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46

2020.07.03

“기본소득은 복지국가 틀 흔드는 위험한 발상”

〈허문명의 Pick〉 기본소득② 반대 양재진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입력2020-07-01 10:4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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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재진 교수. [허문명 기자]

    양재진 교수. [허문명 기자]

    기본소득 도입 반대론자인 양재진 연세대 교수(행정학)는 “기본소득제도는 사회보장도 안 되면서 돈만 많이 드는 대표적인 포퓰리즘 정책”이라며 “복지국가 기본 틀을 흔드는 매우 위험한 발상”이라고 말했다.

    기본소득은 보편복지 아니다

    -기본소득이 복지국가 틀을 흔드는 정책이라니. 

    “현대 복지국가 개념은 ‘실직 같은 사회적 위험(social risks) 때문에 돈을 못 벌게 되거나, 질병 치료처럼 사회적으로 인정되는 욕구(needs) 때문에 갑자기 돈이 필요해진 시민에게 복지를 제공하는 공적 보험 시스템’이다. 

    자동차보험을 예로 들어보자. 차량 소유자가 보험료를 납부하지만 보상은 사고가 난 사람에게만 사고 정도에 따라 차등 지급하지 않나. 현대 복지국가 개념도 이와 똑같다. 누구나 세금이나 국민연금 같은 사회 보험료를 내지만 실업자에게는 실업급여가, 가난한 사람이나 노인에게는 생계급여나 연금이, 아이를 낳고 키우는 사람에게는 육아휴직급여나 아동수당이 제공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전 국민에게 매달 현찰을 나눠주겠다는 기본소득의 발상은 차 사고가 나지 않았는데도 보험금을 나눠주겠다는 논리다. 이렇게 보험료를 써버리면 정말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충분한 보상을 해줄 수가 없다. 결국 보험료를 올리는 수밖에 없다. 가입자들이 낸 돈을 가치 있게 써야지 꼭 n분의 일로 나눠 현금으로 써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기본소득이야말로 보편복지라는 주장이 있다. 

    “보편의 개념을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무조건 모든 사람에게 나눠주는 것은 보편주의가 아니라 무차별주의다. 현대 복지국가에서 말하는 ‘보편’의 개념은 아플 때, 실직을 당했을 때, 아이가 생겼을 때 누구나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무상급식을 떠올리면 쉽다. 저소득층 아이에게만 급식을 제공하면 선별급식이지만, 모든 학생에게 주면 보편급식이다. 기본소득은 학생만이 아닌 모든 국민에게 급식을 제공한다는 건데 이게 어떻게 보편주의인가.” 

    -복지행정이 난마처럼 얽혀 사각지대, 중복 지원 같은 문제가 발생하니 통폐합 구조조정을 통해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복지수당 가짓수가 많고 복잡하다는 문제는 있다. 하지만 그것과 기본소득은 별개 문제다. 복지행정을 운영하는 데 돈이 많이 든다면 그걸 고치면 되지, 그 비용보다 훨씬 큰 돈이 드는 기본소득을 대안으로 얘기하는 것은 논리가 맞지 않는다. 


    예를 들어 사회간접자본(SOC) 건설 사업을 할 때 방만하게 운영되지 않도록 비용이 들더라도 예비타당성 조사를 해 진짜 필요한 사업에 돈이 들어가도록 하지 않나. 복지행정에 문제가 있다면 이걸 어떻게 간소화, 고도화해 비용을 줄일까를 고민해야지 여기에 문제가 있다고 기본소득을 도입한다면 정부의 존재 이유가 뭔가. 

    송파 세 모녀 사망 사건 이후 행정제도도 많이 좋아지고 있다. 행정비용 문제는 개선하면 된다. 몇 가지 뉴스가 되는 사건으로 마치 행정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처럼 침소봉대하는 경향이 있어 보인다.”

    정작 피해는 취약계층이

    -4차 산업혁명 시대 고용구조 변화가 소득 불평등과 불안정을 가져오므로 모든 시민에게 일정액의 안정적인 소득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그것도 결이 다른 얘기다. 그런 사람들이 생기면 기존 사회보장제도에 넣어 혜택을 주는 노력을 하는 게 맞지, 이들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나머지 대다수 국민에게까지 기본소득을 지급할 이유는 없다. 오히려 취약계층을 위해 써야 할 재원만 부족해진다. 

    4차 산업혁명으로 일자리 패턴이 바뀌고 있다는 것은 맞는 얘기다. 중숙련-중임금 제조업 일자리가 줄고 있다, 저임금 서비스 분야도 늘고 있다. 하지만 판교나 실리콘밸리처럼 고숙련-고부가가치 노동자에 대한 수요는 늘고 있다. 변화하는 시대에 우리가 할 일은 상위소득자부터 하위소득자에게까지 다 주는 기본소득이 아니라, 사회안전망을 더 튼튼히 깔고 교육과 훈련을 통해 시민이 변화하는 노동시장 수요에 부응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돈만 나눠주는 걸로 끝내서는 안 된다. 

    사각지대 노동자는 일반 재정으로 운영하는 실업부조제도를 통해 보호하면 된다. 국민건강보험을 예로 들어보자. 사회보험이지만 사각지대가 없다. 국민이라면 누구나 혜택을 누릴 수 있다. 다만 소득이 낮은 사람은 보험료를 내지 않아도 혜택을 받고 본인 부담금도 면제받을 수 있는데, 이는 일반 재정에서 충당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최근 정부가 추진을 논의한 전 국민 고용보험제도는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덴마크를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자영업자든, 15시간 미만 단시간 근로자든, 택배 노동자든 모든 소득자가 8% 노동시장세(Arbejdsmarkedsbidrag)를 내고 실업, 질병, 육아로 일하지 못하게 될 때 실업급여를 받는다. 직업훈련 비용도 여기서 나온다. 소득이 없다고, 청년이라고 직업훈련과 훈련수당에서 배제되지도 않는다. 

    우리의 경우 국민연금 사각지대는 기초연금으로, 기초생활보장제도 사각지대는 자산 기준과 부양의무자 기준 완화로, 저소득자의 부족한 소득은 근로장려세제(EITC) 강화로 해결하는 게 가능하다. 사회보험이 안 되면 일반 재정을 투입해야지, 막대한 국민세금이 들어가는 기본소득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

    증세 없이는 어불성설

    -각종 기금 통폐합, 조세감면제도 구조조정을 통해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앞서 지적했지만, 모든 국민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할 경우 돈이 어마어마하게 든다. 월 10만 원이면 연간 62조4000억 원, 20만 원이면 124조8000억 원, 30만 원이면 187조2000억 원이다. 사상 최대 슈퍼예산이라는 올해 예산 500조 원의 40% 가까이 되는 큰돈이다. 

    이번에 전 국민 대상 긴급재난지원금 14조 원을 마련하는 데도, 북핵 위협 속에서 국방비에서 1조5000억 원을 삭감하고 국채까지 발행했다. 경기도의 경우 재난관리기금, 재해구호기금, 지역개발기금을 모두 털어 썼고,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소액금융지원 500억 원도 삭감해야 했다. 전 국민에게 월 10만 원, 20만 원, 30만 원을 나눠주려고 매년 62조, 124조, 187조 원을 마련해야 한다면 앞으로 무수히 많은 공공사업, 서비스, 사회보장사업 예산이 삭감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또 현재 시행되는 조세감면제도의 70%는 중산층 이하 저소득층과 중소기업에게 혜택이 가는 것이라고 한다. 의료비 공제, 교육 공제, 연간 소득 7000만 원 이하 월세 공제, 저축 공제, 개인연금 공제, 자녀 공제 등등 대부분이 사회복지성 감면이다. 이런 것들을 한꺼번에 없애는 일도 어렵거니와 사회복지 성격이 강한 감면정책을 없애고 복지효과가 떨어지는 기본소득으로 가는 건 문제다. 공제 항목별로 복지효과를 비교하고 따져봐야 한다.” 

    -일각에서는 국토 보유세를 도입하자고도 한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는 부동산 세금이 너무 높다. 2018년의 경우 부동산 보유세와 거래세를 합한 모든 재산세수가 60조 원에 달한다. 이미 국내총생산(GDP) 대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2배에 가깝다. 게다가 지역가입자의 국민건강보험료도 사실상 재산세다. 그런데 재산세를 또 올린다고? 그것도 2배, 3배, 4배 늘려야 기본소득 예산을 충당할 수 있다. 부작용은 차치하고라도 과연 실현 가능한가.”

    현재 복지 수준 높이는 것도 힘들다

    그는 다시 자동차보험의 예로 돌아왔다. 

    “한국은 의료보장을 제외하면 복지 수준이 자동차책임보험 수준이다. 종합보험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데 에너지를 모을 때인데, 사고도 나지 않고 차를 도난당한 것도 아닌 가입자들에게까지 현찰을 나눠줘버리면 책임보험 수준도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다. 

    아까 기본소득이 현대 복지국가 틀을 허무는 발상이라고 했는데, 상부상조와 사회적 연대의 정신이 담겨 있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어려움에 처할 수 있다. 당장 내가 아니더라도 우리 자식들이 그럴 수 있다. 뜻하지 않게 장애를 갖고 태어날 수도 있고, 사고로 장애를 가질 수도 있으며, 큰 병에 걸릴 수도 있고, 이번 코로나19 사태처럼 천재지변을 당해 실직이나 무급휴직을 할 수도 있다. 

    우선은 이런 사람들에게 충분한 보상을 해줘야지 당장 위험에 빠지지도 않은 사람들에게까지 기본소득을 나눠줘버리면 나와 내 자식의 미래는 어떻게 되겠나. 상부상조와 사회적 연대성에 기반을 둔 복지국가를 탄탄하게 만드는 것이 합리적이고 도덕적인 선택이 아닌가 한다.” 

    -기본소득이 양극화 해소에 기여한다고 하는데. 

    “부자나 가난한 사람, 실직한 사람이나 직장이 있는 사람에게 똑같이 돈을 나눠주는 게 어떻게 양극화 해소에 도움이 되나. 당장 소득이 격감한 사람에게 후하게 돌아가야 하는 게 상식 아닌가.” 

    그는 “기본소득은 아무리 취지와 명분이 그럴듯해 보여도 결국 돈으로 표를 사려는 포퓰리즘 정책”이라고 했다. 

    “아무리 좋은 보편적 사회보장제도를 만들어도 당장 복지급여를 받는 사람은 소수일 수밖에 없다. 기본소득은 푼돈 수준이라도 모두에게 나눠준다는 의미다. 그야말로 유권자의 표를 의식한 정치논리가 아닐 수 없다. 당장 돈을 나눠준다는 데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하지만 이를 위해 눈에 보이지 않는 공공재가 사라지고 부채가 늘어날 것에 대해서는 제대로 말하지 않는다. 우리 재정이 아직 건전하다고 하지만 고령화에 따른 재정건전성 악화는 불 보듯 뻔하다.”
    그는 “국민이 깨어 있어야 한다”고도 했다. 

    “요즘 우파 정치인까지 기본소득을 말하는데 정말 개탄할 만한 상황이다. 스웨덴이 1994년 연금개혁을 할 때 노인과 중장년층이 반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미래 세대를 위해 꼭 해야 하는 개혁이었다. 이때 여야 5개 정당이 모여 합의하기를 ‘선거 쟁점화하지 말자’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총선이 점점 다가와 개혁 반대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하니까 선거 3개월 전 여야 합의로 통과시켜버렸다. 스웨덴 정치인만큼은 못 되더라도, 앞다퉈 포퓰리즘 문을 열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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