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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만 자극하는 ‘할리우드 오버 액션’
1998년 지구 멸망 시나리오가 가속화했을 때, 할리우드는 아주 신이 났다. ‘딥 임팩트’니 ‘아마겟돈’이니 하는 영화는 죄다 혜성 충돌을 상정하며 지구를 쑥대밭으로 만들어놓았으니까. 바로 그해 롤런드 에머리히 감독은 재난영화 대신…
20091201 2009년 11월 30일 -
LA 뒷골목에 흐르는 영혼의 선율
뉴스는 살아남지만 페이퍼는 죽어가는 시대.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칼럼 소재를 찾아 동분서주하던 기자 스티브 로페즈(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어느 날 자전거를 타다 넘어져 얼굴에 커다란 상처를 입는다. 그리고 바로 그날, 길거리의 특…
20091117 2009년 11월 13일 -
이런 대통령을 원한다
대통령을 ‘각하’라 부르며 “차렷! 경례” 하던 시절은 지나갔다. 이제 대통령, 우리의 대통령은 TV 드라마를 보고 라면을 먹고 부부싸움을 한다. 장진 감독의 신작 ‘굿모닝 프레지던트’는 상상만 해도 즐거워지는 3명의 유쾌한 대통령…
20091103 2009년 10월 28일 -
다시 찾아온 연한 연둣빛 사랑
영혼을 가진다는 것은 비밀을 가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사랑의 영역에서 사랑의 비밀이란, 누군가를 사랑하려는 ‘이유’가 아니라 왜 하필 그 ‘시간’에 그 혹은 그녀를 만났는가 하는 것이다.허진호 감독의 다섯 번째 작품 제목인 …
20091020 2009년 10월 16일 -
서사와 직설화법의 부담스러움
박진표 감독의 영화 세상에서 사랑은 변하지 않는다. 그게 운명이고, 그게 사랑이다. 주인공들을 갈라놓는 것 혹은 시험하는 것은 대개 돌이킬 수도, 어떤 희망의 끈을 가질 수도 없는 엄혹한 질병이나 유괴다. 반면 허진호의 영화 세상에…
20090929 2009년 09월 23일 -
국민 엄마 버전 ‘살인의 추억’
감독은 대사의 앞뒤 연기 지문에 그저 ‘형언할 수 없는 표정’이라고 썼다. 그 지문을 읽은 배우는 기가 찼다. 대체 ‘형언할 수 없는 표정이란 무엇일까’ 싶어서. 그러나 김혜자의 얼굴은 그 표정을 담아냈다. 갈대밭에서 이병우가 작곡…
20090609 2009년 06월 03일 -
영화 품은 소년들의 영화 만들기
‘나이트메어’ 시리즈로 유명한 감독 웨스 크레이븐은 어린 시절 부모가 허락한 유일한 장르, 디즈니 영화를 보는 것으로 날을 지새웠다고 한다. 이 독실한 기독교 집안은 어린아이들에게 폭력이나 성이 난무하는 사악한 영화 따위는 엄금이라…
20090526 2009년 05월 20일 -
살얼음판 위로 미끄러지는 일처일부제
어떤 남자는 아내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거짓말을 할 수 있다. 영화 ‘블랙 아이스’(감독 페트리 코트위카)의 주인공 레오는 아내의 생일날 아내 사라에게 “기타 통 속의 콘돔 2개는 어디로 갔느냐”는 질문을 받는다. 콘돔을 풍선처럼…
20090512 2009년 05월 08일 -
질기디질긴 애증의 뒷골목 가족사
빌어먹을. 폭력은 세습되고, 핏줄은 더럽고, 이 세상 어딘가는 시궁창일 뿐이다. 그는 스파이더맨이 아니다. 그렇다고 물가를 맴도는 악어가 될 수도 없다. 그가 사는 곳은 먼지 풀풀 날리는 도시의 뒷골목. 한 무더기의 돈다발을 찔끔찔…
20090421 2009년 04월 16일 -
老부부가 그린 찬란한 봄의 슬픔
하나미(花見). 꽃구경(‘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의 원제목). 꽃. 꽃보다 남자. 일본어로 꽃은 하나. 이와이 순지의 영화 ‘하나와 앨리스’. 기타노 다케시의 영화 ‘하나비’. 하나비(花火)의 원뜻은 ‘불꽃놀이’. 고레다 히로카즈의…
20090407 2009년 04월 03일 -
눈물겹게 봉합한 인도의 두 얼굴
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에 대해 먼저 알아둘 점은 발리우드(인도) 영화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 영화가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 어쩌다 감독도 모른 채 봤다. 딱 5분이 지난 순간, 연출이 심상치 않았다. 인도 영화의 새로운 기수가 …
20090324 2009년 03월 20일 -
관객 눈높이 맞춘 ‘체험! 정치 현장’
1977년 미국 역사상 최초로 탄핵으로 백악관 주인 자리를 내준 대통령인 닉슨과 당시만 해도 변방의 TV 쇼 호스트에 지나지 않던 데이비드 프로스트는 서로의 명운을 건 인터뷰 전쟁을 치른다. 총성 없는 대화가 실탄처럼 오가는 전쟁.…
20090310 2009년 03월 06일 -
‘의심’과 ‘확신’ 사이의 진실게임
역설적으로 의심의 가장 친한 벗은 확신일 수 있다. 예를 들어보자. 이라크가 핵무기를 숨겨놓았다고 확신했던 미국은 이라크 전쟁에 대한 대의명분으로 핵무기 소탕을 내세웠다. 바그다드에 융단폭격을 가하고 무고한 이라크 양민을 잡아 가두…
20090224 2009년 02월 19일 -
역노화 남자의 기이한 인생 변주곡
늙어서도 여전히 아이의 영혼을 갖고 살아갈 수 있고, 어려서는 어른의 영혼을 가진 의젓한 사람이 있다면 그는 만인이 반기는 축복받은 사람일 것이다. 그런데 인생이라는 삶의 곡선은 이와 반대이기 십상이다. 작가 마크 트웨인은 인생에 …
20090210 2009년 02월 05일 -
肉과 言, 궁중의 ‘남남녀상열지사’
철학자 김영민 씨는 “살과 살 사이에는 말이 있다”고 한다. 연인의 살이 고기(肉)로 느껴질 때, 고기를 살로 되돌리는 법은 말밖에 없다는 게 그의 이야기다. 그에게 ‘말’이 성적 욕망을 넘어서 지적 반려로 가는 동반의 나침반이라면…
20090120 2009년 01월 13일 -
격렬한 정사, 허술한 스토리
점괘는 열정을 연료로 해서 사는 사람들에게 항상 불길한 법이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의 게리 쿠퍼도 ‘더 피스트 오브 러브’의 젊은 연인들도 이 불길한 점괘에 목숨을 잃었다. 길다 베시는 애초부터 서른네 살의 삶을 향해 내…
20090106 2008년 12월 31일 -
서사적 로맨스와 어색한 서부극의 결합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독일의 가을’처럼 영화 제목에 나라 이름이 등장하면 내용과 상관없이 영화의 스케일이 커 보이는 착시효과가 일어난다. 그런데 여기 거두절미하고 나라 이름 자체가 제목인 영화가 나타났다. ‘오스트레일…
20081223 2008년 12월 17일 -
문명 사라진 세상 인간 광기의 지옥도
백색공포, 백색소음이란 말은 들어봤어도 백색맹인이란 말은 처음 들어보신 분들을 위해 먼저 이 증상을 설명해야 할 것 같다. 어느 날 눈앞이 하얗게 변하면서 동공 안에서 뭔가 줄줄 흘러내리는 느낌이 든다. 시력이 갑자기 상실되고, 이…
20081209 2008년 12월 01일 -
납관사가 된 첼리스트 故人들을 위한 마지막 배웅
사내는 이제 저승의 문턱에서 이별을 고해야 하는 아내의 얼굴을 보기 위해 무릎을 꿇고 앉아 있다. 아이들이 울음을 터뜨리고, 이를 악물고 참던 사내는 방금 전 5분이나 늦게 왔다며 염하는 납관사들에게 화를 내던 그 사람이 아니다. …
20081125 2008년 11월 20일 -
중혼 욕망 발칙한 상상 가부장제 조롱 혹은 몰락
사는 것에 대해 할 말이 많은 호모 사피엔스들은 무엇에든 인생을 은유하는 버릇이 있다. 시인과 감독의 손에서 인생은 계절이기도 하고, 정글이나 사각의 링이기도 하다. 먹을 때는 달콤하지만 아무것도 남지 않는 아이스크림도, 모든 것을…
20081118 2008년 11월 1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