궤도 밖의 과학

어린 시절 그 많던 시간은 어디로 갔을까

시간의 흐름에 대한 과학적 설명

  • 과학 커뮤니케이터 궤도

    nasabolt@gmail.com

    입력2019-12-30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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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etty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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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운 것이 정말 있다면 바로 시간일 것이다. 물론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면 불의한 결과가 나오기도 하지만, 시간이야말로 정의, 진리에 가장 올바른 도리가 아닐까 싶다. 낭비한 시간이 억울해 아무리 사정해봐도 흘러가는 시간에게 정상 참작은 없으니까. 

    세월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 자본금이라는 말도 있다.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에서 모아둔 미네랄 대신 베스핀 가스를 사용할 수 없듯이, 시간은 다른 어떤 자원으로도 대체가 불가능하다. 그리고 원하든 원하지 않든 태어나 죽는 날까지 멈추지 않고 소비한다. 모두의 시간은 거의 동일하게 서서히 흘러가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저녁 7시 카페 2층에서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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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이 흐르는 속도가 동일한지를 확인하기 전에 먼저, 시간이 무엇인지를 알아보자. 친구와 약속을 했다. 오늘 저녁 7시에 카페 2층 테라스에서 만나자. 여기서 저녁 7시라는 건 언제를 말하는가. 해가 질 무렵, 시계의 시침이 7에 위치하고 분침은 0에 위치한 상태라고 우기는 것이 최선이다. 

    그럼 카페 2층 테라스에서 친구를 만나기 위해서는 정확한 위치를 3차원상으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동서남북 방향에 따라 카페에 도착한다면 일단 2차원 평면까지는 성공이다. 이제 2층까지 올라간다면 정확하게 3차원상 목적지에 도달한 셈이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도착한 시간이 오늘 오후 5시라면 아마 친구는 없을 것이다. 시간 차원이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일 아침 7시라 해도 마찬가지다. 실망한 친구가 집으로 돌아가고 없을 테니까. 공간 차원인 카페의 위치나 층수를 헷갈렸다면 다시 방향을 바꿔 올바른 위치를 찾을 수 있겠지만, 시간 차원은 결코 되돌릴 수 없다. 시간은 차원의 일종이며, 역주행이 불가능한 특이한 녀석이다. 그리고 우리가 속한 이 세계는 3차원 공간과 1차원 시간이 결합된 4차원의 시공간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럼 시간의 속도는 어떨까. 여기에 가장 관심이 많았던 과학자가 아인슈타인이다. 시간이 흐르는 속도는 정말 절대적일까. 세상에 과연 절대적인 것이 있을까. 여기서 시작된 그의 질문이 상대성이론을 탄생시켰다. 상대성이론 자체를 설명하는 것도 벅찬 일이지만 시간 관점에서 아주 단순화해 설명해보자.

    상대성이론과 엔트로피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GettyImages]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GettyImages]

    특수상대성이론이 빠르게 움직이는 물체의 시간이 느려지는 것이라면, 일반상대성이론은 중력 크기에 따라 시간의 속도가 달라지는 것이다. 오해하지 말자. 상대성이론이 바닷물이라면, 방금 앞에서 한 설명은 염전에서 생산된 소금을 몇 톨 넣어 만든 찌개를 한 숟가락 떠먹은 수준이니까. 

    어쨌든 시간은 상대적이다. 빠르게 날아가는 로켓 내부의 시간은 외부 관찰자보다 느리게 흐를 것이며, 지구에서 멀리 떨어진 사람의 시간은 지구 표면에 붙어 있는 사람보다 빠르게 흐른다. 실제로 높은 곳에서 지구 주위를 빠르게 돌고 있는 인공위성의 경우 특수상대성이론과 일반상대성이론에 의해 만들어지는 시간의 오차를 보정한다. 

    이런 경우가 일반적이라는 얘기가 아니다. 초고층 전망대의 시간은 지상보다 빨리 가긴 하지만, 그래 봐야 10억 분의 1초가 될까 말까다. 상대론적 시간 보정을 하지 않아 중요한 약속에 수십억 분의 몇 초를 지각하는 것을 트집 잡을 친구는 없다. 즉 매우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두의 시간이 거의 동일하게 흐른다고 봐도 좋겠다. 시간은 동일하게 흐른다. 

    첫눈에 반할 만한 이상형을 만났을 때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느껴지는 경우도 있겠지만, 실제로 시간이 멈췄을 리는 없다. 누구나 시간은 멈출 수 없다는 사실을 상식적으로 알기에 시간이 정말 흐르는지에 대한 궁금증을 갖기는 어렵다. 해가 뜨고 지며, 따뜻한 공깃밥은 점점 차가워지고, 꺼내놓은 생선은 부패하며, 빨래는 점차 마른다.

    만약 깨진 유리컵의 파편이 다시 모여 말끔한 유리컵 상태로 되돌아가는 영상을 본다면, 우리는 영상을 거꾸로 재생했다고 확신한다. 상황을 보여주고 시간 순으로 배열하는 문제가 시험에 자주 출제되는 것도 기억하자. 확률적으로 일어날 가능성이 큰 방향은 명백하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시간의 방향이다.


    시간은 정말 흐르는 걸까

    이상형의 이성을 만났을 때 시간이 멈춘 듯한 기분이 든다(왼쪽). 하지만 방 청소를 하지 않으면 코스모스(질서 · 조화) 상태의 방이 카오스(혼돈) 상태가 되듯 시간은 계속 흐른다. [뉴시스, GettyImages]

    이상형의 이성을 만났을 때 시간이 멈춘 듯한 기분이 든다(왼쪽). 하지만 방 청소를 하지 않으면 코스모스(질서 · 조화) 상태의 방이 카오스(혼돈) 상태가 되듯 시간은 계속 흐른다. [뉴시스, GettyImages]

    그럼 시간은 왜 흐르는 걸까. 아니, 정말 흐르고 있기는 할까. 연인과 헤어졌다는 사실을 확실히 안다고 해서 이별 통보를 받은 이유를 깨달았다고 볼 수는 없다. 시간의 방향과 흐른다는 사실을 눈치채도, 왜 흐르는지를 알 수는 없다는 얘기다. 

    물리학자가 답할 수 있는 것은 엔트로피다. 엔트로피는 쉽게 말해 무질서한 정도를 뜻한다. 방 안이 깨끗하다면 엔트로피는 낮다. 반대로 어지럽혀 있으면 엔트로피가 높다. 청소하지 않고 그대로 두면 어떻게 될까. 엔트로피는 점점 높아질 것이다. 이게 자연스러운 상태며, 엔트로피는 언제나 낮은 쪽에서 높은 쪽으로 흐른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과학자들은 시간이 흐른다고 이해한다. 

    언제나 엔트로피가 낮은 상태가 시간적으로 먼저다. 그리고 어떻게든 이 세계는 엔트로피가 높아지는 상태로 향할 테고, 결과적으로 시간은 흐른다. 명확히 엔트로피 때문에 시간이 흐른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엔트로피를 통해 시간의 방향과 흐름을 정의할 수 있다. 시간이라는 모호한 개념을 정량적인 무언가를 놓고 비교할 수 있게 됐다는 얘기다. 

    그럼 방이 극도로 지저분해지면 더는 엔트로피가 증가하지 않는 순간이 오지 않을까. 그때가 되면 시간이 흐르지 않을 수도 있을까.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존재하는 우주는 엔트로피가 매우 낮다. 빅뱅이라는 대폭발이 시공간을 만들어내면서 우주를 굉장히 잘 정리해둔 덕분에 우주는 현재 시간이 아주 잘 흐르는 상태다. 광활한 이곳은 빈 공간이 너무나 많고, 물질과 에너지는 어딘가에 예쁘게 모여 있다. 그래서 열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며, 물체는 부서지고, 물질은 이동한다. 

    미녀와 함께 있으면 1시간이 1분처럼 느껴지지만, 뜨거운 난로 위에서는 1분이 1시간보다 길게 느껴진다. 아인슈타인이 상대성이론을 설명하려고 즉흥적으로 대답한 이러한 비유는 아이러니하게도 물리학보다는 뇌과학의 영역에 가깝다. 이미 말했듯이 시간은 누구에게나 거의 동일하게 흐른다. 난로 근처에 블랙홀처럼 막대한 중력을 가진 천체가 있거나, 난로를 로켓 속에 넣어둔 것이 아니라면 큰 차이가 없다는 얘기다. 

    재밌는 건 시간의 속도를 다르게 느끼는 경우가 정말로 존재한다는 점이다. 물론 실제 시간의 속도가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다르게 느낄 뿐이다. 어릴 적 자려고 누웠는데 잠은 안 오고 시간이 느리게 가 지루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하루가 꽤 길었던 것도 같고, 매년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고 갈망하며 방법을 찾곤 했다. 그런데 지금은 하루가 너무 짧다. 벌써 1년이 다 흘러가버렸고, 내년에도 이맘때가 되면 마찬가지의 기분을 느낄 것이다. 왜 나이가 들수록 시간은 야속하게 빨리 흘러갈까.

    시간의 속도를 다르게 느끼는 이유

    로켓 내부의 시간은 외부 관찰자보다 느리게 흐른다(왼쪽).
시간의 흐름이 다르게 느껴지는 것은 뇌의 신경전달물질 
분비 때문이다. [GettyImages]

    로켓 내부의 시간은 외부 관찰자보다 느리게 흐른다(왼쪽). 시간의 흐름이 다르게 느껴지는 것은 뇌의 신경전달물질 분비 때문이다. [GettyImages]

    미국 신경학자인 피터 맹건 박사는 청년, 중장년, 노년으로 세 그룹을 만들어 마음속으로 3분을 센 뒤 실제 흘러간 시간과 비교하는 실험을 했다. 청년 참가자는 대부분 정확한 시간 길이를 맞혔지만, 60대 이상 참가자는 대부분 더 긴 시간을 3분으로 느꼈다. 체감 시간이 더 빠르게 흘렀다는 의미다. 왜 그럴까. 

    입학식 때 등굣길이 정말 멀게 느껴졌지만, 반복적인 등하교를 거치다 보면 그 시간이 점점 짧아진다. 젊을 때는 새로운 학습이나 보상 과정에서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이 분비된다. 쉽게 말해 외부 자극을 해석하기 위해 머리를 굴리는 것인데, 많은 생각이 정신없이 생겨나니 상대적으로 외부의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 외부 자극이 일상화하면서 도파민 분비도 줄어든다. 그래서 세월이 빠르게 느껴진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시간은 보통 일정하게 흘러간다. 하지만 그뿐이다. 스위스 장인의 명품시계처럼 시간이 얼마나 정교하게 흘러가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보다 어떻게 하면 흘러가는 이 시간의 차원 위에서 곳곳에 숨겨진 경이로움을 더 많이 찾아낼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늘 신선한 자극을 주는 과학도 좋고, 철학이나 예술이어도 문제없다. 아니면, 간단하게 내일 아침 출근길부터 처음 가보는 경로로 이동해보면 어떨까. 손바닥만 한 화면에 얼굴을 묻는 대신 호기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주변을 관찰한다면, 아마 첫 출근길만큼 길게 느껴지는 여정을 만날 수 있을 테다. 

    더 많은 경험을 하고, 늘 새로운 생각을 해보자. 낯선 기억이 시냅스에 저장되는 과정에서 도파민이 대량 분비되고, 시간은 점점 느려질 것이며, 하루를 이틀처럼 보낼 수도 있다. 그러다 보면 남들의 100세 인생을 200세 인생으로 살게 될지도 모른다. 다가오는 새해에는 알차고 넘치는 경험으로 지겨울 만큼 느린 시간을 모두가 보낼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궤도_ 연세대 천문우주학과 학부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한국천문연구원 우주감시센터와 연세대 우주비행제어연구실에서 근무했다. ‘궤도’라는 예명으로 팟캐스트 ‘과장창’, 유튜브 ‘안될과학’과 ‘투머치사이언스’를 진행 중이며, 저서로는 ‘궤도의 과학 허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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