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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욱의 술기로운 생활

한국 와인이 부활한다

포도 당도 높이기 위한 농부들의 ‘사투’…  호텔 레스토랑에서도 취급

한국 와인이 부활한다

정통 샴페인 제조 방식으로 생산된 오미나라의 오미로제 스파클링 와인. [사진 제공 · 오미나라]

정통 샴페인 제조 방식으로 생산된 오미나라의 오미로제 스파클링 와인. [사진 제공 · 오미나라]

10여 년 전 외국 손님과 호텔에서 식사를 한 적이 있다. 이왕이면 국산 와인을 대접하고 싶어 소믈리에에게 물었는데 의외의 대답을 들었다. 국산 와인은 저렴해 전혀 취급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해외에서 와인 원액을 벌크로 수입해 국내에서 병입(甁入)한 뒤 출시하는 것이 당시 국산 와인의 현실이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게다가 와인 맛도 음식과 어우러짐을 고려하기보다 그저 단맛만 추구했다. 

하지만 최근 국산 와인이 새롭게 도약하고 있다. 최고급 호텔에서 취급하는 국산 와인도 점차 늘고 있다. 한국 와인산업에 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걸까.


국산 와인과 다른 ‘한국 와인’

국산 와인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1970년대다. 해태주조, OB 등에서 와인을 적극적으로 생산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독일에서 리슬링(Riesling) 와인을 맛보고 우리도 만들자고 지시했던 것이다. 비옥한 땅에는 곡식을, 척박한 땅에는 포도를 심어 와인을 생산하자는 ‘전략’ 하에 경북 영천, 포항, 경산 일대에 포도밭이 조성됐고 OB가 ‘마주앙’ 등을 출시했다. 1980년대 들어 국산 와인은 호황의 길을 걸었다. 그러나 1990년대 수입 자유화로 외국산 와인과의 경쟁이 심화하자 국산 와인은 점차 자취를 감췄다. 수입 와인은 해당 와인이 생산된 곳의 환경, 역사, 품종, 어울리는 음식 등과 함께 소개됐지만, 국산 와인은 그저 박리다매로 팔 뿐 마케팅이 부족했다. 결국 국내에서는 와인을 발효·숙성시키는 것을 포기하고 해외에서 원액을 벌크로 들여와 병입해 판매했다. 

국산 와인은 2000년대 초반부터 다시 기지개를 켰다. 재배한 포도로 와인을 직접 만드는 ‘와이너리형’ 농가가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기술이 부족했다. 무엇보다 직접 재배한 포도의 당도가 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당도가 낮으면 알코올 도수가 낮아진다. 알코올 도수가 낮은 제품은 맛이 덜해 고가에 팔 수 없다. 일부 와인 전문가는 “한국은 와인 생산의 불모지”라고 선언했다. 그 나름 타당한 이유가 있었다. 일조량이 풍부한 프랑스, 이탈리아와 달리 한국은 비가 자주 내린다. 물을 머금는 점토질 토양이라 수분이 많은 점도 와인용 포도 재배에 불리하게 작용한다. 포도 열매에 수분이 많아져 당도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10년 전부터 불리한 환경을 극복하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먼저 명칭부터 정리됐다. 예전에는 한국에서 만든 와인을 모두 ‘국산 와인’이라고 불렀다. 수입산 원액을 국내에서 병입한 제품도 국산 와인으로 분류됐다. 이 점을 해결하고자 와인 생산자들은 ‘한국 와인’이라는 용어를 새로 만들었다. 한국에서 재배한 포도로 만든 와인을 한국 와인이라 부르기로 한 것이다. 

당도가 낮은 포도 품종에 대한 보완책도 찾아냈다. 그중 하나가 와인 원액을 얼려 수분을 제거하는 것. 물은 0도에서 얼지만 알코올은 -114도에서 언다. 어는점 차이를 이용해 먼저 동결된 수분을 제거하면 알코올 도수가 높은 와인을 만들 수 있다. 포도 자체를 반건조 상태로 만들어 수분을 제거하는 방법도 있다. 이렇게 하면 당도가 기존 포도보다 20% 이상 높아진다.


150여 개 와이너리에서 700여 종 생산

점점 다양해지는 한국 와인. 한글 캘리그래피를 넣는 등 디자인에서도 한국적 정체성이 드러난다. [사진 제공 · 전통주갤러리]

점점 다양해지는 한국 와인. 한글 캘리그래피를 넣는 등 디자인에서도 한국적 정체성이 드러난다. [사진 제공 · 전통주갤러리]

수입 와인과 차별점도 강조해나갔다. 수입 레드 와인이 떫은 맛, 즉 타닌을 중시한다면 한국 와인은 ‘우리 농산물’이라는 장점을 살려 신선하다는 느낌을 주려 애썼다. 디자인도 과거 천편일률적인 모습에서 벗어나 한글 캘리그래피를 넣는 등 한국 고유의 느낌을 살렸다. 

국내 와이너리 농부들의 ‘좋은 와인’을 향한 사투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수분 섭취를 최대한 적게 하면서도 일조량을 높이고자 포도나무에 비닐을 씌우고 바닥에 반사물질을 깔아놓는다. 포도가 잘 자라는 사질토를 찾아 산기슭에 포도나무를 심은 와이너리도 있다. 벌레의 활동이 최대한 덜한 새벽에 포도를 수확하기도 한다. 결국 농업은 자연을 극복해내는 일이라는 것을 와이너리에서 깨닫게 된다. 


경북 문경 오미나라의 프리미엄 증류주 ‘고운달’. [사진 제공 · 명욱]

경북 문경 오미나라의 프리미엄 증류주 ‘고운달’. [사진 제공 · 명욱]

이러한 노력에 시장이 서서히 반응했다. 미쉐린 3스타를 보유한 신라호텔 ‘라연’과 그랜드하얏트호텔 ‘테판’에서 한국 와인을 취급하기 시작했다. 국가적 행사의 만찬주로 한국 와인이 선정된 것도 좋은 계기가 됐다. 2012년 서울 핵안보정상회의 때는 경북 문경의 오미자 스파클링 와인 ‘오미로제’가, 2018년 이방카 트럼프가 방한했을 때는 충북 영동 ‘여포의 꿈’이 만찬주로 쓰였다. 2016년 대한민국 우리술품평회 과실주 부문에서는 한국 와인 ‘그랑꼬또 청수’가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무엇보다 전통주와 지역특산주의 인터넷 판매가 가능해지면서 많은 소비자가 한국 와인을 즐겨 구매하게 됐다. 최정욱 광명동굴와인연구소 소장에 따르면 전국 150여 개 와이너리에서 700종 이상의 한국 와인이 생산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스토리와 의미가 있는 우리 와인

충북 영동와인 와이너리 ‘여포농장’에서 잘 익어가는 포도. [사진 제공 · 여포와인농장]

충북 영동와인 와이너리 ‘여포농장’에서 잘 익어가는 포도. [사진 제공 · 여포와인농장]

일본도 한때 자국산 와인을 아류로 취급했다. 단맛 위주의 단순한 와인이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2010년과 2013년 자국 포도인 고슈(甲州·Koushu)와 MBA(Muscat Bailey A) 품종을 국제와인기구(International Organization of Vine)에 등록하면서 ‘일본 와인(Japanese Wine)’을 적극적으로 알리기 시작했다. 일본은 자국 와인이 프랑스, 이탈리아 요리가 아니라 일식(日食)과 잘 어울린다고 강조한다. 이 전략이 맞아떨어졌다. 프랑스, 이탈리아 음식보다 일식시장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이제 일본 내 최고급 레스토랑들은 일본 와인을 꼭 비치해놓고 있다. 일본항공과 ANA항공은 일등석 탑승객들에게 일본 와인을 제공한다. 산토리, 기린 등 일본 주류 대기업도 병당 5만~10만 원짜리 고가 와인을 출시하고 있다. 

한국 와인은 어떤 소비자에게 소구력이 있을까. 필자는 ‘가성비’를 따지거나 고급 와인을 즐기는 이들이 한국 와인의 주요 고객은 아니라고 본다. 그보다는 스토리와 의미가 있는 제품을 선호하는 소비자에게 한국 와인이 어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농부가 1년 내내 정성 들여 키운 포도로 만든 와인을 즐긴다는 것은 단순히 술을 마시는 행위를 넘어 와인을 빚은 사람과 직접 소통할 수 있다는 차별성을 가진다. 다만 한국 와인은 저렴한 칠레 와인보다 비싸고, 디자인 면에서 프랑스 와인보다 부족하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있다. 앞으로 한국 와인이 더욱 발전해 많은 이로부터 사랑받기를 기대해본다.


방문할 만한 추천 국내 와이너리
다양한 와인 맛보고 ‘나만의 와인’ 만들자!
[사진 제공 · 명욱]

[사진 제공 · 명욱]

경기 파주 산머루 와이너리 

지하 17m 깊이의 ‘와인터널’에서 와인을 숙성시킨다. 연중 15도를 유지하는 이 와인터널은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다. 직접 머루를 짜 와인을 만들어볼 수도 있다. 산머루 따기, 산머루잼 만들기 등 체험 프로그램도 마련돼 있다. 

주소
경기 파주시 적성면 객현리 67-1


[사진 제공 · 예산 사과 와인]

[사진 제공 · 예산 사과 와인]

충남 예산 사과 와인 

축구장 2배보다 더 큰 농장에서 재배한 사과로 아이스와인 스타일의 달콤한 와인을 생산한다. 와이너리를 견학할 때 사과 와인을 증류시킨 사과 브랜디를 오크통에서 직접 뽑아준다. 사과잼  ·  사과파이 만들기, 트랙터 타고 와이너리 돌기 등 체험 프로그램도 마련돼 있다. 20인 이상이면 와이너리에서 식사도 가능하다. 

주소 충남 예산군 고덕면 대몽로 107-25


[사진 제공 · 명욱]

[사진 제공 · 명욱]

경북 문경 오미나라 

국내에서 최고가 와인을 생산하는 곳. 2012년 서울 핵안보정상회의 때 사용된 ‘오미로제’는 병당 가격이 10만 원에 육박한다. 이 와인을 증류한 오미자 브랜디 ‘고운달’은 병당 가격이 36만 원을 호가함에도 불구하고 인기가 상당히 높다. 문경 농가와 계약 재배한 오미자만 사용하며 와인 제조에는 3년, 브랜디 제조에는 6년이 소요된다. 오미자 와인과 브랜디를 시음하고 오미자밭 투어도 할 수 있다. 문경새재 주변 식당에서 맛볼 수 있는 오미자 삼겹살도 별미다. 

주소 경북 문경시 문경읍 새재로 609


[사진 제공 · 명욱]

[사진 제공 · 명욱]

경기 안산 그랑꼬또 와이너리 

서해안에서 가장 큰 섬 대부도에 있는 와이너리다. 직접 재배한 캠벨, 청수 등으로 다양한 와인을 만든다. 포도의 향과 맛을 최대한 증폭시켜 신선한 맛을 즐기게 하자는 것이 이곳 와인의 모토. 숙성 기간도 기본 1년 이상, 최대 10년 이상이다. 와이너리 견학과 와인 시음은 물론 와인 족욕, 와인병 공예 같은 체험 프로그램이 준비돼 있다. 대부도의 회, 조개구이, 바지락칼국수와 함께 즐기기 좋다.

주소 경기 안산시 단원구 뻐꾹산길 107






주간동아 2019.04.12 1184호 (p42~45)

  • 주류문화 칼럼니스트 blog.naver.com/vegan_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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