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63

2020.11.06

식비 40% 뛰어도 아동복지 예산 뒷전으로 밀리는 이유

코로나 여파로 지원금 ‘뚝’, “표퓰리즘에 밀려 예산 증가도 어려워”

  • 김유림 기자

    mupmup@donga.com

    입력2020-10-18 08: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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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로나 여파로 지원금· 봉사자 손길 ‘뚝’ … 급식 못해 식비 40% 증가, 전기세·가스비도 ‘껑충’
    서울 용산구에 있는 H아동복지시설 봉사자가 아이들과 함께 인형 만들기를 하고 있다.  [H아동복지시설 제공]

    서울 용산구에 있는 H아동복지시설 봉사자가 아이들과 함께 인형 만들기를 하고 있다. [H아동복지시설 제공]

    재난은 소외계층에게 더욱 가혹하다.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힘없고 가난한 이들의 생활이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부모 없이 아동복지시설에서 생활하는 아이들 역시 그렇다. 그동안 사회복지 분야에서 상대적으로 뒷전으로 밀려나 있던 아동복지시설은 코로나 상황에서 시설 운영에 있어 더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코로나19 방역수칙에 따라 아동복지시설 방문이 금지되면서 후원의 손길이 줄어든 탓이다. 아이들 역시 외출을 하지 못한 채 시설에서만 생활하다보니 식비 등 운영에 들어가는 돈이 더욱 늘었다. 

    서울 용산구에 있는 H아동복지시설은 올 추석 명절 후원금이 예년과 비교해 90% 이상 줄었다. 최모 원장은 “코로나로 경기가 안 좋아지면서 후원을 끊은 기업도 많고, 후원을 유지하더라도 금액을 줄인 곳이 대부분”이라며 “올 추석에도 후원금이 평소와 비교해 10분의 1도 안 들어왔다”고 말했다. 개인 후원의 경우 시설을 직접 방문해 아이들을 만나본 뒤 결정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코로나19로 외부인 방문 자체가 어려워 후원받을 기회 자체가 사라진 것이다. 후원금도 후원금이지만, 아이들은 자신들의 공부를 봐주고 함께 놀아주던 봉사자들의 발길이 끊어진 것을 가장 아쉬워한다. 

    문제는 아이들이 24시간 시설에서만 생활하면서 운영비가 급증했다는 점이다. 수도세, 전기료, 가스비 등은 물론이고 식비 부담이 크게 늘었다. 최 원장은 “코로나 이전에는 아이들이 학교나 어린이집, 유치원 등에 가서 점심을 해결하고 왔지만 지금은 세끼를 다 준비해야하기 때문에 그 비용이 만만치 않다”며 “한창 크는 아이들이라 밥 먹고 돌아서면 배고프다고 해 과일이며 간식도 수시로 먹여야하는데 요즘 같은 때는 식비 대기가 버겁다”고 토로했다. 이곳의 경우 평소 한 달 평균 식비는 1300만 원 정도였지만 코로나 이후 1800만 원까지 늘었다.

    2000원대 머물러 있는 한 끼 식사비

    보건복지부 지침에 따르면 아동복지시설 아동 1인당 한 끼 평균비용은 2496원이다. 시설규모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나는데 30인 이상 100인 미만 시설은 2647원, 100인 이상~300인 미만 시설 2277원, 300인 이상 시설 2271원이다. 해당 지침을 기준으로 시설에서는 지자체에서 지원받는 시설관리 운영비, 시설수급 생계비, 후원금 등을 보태 끼니를 준비한다. 서울시의 경우 한 끼 식사비용으로 500원이 추가 지원된다. 

    하지만 요즘처럼 후원금은 줄고 식비가 급등하는 상황에서는 정해진 예산에서 식비를 충당하기가 쉽지 않다. 최 원장은 “아이들 먹는 것만큼은 부족하지 않게 준비하려고 애쓰지만 물가는 계속 오르고 자원은 한정된 상황에서 식비 부담이 높아지면 의류비나 난방비 등 다른 데 쓸 돈이 줄어드는 건 당연한 이치”라고 털어놓았다. 



    한편 보건복지부가 아동복지법에 따라 저소득층 아동들의 ‘최소 한 끼’로 권고한 최저급식비는 3500원이다. 이를 토대로 서울시교육청은 무상급식 예산을 편성하면서 초등생의 경우 급식 인원수에 따라 3215~365원, 중학생 4515~5300원을 적정 단가로 정했다. 

    아동복지시설이 기업이나 일반인들로부터 받는 후원금은 크게 3가지 종류로 나뉜다. 아동의 통장으로 직접 입금해 후원하는 ‘아동결연 후원’과 시설 운영비를 지원하는 ‘시설 후원’, 시설을 직접 방문해 아이들 공부를 봐주거나 미용을 맡아주는 ‘재능후원’이 그것이다. 코로나 이후 후원 전체가 줄어들긴 했으나 그 중에서도 시설운영비로 쓰이는 시설 후원 모금이 가장 힘든 상황이다. 

    시설운영 후원비는 아이들의 학원비로도 쓰인다. H아동복지시설에는 현재 56명의 아이들이 생활하는데, 이 중 미취학아동이 18명, 초등생이 26명, 나머지 12명이 중·고등학생이다. 이들 중 일부는 수학·영어·태권도·피아노학원 등에 다니고 있다. 비용은 대부분 후원금에서 충당한다. 지자체 지원금은 정해진 항목에만 사용해야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유연하게 쓸 수 있는 후원금으로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해줄 수 있다. 하지만 지금처럼 후원금이 거의 끊긴 상태에서는 학원을 보내기가 쉽지 않다. 

    최 원장은 “우리 아이들도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고 뭐든 배우고 싶어 한다. 최대한 가르치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늘 안타깝다. 앞으로 코로나가 장기화 되면 아이들 학원부터 줄이게 되지 않을까 싶다”며 말끝을 흐렸다. 

    코로나19로 외부 출입이 자유롭지 못하게 되면서 아이들끼리 다툼도 잦아졌다. H아동보호시설에서 근무하는 박모 교사는 “아이들도, 교사도 다 힘든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봉사자도 오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교사들이 집안일에 치여 아이들과의 정서적 교감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 서울시는 코로나19가 본격 확산된 2월 말부터 아동복지시설에 대해 외부인 출입을 명령했다. 박 교사는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원격수업’까지 봐줘야 해서,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르겠다”고 밝혔다. 

    아동복지시설 교사 대부분은 24시간 2교대로 근무한다. 1명당 돌봐야하는 아이 수는 8~9명으로 적지 않다. 일반 가정으로 본다면 한 명의 엄마가 8~9명의 아이들을 돌보는 셈이다. 정부가 시행 중인 주52시간 근무제에 맞추려면 3교대로 근무해야 하지만, 아이들을 보살피는 일이다보니 근무 시간을 줄이기가 쉽지 않다. 경기도 소재 아동복지시설에서 근무하는 이모 씨(38)는 “아이들 처지에서 보면 하루에 엄마가 3번 바뀌는 것과 같기 때문에 2교대 근무를 유지하고 있다”며 “3교대로 할 경우 급여가 줄어드는 문제도 있다”고 밝혔다. 아동복지시설 근로자들의 처우개선에 대한 문제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사회복지사 급여가 최저임금 수준에 맞춰 있다 보니 현실적인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지자체 재정 여건 따라 복지 수준 천차만별

    코로나19로 외출이 힘든 상황에서 H아동복지시설은 아이들을 위한 배드민턴 대회를 열었다.  [H아동복지시설 제공]

    코로나19로 외출이 힘든 상황에서 H아동복지시설은 아이들을 위한 배드민턴 대회를 열었다. [H아동복지시설 제공]

    아동복지시설 예산은 중앙정부가 아닌 지방자치단체에서 집행되기 때문에 지자체 재정 상태에 따라 지원 편차가 크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서울시와 경기도만 비교하더라도 예산 증가 규모가 차이가 크다. ‘주간동아’가 서울시와 경기도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아동복지시설 예산은 서울시 경우 지난해(817억 원) 대비 올해(910억 원) 11.3% 늘어난 반면 경기도(시설수급액 불 포함)는 지난해(382억 원) 대비 올해(403억 원) 5.4% 상승에 그쳤다. 

    지자체에서 지급하는 아동복지시설 예산은 크게 3부분이다. 아동복지시설 운영비(교사 인건비, 공과금 등 관리 운영에 대한 비용), 생활아동지원금(영양급식비, 교복 구입비 등 교육에 필요한 비용), 디딤씨앗통장 지원금 등이다. 디딤씨앗통장은 취약계층 아동이 사회에 진출할 때 필요한 초기비용 마련을 지원하기 위해 통장을 개설한 아동이 매월 후원자 등의 도움을 받아 저축하면 국가와 지자체가 월 5만 원 내에서 동일한 금액을 1:1로 매칭해 지원해주는 사업이다. 

    아동복지시설 사업은 2015년 지방자치단체로 이양됐다. 당시 정부는 ‘지방재정 건전화를 위한 재원조정 방안’에 의해 아동복지시설을 국고 지원 대상에서 제외시켰다. 앞서 2005년부터 아동복지시설은 노인·장애인 복지시설과 함께 지자체 사업으로 분류됐는데, 2015년 장애인거주시설, 노인양로시설, 정신요양시설 운영사업이 국고보조사업으로 중앙정부로 환원된 반면 아동복지시설은 지자체 사업으로 그대로 남았다. 당시 다수의 아동복지 전문가들은 “아동복지시설 사업은 중앙정부가 책임지고 추진해야할 국가사업”이라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문 정부의 대표 정책 기조는 ‘포용적 복지국가 실현’이다. 이를 위해 보건복지부 예산을 지속적으로 올려왔다. 2018년 64조 2416억 원(전년 대비 11.4% 인상), 2019년 72조5148억 원(14% 인상), 2020년 82조5269억 원(14.2% 인상)의 예산이 집행됐으며, 내년 예산은 90조1536억 원(9.2% 증가)으로 편성했다. 이는 정부 전체 총지출의 16.2%에 해당하는 막대한 금액이다.

    “정치적 결정, 안타깝다”

    그럼에도 여전히 아동복지시설 종사자들 사이에서는 “상대적 박탈감이 크다”는 볼멘소리가 들려온다. “현 정부 들어 노인과 장애인에 대한 복지는 상대적으로 향상된 반면 아동에 대한 복지는 제자리걸음” 이라는 지적이다. 실제로 2021년 보건복지부 예산 편성안을 보면 ‘포용국가 기반 내실화’ 명목으로 △취약계층 지원(생계급여 전년 대비 6.2% 증가, 의료급여 전년 대비 9.7% 증가) △ 노인 · 장애인 돌봄 및 소득 보장 강화(노인장기요양보험 국고지원 전년 대비 20.5% 증가, 노인맞춤돌봄서비스 전년 대비 12.2% 증가, 장애인활동지원 14.8% 증가, 발달장애인지원 전년 대비 65.1% 증가, 장애인연금 5.5% 증가)를 제시하고 있는 반면 아동복지시설은 지자체 이양사업인 만큼 어떤 지원도 명시돼 있지 않다. 

    단, 성인이 돼 시설에서 나온 ‘청년층·보호종료 아동’에 대한 자립지원책으로 진행 중인 ‘청년저축계좌(만 15∼39세의 차상위 계층 청년 근로자가 청년저축계좌를 신청해 매월 10만 원을 저축하면, 정부가 30만 원의 지원금을 추가 적립해 3년 뒤 1440만 원을 받을 수 있는 금융상품)’ 지원액을 올해 73억 원에서 내년 206억 원으로 늘렸다. 보호종료아동 자립수당 또한 전년 대비 1.8% 증가했다. 하지만 이는 아동복지시설에서 생활하는 동안 받을 수 있는 지원은 아니다. 

    정부가 아동복지시설을 지자체 이양 사업으로 전환한 배경에는 ‘(선거)표의 원리’가 작용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순형 서울대 아동가족학과 교수는 ”정부가 표심 잡기에만 급급한 나머지 투표권이 없는 아이들에게까지 세심한 시선을 주지 않고 있다“며 “모든 걸 정치적 관점으로 결정하는 게 안타깝다”며 지적했다. 

    이어 이 교수는 ”부모가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아이들은 국가 책임이다. 장기적인 국가 철학과 계획으로 아이들을 돌보지 않으면 향후 국가가 치러야할 사회적 비용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보여주기 식의 단발성 이벤트가 아닌 먼 미래로까지 눈을 돌리는 백년지대계를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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