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57

2020.09.18

“악성 사이클에 갇힌 부동산…정부는 아무 신호도 보내지 말아야” [허문명의 Pick]

이인호 한국경제학회장 ‧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입력2020-09-15 10: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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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인호 한국경제학회장.  [허문명 기자]

    이인호 한국경제학회장. [허문명 기자]

    회원만 5000여명에 이르는 국내 최대 학술 단체 중 하나인 한국경제학회가 최근 학회 경제 토론 패널에 속한 회원 3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더니 10명중 7명이 집값 상승 원인을 정부의 잘못된 정책 탓이라고 했다. ‘임대차 3법(전월세신고제, 전월세상한제, 계약갱신청구권)’에 대해서도 임차인의 임대 부담을 더 늘릴 거라는 의견이 다수였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해 학문적 분석에 주력하는 학자들까지 차가운 시선을 갖고 있음이 드러난 셈이다. 학회를 이끌고 있는 이인호 회장(서울대 경제학과)을 서울대 관악캠퍼스 연구실에서 만났다.

    마지막에 산 사람만 망하는 수 있다

    -이해관계가 있는 시장 참가자들의 견해가 아니라 학자들의 의견이라 더 의미가 있다고 본다. 헌데 정부는 바뀔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현 상황을 진단해 달라. 

    “한마디로 ‘악성 사이클에 갇혔다’. 수요공급 법칙이 전혀 통하지 않고 있다. 시장이 엉망이 되어버렸다. 

    경제학에선 시장 참가자들 기대가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다른 사람들이 살 것 같다는 기대가 높으니까 나도 가만있으면 안 된다고 너도 나도 행동에 나서면서 가격이 급등한다. 이런 경우를 경제학 개념으로 ‘자기충족적 기대’가 지배하는 시장이라고 한다. 수요 공급이론이 전혀 먹히지 않는 것이다. 

    지금 시장에선 정부 말이 전혀 통하지 않는다. 새로운 정책은 오히려 집값 상승 기대감만 높인다. 억제 지역을 발표하면 다른 곳에 가서 사고 공급을 늘리겠다고 해도 ‘집값 수요가 높으니까 그런 거구나’하면서 집을 산다. 세금을 올리는 것조차 정부도 향후 집값이 올라갈 것이라 기대하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고 생각한다. 

    과거에 경기를 부양한다고 기준 금리를 낮췄더니 ‘경제 상황이 얼마나 안 좋으면 내리겠느냐’면서 증시가 급락한 적이 있다. 지금 부동산 시장이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은행이 도산할 때 진짜 채산성이 좋지 않아 망하는 경우도 있지만 망할 것 같다는 기대 심리 때문에 너도 나도 돈을 빼는 뱅크런이 오는 경우와 비슷하다.” 



    -지금 정부는 뭘 해야 하나. 

    “아무 일을 안 하는 게 돕는 거다. 정부가 정책을 내놓아도 시장 참가자들은 집값이 올라간다는 시그널로 받아들이니까 시그널 자체를 주지 않는 게 방법이다. 3년 전만 해도 이런 상황은 아니었다. 당분간은 어떤 정책이든 먹히지 않는다는 것을 빨리 받아들여야한다. 그러면서 정책 담당자들을 바꿔 분위기를 쇄신하겠다는 신호를 주어야 한다. 시장을 향해 ‘여태까지 했던 것처럼 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주는 것이다. 

    광풍의 가장 큰 문제는 상투 끝을 잡는 사람들이다. 젊은 2030들이 영혼까지 끌어다 집을 산다고 하는데 광풍이 꺼지면 그때는 자기충족적 기대가 반대로 작동해 투매가 나와 결국 맨 마지막에 산 사람들만 망하는 수가 있다.”

    주식시장도 위험하다

    -지금 주식 시장에서도 그런 기미가 엿보이는데. 

    “그렇다. SK바이오팜이나 카카오게임즈에 몇십조가 몰리는 건 누가 봐도 비정상이다. 한쪽에서는 자영업자들이 못살겠다고 죽어나가는데 한쪽에서는 천문학적인 돈이 몰리는 건 분명 건강하지 않은 상황이다. 

    지난 3월에 주가가 급락할 때는 전체적으로 경제가 스톱할 것이라는 불안심리 때문에 폭락했다. 이후 급등한 것은 기업들이 잘해서가 아니지 않은가. 이른바 ‘동학개미운동’이니 해서 돈만 넣으면 주식시장을 떠받칠 수 있다고 한다면 도박판이 아니고 뭔가. 

    지금 주식시장도 돈이 갈 데가 없다보니 쏠리는 건데 역시 상투를 잡았다가 시장이 갑자기 폭락하면 애꿎은 사람들만 다친다. 어려울 땐 어떻든 버티는 게 중요한데 파산해서 아무 것도 남지 않게 되면 경기가 올라가도 시장 참여 자체를 할 수가 없다. 자산이 0이 되면 패자부활 자체가 안 된다.”

    ‘코리안 뉴딜’은 중환자에게 운동하라는 격

    -코로나 이후 지금 경제상황을 어떻게 보나. 

    “방역 쪽에서 어느 정도 잘 막은 건 사실인데 그 와중에 부동산으로 시장을 흔들어놓았다. 불필요한 교란이다. 재난지원금을 자꾸 정치화하는 것도 걱정스럽다. 당장 10만원 못 받는다고 내일 죽는 사람 없지 않은가. 

    코로나로 인해 유동성 과잉이 최대 난제가 됐다. 주식시장과 실물경제 괴리가 계속 벌어지면 돈이 비생산적인 곳으로 몰려 거품이 생길 우려가 커진다. 그렇다고 당장 긴축은 위험하니 매우 조심조심 시장을 달래가며 유동성 회수정책을 펴야한다. 백신이 쉽지 않으니 치료제 개발로 사람들이 코로나를 더 이상 치명적 감염병이 아닌 것으로 인식할 때가 경기회복 시점이 되지 않겠나.” 

    -올 경제 성장률은. 

    “예측의 최저치로 가지 않겠나. 내년의 경우 올해 너무 안 좋았으니까 올해보다는 낫겠지만 100에서 50으로 갔다가 다시 100으로 숫자만 좋다진다고 성장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어려운 중에 나온 것이 비대면 쪽 즉 ICT, 바이오다. 그렇다고 해서 정부가 나서면 안 된다. 정부는 빠지고 자유롭게 놔둬야한다.” 

    그는 정부가 발표한 ‘코리안 뉴딜’에 대해서도 비판적이었다. 

    “중장기적인 이야기다. 어려운 상태이더라도 중장기 비전은 이야기해야겠지만 거기에 170조원을 쓰겠다고 하는 건 중병으로 입원해 있는 사람한테 헬스클럽 1억짜리 회원권 사서 운동하라는 이야기처럼 들린다. 필요한 이야기이지만 지금 시점에 할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정부가 왜 170조를 써야하는지도 모르겠다. 기술혁신은 민간이 하는 거다. 정부가 손만 떼면 알아서들 하는데 계속 눈 먼 돈을 나눠주니 벤처기업들이 단기 이익을 쫓으면서 기술혁신은 등한시하는 나쁜 버릇을 키워줬다는 부작용은 이미 충분히 드러나고 있지 않은가. 

    디지털 뉴딜로 100만 명 고용을 창출하겠다는 것도 말이 안 된다. 디지털 뉴딜은 고용유발 효과가 매우 낮다. 스티브 잡스나 빌 게이츠 같은 스타가 끌고 가는 산업이지, 많은 사람들에게 고급 일자리를 만들어 줄 수는 없다.” 

    -이 얽히고설킨 상황을 어떻게 풀어야 하나. 

    “중장기적인 성장 동력이 없어지는 게 제일 문제다. 이번 정부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현재 경제정책은 이 사람 것 빼서 저 사람에 주는 제로섬 정책이다. 전체가 이득을 보는 논 제로(Non-zero) 섬으로 접근해야 한다. 전체가 다 잘 사는 게 중요하지 않은가. 그런 부분에 대한 청사진이 보이지 않는다. 

    산업의 추이는 제조업에서 서비스업으로 계속 옮겨가고 있다. 무엇보다 생산성이 너무 낮은 서비스업의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 

    직장에서 나온 사람들이 자영업하다 망하는 사례가 너무 많다. 미국이나 영국 서비스업은 금융업이 이끌고 있는데 우리나라 서비스업은 5인 이하 자영업자가 대부분이다. 이걸 어떤 식으로든 바꿔주어야 한다. 영세 자영업자들이 구멍가게 영업을 하는 한 잘 살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기업가 방식으로 체계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양극화문제가 너무 큰 데. 

    “본래 산업혁명이나 산업화는 사람들이 깜짝 놀랄만한 양극화를 만들어낸다. 지식인들이 그걸 보고 마음 아파해 나온 것이 마르크시즘인 것 같다. 그때는 귀족이 아니면 돈을 모을 방법이 없었다. 

    모차르트 시대에는 고작해야 작은 방에서 몇 사람이 모여 음악을 즐겼다. 그런데 지금 방탄소년단은 전 세계 인구를 상대로 한다. 

    산업정책을 바꿀 때다. 지난해 별세한 폴 볼커 전 미 중앙은행의장은 은행이 규모 이상으로 커지면 쪼개라고 했다. 같은 연장선상에서 구글이나 애플도 운영체계 개발과 앱 스토어를 분리하도록 하는 산업정책을 써야한다는 의견들이 있다.”

    정책담당자들, ‘시장’에 눈떠라

    다시 현 경제정책 이야기로 돌아왔다. 

    이 회장은 “무엇보다 현 정부가 시장을 바라보는 태도에 문제가 있다”고 했다. 

    “사과 100개를 1000명에게 나눠 주어야 한다고 할 때 10분의1로 쪼갤 수 없는 한 결국 100명을 고를 수밖에 없다. 그게 시장의 기능이다. 가질 수 없는 사람들은 물론 안타깝지만 인위적으로 나눠줄 수는 없다. 억지로 나눠주다가 으스러지면 다 먹지 못하게 된다. 

    이 정부가 목적하는 가지지 못한 약자를 향한 뜨거운 마음 다 알고 좋은데 목적을 위한 수단들이 목적 달성에 도움이 되는지, 오히려 안 좋은 결과를 내고 있다면 수정하는 게 옳다. 

    지금 정부는 재화는 정부가 나눠주면 되는 거고 경쟁에서 이긴 사람들은 실력이 아니라 ‘특혜’를 받아 이겼다고 생각해 정부가 소비자를 선택해 나눠주겠다고 생각한다. 

    시장의 경쟁은 야수들의 경쟁이 아니다. 소비자들에게 편리와 이익을 주는 사람들이 승자다. 같이 경쟁했던 사람들이 뒤지거나 낙오되는 게 문제인데 정부의 역할은 여기서 나온다.” 

    -요즘은 학자들도 자기 목소리를 내는 게 쉽지 않은데 핫 이슈에 대해 경제학회가 의견을 내고 있어 반가웠다. 

    “경제 현안에 대한 학자들의 의견을 공유하는 온라인 토론장이 필요하다는 안팎의 요청이 있어 4월26일 홈페이지에 개설했다. 미국 시장경제학의 본산인 시카고 대학의 IGM포럼을 모델로 삼은 것이다. 

    지금까지 긴급재난지원금, 고용보험, 기본소득 도입 등을 주제로 진행했다. 토론에 참여하는 학자들은 한국경제 학술상 및 청람상(연구 성과가 뛰어난 만 45세 미만 경제학자에게 주는 상) 수상자와 학회 학술지 편집위원, 학회 명예회장을 비롯해 모두 74명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정부가 매번 핫이슈를 만들어 내는 바람에 토론도 뜨겁다(웃음). 정부가 정책을 내놓을 때마다 토론을 하면 정쟁에 휘말릴 수 있다는 내부 우려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시카고 대학을 비롯해 유럽 대학들에선 학자들이 정책에 매우 구체적이고 주관적인 의견을 내고 활발한 토론이 이뤄진다는 점에 주목해 우리도 열린 소통의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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