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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욱의 술기로운 생활

생맥주 서버 렌털에 고급 명절선물까지

‘하이볼 공습’에 日 맥주가 살아남는 법

생맥주 서버 렌털에 고급 명절선물까지

[shutter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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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세법 개정안이 발표됐다. 내년부터 비교적 고가였던 국산 캔맥주와 크래프트맥주 가격이 인하되고 비교적 저가였던 병맥주, 페트병맥주, 생맥주 가격은 다소 인상될 것으로 전망된다. 주세법을 개정한 이유는 ‘4캔 1만 원’ 수입맥주의 공세에 맥을 못 추는 국산맥주를 지원하기 위함으로 보인다. 

그런데 한국보다 더 심각하게 국산맥주시장이 흔들리는 국가가 있다. 이웃나라 일본이다. 한국에서 가장 잘 팔리는 맥주를 생산하는 일본이 정작 자국 시장에서는 지속적인 소비 감소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것. 2003년 일본 주류시장에서 맥주 점유율은 68%였는데, 2016년에는 맥주 유사음료까지 포함해 60%로 줄어들었다. 

일본 주류시장에서 맥주 점유율이 낮아지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먼저 인구가 감소하고, 회식과 같이 단체로 술을 마시는 시장까지 작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1980년대부터 과음을 경계한 일본 사회지만, 최근 들어 그 정도가 더욱 강화되고 있다. 그런데 맥주 자리를 뺏은 주인공은 흥미롭게도 위스키다. 그것도 수입산이 아닌 일본산 위스키다. 위스키를 비롯한 증류주의 시장점유율은 2003년 7%에서 2016년 15%로 껑충 뛰었다. 맥주가 잃어버린 영토를 위스키 등 증류주가 차지한 것이다. 

100년 전 처음 나온 일본 위스키는 2000년대 들어 해외에서 좋은 평가를 받기 시작한다. 2001년 닛카 위스키의 ‘싱글 캐스트 10년’이 월드 위스키 어워드(World Whiskies Awards)에서 최고 점수를 받았고 2006년 ‘가루이자와 퓨어 몰트’, 2015년 ‘야마자키 싱글 몰트 셰리 캐스트’, 그리고 최근에는 산토리 스피릿의 ‘히비키 21년’이 위스키 바이블(Whisky Bible)에서 세계 최고 위스키로 선정됐다.


위스키가 맥주시장 빼앗아

일본 위스키는 2000년대 들어 해외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닛카 위스키는 1934년 설립된 일본 위스키 제조사로, 위스키 관련 세계대회에서 여러 번 수상한 바 있다. [shutterstock]

일본 위스키는 2000년대 들어 해외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닛카 위스키는 1934년 설립된 일본 위스키 제조사로, 위스키 관련 세계대회에서 여러 번 수상한 바 있다. [shutterstock]

물 들어올 때 노 젓는 법. 2000년 이후 일본 위스키는 좋은 평가에 힘입어 투 트랙의 마케팅을 펼쳤다. 고급 소비자층과 더불어 일반 대중을 적극 노렸다. 특히 위스키 도수를 낮춰 편안하게 마실 수 있는 하이볼(highball·위스키 탄산수)에 대한 적극적인 마케팅으로 ‘위스키는 마시기 힘든 술’이라는 편견을 깨며 여성 소비자에게도 크게 어필했다. 이로써 하이볼은 맥주시장을 위협하는 강적으로 떠올랐다. 




산토리 위스키의 ‘가쿠 하이볼’(왼쪽). 위스키로 제조한 하이볼이 인기를 끌자 아예 캔으로도 출시됐다. [산토리 홈페이지]

산토리 위스키의 ‘가쿠 하이볼’(왼쪽). 위스키로 제조한 하이볼이 인기를 끌자 아예 캔으로도 출시됐다. [산토리 홈페이지]

하이볼의 유래는 다양한데, 그중 대표적인 것이 미국 서부 개척시대 때 시작됐다는 설이다. 기차가 역으로 진입할 때 빨간 공이 위로 올라가는 신호가 쓰였는데, 기차가 정차하기 전 역무원들이 위스키에 소다를 넣어 재빨리 마시고 기차로 달려간데서 하이볼이라는 용어가 유래했다. 이것이 일본으로 건너가서는 위스키에 소다와 레몬 등을 넣은 위스키 칵테일로 진화했다. 하이볼은 생맥주와 닮았다. 짜릿한 탄산과 청량감을 강점으로 하고, 알코올 도수가 5도 전후라는 점에서 그렇다. 일본 사람들은 주점에서 ‘도리아에즈 비루’(とりあえず ビ-ル·일단 맥주)라고 주문하는 습관이 있는데, 최근에는 이것이 ‘도리아에즈 하이볼’로 바뀌고 있다고 한다. 

참고로 일본 사람들이 얼음과 탄산을 넣어 위스키를 즐기는 이유는 체내 알코올 분해효소가 적기 때문이다. 체내 알코올 분해효소가 많은 서양인은 여전히 위스키나 증류주를 스트레이트로 마시는 것을 선호한다. 한국인도 서양인에 비해 알코올 분해효소가 적은 편이지만, 독주에 물을 섞어 마시진 않는다. 그 대신 한국에서는 수분이 듬뿍 함유된 해장국 문화가 발달했다.


산토리·기린의 ‘가정용 생맥주 서버’, 인기몰이 중

기린맥주가 각 가정에 렌털 형식으로 제공하는 생맥주 서버 ‘홈 탭’. [기린맥주 홈페이지]

기린맥주가 각 가정에 렌털 형식으로 제공하는 생맥주 서버 ‘홈 탭’. [기린맥주 홈페이지]

그렇다면 굴지의 일본 맥주는 어떤 길을 택했을까. 위스키와 하이볼의 공습을 순수하게 수용하거나, 정부의 지원에 기댔을까. 바로 여기에 한국 맥주가 참고할 만한 대목이 있다. 

일본 맥주업계는 ‘혼술’ ‘홈술’ 시장을 개척하고자 노력했다. 대표적인 예가 ‘가정용, 휴대용 생맥주 서버’ 개발이다. 음식점과 주점에서 생맥주가 팔리지 않자, 생맥주시장을 가정 및 야외로 옮기고자 한 것이다. 

산토리맥주가 집중한 것은 크리미(creamy)한 거품. 처음엔 가스 서버를 만들었는데, 가정에서 사용하기 위험하다는 지적이 나오자 건전지 타입으로 개량했다. 하지만 건전지를 갈아 끼우는 것도 번거롭다는 의견에 따라 손가락으로 방아쇠를 잡아당기듯 크림 생맥주를 뽑아내는 휴대용 서버도 함께 내놓았다. 이 휴대용 서버의 인기에 힘입어 맥주시장이 쪼그라드는 와중에도 올해 산토리맥주의 ‘프리미엄 몰츠’는 전년 대비 10% 이상 증산되고 있다. 휴대용 서버도 8월 말까지 120만 개를 생산할 예정이었으나, 최근 170만 개로 목표치를 상향 수정했다. 

산토리맥주가 캔맥주에 탈부착하는 간단한 서버를 만들었다면, 기린맥주는 좀 더 본격적인 생맥주 서버를 가정에 제공한다. 하지만 가정에서 생맥주 서버를 사용하려면 가스 충전 등 번거로운 일이 많기 때문에 기린맥주는 모든 관리를 회사가 해주는 ‘생맥주 서버 렌털 사업’을 개시했다. 한국의 정수기 렌털 사업과 유사한 형태다. 렌털 요금은 월 7500엔(약 8만 원)이고, 맥주는 라거, 페일 에일, 바이젠 등에서 고를 수 있다. 캔맥주가 베이스가 되는 산토리 생맥주보다 훨씬 더 생맥주다운 느낌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기린맥주는 2017년 가을부터 시작한 시범 사업을 마무리하고 4월 렌털 서비스를 정식 론칭했다. 시범 사업에 참여한 1800여 세대 중 80% 넘는 1500여 세대가 재렌털을 희망했다. 아직은 연간 3억 엔(약 32억 원)의 작은 규모지만, 기린맥주만의 차별화와 고급화를 이뤘다는 점에서 유의미하다. 이 회사는 자사 맥주가 렌털 서비스를 통해 맥주 탱크에서 각 가정의 맥주잔으로 이어진다는 의미로 ‘Tank to Glass’를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다시 말해 ‘포장에서 식탁까지’ 기린맥주가 책임진다는 뜻이다.


회사에서도 마실 수 있는 무알코올 맥주

삿포로맥주의 홋카이도 한정판 제품(왼쪽)과 생수병 디자인과 유사한 산토리맥주의 무알코올 맥주. [삿포로맥주 홈페이지, 산토리맥주 홈페이지]

삿포로맥주의 홋카이도 한정판 제품(왼쪽)과 생수병 디자인과 유사한 산토리맥주의 무알코올 맥주. [삿포로맥주 홈페이지, 산토리맥주 홈페이지]

본에서는 추석과 유사한 ‘오봉(お盆)’이라는 명절에 많은 선물을 주고받는다. 그런데 오봉 선물로 인기 있는 것이 맥주 선물세트다. 아사히맥주는 2010년 이후 이 선물세트에 프리미엄 성격을 더하고자 ‘맥주의 생명은 신선도에 달렸다’는 슬로건 아래 ‘공장에서 생산 후 3일 내 배송’을 약속하고 있다. 

일본 맥주가 또 하나 추구하는 것이 로컬, 즉 지역성 강조다. 삿포로맥주는 홋카이도 맥주 공장에서 나온 홋카이도 한정판을 출시했다. 기린맥주는 전국 9개 공장에서 나오는 맥주에 각각의 지역명을 붙였다. 또 국산 홉을 사용하는 맥주에는 해당 홉 생산지 이름을 제품명에 넣었다. 제품명에 지역성을 드러냄으로써 소비자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산토리맥주의 휴대용 맥주 서버. 미세한 초음파가 크리미한 맥주를 만들어낸다. [산토리맥주 홈페이지]

산토리맥주의 휴대용 맥주 서버. 미세한 초음파가 크리미한 맥주를 만들어낸다. [산토리맥주 홈페이지]

무알코올 맥주는 맥주를 마시고 싶지만 마실 상황이 아닐 때 고육지책으로 마시던 음료다. 일본에서는 주로 골프장에서 무알코올 맥주가 인기다. 그런데 이제는 무알코올 맥주가 직장에서도 마실 수 있는 음료가 됐다. 기존 무알코올 캔맥주는 누가 봐도 맥주로 보였기에 ‘감히’ 회사에선 마실 수 없었다. 이에 산토리맥주는 생수병과 유사한 디자인의 페트병을 도입했다. 지하철이나 산책로에서 마셔도 전혀 어색하지 않도록 한 것이다. 역발상으로 새로운 시장을 만든 사례라고 평가할 수 있다. 

위스키의 부상에 맞서 일본 맥주는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계속해서 선보이며 위기를 기회로 만들고 있다. 기성 제품의 시장점유율은 낮아지는 추세지만, 개성 있는 프리미엄 제품은 꾸준한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새로운 발상이라면 신규 시장을 얼마든지 개척할 수 있다는 것을 일본 맥주가 보여주는 셈이다. 한국 맥주가 주류세 개편안에만 기대지 말고 새로운 도전에 나서주길 기대해본다.






주간동아 2019.06.21 1194호 (p64~67)

  • 주류문화 칼럼니스트 blog.naver.com/vegan_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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