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천리마 코로나에 거북이 뒷북 대책

지금은 컨틴전시 플랜 가동할 때…“우한처럼 ‘체육관 수용’ 검토하라”

  •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입력2020-03-04 11:2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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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검사·입원 대기하던 4명 숨진 뒤에야 “신천지 말고 고위험군 우선” 발표

    • 뒤늦게 문 연 ‘생활치료센터’…수용 인원 적고 응급조치 힘들어

    • 고혈압 확진자 사망률 6%인데, 기저질환 목록에 고혈압 없어

    음압격리 병실로 이송되고 있는 코로나19 환자 [사진 제공·순천향대 천안병원]

    음압격리 병실로 이송되고 있는 코로나19 환자 [사진 제공·순천향대 천안병원]

    코로나19가 국내에서 13번째로 빼앗아간 생명은 대구의 74세 남성이었다. 이 남성은 2월 25일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신장 이식 이력이 있음에도 병상 부족으로 입원하지 못했다. 결국 그는 자택에 격리된 지 사흘 만에 호흡 곤란으로 숨졌다. 

    14번째 사망자인 대구의 70세 여성은 코로나19 감염 검사조차 받지 못했다. 질병관리본부 콜센터(1339)와 대구지역 보건소에 수차례 연락해 기침 증세를 호소했지만 △발열 증세가 없고 △신천지 교인이 아니며 △중국에 다녀온 적이 없다는 이유로 코로나19 검사 요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 여성은 기침 증세가 나타난 지 7일째인 2월 28일 숨을 거뒀다. 

    병상 부족 등을 이유로 치료 한 번 받지 못하고 사망하는 사례가 3월 4일 현재까지 4건 발생했다. 20번째(대구 86세 여성), 21번째(대구 80세 여성) 사망자도 코로나19에 감염됐지만 입원할 수 있는 병원이 없어 자택에서 대기하던 중 숨졌다. 

    이에 정부는 확진자 전원을 음압병상에 입원시키던 기존 치료체계를 포기하고, 중증도에 따라 치료 방식을 달리하는 ‘피해 최소화 전략’으로 선회했다. 하지만 이 같은 결정이 너무 늦게 나온 데다, 치료체계 전환 속도가 코로나19 확진자 발생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의료 공백에 대한 우려가 여전하다. 새로 도입한 중증도 분류 기준이나 생활치료센터도 그 내용이 불명확하거나 구체적으로 정해진 바가 없어 현장에서 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입원 대기 확진자 2000명 넘어

    3월 3일 코로나19 관련 정례브리핑을 하고 있는 김강립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1총괄조정관(왼쪽)과 권영진 대구시장. [뉴스1]

    3월 3일 코로나19 관련 정례브리핑을 하고 있는 김강립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1총괄조정관(왼쪽)과 권영진 대구시장. [뉴스1]

    코로나19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는 1일 코로나19 확진자의 중증도를 4단계(경증·중등도·중증·최중증)로 분류, 중등도 이상 확진자는 음압격리병실 또는 감염병 전담병원에서 입원치료하고, 경증 확진자는 생활치료센터에 입소시키기로 했다. 하지만 이 같은 선별진료체계로 전환은 의료계가 지난달부터 요구해온 사안이다. 대한감염학회는 2월 15일 “코로나19 확진자 선별, 경증 확진자 진료, 중증 확진자 진료, 일반 환자 진료 등의 업무를 분담하는 체계 정립이 필요하다”고 정부에 권고했다. 22일에는 “대량 확진자가 발생하면 다수의 경증 의심환자들은 자가격리를 하면서 중증환자들을 선별해 진료하는 이른바 ‘완화(mitigation)’ 전략으로 장기전 준비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국내 코로나19 확진자는 2월 18일 31명이었으나, 신천지 대구교회에서 대량 확산되면서 일주일새 977명(2월 25일)으로 폭증했다. 지난달 선제적으로 진료체계를 전환했더라면 피해를 줄일 수 있었을 것으로 짐작되는 대목이다. 중대본과 대구시는 병상 확보에 연일 매진하고 있지만, 3월 3일 오후 현재 입원 대기 중인 인원은 2195명에 이른다. 앞으로도 당분간 확진자가 매일 수백 명씩 추가될 경우 이 인원은 더욱 폭증할 수 있다. 자택에서 입원을 기다리다 사망에 이르는 사례가 더 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실제로 정부가 대응 전략을 바꾸고 이틀이 지난 3월 3일에도 대구에서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았으나 집에서 입원을 기다리다 숨지거나, 사망 후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은 사례가 3건 발생했다. 

    중대본에 따르면 코로나19 확진자의 80% 이상이 별 다른 증세가 없는 경증환자다. 앞으로 경증환자는 각 지방자치단체가 마련한 생활치료센터에서 생활하게 된다. 자택에서 자가격리하다 중증으로 심화돼 응급 상황이 발생하거나, 가족 및 지인에게 바이러스를 전파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중대본에 따르면 생활치료센터 입소자는 1인 1실에서 지내면서 매일 두 차례 체온 및 호흡기 증상을 자가 모니터링한다. 각 생활치료센터에는 의사 4명, 간호사 7명, 간호조무사 6명으로 구성된 17명의 의료진이 24시간 상주한다. 생활치료센터는 대구에 가장 먼저 도입되는데, 3월 3일 현재 대구시는 7개의 생활치료센터, 총 1029실을 확보했다(그림 참조).

    하지만 대구의 생활치료센터 확보 속도 역시 급증하는 확진자를 따라가지 못하는 형국이다. 3월 3일 현재 대구 확진자 3601명의 80%를 경증환자라고 가정하면 어림잡아 2500실이 필요하다. 3일 기준으로도 1000실 이상 부족한 셈이다. 신규 확진자 증가 추세가 수그러들지 않으면 부족한 객실 규모는 더욱 늘어나게 된다. 생활치료센터로 사용하기로 한 시설이 언제쯤 내부 정비, 의료진 확보 등 준비를 마치고 경증환자를 받을 수 있는지도 아직 불투명한 상태다.

    용어 통일 안 된 ‘코로나19 대응 지침’

    문제는 더 있다. 대구의 생활치료센터 중 일부가 외진 곳에 위치해 응급 상황에 신속하게 대처할 수 있을지 우려된다. 경북권의 상급종합병원은 5개로, 모두 대구 시내에 위치한다. 하지만 7개 생활치료센터 중 경북 문경의 서울대병원 인재원, 영덕의 삼성인재개발원 영덕연수원, 그리고 경주의 농협경주교육원과 더케이호텔경주는 이들 상급종합병원과 꽤 먼 거리에 위치한다. 특히 삼성인재개발원 영덕연수원은 대구 시내에서 180km 떨어져 있다. 영덕군 관계자는 “관내에서 가장 큰 병원은 100병상 규모의 영덕아산병원”이라며 “권역응급의료센터가 있는 가장 가까운 병원은 포항성모병원인데, 차로 1시간가량 걸린다”고 밝혔다. 삼성인재개발원 영덕연수원에 설치되는 생활치료센터를 지원하기로 한 삼성서울병원 관계자는 “의료진을 지원하는 정도로만 알고 있고, 그 밖에 구체적으로 결정된 내용은 아직 없다”고 말했다. 엄중식 가천대 의대 감염내과학교실 교수는 “경증환자가 입소한다 해도 응급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며 “생활치료센터도 중증도 분류 및 응급상황에 대비할 수 있는 의료장비를 갖춰야 한다. 응급환자를 어느 병원으로 이송할지 같은 계획도 사전에 마련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중대본이 마련한 환자 중증도 분류 기준을 좀 더 단순·명료하게 바꿔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중대본은 환자 중증도를 경증·중등도·중증·최중증으로 나눈다고 발표했지만, 막상 각 지방자치단체에 배포한 ‘코로나19 대응 지침 부록’에는 중증도가 무증상·경증·중증·위중으로 표기돼 있다(표 참조). 기본 용어조차 통일되지 않은 것이다. 또 현재의 중증도 분류에 따르면 50세 미만에 발열 증세가 없고, 기저질환이 ‘1개 이상’이면 경증환자로 분류돼 병원이 아닌 생활치료센터로 가게 된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단 하나의 심각한 기저질환을 가진 환자는 중증으로 발전할 위험이 있는데, 이 기준에 따르면 경증으로 분류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 지침에 나열된 기저질환 목록에는 고혈압이 없다. 중국에서는 고혈압 기저질환을 가진 코로나19 확진자의 사망률이 6%에 이르는 것으로 보고돼 있다. 2월 22일 집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된 세 번째 코로나19 사망자(경북 경주 40세 남성)도 평소 고혈압약을 복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코로나19 대응 지침 7판 부록에 실린 코로나19 환자 중증도 분류표

    코로나19 대응 지침 7판 부록에 실린 코로나19 환자 중증도 분류표

    “5000명 수용 규모, 충분” 막연한 예상

    코로나19 경증 환자를 위한 ‘대구1 생활치료센터’로 활용되는 대구 동구 교육부 중앙교육연구소. [사진 제공·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코로나19 경증 환자를 위한 ‘대구1 생활치료센터’로 활용되는 대구 동구 교육부 중앙교육연구소. [사진 제공·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정부의 뒤늦은 코로나19 진료체계 개편이 확진자 증가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대구·경북을 넘어선 전국적인 대량 감염 사태로 번질 가능성까지 엿보이자 일각에서는 ‘컨티전시 플랜(비상계획)’의 일환으로 중국 우한처럼 도심에 대규모 격리시설을 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우주 고려대 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전 대한감염학회 이사장)는 “소수의 의료진이 다수의 경증환자를 효과적으로 관리하려면 외곽지역에 있는 1인 1실의 호텔식 시설보다 대형 의료기관과 가까운 도심 실내체육관 같은 대규모 공간이 유리하다”며 “침상을 최소 2m 간격으로 배치하고 칸막이와 화장실 등 필요 시설을 쾌적하게 마련하는 방안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대구·경북 외 지방자치단체 역시 사태 악화에 대비해 지금부터 준비에 나서야 대구 같은 위기 상황에 대처할 수 있다”고도 덧붙였다. 

    하지만 정부는 ‘체육관 수용’을 고려 대상에 포함하고 있지 않다. 3월 3일 낮 정례브리핑에서 이창준 중대본 환자관리반장은 “치료보다는 모니터링 중심의 생활치료센터를 전국에 많게는 5000실 규모로 확보할 계획이다. 완치된 환자는 생활치료센터에서 퇴소하게 되므로 이 정도면 충분하리라 본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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