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핫 트렌드

2박 3일의 일을 3분 안에 끝내는 사이멀태스킹 시대

첨단 디바이스로 동시 작업하며 안정된 삶을 유지하게 하는 기술 속출, 선택에 따라 달라지는 능력 차이

  • 박소현 한국트렌드연구소 빅퓨처 연구위원 중앙대 디자인학부 강사

    입력2020-02-23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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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etty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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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슈퍼휴먼 트렌드의 한 축인 지적 능력의 발달 가운데 다능(多能)이 있다. 2015년 미국 비영리재단의 강연 플랫폼 TED는 에밀리 와프닉(Emilie Wapnick)의 ‘어떤 사람들에겐 하나의 천직이 없는 이유’라는 강연을 소개했다. 와프닉은 외과의사지만 바이올리니스트 등 꿈이 5개나 있는데 다 할 수 있을까라는 누군가의 물음에 “가능하다”고 답했다. 그가 ‘가능하다’고 한 것은 얇고 넓은 지식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멀티포텐셜라이트(Multipotentialite), 즉 여러 관심사와 창의적인 활동 분야를 폭넓게 아우르는 사람으로서 모든 분야에 능숙하기 때문이다.

    애널리스트보다 훨씬 더 정확한 재테크 프로그램

    더 나아가 슈퍼휴먼 시대는 사이멀태스킹(Simultasking)까지 영역을 확장할 것으로 예측된다. 사이멀태스킹은 동시 작업(Simultaneous Operation)과 멀티태스킹(Multitasking)의 조합어다. 한 사람이 자신에게 필요한 서로 다른 곳에서 실존하며 ‘동시 작업’을 하면서도 사회적으로 안정된 일(work)과 삶(life)을 영위할 때 사이멀태스킹을 한다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사이멀태스킹은 ‘생각한 대로 다능하게, 사회적으로 다방면에 존재하듯 실존하는 자연인’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사이멀태스킹을 위해 필수적인 것은 생활환경에 맞는 적절한 플랫폼과 디바이스다. 자신의 지적 능력 향상도 중요하지만 새로운 기술적 혁신이 이뤄낸 성과들이 우리를 사이멀태스킹 세계로 안내하게 되는 것이다. 

    금융계의 알파고로 불리는 켄쇼(Kensho)는 투자자들에게 사이멀태스킹한 삶을 가능케 하고 있다. 켄쇼는 2013년 대니얼 내들러(Daniel Nadler) 미국 하버드대 경제학 박사가 다양한 인재와 함께 만든 인공지능(AI) 금융 프로그램이다. 사람이 2박 3일 동안 할 일을 켄쇼는 3~10분 만에 처리할 수 있으며, 분석의 양과 질 측면에서도 애널리스트보다 뛰어나 더 정확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 많은 애널리스트가 켄쇼 때문에 이직했으며, 주된 업무 역시 ‘분석’에서 ‘분석 프로그램 개발’로 바뀌었다. 소비자는 켄쇼 덕분에 좀 더 안정적이고 저렴한 투자 제안을 받을 수 있게 됐고, 기업은 양질의 정보 획득은 물론, 비용 절감도 이룰 수 있었다. 

    2014년 골드만삭스는 켄쇼에 투자했으며, 매년 25%씩 수익을 내면서 성장하자 2018년 5억5000만 달러(약 6591억7500만 원)에 켄쇼를 팔았다. 공개 API(Application Programming Interface) 때문이다. 공개 API란 공개된 ‘응용프로그램 개발환경’이라는 의미로,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데 필요한 여러 함수의 집합을 누구나 쓸 수 있도록 공개하는 것을 말한다. 켄쇼의 공개 API를 활용할 수 있게 되면 이 슈퍼휴먼은 3~4일이 소요되는 여러 데이터 분석을 1시간 안에 끝내고 결과를 도출해 새로운 서비스를 단시간 내 저렴한 가격에 소비자에게 제공할 수 있다.



    슬랙 전의 협업과 후의 협업

    2013년 개발된 클라우드 기반의 팀 협업 프로그램 슬랙(Slack)은 창업자인 스튜어트 버터필드(Stewart Butterfield)가 지금은 파산한 이전 회사에서 온라인게임을 개발할 당시 쓰던 회사 내부 프로그램을 피벗(pivot·기존 사업 분야에서 새로운 영역으로 방향 전환을 하는 것)하면서 상용화한 것이다. 

    많은 사람이 협업 역사가 기원전과 기원후처럼 슬랙 전과 후로 나뉜다는 말을 자주 한다. 그만큼 협업에서 사이멀태스킹한 삶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슬랙이 이 같은 평가를 받는 이유는 마더 테레사급의 ‘포용력’ 때문이다. 예를 들어 모바일 프로그램을 만들고자 엔지니어, 디자이너, 기획자 이렇게 셋이 협업한다면 수용해야 할 프로그램과 운영체제(OS)가 최소한 5개는 된다. 컴퓨터 OS로는 MS, 애플, 리눅스를, 모바일 OS로는 안드로이드, 애플을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쉽게 말하면 MS 워드로 작성한 문서가 한글 프로그램에서도 열리는 등 100% 호환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 쉽지 않은 일을 슬랙이 실현했다. 슬랙 안으로 끌어들여서 쓸 수 있는 프로그램을 사용자들의 요청에 따라 최대한 빠르게 반영함으로써 슬랙 사용자가 협업 업무에서 슬랙 사용 전보다 훨씬 사이멀태스킹하게 일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디바이스 선택에 따라 능력 격차 심해져

    일과 삶의 균형을 언급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것 가운데 하나가 여행이다. 그러나 현대인에게 여행은 휴가 때 잠시 즐길 수 있는 환상처럼 짧은 기간에 불과하다. 2009년 개봉한 영화 ‘아바타(Avatar)’의 남자 주인공처럼 움직이는 것도, 걷는 것도 여의치 않은 사람에게 여행은 꿈같은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런 문제를 실시간 영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여행 플랫폼과 디바이스를 일본 항공사 아나(ANA)홀딩스가 첨단전자기기 박람회(CEATEC 2019)에서 소개했다. 아나홀딩스의 원격조종 로봇 서비스 플랫폼 ‘아바타인(avatar-in)’과 아바타 로봇 ‘뉴미’(newme)’가 그것으로, 사용자가 아바타인으로 가고 싶은 여행지에 설치된 뉴미를 원격조정하면 실시간으로 그곳의 풍광을 보며 쇼핑과 대화도 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가상현실(VR)은 실시간이 아닌 촬영된 가상공간을 보여주고, 구글 지도 역시 3~6개월 전 이미지를 구현해내는 것에 비하면 획기적인 플랫폼과 디바이스라고 할 수 있다. 아나홀딩스는 올해 4월 서비스를 시작해 여름까지는 1000대를 배치하는 게 목표라고 한다. 만약 프랑스 파리에 설치된다면 사용자는 점심시간에 잠시 파리로 아바타 여행을 가 샹젤리제 거리에서 쇼핑한 물건을 배송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의 능력을 증강시키는 새로운 플랫폼과 디바이스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그것들을 능숙하게 사용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은 시간·공간·관계를 활용하는 능력 면에서 큰 차이가 발생할 것이다. 사이멀태스킹은 주변의 플랫폼과 디바이스를 능숙하게 활용해 다재다능한 현대판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되게 하는 새로운 조류다. 

    아이언맨 또는 울버린처럼 극강의 능력 향상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값비싼 로봇 슈트나 기괴한 주사약이 당장 필요할 수도 있다. 반면 사이멀태스킹은 일상의 행복과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지향하며, 태어난 그대로의 자연인 모습으로 살고자 하는 이들도 가능한 인간 능력 증강법이다. 미래에는 일과 삶에 어떤 과학기술을 활용하느냐에 따라 각기 다른 ‘인간종의 패러다임 전환’을 겪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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