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59

2020.10.08

중력에 의한 시공간의 떨림, 관측의 역사 [궤도 밖의 과학-31]

  • 과학 커뮤니케이터 궤도

    nasabolt@gmail.com

    입력2020-09-28 11:3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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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탈리아에 설치된 중력파 관측소 비르고(VIRGO). [Virgo 홈페이지 제공]

    이탈리아에 설치된 중력파 관측소 비르고(VIRGO). [Virgo 홈페이지 제공]

    평소 잠귀가 매우 밝은 사람이 있다. 잠귀란 잠결에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감각을 말하는데, 아주 작은 소음에도 쉽게 잠에서 깬다면 위험을 감지하는 능력은 뛰어나겠지만 피곤한 일이다. 소리는 공기나 물을 타고 오는데, 아무리 작더라도 미세한 매질의 떨림을 통해 우리에게 전해진다. 자려고 누웠을 때마다 들리는 시계 초침 소리나 수도꼭지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도 마찬가지다. 

    혹시 이런 눈에 보이지 않는 파동으로부터 우주의 비밀을 밝혀낼 수 있다면 어떨까? 물론 우리가 귀로 듣는 소리와는 전혀 다를 테지만 말이다. 바로 중력에 의한 시공간의 떨림, 중력파다. 이 녀석이 뭔지 알기 위해서는 먼저 중력을 이해해야 한다. 

    고전역학의 거인 뉴턴은 중력을 두 물체 사이에서 작용하는 힘이라고 설명했다. 사과가 떨어지는 이유는 지구와 사과가 서로 잡아당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학창시절 물체 A와 B를 놓고 두 물체 간 작용하는 힘을 쉴 틈 없이 계산하면서 우리는 중력을 충분히 이해했다고 믿었다. 하지만 현대물리학의 ‘타노스’ 아인슈타인의 생각은 달랐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시공간이라는 틀이며, 중력은 물체끼리 작용하는 게 아니라 오직 시공간에만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쉽게 예를 들기 위해 주방으로 가보자. 먼저 무거운 참치통조림과 냉장고 속 방울토마토를 한 개씩 꺼낸다. 뉴턴은 참치통조림과 방울토마토가 서로 당기는 힘을 중력이라고 했지만, 아인슈타인은 여기에 포장용 비닐 랩을 추가한다. 비닐 랩을 쭉 뽑아 두 손으로 잡고, 그 위에 참치통조림을 떨어뜨려 보자. 아마 비닐 랩의 중앙은 깊게 파일 것이다. 이제 그 위에 방울토마토를 놓으면 파인 랩의 곡면을 따라 참치통조림을 향해서 굴러가게 된다. 비닐 랩이 아주 투명하다면, 마치 참치통조림과 방울토마토가 서로 당기기 때문에 가까워지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실제로 둘은 서로를 당긴 적이 없는데도 말이다. 

    뉴턴의 중력은 오직 질량이 있는 물체끼리만 작용하기 때문에, 빛은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의 중력은 시공간 자체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빛도 휘어진 시공간을 따라 함께 휘어야 한다. 그리고 1919년 5월 영국의 천문학자 에딩턴은 아프리카 근처 작은 섬에서 빛이 휘는 현상을 관측했고, 이를 통해 아인슈타인의 주장이 옳다는 것을 증명했다. 시공간은 전 우주에 보이지 않는 형태로 존재하며, 그 위에 어마어마한 질량의 물체가 움직인다면 가련한 비닐 랩은 어찌할 도리가 없이 미세하게 진동할지도 모른다. 이렇게 떨리는 중력의 파도를 중력파라고 부른다. 이미 100년도 더 지난 과거에 천재 아인슈타인은 ‘중력장 방정식의 근사적인 통합’이라는 논문을 통해 처음으로 이론적인 중력파를 제시했다.



    중력파 발견에 불 지핀 한 번의 실패

    1956년 해군 출신의 실험물리학자 조셉 웨버는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에 관심이 많았다. 공동연구를 하기 위해 방문한 프린스턴 고등연구소에는 마침 블랙홀이라는 명칭을 최초로 사용했던 이론물리학자 존 휠러가 있었다. 둘은 죽이 잘 맞아서 심심하면 시공간과 중력파로 이야기꽃을 피웠는데, 특히 주로 나누었던 대화의 주제는 실제로 중력파를 검출할 수 있을지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로부터 4년 후, 웨버는 중력파 검출 장비에 대한 독자적인 아이디어를 담아 논문을 발표했고, 원래 소속되어 있던 메릴랜드대학으로 돌아와서는 ‘웨버 막대’라는 아주 특별한 장치를 직접 만들기까지 했다. 원리는 간단했다. 만약 시공간이 정말 떨린다면 안에 놓여있는 막대기에 영향을 줄 테고, 막대기 안의 분자들이 진동하면서 내부 압력을 변화시킬 것이다. 이때 이 압력의 변화를 전기신호로 바꿔줄 수만 있다면, 중력파를 직접 검출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1969년 드디어 그는 최초의 중력파를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위대한 발견에 과학자들은 수많은 갈채를 보냈고,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실제로 웨버의 실험을 재현해 본 과학자들은 웨버 막대의 정밀도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철저한 검증 과정을 거치면서, 웨버의 확신은 점점 옅어졌다. 시공간이 늘어나거나 줄어들면서 떨린다고 해도, 그 위에 존재하는 모든 것도 함께 떨릴 것이다. 당연히 현실에서는 어떠한 차이도 발생할 수 없기에, 중력파를 검출한다는 건 말도 안 된다. 그를 지지하던 사람들도 돌아섰다. 인류는 이렇게 중력파를 포기했을까? 웨버 박사의 무모한 도전은 무의미했을까? 그 반대다. 웨버 막대가 가진 수많은 모순은 다른 과학자들의 탐구심에 기름을 부었고, 수십 개가 넘는 연구단이 꾸려지기 시작했다. 중력파? 원한다면 주도록 하지. 잘 찾아봐. 온 우주 전체에서 그걸 볼 수 있으니까. 이름하여 ‘대 중력파 검출의 시대’를 맞는다.

    갈 길 먼 중력파 연구

    1960년대 후반 라이너 바이스는 중력파 검출에 빛을 이용한다는 아이디어를 최초로 떠올렸고, 1974년 천체물리학자 조지프 테일러가 무거운 두 별의 공전 궤도가 줄어드는 것을 관측하며 중력파의 존재를 간접적으로 증명했다. 줄어든 공전 궤도를 계산하면, 정확하게 이론상 방출되는 중력파만큼 에너지를 잃었기 때문이다. 지갑에 있던 5만 원 중 아이스크림 2만 원어치 사 먹은 것을 증명하기 위해, 지갑을 열어 남아있는 3만 원을 정확하게 세어본 것이다.

    1992년 미국에 지어진 중력파 관측소 ‘라이고’(LIGO). [LIGO과학협력단 제공]

    1992년 미국에 지어진 중력파 관측소 ‘라이고’(LIGO). [LIGO과학협력단 제공]

    연구는 탄력을 받아 1992년 미국 워싱턴주 핸퍼드와 루이지애나주 리빙스턴에 레이저 간섭계 중력파 관측소 ‘라이고’(LIGO)가 지어졌다. 처음 가동 이후, 2010년까지 어떠한 중력파도 발견하지 못했고, 2014년에는 우주 초기 중력파의 흔적을 관측했으나, 잡음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2015년 9월 14일 드디어 중력파가 최초로 검출됐다. 이건 공상이 아니었다. 

    라이고는 두 개의 4km 길이의 터널이 ㄱ자 모양으로 설치되어 있으며, 중앙에서 발사된 레이저의 절반은 반사, 나머지 반은 통과하여 각각의 터널을 지나간다. 터널 끝의 거울에 도달한 두 레이저는 다시 중앙으로 반사되고, 중앙 검출기에 도달한 두 빛은 정확하게 상쇄되며 사라진다. 하지만 만약 중력파가 라이고를 지나간다면, 시공간이 왜곡되면서 미세하게 레이저의 이동 거리가 바뀌게 되고, 중력파를 확인할 수 있다. 

    제임스 고든 형사가 배트맨을 부를 때 사용하는 배트 시그널을 예로 들어보자. 두 개의 배트 시그널을 정확하게 같은 곳으로 쏜다면, 마치 하나처럼 깨끗하게 보인다. 하지만 둘 중 하나라도 쏘는 위치가 변한다면 또렷하지 않고 지저분하게 보일 것이다. 이를 통해 시공간의 변화를 감지한다. 물론 엄청나게 정밀하게 말이다. 심지어 핸퍼드와 리빙스턴, 두 곳에 존재하는 라이고를 통해 중력파가 날아온 방향까지 알 수 있다. 먼저 관측된 쪽이 중력파가 온 방향일 테니까 말이다. 

    9월 14일 관측된 중력파는 13억 년 전 블랙홀이 만들어낸 떨림이었다. 태양 질량보다 각각 36배와 29배 무거운 블랙홀이 합쳐지며 62배가 되었고, 사라진 태양 3배 정도의 질량은 중력파 형태로 퍼졌다. 철저한 검증을 위해, 관측된 지 5개월이 지나서야 중력파 발견이 세상에 발표됐고, 중력파 연구의 초석을 닦은 라이너 바이스 박사, 프로젝트를 국제적으로 키운 배리 배리시 박사, 그리고 인터스텔라 자문으로 유명한 킵 손 박사 등 세 사람은 2017년 12월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최초로 중력파의 직접적인 관측에 성공했기 때문이었다.

    중력파 관측에 기여해 2017년 노벨물리학상을 공동 수상한 배리 배리시, 킵 손, 라이너 바이스 박사(왼쪽부터). [AP=뉴시스]

    중력파 관측에 기여해 2017년 노벨물리학상을 공동 수상한 배리 배리시, 킵 손, 라이너 바이스 박사(왼쪽부터). [AP=뉴시스]

    우리는 지금껏 우주를 빛으로만 볼 수 있었다. 빛조차 흡수하는 블랙홀 안은 들여다볼 수 없었고, 불투명한 초신성의 중심부나 폭발로 감추어진 빅뱅의 순간도 전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 라이고로 우주를 들을 수 있게 됐다. 중력파의 진폭과 진동수의 패턴을 통해 새로운 관측의 지평을 열었고, 이제 우리는 완전히 새로운 귀를 얻게 된 것이다. 최근 국제공동연구팀은 라이고와 함께, 이탈리아에 설치된 ‘비르고(VIRGO)’라는 중력파 관측소를 활용하여, 태양 질량의 142배에 달하는 블랙홀의 형성 과정도 포착했다. 현재까지 발견된 가장 대규모의 충돌이었고, 특히 소문만 무성했던 중간질량 블랙홀의 존재를 직접 확인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기술적으로도 어렵고 아직 먼 미래의 이야기지만, 초대형 라이고를 만들어보려는 시도도 준비 중이다. 3대의 편대비행 우주선을 이용해 한 변의 길이가 500만km에 달하는 거대한 삼각형 모양의 ‘레이저 간섭계 우주 안테나(LISA)’를 우주에 띄워보려 한다. 

    킵 손 박사는 중력파 연구에 대해 이런 말을 남겼다. ‘정밀한 중력파 검출기를 만들기 위해 극복해야 할 기술적 어려움은 막대하다. 하지만 물리학자들은 독창적이며, 대중들은 지지해줄 것이기에, 모든 장애물을 극복할 수 있다.’ 광화문 광장에서 출렁이던 승리를 위한 붉은 물결이 아니어도 충분하다. 그저 과학자들에 대한 응원이 계속 멈추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궤도_연세대 천문우주학과 학부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한국천문연구원 우주감시센터와 연세대 우주비행제어연구실에서 근무했다. ‘궤도’라는 예명으로 팟캐스트 ‘과장창’, 유튜브 ‘안될과학’과 ‘투머치사이언스’를 진행 중이며, 저서로는 ‘궤도의 과학 허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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