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32

2016.04.06

특집 | ‘와해적 혁신’과 생존 기업

미래엔 자동차 구매하면 바보?

제조업→서비스업 대전환 눈앞…소유하지 않고 경험할 뿐

  • 김영혁 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 kimyounghuk@lgeri.com

    입력2016-04-04 11:4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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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동차 제조업체들이 최근 서비스업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제너럴모터스(GM)는 올해 초 우버와 함께 북미 차량 공유서비스의 양대산맥을 이루는 업체 리프트에 5억 달러를 투자해 무인 콜택시 등 다양한 협력 서비스를 구상 중일 뿐 아니라, ‘메이븐’이라는 독자적인 차량 공유서비스를 시작했다. 포드, 아우디, BMW 등 유수의 메이저 완성차업체들도 규모 차이만 있을 뿐 모두 카셰어링 기반의 자체 서비스를 시행하고 있다. 최근 주요 공식석상에서 자동차업체들은 일제히 미래에는 단순히 성능 좋은 자동차를 만들어 파는 ‘제조회사’가 아닌, 이동성을 제공하는 ‘모빌리티 업체(mobility provider)’가 되겠다고 밝혔다. 미래 자동차회사들이 자동차라는 하드웨어를 생산하고 판매하는 제조업체보다 이동성과 함께 다양한 가치를 제공하는 서비스업체에 더 가까워질 가능성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공유서비스로 ‘도어 투 도어’ 이동

    100년 넘게 제조업의 대표주자 격으로 자리매김해온 자동차 제조업체들이 최근 이렇게 서비스 영역을 강화해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복합적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핵심적인 이유를 하나 꼽자면 커넥티드 카(스마트카), 자율주행자동차 등 ‘미래 자동차’에 의한 자동차의 개념 변화와 그에 따른 급진적 산업 변화의 가능성 때문이다. 지금까지 자동차는 운전이라는 행위가 반드시 요구되는 이동수단으로서의 의미가 가장 컸다. 그렇기에 소비자가 자동차에 요구하는 가장 큰 가치 또한 운전의 편의성과 안전성, 빠르고 경제적인 이동성을 제공하는 자동차의 하드웨어적인 특성에 있었다. 그러나 앞으로 자동차에 자율주행 및 커넥티드 카 기술이 적용됨에 따라 소비자는 이동성을 제공하는 하드웨어보다 이동성 자체에 주목할 개연성이 있다.

    예를 들어 운전자가 필요 없는 자율주행자동차는 현재 차량 공유서비스의 가장 큰 불편함 가운데 하나인 차량의 픽업 및 반환의 번거로움을 제거하고 ‘도어 투 도어(door-to-door)’ 이동을 가능하게 만들어 차량 공유서비스를 대폭 확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자율주행자동차가 기존 택시 서비스를 잠식하고 가구당 소유 자동차 대수를 절반 수준으로 줄여 2040년까지 미국의 일반 자동차 판매량이 40%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자율주행자동차는 차량 공유 개념을 한층 받아들이기 쉽게 만들어 사람들이 자동차를 ‘소유’ 대상에서 이동성이라는 ‘경험’을 제공하는 일종의 공공재로 인식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커넥티드 카 및 자율주행 기술이 점차 발전함에 따라 소비자는 자동차에 다양한 생활 편의성을 요구할 개연성이 있다. 첫째는 운전자의 개입이 점차 줄어들면서 운전자가 차내에서 다른 활동을 할 수 있는 자유시간이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고, 둘째는 자율주행자동차가 시간을 대부분 운행보다 주차에 할애하는 자동차의 현재 활용률을 극대화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기 때문이며, 셋째는 정보통신기술(ICT)이 함께 발전해 차내에서 활용할 수 있는 ICT 기반 서비스의 여지가 점차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자동차 제조업체들도 소비자가 미래에 찾을 것으로 예상되는 잠재적 가치에 주목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GM+애플’ 통합 서비스 기업 가능성도

    자동차 역사를 되짚어보면 시대에 따라 사람들이 자동차에 기대하고 요구하는 가치가 변해왔음을 확인할 수 있다. 1880년대 중반 벤츠와 다임러가 처음 내연기관 자동차를 내놓았을 때 자동차는 일부 부유층에게 재미를 선사하는 장난감 같은 존재였다. 1909년 포드가 컨베이어벨트 생산 방식을 도입하면서 대량생산시대의 문을 연 자동차 대중화 초기에는 경제도 더불어 호황기를 맞이하면서 사람들은 자동차를 자기 신분이나 개성을 나타내는 일종의 사치재로 여겼다.

    이후 시간이 흘러 세계경제가 급격히 성장하고 사람들의 경제활동 반경이 넓어지면서 자동차는 사람에게 이동성을 제공해주는 최고 도구로 자리 잡았다.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사람들이 이동성 확보라는 본연의 가치 외에 추가적으로 자신의 경제적 형편에 맞게, 또 용도에 맞게 주행 성능과 경제성, 안전성, 편의성, 심미적 아름다움 등 다변화된 가치를 추구하면서 자동차도 그에 맞게 다양한 형태를 띠게 됐다.

    그러나 앞으로 자동차가 본격적으로 여러 서비스를 담게 된다면 자동차는 더욱 다변화할 개연성이 있다. 이미 광고서비스를 기반으로 무료 이동성을 제공하는 새로운 개념의 차량 공유서비스가 나오고 있고, 자동차 트렁크를 우편함으로 활용하는 배달서비스, 자동차를 결제 플랫폼으로 활용하는 결제서비스 등 차량을 매개로 한 다양한 서비스가 속속 나오기 시작했다. 여기에다 훗날 자율주행자동차가 상용화된다면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수많은 서비스가 자동차를 통해 제공될 것이다.

    이렇게 자동차가 많은 서비스를 제공한다면 향후 자동차 가치는 자동차 자체의 성능보다 자동차와 함께 제공되는 서비스에 의해 결정될 수 있다. 물론 이동성 제공이라는 본연의 기능은 계속 갖고 가겠지만, 그 외에도 여러 가치를 함께 지니는 다양한 서비스를 위한 플랫폼이 될 수 있다. 디터 체체 다임러 회장이 지난해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 기조연설에서 언급한 대로 미래 자동차는 사적인 공간과 품위 있는 시간이라는 최고의 럭셔리를 제공하는 ‘모바일 거주공간’이 될 수 있고 결제 플랫폼, 엔터테인먼트를 위한 도구, 여러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슈퍼컴퓨터도 될 수 있다. 이에 따라 소비자가 자동차를 구매할 때 고려하는 요소도 기존 자동차의 성능 및 안전성, 신뢰성 외에 ‘어떠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가’ ‘내가 원하는 서비스(소프트웨어)를 구현하기에 적합한 형태(하드웨어)인가’ 등이 되는 시대가 올 수도 있다.

    더 나아가 ‘서비스를 품은 자동차’라는 자동차업체의 진화 방향은 이종산업 간 본격적인 초경쟁을 불러올 수 있다. 자동차가 본격적으로 여러 가지 연관된 서비스를 제공한다면 최근 자율주행자동차를 두고 벌어지는 자동차업체와 정보기술(IT)업체 간 주도권 논쟁을 넘어 여러 통신서비스업체까지도 자동차업체의 잠재적 경쟁 대상으로 포함하게 할 것이다. 새로운 자동차 생태계의 주도권을 잡고자 IT기업과 자동차 제조업체, 통신서비스업체가 경쟁을 벌이는, 말 그대로 영역 구분 없는 초경쟁 시대를 맞이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은 자동차기업이 소규모 카셰어링업체를 인수하는 정도의 이벤트가 발생하고 있지만, 훗날에는 대형 자동차업체와 대형 IT 및 서비스업체가 통합해 거대 모빌리티 기업으로 거듭나는 ‘사건’이 발생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현재는 동일 업종에 속하지 않은 기업이라 할지라도 훗날 펼쳐질 미래의 자동차 생태계를 그려보고 현재의 변화상을 예의주시해 당사에 끼치는 부정적 요소에는 무엇이 있을지, 또 새로운 사업 기회가 있을지 살펴보는 선견지명의 지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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