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41

2020.05.29

동맹의 약한 고리 때린 中, “양아치 짓”이라 맞선 호주

코로나19 기원 국제조사 주장한 호주, 중국의 보복 조치에도 버티기 나서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입력2020-05-24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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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가 코로나19 기원에 대한 국제조사를 주장하고 있다. [AAP]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가 코로나19 기원에 대한 국제조사를 주장하고 있다. [AAP]

    중국 정부는 2010년 10월 8일 노르웨이 노벨위원회가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중국 반체제 인사이자 인권운동가인 류사오보(劉曉波)를 선정하자 이듬해 노르웨이를 상대로 경제보복 조치를 단행했다. 경제보복 조치는 노르웨이의 대표 수출품목인 연어 수입을 대폭 줄이는 것이었다. 노르웨이는 세계 연어 생산량 1위 국가다. 2010년만 해도 노르웨이는 1만1000t의 연어를 중국에 수출했다. 중국은 2001년부터 10년간 노르웨이로부터 가장 많은 연어를 수입한 나라였다. 중국의 경제보복 조치는 6년간 계속됐다. 그 결과 노르웨이산 연어의 중국 시장점유율은 2010년 92%에서 2017년 30%까지 내려갔다. 

    노벨위원회는 노르웨이 수도 오슬로에 본부가 있지만, 노르웨이 정부로부터 독립된 단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 정부가 노르웨이에 경제보복 조치를 단행한 것은 자국의 정치체제를 흔들려는 의도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노르웨이 정부는 결국 중국 정부에 굴복했다. 당시 뵈르게 브렌데 노르웨이 외무장관은 2017년 12월 19일 중국을 방문해 왕이 외교부장을 만나 양국 관계 정상화에 합의했다. 브렌데 장관은 공동성명을 통해 “노르웨이는 6년 전 노벨상에 대한 중국의 우려를 충분히 이해한다”며 “중국의 핵심 이익을 훼손하는 행동을 지지하지 않음은 물론, 장차 양자 관계에 미칠 손실을 피하고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의 ‘약자 괴롭히기’ 수법

    호주 목동이 말을 타고 소떼를 몰고 있다. [ABC.jpg]

    호주 목동이 말을 타고 소떼를 몰고 있다. [ABC.jpg]

    중국 정부가 또다시 코로나19 사태와 관련해 호주를 상대로 경제보복 조치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가 4월 21일 기자회견에서 코로나19 기원을 국제적으로 조사하는 방안을 지지한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모리슨 총리는 “코로나19 기원을 적절하고 독립적이며 투명한 조사를 통해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해 미국 정부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제기해온 중국 책임론에 동조하는 견해를 드러냈다. 그러자 중국 정부의 입장을 대변해온 관영매체 ‘환구시보’의 후시진 편집장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웨이보에 ‘호주는 중국의 신발 밑에 붙은, 씹던 껌처럼 느껴진다’며 ‘가끔 돌을 찾아 문질러줘야 한다’는 글을 올리고 ‘보복 조치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청징예 주호주 중국대사도 “호주 정부가 코로나19 기원에 대한 조사를 밀어붙일 경우 호주산 와인과 쇠고기의 수입을 중단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모리슨 총리가 자신의 입장을 철회하지 않고 계속 코로나19 기원에 대한 국제적인 조사를 강조하자 중국 정부는 5월 12일 킬코이 파스토랄, JBS 비프시티, 딘모어 플랜트, 노던 코퍼레이티브 등 4개 호주 육가공업체의 쇠고기를 수입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이들 4개 업체는 호주의 대중국 쇠고기 수출의 35%를 차지한다. 중국 정부는 또 5월 19일 앞으로 5년간 호주산 보리에 각각 73.6%, 6.9%의 반덤핑 및 반보조금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밝혔다. 호주는 연간 보리 생산량의 50%를 중국에 수출해왔다. 보리는 맥주 등 양조업이나 가축사료에 쓰이는데, 호주가 대체수출국을 찾기 어려운 반면, 중국은 대체수입국을 찾기 쉬운 품목이다. 호주는 매년 9억8000만~13억 달러(약 1조2000억~1조6000억 원)어치의 보리를 중국에 수출해왔다. 

    중국 정부의 이러한 경제보복 조치는 자국의 이익과 정치·외교적 입장 등을 관철하기 위해 구사해온 전형적인 ‘약자 괴롭히기’ 수법이다. 특히 중국 정부는 특정국의 핵심 산업을 겨냥해 경제보복 조치를 해왔다. 호주의 주력 수출품은 농축산물이다. 호주의 쇠고기 수출에서 중국의 비중은 2017년 11%, 2018년 14%, 2019년 24%로 꾸준히 증가해왔다. 중국의 쇠고기 전체 수입 규모는 2018년 13억7000만 달러에서 2019년 28억7000만 달러(약 3조5510억 원)로 2배 넘게 늘었다. 중국 정부 입장에선 호주의 급소를 찌른 셈이다. 중국 정부가 이번에 호주산 쇠고기와 보리에 경제보복 조치를 내린 것은 호주가 중국 이외에는 마땅한 판로가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호주, 미국과 안보동맹 강화

    중국으로 수출되는 호주산 철광석이 대형 운반선에 실리고 있다. [BHP]

    중국으로 수출되는 호주산 철광석이 대형 운반선에 실리고 있다. [BHP]

    그런데 코로나19 기원에 대한 국제조사를 주장한 국가는 호주 외에도 영국, 독일, 프랑스 등이 있다. 호세프 보렐 유럽연합(EU) 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는 아예 코로나19 기원을 독립적이고 과학적으로 조사해야 한다는 내용의 글을 언론매체에 기고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 정부가 호주만을 상대로 경제보복 조치를 단행한 것은 호주가 서방 국가 가운데 가장 국력이 약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호주 정부는 그동안 남중국해에 군함을 파견하는 등 미국과 안보동맹을 강화해왔다. 호주는 미국, 영국, 캐나다, 뉴질랜드와 함께 5개국 정보동맹체인 ‘파이브 아이스(Five Eyes)’의 멤버이기도 하다. 호주 정부는 국가안보를 이유로 중국 통신장비업체 화웨이의 5G를 사용하지 못하게 해왔다. 따라서 이번 중국 정부의 의도는 이참에 호주에 본때를 보여주고 코로나19 사태에 대한 중국 책임론을 잠재우면서 미국과의 안보동맹에도 강력한 견제구를 던지려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호주 정부는 중국 정부의 경제보복 조치를 어느 정도 버틸 수 있을까. 호주는 경제적으로 중국에 상당히 의존해왔다. 호주는 2019 회계연도(2018년 7월~2019년 6월)에 1532억 호주달러(약 124조 원)의 상품과 서비스를 중국에 수출했다. 이는 호주 전체 수출액의 32.6%를 차지한다. 수출 대상 2, 3위인 일본, 한국의 비중이 13.1%, 5.9%에 불과한 점을 감안하면 중국에 대한 편중이 너무 심하다. 호주의 지난해 대중국 무역흑자는 714억 호주달러(약 57조 8000억 원)에 달했다. 

    또 호주 대학들의 중국인 유학생 의존도도 크다. 호주 대학의 전체 학생 가운데 중국인 유학생이 10%에 이른다. 코로나19 사태로 상당수 중국인 유학생이 호주에 입국하지 못하면서 호주 대학들은 재정적으로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중국인 관광객도 전혀 없어 호주 관광산업 역시 초토화됐다. 그만큼 중국의 경제보복 조치가 계속될 경우 호주는 경제적으로 상당한 타격을 입을 것이 분명하다. 호주 시드니공과대 호주·중국 관계 연구소의 제임스 로렌세슨과 마이클 저우 연구원은 “대중국 수출 비중이 높은 호주는 이번 경제보복 조치로 엄청난 손실을 입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호주에선 코로나19 사태로 반중정서가 고조되고 있다. 실제로 아시아계 유학생들이 멜버른 등 주요 도시에서 인종 차별적인 폭언과 폭행을 당하는 일이 잇따라 발생했다. 이 때문에 중국인 유학생은 봉변을 당할까 봐 밖에 나가기조차 두렵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주멜버른 중국 총영사관 측은 호주 경찰에 자국 유학생들의 안전을 보장해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호주 도시들은 중국 도시들과 자매결연을 끊고 있다. 뉴사우스웨일스주 와가와가시는 중국 쿤밍시와 32년간 이어온 자매결연 관계를 단절했다.

    “중국의 쇠고기 수입 제한은 양아치 짓”

    중국으로 수출되는 호주산 쇠고기들. [FoodMag.au]

    중국으로 수출되는 호주산 쇠고기들. [FoodMag.au]

    호주 정치권도 여야 구분 없이 중국 정부의 경제보복 조치를 강력하게 비판하고 있다. 조지 크리스텐슨 하원의원은 “중국의 쇠고기 수입 제한은 양아치 짓(Bastard Act)”이라며 “우리는 중국 공산당의 지속적인 위협을 감내하든지, 아니면 우리의 자주와 경제독립을 위해 일어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그는 “호주의 수출이 중국에 편중된 것은 한 바구니에 너무 많은 달걀을 담은 것과 마찬가지”라며 “중국 정부의 협박과 보이콧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수출을 다변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앤드류 해스티 하원의원도 “호주 국민은 바보가 아니다”라면서 “우리는 코로나19가 어떻게 시작됐고 중국 공산당이 어떻게 코로나19에 대해 거짓말했는지 알고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육류업계 등 호주 경제계는 중국과 관계 악화로 피해가 갈수록 늘어날 것이 분명하다면서 중국과 타협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한스 헨드리쉬케 시드니대 중국경영대학 교수는 “현실적으로 중국을 대체할 만한 시장이 없다”며 “호주의 경제성장에는 중국 경제가 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호주 정부는 중국 정부의 이번 농축산물 경제보복 조치와 관련해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 또한 자국 최대 수출품목인 철광석, 석탄 같은 천연자원은 중국이 반드시 수입해야 하기 때문에 경제보복 조치를 피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모리슨 총리는 “호주는 지금까지 지향해온 가치들을 굳건히 유지할 것”이라며 중국 정부의 경제보복 조치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미국 정부 역시 호주 정부를 적극적으로 지원할 것으로 보인다. 이웃국가인 뉴질랜드 정부도 호주 정부의 입장을 지지하고 나섰다. 다윗인 호주가 골리앗인 중국의 압박을 버텨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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