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91

2021.05.28

“이젠 만들 수 있다” 현무 - 5는 ‘中 압박’ 화룡점정

韓美 미사일지침 개정의 정치학… 동북아 격변 일으킬 IRBM

  • 이정훈 기자

    hoon@donga.com

    입력2021-05-30 10:00:01

  • 글자크기 설정 닫기
    2017년 6월 23일 충남 태안군 국방과학연구소 종합시험장에서 현무-2 미사일이 시험발사됐다. [사진 제공·국방부]

    2017년 6월 23일 충남 태안군 국방과학연구소 종합시험장에서 현무-2 미사일이 시험발사됐다. [사진 제공·국방부]

    많은 국민이 반기는 한미 미사일지침 종료의 ‘숨은 정치학’은 무엇일까. 5월 한미 정상회담 공동성명문에는 “우리는 조건에 기초한 전작권(전시작전통제권) 전환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다시 한 번 강조했다”는 문구가 있다. 왜 이런 표현이 들어갔을까. 미국이 한국에 미사일 주권을 돌려준 이유를 미국 관점에서 추적해보자. 미소(美蘇)가 위성국과 동맹국을 거느리고 치열하게 대립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전쟁 승리의 첫걸음은 ‘선공(先攻)’이다. 적을 초전에 박살내야 이길 수 있기에 두 나라는 신속하게 사격할 수 있는 대량 살상무기 개발에 주력했다. 대표적 무기가 음속의 10배 이상 속도로 날아가 상대를 초토화하는 핵미사일이다.

    IRBM이 촉발한 쿠바 미사일 위기

    최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인 미국 미니트맨-Ⅲ의 공산오차(公算誤差)는 240m로 알려졌다.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유도를 받지 못한 과거 ICBM은 매우 부정확했다는 얘기다. 적군은 피격을 의식해 병력·물자를 지하에 숨기기 때문에 정확한 사격은 매우 중요하다. 1만㎞를 날아가는 ICBM보다 3000~5000㎞를 비행하는 중거리탄도미사일(IRBM)이 훨씬 더 정확하다. 따라서 미국과 소련은 IRBM 개발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또한 북한의 미사일 개발사에서 알 수 있듯이 IRBM을 만들어야 ICBM을 개발할 수 있다.

    1948년 소련의 베를린 봉쇄, 1950~1953년 6·25전쟁으로 본격화한 미소 냉전은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로 절정에 달했다. 이 사태는 IRBM 때문에 일어났다. 당시 미소는 액체연료 추진 로켓 IRBM만 실전 배치한 상태였다. 소련의 팽창에 긴장한 미국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동맹국 터키와 서독 등에 모스크바를 겨눈 IRBM을 집중 배치했다. 이에 맞서 소련은 미국 플로리다반도로부터 약 200㎞ 떨어진 쿠바에 IRBM을 배치하려 했다.

    소련의 IRBM을 실은 배가 쿠바로 향하자 존 F. 케네디 당시 미국 대통령은 “배를 돌리지 않으면 공격하겠다”고 선언했다. 세계는 핵무기를 사용한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지 않을까 긴장했다. 타협은 위기가 최고조에 달해야 이뤄진다. 쿠바 미사일 위기는 니키타 흐루쇼프 당시 소련 총비서가 자국 선박을 불러들이고, 미국이 동맹국에 배치한 IRBM을 빼내기로 하면서 일단락됐다. 양국은 자국에서 상대방 핵심부를 맞히는 ICBM과 신속사격이 가능한 고체연료 로켓 개발에 더 주력했다.

    핵무기의 역설 ‘공포의 균형’

    쿠바 미사일 위기가 있고 수년 뒤 액체연료를 사용한 IRBM ‘레드스톤’을 운용하던 미 육군이 고체연료를 쓰는 ‘퍼싱’을 개발해 실전 배치하기 시작했다. 퍼싱이라는 이름은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미국 원정군 사령관과 육군 참모총장을 지낸 존 퍼싱 장군을 기린 것이다. 퍼싱은 소련이 개발한 ‘이스칸데르’보다 먼저 ‘하강 중 도약’ 기술을 도입한 미사일로 유명하다. 정확도도 높아 당시 걸작으로 꼽혔다. 비슷한 시기 소련은 액체연료를 쓰는 SS-20을 개발했다. ICBM 개발까지 성공한 양국은 자국에 ICBM을 다량 배치했다. 그러자 양국 국민이 “핵전쟁이 일어나면 우리부터 죽는다”고 아우성쳤다. 미국과 소련이 핵전쟁에 나설 수 없다는 역설, ‘공포의 균형(balance of terror)’이 회자됐다. 미국은 이 공포를 이겨내고자 미사일방어(MD)체계의 전신인 대(對)탄도탄요격미사일(ABM) 개발도 추진했다. 미국과 달리 소련은 그 정도 기술 수준을 달성하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측 제안을 소련이 받아들여 1969년부터 전략무기제한협상(SALT)이 시작됐다. 1972년 1차, 1979년 2차 조인으로 양국은 실전 배치 ICBM 수를 제한했다. 그러면서도 서로 뒤통수를 쳤다. 2차 조인 당시 미국은 중국과 수교(1979)해 공산권 분열을 노렸다. 소련이 아프가니스탄 침공으로 대응하자 미국은 모스크바올림픽(1980)을 보이콧했다. 소련도 LA올림픽(1984) 불참으로 맞서 다시 냉전이 펼쳐졌다. 이 같은 대립 국면 초기 소련이 동독에 SS-20을 배치하자 미국은 서독에 퍼싱-2를 배치했다. 유럽 국가들이 핵전쟁 공포에 비명을 지르자 미소는 다시 협상 테이블에 마주앉았다.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으로 불린 ICBM 회담은 양국의 고집 때문에 중단됐지만, ‘유럽의 비명’ 덕분에 IRBM 회담은 이어졌다. 당시 소련은 과도한 무기개발비로 고통받던 터라 조금이라도 타협해 국방비를 줄여야 했다. 1987년 양국은 모든 IRBM을 없애는 중거리핵전력(INF) 조약을 맺었다.

    화해 무드 속 1988년 서울올림픽은 동서 양진영이 모두 참가한 최고 행사가 됐다. 그럼에도 소련 경제는 살아나지 못했다. 당시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서독 연방정보부(BND) 등과 함께 유럽 공산국가를 상대로 치열한 민주화 공작을 펼쳤다. 동유럽 공산국가 사람들은 한국이 발전해 올림픽을 치른 것을 목격했기에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강해졌는데 이를 이용하기도 했다. 폴란드에서 레흐 바웬사가 이끄는 자유노조운동이 전개되고, 동독에서 민주화 촛불시위가 일어나더니 이내 동유럽 공산국가와 소련이 무너졌다. 넓게 보면 IRBM을 둘러싼 미국과 소련의 경쟁 및 타협이 동유럽 민주혁명을 만든 셈이다.

    東西에서 압박받는 中

    2020년 11월 미국·인도·일본·호주 함대가 인도양에서 중국의 해양 진출을 견제하는 연합 훈련에 나섰다. [사진 제공·인도 해군]

    2020년 11월 미국·인도·일본·호주 함대가 인도양에서 중국의 해양 진출을 견제하는 연합 훈련에 나섰다. [사진 제공·인도 해군]

    영국과 프랑스는 핵을 가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지만 상징적으로 ICBM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가지고 있을 뿐 IRBM은 보유하지 않는다. 중국은 다르다. ICBM은 20기가량만 보유해 혹시 모를 미국의 위협에 대비하고 IRBM을 다량 제작했다. 동시에 한국, 대만, 일본 등으로부터 투자받아 경제를 발전시켰다. ‘IRBM 우산’에 자신감을 갖게 된 중국은 남중국해와 동중국해, 황해, 심지어 한국 동해까지도 자국의 ‘관심지역’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일본열도에서 필리핀으로 이어지는 ‘도련’(島鍊·Island Chain)을 임의로 긋고 그 서쪽에선 중국이 패권을 행사하겠다며 ‘A2/AD(반(反)접근/지역거부)’ 전략을 펼친 것이다.

    IRBM이 없는 주변국은 중국의 ‘해양굴기’에 맞서지 못한 채 입으로만 ‘반중(反中)’을 웅얼거렸다. 미국은 달랐다. 중국이 불법으로 영해라고 선포한 바다에 미국 군함을 진입시키는 ‘항행의 자유’ 작전을 펼친 것이다. 이에 중국이 반발해 일어난 남중국해 위기가 대만해협까지 확대된 것이 작금의 미·중 갈등이다. 미국과 중국의 갈등 속에서 주변국들의 셈법은 복잡하다. 우선 러시아는 중국에 마냥 우호적이진 않다. INF 조약 때문에 한 발의 IRBM도 없는 러시아로서는 ‘IRBM 강국’ 중국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미국과 함께 ‘중국도 참여한 새로운 INF 체결’을 제의했으나 거절당했다. 미·러는 INF 조약을 폐기했지만 중국은 꿈쩍도 하지 않은 채 지역 패권 전략인 ‘일대일로’(一帶一路: 육상과 해상 실크로드)를 밀고 나갔다. 대만은 어떨까. 상당한 기술을 갖고 있지만 중국과 싸우려 하지 않기에 IRBM을 만들 의사가 없다.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전범국이므로 공격무기인 탄도미사일을 개발하지 못한다. 중국에 맞선 유일한 주변국은 ‘비공식’ 핵보유국 인도였다. 인도는 ‘아그니’ 등의 IRBM을 갖고 있기에 영토 분쟁에서 과감히 중국과 충돌했다. 미국은 인도를 쿼드(Quad: 미국·일본·호주·인도)에 참여시켰다.

    미국은 한국을 자국산 IRBM을 배치할 곳으로 본 것이 분명하다. 공격무기를 배치할 때는 이를 지킬 방어체계부터 갖춰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주목할 것이 2016년 북한의 4차 핵실험 직후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긴급히 허용한 주한미군의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다. 미국은 자국 영토 괌에 사드 미사일, 일본에 사드 레이더를 배치해놓고 한국에도 사드 배치를 강력히 요구한 바 있다. 박근혜 정부는 이를 허락하지 않다 북한이 핵실험을 한 직후 전격 승인했다.

    2017년 11월 8일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드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 후 발표된 공동언론발표문에는 사드 배치를 확인한 두 정상이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해 억제력 및 방어력을 향상하고자 일본과의 3국 간 안보 협력을 진전시켜나간다”는 내용이 있다. 방어체계를 갖췄으니 억제력을 발휘할 공격무기도 배치하겠다는 뜻이 분명하다. 미국은 이를 곧장 행동으로 옮기지 않고 한국의 군사 능력을 속박한 방해물부터 치웠다. 당시 미국은 한국의 미사일 탄두 중량 제한을 해제했다. 2020년 한국은 탄두 중량 2.5t의 현무-4 미사일을 개발했다. 그리고 이번 한미 정상회담으로 마지막 남은 사거리 제한도 해제해 가칭 ‘현무-5 IRBM’을 개발할 수 있게 됐다. 북한과 중국은 북·중 우호조약에 따른 군사동맹이라 북한 정권이 붕괴하면 중국은 군대를 파병할 수도 있다. 현무-5는 그때 중국을 견제하는 효과적인 무기가 될 것이다.

    中 · 日이 바라지 않는 전작권 전환

    중국의 중거리탄도미사일 ‘둥펑-16’을 탑재한 차량. [위키피디아]

    중국의 중거리탄도미사일 ‘둥펑-16’을 탑재한 차량. [위키피디아]

    미국이 직접 IRBM을 배치하지 않았는데도 중국은 조만간 동서(東西)로 압박을 받게 됐다. 그런 점에서 이번 한미 공동성명에서 눈여겨볼 대목이 ‘조건에 기초한 전작권 전환’이다. 달리 말하면 한국이 조건을 충족하지 못할 경우 미국은 전작권을 돌려주지 않겠다는 뜻이 된다. 전략가들은 전작권 전환을 가장 반대하는 나라는 일본이라고 얘기하곤 한다. 한국군이 전작권을 환수한 후 반일(反日) 정권이 들어서면 일본을 위협하거나 공격할 수도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중국 또한 전작권 전환에 반대한다는 분석이 있다. 남북을 막론해 한국인의 반중 정서도 만만치 않은데 반중 정권이 들어서 대결구도를 만들면 중국도 힘들어질 수 있다. 북한도 한국의 행보를 두고 비슷한 걱정을 할 수 있다. 따라서 미국이 전작권을 갖고 한국을 통제하길 바란다는 것이다. 미국도 막강한 한국군을 활용하기 위해 전작권 전환을 서두르지 않을 개연성이 높다.

    한국이 실제 IRBM을 생산한다면 어떨까. 압박을 받은 중국이 IRBM 생산과 방어망을 확충할 경우 한국에도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이번 공동성명은 물론, 2017년 11월 공동언론발표문에도 ‘보건 안보’라는 표현이 들어갔다. 미국이 중국의 전염병 연구를 파악하고 그것에 대한 대비 전략을 마련했을 수도 있다. 코로나19는 중국 경제에도 피해를 안겼다. 시노팜 등 중국산 백신의 효용이 낮을 경우 백신 접종을 끝낸 서방국가들의 경제가 회복될 때 중국만 고립할 수 있다. 소련을 붕괴시킨 경험이 있는 미국은 ‘어디로 튈지 모를’ 한국을 다루며 중국을 제어하는 이이제이(以夷制夷) 전략을 준비할 개연성이 높다. 여러 민족으로 구성된 소련은 결국 여러 나라로 쪼개졌다. 중국은 한족 등 55개 민족이 모인 나라인데, 미국의 대중(對中) 전략이 먹히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지난해 홍콩 국가보안법으로 홍콩을 지켜냈음에도 중국은 계속 수세에 몰리고 있다. 한국의 현무-5가 중국과 북한을 붕괴시키는 화룡점정(畵龍點睛)일 수도 있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