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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장 같은 ‘펜트하우스’, “개연성 적지만 현실의 갈증 자극해 시청률 견인”

  •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thekian1@gmail.com

막장 같은 ‘펜트하우스’, “개연성 적지만 현실의 갈증 자극해 시청률 견인”

  • ●대중을 사로잡은 3차원 욕망 방정식
드라마 ‘펜트하우스’ 포스터. [SBS 제공]

드라마 ‘펜트하우스’ 포스터. [SBS 제공]

최고 시청률 28.8%(닐슨코리아 기준)를 기록하며 시즌1을 종영한 SBS 드라마 ‘펜트하우스’는 놀라운 성적표를 보여준다. 막장의 대가로 불리는 김순옥 작가의 이 작품은 도대체 우리네 대중의 무엇을 건드린 걸까.


가장 뜨거운 이슈, 교육과 부동산 그리고 불공정

‘펜트하우스’는 서울 강남구 삼성동 소재의 100층짜리 주상복합건물 헤라팰리스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한다. 하늘을 찌를 듯 치솟은 헤라팰리스는 그곳에 들어오는 것조차 주민 동의를 얻어야 할 정도로 특권층만이 사는 곳으로, 맨 꼭대기 층인 펜트하우스에 사는 이들과 그 아래층에 사는 이들은 마치 영화 ‘설국열차’의 머리 칸과 꼬리 칸처럼 ‘현대판 카스트’ 계급으로 나뉘어 있다. 작가가 만들어낸 이 가상공간은 그래서 우리네 현실에서 대중이 가장 예민하게 느끼는 두 가지 이슈를 끄집어낸다. 부동산과 교육 문제가 그것이다. 

집이 ‘살(Live) 집’이 아니라 ‘살(Buy) 집’이 돼버린 부동산 현실과 같은 평형의 아파트라도 서울 강북, 강남 중 어디에 위치하느냐에 따라 수십억 원 가격차가 나는 가장 큰 요인 가운데 하나인 교육 문제는 이 드라마에서 강한 흡인력을 발휘한다. ‘펜트하우스’는 이런 이슈들을 끌어와 가난하다는 이유로 저들의 세계에 입성조차 허락되지 않는 오윤희(유진 분)와 그의 딸 배로나(김현수 분), 저들에 의해 집단폭력과 차별을 경험하고 살해 유기당하는 민설아(조수민 분)를 세워놓음으로써 시청자들에게 두 가지 욕망을 채워준다. 하나는 오윤희라는 서민(그의 딸과 함께)의 성장과 성공이고, 다른 하나는 억울하게 민설아를 죽음으로 내몬 헤라팰리스 사람들에 대한 복수심이다. 

이 두 가지 불가능해 보이는 욕망을 실현해주는 인물은 펜트하우스에서 주단태(엄기준 분)와 살아가는 심수련(이지아 분)이다. 그는 죽은 민설아가 자신의 숨겨진 딸이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복수를 꿈꾸고, 그 복수를 돕는 인물로 오윤희를 끌어들인다. 오윤희는 심수련이 준 보송마을 재개발 정보로 집을 사 단박에 큰돈을 벌고, 주단태가 서울 명동에 추진하는 재개발 계획에 이른바 ‘알박기’를 함으로써 헤라팰리스에도 입성한다. 즉 오윤희의 성공 과정 역시 부동산 재개발 투자에 의한 것으로, 부동산만이 부의 축적과 신분 상승을 가능하게 해줄 것이라 믿게 된 서민들의 현실을 담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교육과 부동산 이슈에 불을 붙이는 건 ‘불공정’이다. 부와 권력을 가진 자는 그 힘으로 더 큰 돈을 벌고(부동산 재개발 같은), 그 자녀들 또한 교육 특혜를 받아 부의 세습이 이뤄진다는 사실이다. ‘펜트하우스’는 교육과 부동산이 서민에게 주는 상대적 박탈감에 깔려 있는 불공정 문제를 김순옥 작가의 전매특허인 ‘복수극’의 틀로 가져와 강력한 공분과 분노의 폭발이라는 화력을 만들어낸다.




개연성을 무시하자 뭐든 가능해진 세계

눈여겨볼 만한 점은 작가가 이런 교육과 초부유층의 세계가 만들어내는 불공정 문제를 JTBC 드라마 ‘SKY 캐슬’ 같은 개연성의 세계에서 풀어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개연성의 세계란 허구이긴 하지만 그래도 벌어질 법한 사건들이 전개되는 것으로, 작가가 원한다 해도 마음대로 이야기를 풀 수 없는 룰이 지켜지는 세계다. 그래서 ‘SKY 캐슬’ 같은 경우 그 이야기는 어떤 식으로 흘러가도 비극으로 끝날 수밖에 없는 개연성의 당위를 지켰다. 하지만 작가는 개연성보다 시청자들이 가진 현실에서의 갈증들을 건드리고 풀어내는 방식에 더 큰 관심을 쏟는다.

자격증 없이 부동산 컨설턴트 일을 하고 있던 오윤희라는 인물이 심수련의 도움을 받아 하루아침에 부동산으로 돈방석에 앉고 헤라팰리스 같은 곳에 입성할 확률은 현실적으로 거의 없지만, 작가는 그것이 서민이 원하는 판타지라는 것을 알기에 그런 이야기를 풀어낸다. 주단태라는 희대의 악역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불륜의 연속이나, 거의 정신병적 징후를 보이는 자식들 앞에서 버젓이 자신의 욕망만을 추구하는 부모들의 이야기도 개연성이 있다고 보긴 어렵다. 하지만 불공정하게 얻은 부 위에서 모든 걸 누리는 헤라팰리스 사람들에 대한 시청자의 공분을 알기에 김순옥 작가는 그들이 시종일관 추하게 악다구니를 쓰고, 싸우며, 망가지는 모습들을 그려낸다. 개연성보다 시청자들에게 줄 카타르시스의 자극을 더 추구하는 작가의 의도적인 설정들이다. 

흔히 막장드라마 하면 개연성이 없어 “저런 일이 가능해?”라고 황당해하기 마련이지만, 작가의 세계에서는 그 ‘저런 일’이 대중이 현실에서는 할 수 없는 일들이라는 점에서 오히려 허용된다. 시청자는 그래서 헛웃음을 짓고 뒷목을 잡으면서도 개연성이 없어 오히려 뭐든 가능해진 그 세계에 빠져든다. 심지어 방영 후반부에 이르러선 “아직도 생각하면서 이 드라마를 보느냐”는 시청자들의 반응이 이어졌다. 개연성에서 벗어나 있으니 생각할 필요 없이 자극적인 판타지를 그저 느끼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서 ‘펜트하우스’는 작가가 자의적으로 만들어낸 세계에서 시청자들에게 고구마를 먹였다 적당한 사이다를 주는 걸 반복하는 드라마가 돼간다. 시청자들은 정신없이 빠른 속도로 흘러가는 이 세계가 주는 고구마와 사이다에 익숙해진다. 그러다 보니 이 드라마는 실제 존재하는 부동산 및 교육 문제의 심각성을 그저 고구마와 사이다가 반복되는 개연성 없는 세계로 단순화하고 있다는 문제를 남긴다. 시청자들은 그것이 너무나 말이 안 되는 이야기라는 것을 알면서도 어차피 현실은 바뀌지 않는다며 이 잠시 동안의 개연성 없는 세계에 빠져든다. 

그래서 이 드라마에 대한 열광의 이면에서는 빈부에 따라 수준 차가 심해지는 부동산 및 교육 현실에서 대중이 감당하고 있는 엄청난 무력감이 느껴진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부동산 가격 때문에 집 한 칸은커녕 전셋집도 찾기 힘든 현실과, 가진 만큼 배움의 기회 또한 많아지는 교육 현실이 주는 무력감 속에서 시청자는 심지어 개연성 따위는 포기해버리는 작가의 판타지에 빠져들게 된 것이니.





주간동아 1273호 (p54~56)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thekian1@gmail.com
1317

제 1317호

2021.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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