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81

2021.03.19

특목고, 그들만의 리그

편법과 불법 넘나들며 20대 간 ‘초(超)격차’ 만들어

  • 오홍석 기자

    lumiere@donga.com

    입력2021-02-15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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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 11월 27일 전국외국어고등학교장협의회와 학부모들이 서울 이화외고에서 외고·자사고 폐지를 반대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동아DB]

    2019년 11월 27일 전국외국어고등학교장협의회와 학부모들이 서울 이화외고에서 외고·자사고 폐지를 반대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동아DB]

    지난해 12월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당시 후보자) 딸의 허위 인턴 활동 의혹이 불거졌다. 2012년 미국 예일대에 재학 중이던 변 장관의 딸이 한국에서 열린 미국 대학 진학설명회에 강연자로 참석해 자신이 고등학생 때 했던 국립중앙박물관 인턴 활동을 소개하는 유튜브 영상을 공개하면서다. 

    하지만 변 장관 딸이 수행했다는 국립중앙박물관 인턴직은 학사학위 이상 소지자만 지원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변 장관은 “딸이 재능기부 형식으로 비공식적으로 스페인어, 영어 번역을 도왔다”고 해명했다. 국립중앙박물관도 뒤늦게 변 장관의 딸이 “지인 소개로 한 달간 일했다”고 밝혔다. 

    2019년 한국 사회를 뒤흔든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딸과 변 장관의 딸은 공통점이 있다. 1990년대 태어나 사회적 지위와 재력을 갖춘 부모 밑에서 서울 명문 외국어고교(외고)에 다니다 국내외 명문대에 진학했다는 점이다. 

    지난해 서점가를 뜨겁게 달군 조귀동의 ‘세습 중산층 사회’는 1990년대생들이 살아가는 이 사회에 ‘초(超)격차’가 존재한다고 분석한다. 물적 자본만이 아닌 인적 자본의 세습으로 초격차가 유지되는데, 그 중심에는 명문대 입학을 독식하는 특수목적고교(특목고)와 명문고가 있다. 부모의 지위를 통한 스펙 만들기, 특목고를 통한 명문대 진학은 보편적 현상이다.

    부모 인맥으로 쌓은 대입 스펙

    학부모 간 ‘스펙 품앗이’는 특목고의 전유물로 여겨진다. [GettyImages]

    학부모 간 ‘스펙 품앗이’는 특목고의 전유물로 여겨진다. [GettyImages]

    경제적으로 넉넉한 집안에서 태어나 특목고에 진학해 국내외 명문대까지 합격한 3명의 1990년대생에게 ‘그들만의 리그’는 어떤 풍경인지 물었다. 먼저 서울 명문 외고를 졸업한 A씨. 1990년대 중반에 태어났다. 특목고가 전성기를 누리던 2010년대 중반 고교에 다녔다. A씨는 조 전 장관 딸의 입시 비리가 논란이 됐을 때 사실 크게 놀라지 않았다. 고교 시절 주변에서 다반사로 봐온 일종의 ‘관행’이었기 때문이다. A씨는 “나 역시 스펙을 쌓으려고 합법과 불법의 애매한 경계를 넘나들었다”고 털어놓았다. 



    대표적으로 해외 봉사활동을 들 수 있다. 입학사정관제 도입으로 비교과활동을 자기소개서에 기재할 수 없게 되자 A씨를 포함한 몇 명의 친구와 그의 부모들은 교내 봉사동아리를 통해 해외 봉사활동을 다녀오는 ‘편법’을 썼다. 학부모 한 명이 ‘외부 기관과 협력’으로 포장해 필리핀에 있는 고아원에 봉사활동 자리를 만들어준 것. 4박 5일 일정에 비용은 인당 200만 원가량 들었다고 한다. 

    “고아원에 몇 시간 머물면서 아이들에게 학용품을 나눠준 게 봉사의 전부예요. 나머지 시간에는 대부분 호텔에서 편하게 지냈죠. 봉사활동을 한다고 와서 이게 뭔가 싶어 당시에도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봉사활동 마지막 날에는 단체 티셔츠를 맞춰 입고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상장과 봉사인증서도 받았다. A씨는 전문직 종사자 부모들 간 ‘인턴 품앗이’는 비일비재했다고 기억한다. 친구 아버지의 사무실에서 간단히 서류정리를 한 뒤 ‘로펌 인턴 경력’을 얻는 식이다. 교수인 A씨의 어머니 역시 주변 학부모들로부터 “논문에 이름을 올리는 식으로 연구 스펙 좀 만들어달라”는 부탁을 수차례 받았다. 

    B씨는 특목고 폐지 반대론자다. 꼼수 내지 불법으로 스펙을 쌓는 건 개인의 잘못이지 특목고 시스템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 그도 특목고 진입 장벽에 대해서는 “중산층 이상이 아니면 학교 다니기가 힘든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입학 전부터 사교육비가 많이 들어요. 학원마다 특목고 대비반이 따로 있는데 학원비가 만만치 않죠. 진학 후에는 등록금에 기숙사비까지 합쳐 1년 학비만 3000만 원가량 들어요.” 

    B씨는 특목고 출신으로서 누리는 가장 큰 혜택으로 ‘막강 인맥’을 꼽았다. 다음은 B씨의 말이다. 

    “대부분 집안 좋고 똑똑한 친구들이니까요. 제가 다닐 때는 전교에서 70명 정도가 서울대에 갔어요. 아이비리그 등 해외 명문대도 수십 명이 합격했고요. 대학 졸업 후 사회생활을 할 때 이 친구들과 인맥이 가장 큰 재산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같은 학교가 아니어도 특목고 출신이라는 것 자체가 네트워크 형성에 큰 도움이 된다고 한다. B씨는 “외고, 특목고, 자사고 등 학교 간 네트워크가 활발하다 보니 자사고 출신 학생과 학부모들 간 커뮤니티가 활성화돼 있다”고 설명했다. 그곳에서 수시로 고급 입시 정보를 공유하며 대입 스펙을 쌓아가는 것. 모의 유엔(UN) 회의나 특목고 대항 체육대회, 각종 공모전이 대표적이다.

    사회적 지위 세습하는 수단으로 전락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국내 정보기술(IT) 기업에 다니고 있는 C씨는 “외국 명문대 진학은 특목고 출신이 아니고서는 현실적으로 힘들다”고 말했다. C씨는 경기도 소재의 국제고 출신이다. 그는 “국내에서 외국 명문대 입시 정보를 얻기가 쉽지 않은데, 국제고에는 유학반 상담 교사가 따로 있어 자기소개서부터 입시컨설팅까지 체계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C씨 역시 특목고는 폐지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목고가 “사회·경제적 지위를 세습하는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게 C씨의 생각이다. 그는 “우리나라 입시제도가 개선되려면 특목고부터 없어져야 한다”는 뜻을 펼쳤다. 

    현재 정부는 2025년 특목고와 자사고를 일괄 폐지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입시 현장에서의 특목고 열기는 여전히 뜨겁다. 서울 대치동에 있는 유명 입시컨설팅업체 관계자는 “예전에 비해 특목고 지원자 수가 줄어들긴 했지만, 수월성 교육을 원하는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특목고에 대한 열망이 더욱 뜨겁다”고 말했다. 양극화의 또 다른 예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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