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368

2022.12.09

“도박 중독 저연령화 관측… 초등 4학년부터 예방 교육받아야”

‘2022 사행산업·중독치유포럼’ 개최… “상당수 도박 중독자 청소년기 도박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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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진렬 기자

    display@donga.com

    입력2022-12-09 10:0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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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월 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2022 사행산업·중독치유포럼’에서 조현재 국민체육진흥공단 이사장,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 김춘순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 위원장, 국민의힘 이용호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간사(왼쪽에서 다섯 번째부터) 등 주요 참석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 고 있다. [지호영 기자]

    12월 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2022 사행산업·중독치유포럼’에서 조현재 국민체육진흥공단 이사장,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 김춘순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 위원장, 국민의힘 이용호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간사(왼쪽에서 다섯 번째부터) 등 주요 참석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 고 있다. [지호영 기자]

    청소년이 처음 도박을 접하는 시기가 나날이 앞당겨지고 있다. 한국도박문제예방치유원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첫 돈내기 게임 참여 평균 연령’은 12.5세다. 사실상 초등학생 때부터 도박 경험이 시작되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가입 절차가 까다롭지 않은 해외 불법 도박 사이트가 활성화되면서 이 같은 흐름이 심화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청소년 도박 문제 해결을 위해 교육계와 정부, 정치권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댔다. ‘동아일보’와 서울시교육청, 국민체육진흥공단(KSPO)이 공동 주최하고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사감위), 더불어민주당(민주당) 김윤덕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문체위) 간사가 후원한 ‘2022 사행산업·중독치유포럼’이 12월 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개최됐다. ‘청소년 도박 예방과 사행산업 건전화 해법 모색’이라는 주제로 4시간여 동안 진행된 이날 포럼에는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 조현재 국민체육진흥공단 이사장, 김춘순 사감위 위원장, 국민의힘 이용호 국회 문체위 간사 등이 참석했다.

    조 교육감은 “이번 포럼에서 청소년 도박 문제 해결을 위한 지혜를 모아 학생들을 도박으로부터 지킬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조 이사장 역시 “온라인 불법 도박 시장 규모가 나날이 커지면서 청소년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만큼 대응 방안에 대한 뜻깊은 논의가 이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여야 의원들은 청소년 도박 문제 대응에 한목소리를 냈다. 민주당 김윤덕 의원은 “도박 중독자 중 상당수가 청소년기에 도박을 시작했고, 도박 중독으로 병원 진료를 받는 청소년이 매년 증가하는 실정을 감안한다면 청소년 도박 예방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강조했다. 국민의힘 이용호 의원은 “학교보건법 일부 개정안이 올해 통과되면서 도박 예방 및 치유 교육에 대한 법적 기반이 마련됐지만 관련 예산이나 전문 인력 육성이 여전히 미흡한 만큼 국회에서 이를 뒷받침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포럼은 2개 세션으로 나뉘어 진행됐다. 1부는 ‘청소년 도박 문제’가 주제였고, 2부에서는 ‘온라인 사행산업’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다. 정보영 한국도박문제예방치유원 중앙센터장과 우옥영 보건교육포럼 이사장이 1부 발표를, 김대희 부경대 스마트헬스케어학부 교수와 박준휘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2부 발표를 맡았다. 포럼의 주요 내용을 소개한다.



    정보영 한국도박문제예방치유원 중앙센터장(왼쪽). 우옥영 보건교육포럼 이사장. [지호영 기자]

    정보영 한국도박문제예방치유원 중앙센터장(왼쪽). 우옥영 보건교육포럼 이사장. [지호영 기자]

    “온라인 도박 중독성, 오프라인보다 10배 높아”

    청소년의 최초 도박 접근 연령이 갈수록 어려지고 있다. 정보영 센터장은 이날 “도박 중독의 저연령화가 관측된다”고 설명했다. 정 센터장은 “중학교를 중심으로 도박 예방 교육이 이뤄지고 있는데, 늦어도 초등학교 4학년부터는 예방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초등학생 때 도박을 경험하는 학생이 늘어나는 만큼 맞춤형 대응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국도박문제예방치유원이 2020년 실시한 청소년 도박 문제 실태조사에 따르면 청소년이 가장 자주 하는 돈내기 게임은 뽑기(51.9%)였다. 스포츠 경기 내기(14.2%), 카드 및 화투(11.0%)가 그다음으로 많았다. 주목할 만한 점은 온라인을 통해 도박을 접하는 비중이 증가 추세라는 것이다. 2020년 기준으로 도박을 경험한 청소년의 11.7%가 온라인으로 도박을 접했다. 2년 사이 3.5%p가 증가한 수치다. 정 센터장은 “여러 관련 연구에 따르면 온라인 도박의 중독성이 오프라인 도박보다 10배 가까이 높게 나타났다”고 경고했다.

    청소년이 도박으로 입는 경제적 피해도 증가하고 있다. 한국도박문제예방치유원이 지난해 도박을 한 청소년 604명을 조사한 결과 이들은 평균 1344만 원의 피해를 입었다. 전년도(1208만 원)보다 10% 이상 늘어난 수치다. 청소년은 도박으로 생긴 빚을 갚기 위해 중고 물품 판매 사기 및 절도, 오토바이 보험사기 등을 저지르기도 한다. 정 센터장은 “청소년은 부채에 대한 개념이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만큼 단기 고리 대출이 얼마나 위험한지 등의 내용을 교과 과정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문했다.

    “건강한 지지체계 형성토록 도와야”

    청소년기의 특징을 겨냥한 맞춤형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청소년기에는 모험 추구 성향이 두드러지고, 통제력이 미흡해 도박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 주변에 도박을 하는 친구가 있을 경우 또래의 압력으로 도박에 발을 들이기도 한다.

    우옥영 이사장은 “기존에도 청소년을 대상으로 여러 도박 예방 프로그램을 시행했지만 그것이 실제로 도박을 줄이는 행동으로까지 나아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우 이사장은 “도박의 위험성을 가르치는 동시에 청소년이 자기효능감을 높일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영국은 PSHE(Personal, Social, Health, Economics) 프로그램을 통해 청소년기 문제에 복합적으로 접근한다. 도박 문제 역시 그중 하나다. 우 이사장은 “영국은 청소년이 스스로 도움이 필요한 때를 인식하고 이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도록 교육한다”고 말했다. 그는 “청소년이 주변 및 서로에 대한 건강한 지지체계를 가지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범부처 간 협력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교육부 외에 보건복지부, 문화체육관광부, 기획재정부, 행정안전부 등 관련 부처가 힘을 모아 청소년 도박 문제에 대처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 이사장은 “인프라 구축이 핵심인데 교육부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청소년 도박 문제에 대한 대응이 자칫 땜질식 교과 과정 더하기로 그쳐서는 안 된다는 이유에서다. 우 이사장은 범부처 태스크포스(TF)를 꾸려 교원 연수를 보강하는 한편, 학교 안팎의 연계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준휘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왼쪽). 김대희 부경대 스마트헬스케어학부 교수. [지호영 기자]

    박준휘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왼쪽). 김대희 부경대 스마트헬스케어학부 교수. [지호영 기자]

    “불법 도박 빠진 사람, 합법 시장으로 끌어와야”

    지난해 기준 한국 사행산업 규모는 14조3758억 원으로 추정된다. 코로나19 사태가 터지기 직전인 2019년에 비해 36.5% 감소한 수치다. 코로나19 사태로 오프라인 산업 매출이 급감한 가운데 온라인 발매 산업이 아직 자리 잡지 못하면서 사행산업 전반이 직격탄을 맞았다. 한국의 온라인 발매 산업은 국민체육진흥공단이 운영하는 체육진흥투표권(스포츠토토)과 경륜·경정, 기획재정부 복권위원회가 관리하는 로또 복권 등으로 구성된다.

    사감위에 따르면 2019년 기준 불법 도박 시장 규모는 81조5000억 원 상당으로 합법 사행산업 시장(22조7000억 원)의 3.6배에 달한다. 전문가들은 올해 불법 시장 규모가 합법 시장의 4배 이상일 것으로 분석했다. 불법 시장 확대는 청소년의 도박 중독 문제에서 치명적이다. 가입 절차 등이 까다롭지 않아 청소년이 쉽게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불법 시장의 공급 감소를 위해 단속과 수사가 꾸준히 이어져야겠지만 합법 시장의 수요 관리 정책도 병행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날 박준휘 선임연구위원은 “불법 사행산업을 근절해야겠지만 동시에 합법 사행산업의 경쟁력을 키워 불법 도박에 빠진 사람을 끌어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온라인 환경에 맞춰 경주 방식 변화 필요”

    국민체육진흥공단이 관리하는 합법 사행산업 육성은 도박 중독 문제를 해결하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실명제를 기반으로 해 청소년의 접근을 차단하는 것이 가능하고, 성인 이용자 역시 베팅 등에 제약이 생겨 금전적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국민체육진흥공단은 지난해 경륜·경정 온라인 구매 브랜드 ‘스피드온’을 출시하는 등 불법 도박 시장 이용자를 흡수하려 노력하고 있다. 스피드온 이용자는 출시 첫해 5만 명을 넘어섰다. 전문가들은 올해 이용자가 2배 가까이 증가한 것으로 분석했다.

    온라인 합법 사행산업 시장에 대한 전문가들 평가는 긍정적이다. 지난해 기준 전체 회원의 20%가량이 온라인 경륜·경정 발매에 참여했다. 이들의 건당 지출액은 6000원 상당이다. 김대희 교수는 “사행산업이라고는 하지만 (경륜·경정 발매는) 승부를 예측할 수 있는 스포츠에 기반한다”고 말했다. 이어 “여러 도박 중독 예방 장치가 효과적으로 작용한 덕분에 건당 구매 금액이 1만 원을 넘지 않는 등 건전하게 운영됐다”고 덧붙였다.

    합법 사행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 교수는 “(경륜·경정 발매 방식이) 온라인으로 바뀐 만큼 경주 방식 역시 변화가 필요한데, 그렇지 못한 부분이 있어 수요자들이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온라인 발매를 통해 수집한 데이터를 마케팅에도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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