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궤도 밖의 과학

배트(박쥐)보다 강한 배트맨의 생존력

과학의 눈으로 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 과학 커뮤니케이터 궤도 nasabolt@gmail.com

배트(박쥐)보다 강한 배트맨의 생존력

베트맨2 [PolyGram Filmed Entertainment]

베트맨2 [PolyGram Filmed Entertainment]

지난해 말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에서 원인 불명의 집단 폐렴이 발생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2009년 신종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이후 여섯 번째로 국제적 공중보건 비상사태를 선포했으나 상황은 아직 나아지지 않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다.

2018년 한국인의 사망원인통계에 따르면 암으로 8만 명가량 사망했으며, 폐렴으로 사망한 환자 수는 2만3000명이다. 사망자 수만 비교하면 오히려 암이나 일반 폐렴이 더 위험하건만 코로나19에 대한 두려움이 훨씬 큰 분위기다. 아직 코로나19가 어떤 녀석인지 잘 모르기 때문이다. 정체를 제대로 파악하는 데는 아마 한참의 시간이 걸리겠지만, 현 상황에서 드러난 과학적 사실만으로 최대한 긴급하게 파헤쳐보자.


멸종위기 천산갑이 중간 숙주?

박쥐(왼쪽), 천산갑. [영산강유역환경청 제공]

박쥐(왼쪽), 천산갑. [영산강유역환경청 제공]

1월 세계적인 의학저널 ‘란셋’에 논문 한 편이 공개됐다. 코로나19 감염자 41명에 대한 중국 의료진의 분석 결과로, 우선 전원에게서 폐렴 증상이 나타났다. 간단히 정리해보면 주요 증상으로는 발열이나 기침이 많고, 근육통이나 피로감을 느낀 환자도 있었다. 발병 후 8일이 지나면 절반 이상이 호흡 곤란에 빠졌고, 치료 중 사망한 사람이 41명 중 6명이었다. 바이러스 복제를 방지하는 항바이러스제, 세균에 의한 2차 감염을 막는 항생제, 염증을 줄여주는 스테로이드를 사용해봤으나, 그나마 스테로이드가 일부 효과가 있었을 뿐 근본적인 치료 효과를 보인 방법은 아쉽게도 없었다. 

코로나19는 처음에 어떻게 시작됐을까. 지진이 나면 최초로 발생한 지점을 정확히 찾아내는 일이 핵심인 것처럼, 바이러스 역시 숙주나 진원지를 찾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우한시에는 수산시장이 하나 있는데, 생고기나 생선을 파는 도매시장이다. 공개된 확진 날짜와 수산시장 방문 여부를 비교해보면 시장에서 감염자가 많이 발생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곳에서 판매하는 야생동물 때문에 시작됐을까. 

코로나19가 야생동물로부터 유래됐을 것이라는 가설에는 동의하지만, 수산물 도매시장이 바이러스의 유일한 진원지가 아닐 수도 있다. 이는 미국과학진흥협회(AAAS)가 발행하는 과학전문지 ‘사이언스’와 인터뷰에서 전염병 전문가인 대니얼 루시 미국 조지타운대 교수가 밝힌 견해다. 환자의 30%가 수산시장과 아무런 관련이 없으며, 감염과 증상이 나타나는 사이 잠복기가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최초 감염이 일어난 시점은 좀 더 과거일 것이다. 이미 전파되는 과정에서 사람이 많이 모이는 시장을 중심으로 집단 발병했을지도 모른다는 얘기다. 현재로서 숙주는 아마도 박쥐고, 중간숙주로 천산갑이 대두되고 있다. 천산갑은 등껍질을 가진 멸종위기 포유류로, 이것이 사람에게 어떻게 바이러스를 전파했는지는 미지수다.




메르스보다 사스에 가까워

(왼쪽부터)현미경으로 촬영한 사스의 코로나바이러스, 현미경으로 촬영한 메르스의 코로나바이러스 , 현미경으로 촬영한 코로나19 현미경. [CDC Centers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 Wikimedia Commons]

(왼쪽부터)현미경으로 촬영한 사스의 코로나바이러스, 현미경으로 촬영한 메르스의 코로나바이러스 , 현미경으로 촬영한 코로나19 현미경. [CDC Centers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 Wikimedia Commons]

바이러스 얘기가 나오면 늘 헷갈리는 녀석이 세균이다. 둘 다 작은 미생물이지만, 크기부터 확연히 다르다. 세균이 아파트 단지 크기라면, 바이러스는 단지 내 놀이터에 있는 자갈 정도 수준이기에 아마 세균 처지에선 비교당하는 것 자체가 자존심 상할 테다. 바닷물 한 방울을 손등에 올리면 그 안에는 2억 마리의 바이러스가 포함돼 있으며, 밝혀진 바이러스만 1400여 종이지만 모르는 종이 더 많다. 

인류를 위협하는 바이러스가 나타날 때마다 우리는 백신이라는 물질을 만들어내고자 노력하는데, 이 과정이 절대 쉽지 않다. 백신을 만들려면 최소 수개월에서 수년의 시간적 여유가 필요한데, 그사이 바이러스는 끊임없이 변이를 일으키며 살아남는다. 특히 자체 복구시스템을 갖춘 DNA 바이러스와 달리 RNA 바이러스는 오류가 발생해도 수정을 하지 않기 때문에 돌연변이가 발생할 확률이 훨씬 높다. 

허가받은 공장에서 제품을 찍어내면 가끔 불량품이 만들어지지만, 공장을 불법으로 임대해 설계도 없이 마구잡이로 생산한다면 제대로 된 제품은 거의 나오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 도대체 뭐가 만들어질지 몰라 제대로 대비하기 어려운 것이다. 즉 몇 년 전 발생한 특정 바이러스의 백신을 완성한다 해도 투약 시점에 이미 그 바이러스는 유행이 지났거나 전혀 다른 형태로 바뀌었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미 몇몇 코로나바이러스는 여러 차례 이러한 과정을 거쳤고, 강력했던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나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의 치료제 역시 마찬가지 이유로 제대로 개발되지 못했다. 계속 바뀌는 바이러스로 개발 주기가 변이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고생한 것에 비해 시장성도 없으니 결국 개발을 중단하게 되는 것이다. 

이번 코로나19는 메르스보다는 사스와 더 유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파 속도로만 보면 사스보다 빠르고, 8개월 동안 중국에서 사스로 발생한 사망자 수를 3주 만에 넘어섰다고 한다. 사스 발생 당시에는 사향고양이와 접촉을 피하라 했고, 메르스 때는 낙타를 조심하라고 했다. 하지만 결국 두 전염병 모두 박쥐로부터 시작됐음이 밝혀졌다.


5년 전 예측된 상황

코로나19 최초발생지역 확진자발생국가 의심자발생국. [위키피디아]

코로나19 최초발생지역 확진자발생국가 의심자발생국. [위키피디아]

그런데 왜 하필 박쥐인가.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날아다닌다는 점이다. 바이러스처럼 위험한 것을 열심히 묻히고 여기저기 싸돌아다닌다. 일단 박쥐도 바이러스를 접했을 때 아파서 쓰러지면 전염되지 않고 참 좋겠는데, 놀랍게도 이들은 웬만해선 괜찮다. 기초 체온(39~41도)이 높아 바이러스가 증식하기 어렵다는 가설이 있고, 항바이러스 물질을 꾸준히 만들어낸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바이러스와 공존하는 삶이 계속되면서 생존이 가능하게 진화한 것이다. 그리고 박쥐가 달고 다니는 수많은 바이러스 가운데 일부는 사람이 옮을 수 있는 인수공통감염병으로 새롭게 변화했다. 

위기의 순간, 과학자들은 놀았을까. 아니, 이제부터 그들이 한 엄청난 일을 들려주겠다. 코로나19를 범죄자로 비유해보자. 우선 사건이 벌어지자마자 범죄자가 누군지 정체를 바로 알아냈고, 이어서 범죄자의 지문이나 침 같은 정보를 밝혀냈다. 유전자 염기서열을 파악한 것인데, 쉽게 말해 검문을 빨리할 수 있게 된 셈이다. 심지어 유사 바이러스 염기서열까지 싹 파악해 가발을 쓰거나 옷을 갈아입는 변장에도 바로 대응할 수 있도록 준비했다. 이를 통해 정확한 진단법을 개발했으며, 바이러스를 분리해 감염 경로까지 확인, 범죄자가 어디를 통해 침입해 범죄를 저지르는지도 확실히 찾아냈다. 이 모든 과정이 고작 2주 안에 끝났다. 그런데 이것보다 더 대단한 일도 있다. 

2015년 국제학술지 ‘네이처 메디슨’에 매우 중요한 논문이 발표됐다. 박쥐 사이에서 돌고 있는 코로나바이러스가 사스와 유사한 형태로 인간에게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내용인데, 현 상황을 당시 예측한 것이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박쥐로부터 코로나바이러스를 추출해 돌연변이를 만들었고, 그 결과를 쥐에 접종해 감염시켰다. 다음에는 현재 보유한 치료제를 투여해봤는데, 소용없는 경우가 생기더라. 우리는 앞으로도 이런 경우를 꾸준히 반복적으로 경험할 가능성이 크다. 사스와 비슷한 전염병이 다시 인류에게 발생할 위험성이 높다는 점을 실험적으로 확인했으니, 이제 우리는 사전에 조심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감시하고 개선된 치료제를 열심히 만들어야 한다. 

이미 우리는 5년 전 코로나19의 출현을 예측했다. 그리고 여전히 백신을 만들기 어렵다는 점을 이해하고 있으며, 앞으로 꾸준히 재발하고 감염될 것도 안다. 예언이나 추측이 아니다. 과학적 실험의 결과며, 역사에 의한 복습이다. 그럼 이제부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인간이 박쥐보다 강한 이유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이미 공포를 느낄 수 있다. 두려움은 인간이 자신을 보호하고자 만든 것이며, 아주 오래전부터 호모사피엔스의 목숨을 구해온 고마운 감정이기도 하다. 공포를 느끼는 순간 호흡과 맥박이 빨라지는 이유는 산소와 피를 충분히 공급해 빠르게 움직일 준비를 하기 위해서다. 동공이 커지는 것 역시 놀라서가 아니라 시야를 넓히는 과정이며, 이 모든 것은 우리 뇌에서 분비되는 아드레날린과 노르에피네프린이라는 호르몬 덕분이다. 우리는 늘 하나의 원대한 목표인 생존을 위해 움직여왔으며, 오래전 수많은 겁쟁이 덕분에 인류는 이렇게 살아남았다. 

환자가 직접 내뱉은 비말(飛沫)만 조심하면 되는지, 더 작아 멀리 퍼지고 공기 중 감염도 가능한 에어로졸까지 조심해야 하는지 확실한 건 아직 모른다. 하지만 무턱대고 겁먹을 필요는 없다. 한국은 메르스 사태를 겪으며 의학적 백신 대신, 이미 문화적 백신을 제대로 맞았다.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대응하고 있으며, 이번 코로나19 위기도 금방 익숙하게 헤쳐나갈 것이다. 

여러 경로를 통해 당부하는 전문가의 말처럼 마스크를 착용하고 손을 깨끗하게 유지하자. 할 수 있는 것부터 꾸준히 해나가다 보면 결국 지나갈 것이다. 박쥐(배트)는 정말 강하다. 벌써 여러 번 인류를 위기에 빠뜨렸다. 하지만 배트맨은 더욱 강하다. 그가 여전히 강한 이유는 무시무시한 박쥐로부터 영감을 얻었기 때문이 아니라, 끝까지 살아남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조심하고 경계하되, 익숙해지고 버텨야 한다. 전자는 우리의 적인 바이러스, 후자는 같은 편인 우리 모두에게 하고 싶은 말이다.


궤도_연세대 천문우주학과 학부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한국천문연구원 우주감시센터와 연세대 우주비행제어연구실에서 근무했다. ‘궤도’라는 예명으로 팟캐스트 ‘과장창’, 유튜브 ‘안될과학’과 ‘투머치사이언스’를 진행 중이며, 저서로는 ‘궤도의 과학 허세’가 있다.






주간동아 2020.02.14 1226호 (p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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