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58

2020.09.25

페트병으로 만든 셔츠, 시트가죽으로 만든 가방 … 지금은 ‘새활용’ 전성시대

코로나19로 뜨는 자원의 선순환 ‘업사이클링’ … 구직난 허덕이는 청년창업 아이템으로 각광

  • 김지영 기자

    kjy@donga.com

    입력2020-09-22 11: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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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업사이클링 벤치. [락앤락]

    업사이클링 벤치. [락앤락]

    #1. 9월 6일 제주의 아름다운 바다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올레 길에 재활용한 자원으로 만든 벤치가 설치됐다. 해양에서 나온 플라스틱 쓰레기와 식품용기제조업체 락앤락에서 수거한 플라스틱 밀폐용기가 시민들의 편안한 쉼터로 거듭난 것이다. 락앤락, 해양환경공단과 이 벤치를 공동 제작한 글로벌 컨설팅기업 테라사이클코리아 관계자는 “코로나19 장기화로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량이 날로 증가해 바다로 유입되는 쓰레기 문제가 심각하다”며 “자원을 재활용한 이 벤치를 보면서 시민들 스스로 쓰레기를 줄이고 해양환경보호를 실천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2. 9월 14일 서울 영등포구 신세계백화점에서는 폐차량의 가죽시트와 안전벨트 등으로 만든 가방이 눈길을 끌었다. 폐차량에서 나온 시트와 에어백 등을 소재로 한 가방과 지갑을 생산하는 사회적 기업 모어댄의 2020FW(가을겨울) 시즌 신상품이었다. 매장 직원은 “소재와 디자인이 독특하고 견고하게 만들어져 반응이 좋다”고 전했다. 최이현 모어댄 대표는 “사업 초기엔 직접 폐차장에서 원단을 수거하며 문전박대를 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면서 “환경에 관심이 많아지고 모두가 힘든 시기다 보니 착한 소비가 점점 활발해지는 것 같다”며 흐뭇해했다.

    환경 보호하고 일자리도 창출

    종이로 만든 그레이프랩의 노트북 거치대(위).자동차 시트 가죽 등을 활용해 만든 모어댄 컨티뉴 신상 가방. [SK이노베이션, 모어댄]

    종이로 만든 그레이프랩의 노트북 거치대(위).자동차 시트 가죽 등을 활용해 만든 모어댄 컨티뉴 신상 가방. [SK이노베이션, 모어댄]

    코로나19 대유행으로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재활용을 통해 자원을 아끼고 환경을 보호하는 ‘업사이클링(Up-cycling)’ 바람이 곳곳에서 불고 있다. 업사이클링은 버려지는 자원에 디자인을 더하거나 활용법을 바꿔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작업으로, ‘새활용’이라는 용어로 불리기도 한다. 우리가 사는 지구를 지속 가능한 건강 상태로 지켜내기 위한 일종의 환경 운동이기도 하다. 

    남양유업은 ‘빨대를 돌(doll)려줘’라는 업사이클링 캠페인을 진행 중이다. 지난 6월 인연을 맺은 소비자 모임 ‘지구지킴이 쓰담쓰담’의 ‘빨대반납운동’을 발전시킨 환경 살리기 캠페인으로 남양유업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에서 참여 신청을 받고 있다. 참여가 확정된 소비자는 평소 사용한 일회용 플라스틱 빨대를 버리지 않고 양말목으로 만들어진 업사이클링 인형에 모으면 된다. 그러면 남양유업과 서울새활용플라자가 이를 수거해 새로운 업사이클링 제품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도록 소재은행에 제공한다. 남양유업 관계자는 “국내에서 발생하는 플라스틱 빨대의 폐기량이 연간 100억 개에 달하고 코로나19로 일회용 빨대 사용량이 늘었는데 빨대는 크기가 작아 선별하기 힘든 어려움 때문에 재활용되지 못하는 실정”이라며 “많은 분들이 참여해 빨대를 모으는 고슴도치, 선인장 인형의 집사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SK이노베이션은 업사이클링을 전문으로 하는 사회적 기업을 지원해 착한 소비를 이끌고 있다. 모어댄과 크레이프랩이라는 친환경업체가 대표적이다. 모어댄이 재활용하는 주요 소재는 시트 제작 후 남은 자투리 가죽이나 폐차 시 버려지는 가죽시트, 에어백 등이다. 그렇다고 자동차 관련 소재만 고집하는 건 아니다. 6월말부터 제주국제공항면세점에서 판매 중인 모어댄의 ‘오션백’은 바다에 버려진 그물을 사용해 제작됐는데, 한 달도 채 되기 전 초도 물량이 죄다 팔렸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 ‘지속가능한 새로움을 추구한다’는 뜻의 ‘컨티뉴(CONTINEW)’라는 브랜드로 출시되는 모어댄의 모든 제품은 40년 이상 경력을 가진 장인들이 100% 수작업으로 생산한다. 이를 통해 모어댄은 연간 4백만 톤에 달하는 국내 자동차 폐기물 절감에 한몫하고 있다. 경력단절여성, 북한이탈주민 등 사회적 취약계층 16명의 일자리를 창출했다. 



    그레이프랩은 사탕수수, 코코넛, 버려진 잡지 등을 이용해 다이어리, 노트북 거치대, 쇼핑백 등 감각적인 디자인의 소품을 만드는 사회적 기업이다. 디자이너와 상품제작자 16명 중 절반이 발달장애인으로 구성됐다. 이 회사는 친환경 소재를 사용할 뿐만 아니라 제품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접착제, 코팅제 등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재활용해 만든 제품을 다시 재활용할 수 있고, 디자인이 실용적인 것도 장점으로 꼽힌다. 김민양 그레이프랩 대표는 “종이를 이용해 마치 아코디언처럼 늘리고 줄일 수 있는 구조로 노트북과 책 거치대를 제작했다”며 “사용자는 납작하게 거치대를 눌러 가방에 간편하게 휴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제품을 온라인에서만 판매하는데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특허 받은 디자인에 가벼우면서도 견고한 품질로 좋은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사회적 기업 몽세누는 버려진 프라스틱 패트병을 활용해 티셔츠, 코트, 재킷 등 다양한 의류를 만든다. 패트병에서 추출한 재생섬유의 비율은 의상에 따라 40~100%로 저마다 다르다. 박준범 몽세누 대표는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온라인몰에서 주로 판매되는데 환경에 관심이 많아 착한 소비를 하는 분도 있고, 재활용한 자원으로 만든 옷이라는 것을 모르고 구매하는 분도 많다”고 전했다. 또 “겉으로 볼 때는 옷감이 일반 의류와 다를 바 없지만 디자인과 품질, 자원 낭비를 줄이려는 몽세누의 정신 그 자체가 경쟁력이 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빨대를 효과적으로 수거하기 위한 ‘빨대를 돌려줘’ 캠페인 포스터(왼쪽). 페트병으로 만든 몽세누 셔츠. [남양유업, 몽세누]

    빨대를 효과적으로 수거하기 위한 ‘빨대를 돌려줘’ 캠페인 포스터(왼쪽). 페트병으로 만든 몽세누 셔츠. [남양유업, 몽세누]

    현대자동차도 지난해 9월 미국 뉴욕에 이어 같은 해 11월 중국 베이징에서 친환경 패션브랜드 ‘리클로딩 뱅크’와 협업해 폐기되는 시트 가죽과 에어백으로 만든 의상과 토드백 등 업사이클링 패션을 선보여 화제를 모은 바 있다. 현대자동차 관계자는 “자동차 시트 등 부품을 제조하는 현대트랜시스가 크기가 작거나 오염돼 폐기되는 자투리 가죽을 공급해 의상을 만들었다”며 “중국 빠링허우•주링허우 세대(1980•90년대 출생자)들이 보고 감탄사를 쏟아냈을 정도로 반응이 뜨거웠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그러면서 업사이클링 패션의 친환경 콘셉트가 기업이 추구하는 가치와 그때 중국에서 출시된 소형 SUV 전기차 ‘엔시노 EV’(국내명 코나 일렉트릭)의 기능성을 현지인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데도 도움이 됐다“고 평가했다. 이 전기차는 1회 충전 주행거리가 500km(중국 기준)에 달한다.

    업사이클링의 세분화, 다양화

    업사이클링업체 가운데는 전 세계에서 사랑받는 글로벌 기업도 적잖다. 그래픽 디자이너 마커스와 다니엘 형제가 만든 스위스 브랜드 ‘프라이탁(FREITAG)’이 좋은 예다. 5년 이상 탄 트럭의 낡은 방수포와 자전거 튜브, 안전벨트 등으로 만든 가방은 프라이탁에 오늘날의 명성을 가져다준 효자 상품이다. 방수포의 여러 면적을 사용해 가방마다 색과 패턴이 다르고 튼튼한 것이 장점이다. 2018년 론칭한 국내 스타트업 가방 브랜드 ‘플리츠 마마’는 500ml 페트병 16개로 만든 주름 토드백으로 유명하다. 플리츠 가방의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은 독특한 주름 모양과 뛰어난 신축성에 있다. 페트병에서 탄생한 리사이클 폴리에스테르 원사 ‘리젠’을 사용한 덕분이다. 리젠은 원하는 모양대로 편직이 가능하고 자투리 원단을 남기지 않는다. 

    그림을 그리는 캔버스를 활용해 가방을 만드는 ‘얼킨’도 주목받는 업사이클링 브랜드 중 하나다. 신진작가의 버려진 회화 작품이 가방으로 다시 태어나고, 판매 수익의 일부는 작가의 로열티와 재료 구입비 등으로 환원된다. 이밖에도 못난이 농산물을 활용해 비건 뷰티 브랜드를 개발한 ‘브로컬리컴퍼니’, 교란종으로 분류돼 폐기되는 물고기 배스와 초유•귤껍질 등 버려진 농수산물을 원료로 반려동물용 식품을 만드는 ‘밸리스’ 등 업사이클링업체는 점점 다양화, 세분화하는 추세다. 

    업사이클링은 창업 아이템으로도 각광받는다. 소자본으로 틈새시장을 공략해 자리 잡은 업체가 계속 생겨나고 있어서다. 밸리스도 그 중 하나다. 2017년 5명이 만든 창업동아리가 지금은 16명의 직원을 두고 연간 20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스타트업으로 성장했다. 한국고용정보원 온라인청년센터 관계자는 “코로나19로 취업문이 더욱 좁아져 창업으로 눈을 돌리는 청년들이 점점 늘고 있다”며 “밀레니얼 세대는 환경에 관심이 많고 윤리적인 소비를 지향하는 경향이 있어 기존에 없는 업사이클링 아이템으로 도전해보면 좋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업사이클링 관련 창업은 중소벤처기업부가 운영하는 창업넷 ‘K-Startup 창업지원포털 (www.k-startup.go.kr)’을 통해 필요한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중소벤처기업부 관계자는 “아이디어를 상품화하는 과정부터 교육, 시설, 공간까지 다양한 지원을 받을 수 있다”며 “미생물을 활용한 플라스틱 재활용 전처리 기술을 개발한 리플라(전 블루리본), 자동차 폐기물 재처리 기술을 이용해 업사이클링 가방을 만드는 모어댄 등을 대표 사례로 꼽았다.

    곳곳에서 불고 있는 업사이클링 바람은 폐기물 처리비용 절감 효과에도 크게 기여할 전망이다. 한국환경공단에 따르면 2018년 통계치를 기준으로 국내 폐기물(생활+사업장+건설 폐기물) 처리량은 하루 43만713톤으로 연간 1억5721만245톤에 달한다. 수도권 기준으로 폐기물 1톤당 처리비용은 대략 30만~40만원. 연간으로 계산하면 47조를 넘는다. 한국환경공단 자원순환처 관계자는 “자원의 재활용을 넘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업사이클링은 천문학적인 비용이 드는 폐기물 처리 문제뿐 아니라 침체된 경제를 살리는 데도 좋은 해법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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