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20

2016.01.06

특집 | 속병 앓는 대학생들

자발적 ‘아싸’(아웃사이더)가 넘쳐난다

획일화된 대학문화에 대한 반동 vs 극단적 개인주의, 성격 결핍

  • 함동민 고려대 미디어학부 hdm129@korea.ac.kr

    입력2016-01-05 14:0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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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학가에 ‘아싸’(아웃사이더)라는 말이 유행이다. 사람들과 아예 어울리지 않고 혼자 겉도는 학생이 많다. 이들은 학내 모든 인간관계와 주류문화로부터 도피한다. 학내 인간관계와 주류문화 자체도 그리 건강한 것 같지 않다. 요즘 대학생은 ‘최첨단 스마트 세대’지만 이들의 ‘선후배 간 권위주의’는 ‘응답하라 세대’보다 더 전근대적으로 보인다. 취업 잘 되는 인기 동아리에선 이런 풍조가 더 극성이다.
    • 강의실이든 어디든 주류에 반하는 자기 소신을 밝히면 찍히는 분위기가 팽배한 것도 문제다. 하고 싶은 말도 참는 ‘음소거 현상’도 뚜렷이 나타난다. 이런 일은 개인주의 확산, 극심한 취업난 같은 팍팍한 현실과 어느 정도 관련 있어 보이지만, 분명한 사실은 요즘 대학생들의 마음앓이가 심각한 수준을 넘었다는 점이다. 고려대 미디어학부 ‘탐사기획보도’ 수강생들이 박재영 교수의 지도로 우리 대학문화의 이상 징후를 취재했다. <편집자 주>
    2015년 9월 18일 오전 10시, 서울 잠실야구장에서는 ‘정기 고·연전’이 열렸다. 고려대 응원단의 붉은빛과 연세대 응원단의 푸른빛으로 분위기가 한껏 무르익었지만 A(27·고려대 기계공학부)씨는 집에서 밀린 잠을 잤다. 잠에서 깬 A씨가 향한 곳은 조용한 단골 술집이었다. 2009년 입학한 그는 7년 동안 한 번도 고·연전 같은 교내 축제나 행사에 간 적이 없다. 그는 “학내에 친구가 거의 없어 학생들은 나를 ‘아싸’라 부른다. 단체행동을 강제하는 학내 분위기가 불편하다”고 말했다.  
    요즘 서울시내 여러 대학에선, 학과 동기나 선후배와 어울리지 않고 동아리활동도 하지 않고 수업도 혼자 듣고 밥도 혼자 먹는, 그야말로 누구와도 대화하지 않으면서 혼자 학교생활을 하는 아웃사이더가 많다. 그래서 ‘아싸’라는 줄임말까지 생겼다. 많은 대학생은 “내가 바로 아싸”라거나 “주변에서 아싸를 흔히 본다”고 말한다. 아싸가 널리 유행하는 문화가 됐다는 점은 여러 정황으로 확인된다. 국내 최대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엔 ‘아웃사이더’를 간판으로 내건 아싸 전용 게시판이 있다. 여기엔 650만 개가 넘는 게시물이 올라와 있다. 아싸를 옹호하는 글, 비난하는 글이 넘친다. 포털사이트의 여러 카페나 블로그는 혼자 밥 먹는 법, 혼자 수업 듣는 법, 혼자 시간 때우는 법 등 아싸 관련 글로 도배돼 있다.



    공통문화, 내가 왜?

    소위 아싸는 아싸가 된 저마다의 사연을 갖고 있다. 이들은 대개 자신의 성격보다 대학문화를 원인으로 꼽는다. B(24·고려대 환경생태공학부)씨는 스스로를 ‘비주류’라고 규정한다. 때가 되면 학생 대다수가 ‘학과 점퍼’(과잠)를 공동구매하지만 그는 사지 않는다. 그는 “똑같은 옷을 맞춰 입는 게 이상하다”고 말했다. 그는 2년 전부터 학과와 단절했고 활동하던 학술 동아리에서도 탈퇴했다. 전체의 단결을 위해 술자리를 강요받는 게 싫었다고 한다.
    “학과에서 방학 때 방을 잡아놓고 밤낮으로 술을 마시게 한 적이 있다. 몸에 이상이 생겨 병원 신세를 졌다. 그 일을 계기로 아싸가 됐다.”
    C(24·용인대 문화콘텐츠학과)씨는 “학번이 낮은 후배에게 반말하는 관습을 없애자”고 동기들에게 주장했다 맹비난을 들어야 했다. C씨는 “딱딱한 위계질서를 따르는 게 뭐가 좋다고…”라며 “그 사건 이후 학과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고 혼자 지내는 편”이라고 말했다. D(24·한국외국어대 경제학과)씨도 입학 후 첫 행사인 새내기배움터를 마지막으로 학교 선후배나 동기와 거의 만나지 않는다. 배움터에서 그는 ‘~까’로 끝나는 인사법, 시선 처리하는 방법, 건배 예절, 선배 연락처 따는 법을 배웠다. 그는 군대문화가 대물림되는 걸 보고 ‘차라리 학교에 혼자 다니자’는 결심을 했다고 한다.  
    몇몇 아싸는 취미생활에 이르기까지 공통문화에 맞춰야 하는 게 피곤했다고 말한다. E(23·고려대 전기전자공학부)씨는 남학생들의 대화 소재가 스포츠나 온라인게임에 편중된 것에 질렸다고 했다.
    “친구들과 만나기만 하면 구단 정보, 선수 몸값 같은 걸 시시콜콜 늘어놓는다. 이런 대화가 하염없이 이어진다. 스포츠를 안 보는 나는 완전히 소외된다. 내가 ‘한일전에 관심 없다’고 말하자 같이 있던 친구들이 ‘한국사람 맞느냐’고 핀잔을 줬다. 이런 대화가 내게 더는 무의미하다는 걸 깨닫게 됐다.”



    왕따, 눈엣가시로 폄하하기도

    F(22·서강대 경제학과)씨는 온라인게임을 억지로 권하는 풍토가 싫었다고 한다. “청년층 사이에서 특정 전략시뮬레이션 게임을 함께 하는 것이 하나의 관습이 됐다. 만나기만 하면 너나없이 게임 얘기만 하고 게임하러 PC방에 간다. 게임을 하지 않는 나는 친구들과 멀어졌다.”
    G(23·캐나다 토론토대 물리학과)씨는 아싸의 혼자 밥 먹기, 이른바 ‘혼밥’ 문화를 옹호한다. 그는 “혼자 밥 먹는 것을 창피한 일로 여기는 한국 대학문화가 오히려 이상하다”고 말한다.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요즘 대학생의 필수 미디어다. 이를 통해 학교 친구들과 활발하게 관계 맺기를 한다. 그러나 아싸 대부분은 SNS 사용도 거부한다. H(24·고려대 컴퓨터통신공학부)씨는 2년 전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거나 답글을 다는 활동을 중단했다. 카카오톡으로 주고받는 메시지도 이제 거의 없다. 그는 “소셜미디어상의 글과 사진은 자신이 실제보다 더 행복한 것처럼 과장한다. 전부 ‘가식덩어리’일 뿐”이라고 공박한다.
    I(23·중앙대 컴퓨터공학부)씨는 학교에선 외톨이로 지내는 대신 술집에서 기타 치며 노래 부르는 아르바이트로 위안을 삼는다. 2015년 11월 8일 서울 노원구의 한 술집에서 I씨는 두 시간 동안 노래를 불렀다. 그는 “인간관계에 관심이 없다. 혼자서 할 수 있는 거리를 찾아 그걸 하는 게 가장 즐겁다”고 말했다.
    아싸들은 아싸가 된 원인을 밖에서 구하지만, 아싸 주변의 학생들은 “대다수 아싸가 ‘극단적 개인주의’ 같은 성격적 결핍 때문에 아싸가 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몇몇 ‘비아싸’ 학생은 “아싸들은 대개 남과 말 섞는 것조차 귀찮게 여기고, 성적이나 취업 같은 자기이익에만 신경 쓰며, 공동체가 이뤄놓은 단물만 얻고 공동체를 위해선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 한다”고 서슴없이 혹평했다. 필자가 여러 비아싸 학생에게 “아싸 하면 떠오르는 단어들이 무엇이냐”고 질문하자 이들은 대체로 ‘인기 없는’ ‘사회성 부족’ ‘왕따’ ‘눈엣가시’ 같은 부정적 단어들을 언급했다.   
    황모(20·고려대 지구환경과학과) 씨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인데 제멋대로 살 수는 없는 노릇 아니냐”고 말했다. 이모(22·여·전북대 신문방송학과) 씨는 “아싸는 사회생활에서 힘든 일은 피하고 취할 것만 취하려고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최은경 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연구교수는 “아웃사이더는 개인이 집단 내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지 못한 채 파편화되고 있는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최 교수는 “사회 부적응, 냉소주의, 패배주의 같은 사회병리현상으로 이어지기 전 아웃사이더의 고민에 귀 기울이고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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