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75

2021.01.29

美, 中 반도체 굴기 ‘대만 카드’로 막는다

단교 42년 만에 美 대통령 취임식 참석한 대만…민주당 ‘하나의 중국’ 이행 원칙 삭제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입력2021-02-04 10:00:02

  • 글자크기 설정 닫기
    1월 20일(현지시각) 
취임과 함께 
백악관에서 업무를 시작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뉴시스]

    1월 20일(현지시각) 취임과 함께 백악관에서 업무를 시작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뉴시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취임식 날인 1월 20일(현지시각). 대만 공군은 자국의 방공식별구역(ADIZ)에 진입한 중국 공군기들을 막기 위해 F-16 전투기들을 긴급 발진시켰다. 중국은 올해 1월 1일부터 매일 전투기와 폭격기, 전자전기, 조기경보기 등 각종 항공기를 대만 ADIZ에 진입시키고 있다. 23일엔 폭격기 8대와 전투기 4대 등 12대를 투입했다.

    ADIZ는 국제법상 주권이 미치는 영공(領空)은 아니지만, 외국 군용기의 영공 침입을 사전에 막고 군사적 충돌을 예방하기 위해 설정한 공중구역이다. 일반적으로 다른 국가 군용기가 사전 통보 없이 ADIZ를 비행하는 일은 침략행위로 간주된다. 중국의 의도는 일종의 ‘소모전’을 통해 대만군을 교란하고 대만 국민의 불안감을 부추기려는 것이다.


    ‘대만 카드’로 中 군사력 팽창 견제한 트럼프 정부

    조 바이든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 샤오메이친 타이베이 경제문화대표처 대표. [트위터]

    조 바이든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 샤오메이친 타이베이 경제문화대표처 대표. [트위터]

    중국은 올해 들어 대만을 더욱 강력하게 옥죄고 있다. 지난해 12월 29일부터 올해 1월 7일까지 산둥호 항공모함 전단과 각종 함정을 동원해 대만 인근 해역 및 남중국해에서 대규모 훈련을 실시했다. 중국의 이런 무력시위는 미국과의 관계를 강화하는 차이잉원 총통과 대만 정부는 물론, 조 바이든 미국 정부를 겨냥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정부는 지난해 앨릭스 에이자 보건복지장관과 키스 크라크 국무차관 등 고위 관리들을 두 차례나 대만에 파견해 중국 정부를 자극했다. 미 해군은 지난해 미사일 구축함 등 함정들을 13차례나 대만 해협을 통과시키면서 ‘항행의 자유’ 작전을 벌이기도 했다. 트럼프 정부는 대만에 180억 달러(약 19조8800억 원)에 달하는 각종 무기도 판매했다. 이 때문에 중국 정부는 바이든 정부가 ‘하나의 중국’ 원칙을 존중하고 대만에 대한 현상 유지 정책을 추진하기를 내심 희망해왔다.

    바이든 정부는 중국 정부의 이런 기대에 찬물을 끼얹었다. 대만의 실질적 주미 대사 역할을 하는 샤오메이친(蕭美琴) 타이베이 경제문화대표처 대표가 바이든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1979년 중국과 수교하면서 대만과 국교를 단절했다. 이에 따라 미국과 대만은 대사관을 두지 못하고 있다. 그 대신 미국은 대만 수도 타이베이에 미국대만협회(American Institute in Taiwan·AIT)라는 민간기구를 두고 사실상 대사관 역할을 하게 하고 있다. 대만도 미국 수도 워싱턴에 타이베이 경제문화대표처를 상주시키고 있다. 샤오 대표가 단교 이후 42년 만에 미국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했다는 것은 바이든 정부가 ‘하나의 중국’ 원칙을 파기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다. 물론 샤오 대표는 외교사절단 신분이 아닌 미국 연방 의원에게 배정된 입장권으로 시민용 좌석에 앉았다. 대만 정부는 샤오 대표의 대통령 취임식 참석을 계기로 앞으로 바이든 정부와의 관계를 강화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샤오 대표는 “대만 정부와 국민을 대표해 축하 행사에 참석하게 돼 매우 기쁘다”며 “민주주의는 대만과 미국의 공통 언어이고, 자유는 공통 목표”라고 밝혔다. 차이 총통도 “민주주의와 자유, 평화,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양국이 협력할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대만 ‘안전 보장’ 약속은 단호한 것

    미국 언론들은 샤오 대표의 대통령 취임식 참석은 바이든 정부도 트럼프 정부와 마찬가지로 ‘대만 카드’로 중국을 압박하겠다는 시그널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에밀리 혼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대변인은 샤오 대표의 바이든 대통령 취임식 참석에 대해 “대만(안전 보장)에 대한 미국의 약속은 단호한 것”이라며 “바이든 대통령은 대만을 포함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공동의 번영과 안보, 가치 증진을 위해 동맹국들과 함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네드 프라이스 국무부 대변인도 중국 공군기의 대만 ADIZ 진입과 관련해 “중국 정부는 대만을 상대로 한 군사적·외교적·경제적 압박을 중단해야 한다”면서 “미국은 대만과 관계를 계속 심화하고 중국의 위협으로부터 방어하는 한편, 양안(兩岸·중국과 대만)의 평화적인 문제 해결을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 대선 과정에서 바이든 대통령을 친중파라고 공격했지만 실제로 바이든 대통령은 상원의원 시절인 1979년 4월 10일 제정된 ‘대만 관계법’을 적극 지지했다. 대만 관계법은 미국과 대만의 문화·통상 등에 관한 비공식 관계 유지, 유사시 대만에 대한 미국의 안전 보장, 대만 방어에 필요한 무기와 군사기술 제공 등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당시 중국은 이 법이 ‘두 개의 중국’을 인정하는 것이라며 강력하게 반발했다. 미국의 집권 여당인 민주당은 지난해 8월 전당대회에서 채택한 정강정책에서 “대만 관계법 이행을 약속한다”고 밝히며 기존에 있던 ‘하나의 중국’이라는 원칙을 이행한다는 부분을 삭제했다. 20년 만에 ‘하나의 중국’ 원칙이 사라진 것이다. 물론 민주당이 대만을 정식 ‘국가’로 인정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하지만 중국이 ‘하나의 중국’ 원칙에 따라 대만과의 통일을 양보할 수 없는 ‘핵심 이익’이라고 주장한다는 점에서 바이든 정부가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단호한 태도를 밝힌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바이든 정부는 앞으로 중국을 압박하기 위해 ‘대만 카드’를 좀 더 정교하게 사용할 것이 분명하다. 예를 들어 바이든 대통령이 미국 통상정책을 총괄하는 무역대표부(USTR) 대표에 하원 세입위원회(한국의 예산결산위원회에 해당) 소속의 캐서린 타이 민주당 수석 자문위원을 발탁한 것을 들 수 있다. 부모가 모두 대만 출신 이민자인 타이 대표는 2007년부터 2014년까지 USTR에서 근무하며 세계무역기구(WTO)에서 벌어진 중국과의 분쟁 사건을 담당하는 등 중국 전문 변호사로 일해왔다. 하버드 로스쿨에서 법학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중국의 협상 전략 등을 잘 알고 있는 강경파다. 중국어에도 능통해 중국과 무역 협상뿐 아니라, WTO에서도 중국의 잘못된 관행과 지식재산권 탈취 등을 물고 늘어질 것이 분명하다. 바이든 정부와 대만 정부의 경제협력에서도 고리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반도체 굴기 저지에 대만 협력 필요

    대만 TSMC가 미국 애리조나주에 설립할 반도체 공장 조감도. [TSMC]

    대만 TSMC가 미국 애리조나주에 설립할 반도체 공장 조감도. [TSMC]

    바이든 정부는 중국 정부가 총력전을 펴고 있는 ‘반도체 굴기’ 전략을 저지하기 위해서는 대만 정부와 협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인 대만 TSMC는 세계 최대 통신장비업체인 중국 화웨이와 거래를 중단하고 인텔 등 미국 반도체업체들과 제휴를 강화하기로 했다. TSMC는 미국 애리조나주에 120억 달러(약 13조2500억 원) 규모의 칩 제조 공장 설립을 비롯해 올해 250억~280억 달러(약 27조6120억~30조9260억 원)에 달하는 역대 최대 규모의 설비투자를 추진할 계획이다. 바이든 정부 입장에서 볼 때 자국 반도체업체들과 TSMC의 협력관계를 구축해 ‘반도체 동맹’을 맺고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막는 것이 기술 패권 경쟁에서 승리하는 방안이 될 수 있다. 또한 대만 정부와 협력해 반도체 기술이나 장비 등이 중국으로 유출되는 상황을 봉쇄할 수도 있다. 바이든 정부는 이와 함께 대만을 세계보건기구(WHO) 등에 가입시켜 중국의 영향력을 약화하는 방안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웬티성 호주국립대 객원교수는 “대만은 중국의 팽창에 대응하기 위한 바이든 정부의 전략에서 점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경우 중국은 눈엣가시인 대만을 상대로 군사적 위협을 더욱 강화할 것이 분명하고, 바이든 정부도 이를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