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48

2020.07.17

진중권 “여당이 버린 피해자 품으려면, 野 공감 능력 키워야” 〈진중권의 직설⑦〉

  •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입력2020-07-14 16:3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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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감 능력 없으면 막말 행진…지금 여당도 성추행 가해자 입장

    • 야당 배현진도 철 지난 음모론 꺼내…피해자 고통·유족 슬픔 공감 능력 없기 때문

    • 보수가 다시 국민지지 받으려면 일반 시민과 정서적 교감할 줄 알아야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주간동아’는 대표적 진보논객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의 한국 정치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이 담긴 기고문을 매주 화요일 오후, 온라인을 통해 공개한다. <편집자 주>

    한국 보수의 결정적 문제는 ‘공감 능력’의 결여에 있다. 유권자들의 표심을 가르는 데서 ‘이성’ 이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감성’이다. 인간은 합리적 동물이기 이전에 감정적 동물이기 때문이다. 감정은 때로 치명적 결과를 낳기도 한다. 2012년 총선에서 민주통합당(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김용민의 막말을 제때 처리하지 못해 다 이긴 선거를 놓쳤다. 올해 총선에서는 미래통합당(통합당)이 민경욱, 차명진의 막말로 곤욕을 치렀다. 유세 기간을 막말 수습에 보내다 결국 수도권 후보들이 거의 전멸하는 궤멸적 타격을 입었다.

    공감 능력 상실

    보수는 왜 툭하면 ‘막말’을 하는가. 간단하다. 막말을 아예 막말로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보수의 감성(sensibility)이 사회일반의 감정으로부터 동떨어져 있다는 것을 뜻한다. 한국 보수는 ‘감성의 게토’에 갇혀 있다. 통합당 정치인들의 막말 시리즈는 이 게토의 정서를 반영한 것이다. 이 게토의 주민들은 안에서 자기들이 ‘사이다’라고 부르는 것이 담장 너머에서는 ‘막말’로 여겨진다는 사실을 모른다. 바깥 세계와 논리적 소통은 물론이고 감정적 교류마저도 불가능해진 것이다. 

    이 감성의 ‘괴리’가 처음 드러난 것은 세월호 침몰사고. 보수의 몰락은 이 사건에서 시작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때 일반 국민과 새누리당(현 통합당) 사이에 가로놓인 깊은 감정의 골이 극명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참사 당일 새누리당 민경욱 대변인은 사건 브리핑 연습 도중 실수를 하고는 “난리 났네”라며 킬킬거렸다. 온 국민이 깊은 충격 속에서 세월호에 갇힌 아이들의 구조 소식을 기다리며 깊이 우려하던 차였다. 이 장면을 TV로 지켜본 국민은 도대체 ‘저들도 인간인가’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 후 새누리당 의원들의 망언이 쏟아졌다. 주호영 의원은 세월호 침몰사고는 “교통사고”라며 “국가가 과잉보상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희생자 가족이 전남 진도 팽목항에서 실종자 시신이 올라오기를 간절히 기다리는 동안 김진태 의원은 "세월호를 인양하지 말자. 돈도, 시간도 너무 많이 든다”고 했다. 안상수 의원은 “세월호 같은 교통사고에 5000억 원을 쓴 나라”라고 푸념했다. 국민은 자식 잃은 부모의 심정으로 사건을 바라보는데, 새누리당에선 그 일을 그저 빨리 수습하고 넘어가야 할 ‘사고’로만 본 것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막말 수위도 높아졌다. 정진석 의원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이렇게 썼다. “세월호 그만 좀 우려먹으라 하세요. 죽은 애들이 불쌍하면 정말 이러면 안 되는 거죠. 이제 징글징글해요.” 차명진 전 의원도 성질을 냈다. “자식의 죽음에 대한 세간의 동병상련을 회 쳐 먹고, 찜 쪄 먹고, 그것도 모자라 뼈까지 발라 먹고 진짜 징하게 해 처먹는다.” 압권은 김순례 의원이었다. 그는 세월호 사건 배상액이 국가유공자 연금액의 240배라며 “이러니 ‘시체장사’라는 말이 나올 만도 하다”고 했다.

    미래통합당 민경욱 후보(왼쪽)와 차명진 후보의 21대 총선 유세 모습. [동아일보DB]

    미래통합당 민경욱 후보(왼쪽)와 차명진 후보의 21대 총선 유세 모습. [동아일보DB]

    인지의 실패

    사회적 비난을 받은 일베(일베저장소)의 폭식 투쟁도 정치권의 이런 분위기에서 나온 것이다. 새누리당에서는 아직도 세월호 침몰사고가 국민에게 준 트라우마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며칠 전 주호영 의원은 국회를 “통제받지 않는 폭주 기관차”에 비유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 폭주 열차가 세월호만큼 엉성하다. 승객이 다 탔는지, 승무원들은 제자리에 있는지 점검조차 하지 않고 출발했다.” 여기에는 구조 실패에 대한 책임감은 물론이고, 세월호 관리·감독 책임이 자신들에게 있었다는 인식조차 없다. 

    지난해 7월 새누리당 정미경 최고위원은 당 연석회의에서 “어찌 보면 문 대통령이 (이순신 장군보다) 낫다더라. 세월호 한 척을 갖고 이긴 것”이라고 말했다. 좌중은 폭소를 터뜨렸다. 세월호 침몰사고를 농담 소재로 삼은 것이다. 이 발언은 이들이 세월호 침몰사고를 바라보는 관점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그들에게 세월호 침몰사고는 저들에게 정권을 넘겨주게 만든 ‘악재’에 불과했다는 얘기다. 이를 말려야 할 황교안 당시 당대표는 외려 “아무거나 막말이라고 하는 것이 막말”이라며 이 막말을 거들었다. 

    이런 분위기는 결국 실전에서 대형사고를 낳게 된다. 21대 총선 경기 부천병 차명진 통합당 후보가 TV 토론에서 극언을 한 것이다. “세월호 자원봉사자와 세월호 유가족이 텐트 안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문란한 행위를 했다는 기사를 이미 알고 있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부랴부랴 그를 제명하고 그 대신 사과했지만 때는 이미 늦어버렸다. 차 후보는 길거리 유세를 하면서 “세월호 텐트의 검은 진실을 밝혀라. ○○○으로 더럽힌 그대들 세월호 연대는 당장 국민에게 사과하고 감옥으로 가라”고 외쳐댔다. 

    그만의 문제가 아니다.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는 “차 후보는 누구나 바라는 말을 했다”며 그를 두둔했다. 또한 홍준표 전 당대표는 세월호 막말을 한 차 후보와 정진석 의원을 윤리위원회에 회부하는 일은 “잘못된 시류에 영합하는 것”이라며 그들을 감쌌다. 막말을 아예 막말로 인지조차 하지 못하는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민경욱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이 담긴 글을 올렸다. 그 때문에 공천에서 컷오프된 그를 공천관리위원회가 되살려냈다. 그 정도는 막말이 아니라고 본 모양이다.

    사이코패스 정당

    막말의 또 다른 단골 소재는 5‧18민주화운동(이하 5 ‧18)이다. 이종명 의원은 5‧18을 “북한군이 개입한 폭동”으로 매도했다. 신군부에 의한 정당한 진압으로 호도한 것이다. 김순례 의원은 “종북 좌파들이 5·18 유공자라는 이상한 괴물집단을 만들어 세금을 축내고 있다”고 비난했다. 여기에는 광주에서 고통받은 이들에 대한 배려, 그들의 슬픔에 대한 공감은 존재하지 않는다. 5‧18은 우리 역사의 트라우마다. 그런데 그것을 막말 소재로 삼는다. 그러니 일반 시민과 정서적 소통이 안 되는 것이다. 

    지난해 다뉴브강 유람선 침몰 사건 때 민경욱은 대통령을 이렇게 비꼬았다. “일반인이 차가운 강물에 빠졌을 때 골든타임은 기껏해야 3분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구조대를 지구 반 바퀴 떨어진 헝가리로 보내면서 ‘중요한 건 속도’라고 했단다.” 구조대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조난자가 아직 살아 있다고 가정해야 한다. 3분이 지났으니 구조가 필요 없다는 얘기인가. 그의 머릿속에는 조난자에 대한 걱정도, 그들의 생존을 바라는 염원도 없다. 세월호 침몰사고가 괜히 터진 게 아니다. 

    당시 김현아 의원의 말이다. “상처가 났는데도 고통을 느끼지 못한 채 방치해 상처가 더 커지는 병이 한센병이다. 대통령의 생각이 다른 국민의 고통을 못 느낀다면 이를 지칭해 의학용어를 쓸 수 있다고 본다.” 대통령을 비난하려다 그만 한센인까지 모독한 것이다. 여기에도 한센인을 향한 배려, 그들이 한국처럼 차별이 심한 사회에서 평생을 겪어왔을 아픔에 대한 이해는 없다. 매사가 이런 식이니 그 당이 타인의 고통을 못 느끼는 ‘사이코패스 정당’이라는 소리를 듣는 것이다.

    미래통합당 배현진 의원. [동아일보 DB]

    미래통합당 배현진 의원. [동아일보 DB]

    공감과 감정이입

    유권자들을 이성적으로 설득하는 일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그들의 처지에 이입해 그들의 고통에 공감하는 것이다. 민주당은 이 감정소통의 중요성을 안다. 탁현민은 뛰어난 연출력으로 이 ‘고객감동’ 경영의 효과를 배가했다. 하지만 권력을 잡아서 그런가. 최근 민주당은 과거 통합당의 전철을 그대로 밟고 있다. 

    그 상징적 사건이 ‘서해수호의 날’ 행사에서 고(故) 민평기 상사의 노모가 문 대통령의 분향을 가로막고 “천안함 폭침이 누구의 소행입니까”라고 묻는 장면이었다. 그때 대통령 표정은 매우 싸늘해 보였다. 또 하나는 전직 총리 이낙연 의원이 이천 화재현장을 방문했을 때 유가족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다. 대책을 갖고 왔느냐는 질문에 그는 “지금 현직에 있지 않아 책임 있는 위치에 있는 게 아니다”라고 퉁명스럽게 답했다. 

    특히 조국 사태 이후 민주당은 일반 국민의 정서와는 동떨어진 언행을 쏟아내고 있다. 윤미향 사태는 물론이고, 이번 박원순 서울시장 사건에서도 민주당은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 입장에 섰다. 진성준 의원은 “박 시장을 가해자로 기정사실화하는 것은 사자(死者) 명예훼손”이라고 말했다. 기자에게 상소리를 했던 이해찬 대표는 마지못해 사과하며 피해자를 “피해 호소 여성”이라고 불렀다. 윤준병 의원은 ‘가짜 미투’(Me Too) 의혹까지 제기했다. ‘문빠’들은 열심히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를 저지르고 있다. 

    여당이 버린 피해자는 당연히 야당에서 품어야 한다. 그러려면 피해자에게 이입해 그의 고통을 함께 느낄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통합당은 이 사안을 그저 정치적 ‘호재’로만 보는 듯하다. 배현진 의원은 철 지난 음모론을 들고 맥락 없이 상주인 박주신 씨를 공격했다. 피해 여성의 고통을 함께 느끼고 그의 ‘회복’을 위해 함께 싸워야 할 때 고작 아버지를 잃고 슬퍼하는 죄 없는 아들을 공격한 것이다. 피해자의 고통은 물론이고 유족의 슬픔에 공감할 능력이 없어서 그러는 것이다. 

    왜 그러는 걸까. 그것은 그 당이 아직 강경 보수층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문빠들처럼 통합당 강경 지지자들도 감정이입 능력이 부족하다. 타인이란 곧 ‘적’이기에 그들은 타인의 고통에서 외려 큰 기쁨을 느낀다. 앞에서 열거한 양편의 사이코패스 같은 언행은 모두 거기서 나오는 것이다. 보수가 다시 지지를 받으려면 ‘감성적 올바름(emotional correctness)’부터 갖춰야 한다. 그러려면 감정이입 능력을 회복해 일반 시민과 정서적으로 교감할 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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