10만 원꼴이다.  

    최근 몇 년 사이 생일파티 전문업체도 우후죽순으로 생기고 있다. 어린이·유아 전문 스포츠클럽은 거의 다 파티 관련 행사를 진행한다고 보면 된다. 최근에는 집 근처 공원이나 놀이동산에서 ‘런닝맨’ 게임을 진행하는 업체가 인기다. 30명 가까이 되는 아이들이 등에 이름표를 붙이고 잔디밭을 뛰어다니는 모습을 종종 목격할 수 있다. 이날 아이들의 식사와 간식도 업체 측에서 다 준비한다. 인당 비용은 10만 원 정도.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런닝맨’ 스타일로 생일잔치를 준비 중인 한 학부모는 “뛰어놀 수 있어 아이들이 좋아한다. 특히 학기 초라 아직 서먹서먹한 아이들이 많은데, 이럴 때 다 같이 한번 신나게 뛰어놀면 반 분위기도 좋아지는 것 같다. 비용이 부담스럽긴 하지만 어차피 해야 하는 건데 나중에라도 ‘잘 놀았다’는 얘기를 듣는 게 낫다”고 말했다.

    생일파티 수요가 늘면서 업체마다 ‘부르는 게 값’이다. 서울 서초구 잠원동에 사는 주부 B씨는 “아이가 다니는 체육관에 올해도 생일파티를 의뢰하면서 인근 중학교 체육관에서 농구를 하는 프로그램으로 짜달라고 했는데 대관료로만 100만 원을 불러 황당했다. 따로 알아보니 체육관 대관료는 60만 원이었다. 4월부터 초등학생 생일파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때문에 빨리 예약하지 않으면 좋은 곳을 잡기 힘든데, 그렇다 보니 ‘배짱영업’을 하는 곳도 생기기 시작했다”며 씁쓸해했다.



    고가 생일선물·답례품, 주거니 받거니

    아이의 생일파티를 어디에서 했느냐가 은근히 부모의 경제력을 평가하는 잣대가 되다 보니 파티 자체가 날로 ‘호화판’이 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근 강남지역에서는 일명 ‘호텔 슬립 오버’가 유행이다. 아이 4~5명을 호텔로 초대해 밤새 놀게 하는 것으로, 룸 크기에 따라 초대 가능한 인원도 달라진다. 최근에는 특히 룸 안에 미니수영장이 있어 10여 명이 한꺼번에 이용 가능한 곳이 인기라고 한다. 특급 호텔 스위트룸을 빌리는 경우도 있다고.

    서초구 반포동에 사는 주부 C씨는 “지난해 우리 아이도 호텔 슬립 오버에 초대받은 적이 있는데 아이들은 새벽 3시까지 실컷 놀고, 그사이 엄마들은 맥주나 음료수를 마시며 수다를 떨었다. 저녁식사에 고가의 마술쇼, 호텔 조식까지 준비한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아이 생일에 이렇게 많은 투자를 하는 건 좀 과하지 않나 싶었다”고 말했다.  

    생일파티 장소로 호텔 레스토랑을 이용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 과거 인기를 끌던 패밀리레스토랑에서 호텔로 업그레이드된 셈이다. 이때도 레스토랑 룸을 따로 빌려 파티를 진행하는데, 인당 식사비만 10만 원이 넘는다. 여기에 답례품은 기본이다. 최근 강남에서 가장 인기 있는 답례품은 독일제 명품 샤프펜슬과 만년필. 종류별로 가격도 다양한데, 답례품으로는 2만~3만 원대 샤프펜슬이 일반적이다.

    주인공 아이들의 의상도 이날만큼은 한껏 고급스러워진다. 남자아이는 ‘강남 패딩’으로 유명한 M브랜드 의상으로 전체 착장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주부 C씨는 “왕자나 공주처럼 보이는 옷은 유치원생 때나 입지 초등학교에서는 안 통한다. 요즘 엄마들은 깔끔한 디자인의 명품 브랜드를 선호한다. 여자아이들도 드레스를 입는 경우가 많지 않다”고 귀띔했다.    

    이쯤 되면 생일파티 주인공의 부모뿐 아니라 초대받는 쪽의 부담도 커진다. 엄마들 사이에서 생일선물이 늘 화제인 이유다. 강남구 대치동에 사는 주부 D씨는 지난겨울 같은 반 친구 엄마로부터 호텔 저녁식사에 초대받은 경험을 얘기하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D씨는 “인당 비용이 15만 원이나 하는 곳이어서 무슨 선물을 준비해야 하나 고민을 많이 했다. 결국 내 아이는 입혀본 적도 없는 고가 브랜드 옷을 사서 들고 갔다”고 말했다.

    자녀를 사립초에 보내고 있는 주부 E씨도 생일선물 때문에 난감했던 경험을 들려줬다. 그는 “사립초교라 그런지 생파를 했다 하면 무조건 H호텔 아니면 B호텔이다. 처음 생파 때는 별생각 없이 8000원짜리 책을 한 권 사 갔는데, 다른 아이들은 5만 원 이상 하는 레고나 신발, 옷 등을 사 와 민망했다. 답례품까지 받아서 집으로 돌아오는데 기분이 착잡했다. 괜히 눈치 없는 엄마 때문에 아이까지 엄마들 입방아에 오르내리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아이한테 미안했다”고 털어놓았다.

    친구 생일파티에 다녀온 아이의 후유증도 만만치 않다. 다양한 초호화 생일파티를 경험하면 아이들의 기대치도 올라가게 마련. 요즘 아이들은 일찌감치 부모에게 자신도 누구처럼 생일파티를 해달라고 요구한다. 인천 연수구 송도동에 사는 주부 F씨는 얼마 전 아이가 학교에서 생일파티 참가서를 받아오는 바람에 고민에 빠졌다. 그는 “4월에 생일인 한 아이의 엄마가 생일파티 참석 여부를 표시해달라고 아이 편에 직접 참가서를 보냈는데, 파티 장소가 호텔이라 갈지 말지 고민이다. 거기에 다녀오면 내 아이도 비슷한 수준으로 해줘야 할 것 아니냐”고 푸념했다.



    “생파 하지 말자” 자성의 목소리도

    생일파티를 둘러싼 문제점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최근에는 학교 차원에서 생일파티를 막는 경우도 생겨나고 있다. 강남구 역삼동 한 초등학교는 3월 초 학부모들에게 생일파티를 자제해달라는 공문을 보냈다. 한 초등교사는 “내 아이는 무조건 특별하길 바라는 일부 학부모 때문에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아이 혹은 학부모가 생긴다면 이는 분명히 바로잡아야 한다. 집에서 조촐하게 여는 생일파티는 상관없지만 학부모들이 주축이 돼 조직적으로 이뤄지는 생일파티는 분명 폐해도 존재하기 때문에 내 자식뿐 아니라 모든 아이가 소중하다는 생각으로 자제하는 모습을 보이면 좋겠다”고 밝혔다.

    실제로 학부모 스스로 생일파티를 하지 않기로 결정한 학급도 있다. 서울 노원구 상계동에 사는 한 주부는 “얼마 전 학부모 모임에서 생일파티를 일절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 대신 아이들의 친목 도모를 위해 따로 대관료가 들지 않는 공원이나 체육관 등을 빌려 레크리에이션 강사를 부르지 않고 아이들끼리 마음껏 뛰어노는 자리는 마련할 계획이다. 음식도 김밥과 음료수 정도만 준비해 인당 1만~2만 원 선을 넘지 않게 준비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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