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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 없는 이색 명소, ‘비전화카페’ 탐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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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현숙 기자

    life77@donga.com

    입력2019-10-28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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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전화카페’ 운영자인 황규온(왼쪽) 씨와 박진철 씨. 2 따뜻하고 안락한 느낌의 ‘비전화카페’ 실내. 3 나무로 둘러싸인 오두막 같은 외관. 카페는 목~일요일 정오~오후 7시에 문을 연다. [김도균]

    1 ‘비전화카페’ 운영자인 황규온(왼쪽) 씨와 박진철 씨. 2 따뜻하고 안락한 느낌의 ‘비전화카페’ 실내. 3 나무로 둘러싸인 오두막 같은 외관. 카페는 목~일요일 정오~오후 7시에 문을 연다. [김도균]

    우리나라는 ‘전기 과소비’ 국가에 속한다. 유럽계 에너지 분야 컨설팅업체 ‘에너데이터’에 따르면 2017년 한국의 전력 소비량은 총 534TWh(테라와트시)로 세계에서 7번째였다. 전기를 그렇게 많이 쓰는 우리가 갑자기 전기 없는 공간으로 이동하면 어떻게 될까. 

    서울 은평구 서울혁신파크에 가면 그 상상을 현실로 체험할 수 있다. 전기가 없는 곳의 불편함은 물론, 그 불편한 곳이 휴식공간으로 바뀌는 묘한 메커니즘을 알려주는 곳은 서울혁신파크에 자리 잡은 ‘비전화(非電化)카페’다. 도심에 있지만 외부와 연결된 전기 설비가 없는 오프그리드(off the grid·외부에서 에너지를 제공받지 않고 살아가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전기를 직접 생산해 사용하는 생활방식) 환경이다. 이곳에는 그 흔한 전기 플러그도, 무료 와이파이도 없다. 태양광 패널로 자가 발전해 전구를 밝히고, 주 메뉴인 커피는 로스팅부터 추출까지 손으로 직접 한다. 카페에 들어서면 조명을 대신한 램프 불빛이 따사로우면서 편안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런 분위기라면 쳇바퀴 돌듯 바쁘게 흘러가는 일상에서 한 템포 쉬어가는 여유를 즐길 수 있다.

    전기와 화학물질에 대한 의존을 버리다

    조명 역할을 하는 램프(왼쪽)와 직접 만든 원목 테이블, 의자로 실내를 꾸몄다. [김도균]

    조명 역할을 하는 램프(왼쪽)와 직접 만든 원목 테이블, 의자로 실내를 꾸몄다. [김도균]

    전시 중인 나무 숟가락 등의 손 작업물(왼쪽). 음료에 사용하는 뜨거운 물은 가스레인지로 끓인다. [김도균]

    전시 중인 나무 숟가락 등의 손 작업물(왼쪽). 음료에 사용하는 뜨거운 물은 가스레인지로 끓인다. [김도균]

    ‘비전화카페’는 20, 30대인 비전화제작자 4인이 운영한다. 비전화제작자란 ‘비전화공방(非電化工房)서울’의 후지무라 야스유키 제자 인증 과정을 수료했거나, 과정에 있는 사람을 일컫는다. 후지무라 씨는 지난 40년 동안 제품 1000여 개를 발명한, ‘철학하는 발명가’로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전기를 사용하지 않는 제품만 발명한다. 2000년 일본 나스지역에 전기와 화학물질의 사용을 줄이고 행복지수는 높이는 ‘비전화공방’을 설립했으며, 자신과 뜻을 같이하는 제자들을 육성하고 있다. 2017년 서울시가 비전화공방서울을 유치해 서울혁신파크에 자리 잡았고, 친환경적이며 에너지 자립적인 노하우를 전수하고 있다. 

    비전화제작자이자 ‘비전화카페’ 운영자인 박진철 씨는 “플러그를 뽑은 후 펼쳐질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실험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비전화카페’의 장점으로 “전기가 없는 곳에서 사람들의 생각 폭을 넓혀주는 것”이라고 했다. 필요 이상의 전기와 물건들로 채워진 공간을 뒤집어 구성하면 일상에서 변화의 기회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비전화카페’는 비전화제작자 24명이 1년가량 시간을 들여 직접 지었다. ‘경량목구조’ 건축 방식으로 건물의 기틀을 잡고 벽에 볏단을 쌓은 뒤 대나무와 마끈으로 단단히 고정했다. 그 후 황토와 석회미장으로 마감했다. 실내의 원목 테이블과 의자 같은 소품도 의기투합해 직접 만든 것이 대부분이다. 지난해 11월 오픈했으며, 리모델링 공사를 통해 인테리어를 보완한 후 10월 19일 다시 문을 열였다. 합판이 보이던 천장에 왕골마대를 붙여 자연스러운 멋을 더했고, 수작업으로 완성한 선반과 책장으로 벽을 장식했다.



    눈·코·입이 즐거운 수작업 커피

    인기 메뉴인 ‘사이폰 커피’(왼쪽)와 사이폰 커피 제조 과정. [김도균]

    인기 메뉴인 ‘사이폰 커피’(왼쪽)와 사이폰 커피 제조 과정. [김도균]

    나무와 풀숲으로 둘러싸인 ‘비전화카페’는 아날로그 감성이 물씬 풍기는 숲속 오두막집 같은 인상을 준다. 황토벽과 나무 바닥, 원목 가구 중심의 인테리어는 안락한 분위기도 선사한다. 

    카페 메뉴는 시기에 따라 차이가 있는데, 요즘에는 5가지 종류로 단출하다.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점은 ‘전기 없이 어떻게 커피를 만드느냐’는 것. 먼저 음료에 사용하는 뜨거운 물은 LPG가스레인지로 끓인다. 커피는 사이폰 커피메이커나 포트를 활용해 완성한다. 특히 ‘사이폰 커피’로 불리는 퍼컬레이터 커피가 손님들 사이에서 인기다. 커피 추출 과정은 과학 실험실을 떠올리게 하며, 보는 재미도 있다. 

    이 모든 과정이 수작업으로 이뤄져 정성도 가득하다. 우선 공정무역 원두를 직접 로스팅한 뒤 키질로 원두를 식히면서 껍질을 날린다. 그다음 수동 그라인더에 원두를 넣어 적절한 굵기로 간다. 사이폰 커피메이커의 상부 플라스크에 융필터를 고정한 뒤 원두를 넣고, 하부 플라스크에 뜨거운 물을 붓고 성냥으로 알코올램프에 불을 붙여 가열한다. 하부 플라스크에 압력이 차면 상부로 물이 올라가면서 커피가루를 적시고 커피가 추출된다. 고소한 커피 향이 솔솔 풍겨 눈·코·입이 즐거워진다. 

    이외에도 에스프레소를 베이스로 한 ‘모카포트 에스프레소’와 아메리카노, 전기 대신 가스 스티머를 사용하는 카푸치노, 토종 흰민들레 뿌리를 로스팅해 내린 ‘무카페인 민들레커피’도 맛볼 수 있다. 인터넷 블로그에서 이곳을 알게 됐다는 회사원 김모(42·여) 씨는 “카페에 앉아 공들여 내린 커피를 마시면 잡념이 사라지면서 힐링이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전기 없는 정수기·태양열식품건조기

    야자껍질 활성탄을 활용한 ‘비전화정수기’(왼쪽)와 채소와 과일을 건조할 때 사용하는 ‘태양열식품건조기’. [김도균]

    야자껍질 활성탄을 활용한 ‘비전화정수기’(왼쪽)와 채소와 과일을 건조할 때 사용하는 ‘태양열식품건조기’. [김도균]

    전기가 없는데도 카페는 그렇게 어둡게 느껴지지 않는다. 태양열 패널을 활용한 전구 몇 개와 곳곳에 놓인 램프가 조명의 전부지만 여러 개의 창으로 스며든 자연광과 어우러져 실내를 밝히기에 충분하다. 처음 카페에 들어서면 깜깜한 느낌이지만, 시간이 흐르면 눈이 적응되면서 실내가 환히 보인다. 요즘처럼 날씨가 쌀쌀해지면 화목난로와 등유난로를 켜는데, 그 불빛 역시 자연스럽게 조명처럼 쓰인다. 

    카페에서 사용하는 비전화정수기와 태양열식품건조기 같은 친환경적인 아이디어 용품도 눈길을 끈다. 비전화정수기는 야자껍질을 숯으로 만든 활성탄을 활용한다. 투명한 1.8ℓ 유리병에 야자껍질 활성탄을 넣고 수도꼭지에 바로 연결하면 준비 끝. 사용법은 간단하지만 정수 능력은 매우 뛰어나다고 한다. 태양열식품건조기는 태양열을 이용해 고온의 공간을 만들어 식품을 건조시키는 장치다. 일반 식품건조기는 전력 소모가 크지만, 이 제품은 에너지 소비량이 전혀 없다. 채소와 과일 등을 건조식품으로 만들 때 사용한다. 최근에는 펠티에소자(다른 두 종류의 금속을 접합한 뒤 전류를 통할 때 그 접합부가 냉각되는 현상을 이용한 냉각기)와 태양광패널을 활용한 비전화냉장고 설치도 시도하고 있다. 박진철 씨는 “펠티에소자를 이용하면 외부 온도보다 10도 정도 낮출 수 있다”며 “시원한 음료가 많이 필요한 여름철을 잘 지내기 위해 한창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카페 밖에는 돌가마 ‘덜팡’이 자리하고 있다. ‘덜 익은 빵’이라는 뜻으로, 탄소 배출을 줄인 건강한 빵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 토종밀가루와 쌀겨, 르방(천연발효종), 소금, 이스트, 물로 빵을 만들고 가끔 판매도 한다. 말린 장작을 패 연료로 사용하는데, 그 모습도 도시인에게는 신기하게 비친다.

    상상력 살리는 비일상적 공간

    카페 밖에 자리한 돌가마 ‘덜팡’을 이용해 빵을 만든다. [김도균]

    카페 밖에 자리한 돌가마 ‘덜팡’을 이용해 빵을 만든다. [김도균]

    ‘비전화카페’를 찾는 손님은 각양각색이다. 가족 단위 방문객부터 환경 문제에 관심 많은 대학생, 힐링이 필요한 직장인 등 다양하다. 지방에서 일부로 찾아오는 손님도 있다. 전기 없이 운영되는 비일상적인 공간을 체험하며 색다른 즐거움을 얻으려는 이들이다. 운영자는 손님들에게 “다채로운 삶의 방식에 대한 상상력을 키우고, 일상을 점검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또 “전기를 대신하거나 필요한 것들을 만들기 위해 손을 쓰고 몸을 움직이면서 기술을 익히는 것에 즐거움을 느낀다”며 “그 과정에서 삶을 스스로 구성하는 힘도 키울 수 있다”고 전했다. 

    요즘 운영자들은 각종 워크숍과 장터, 전시를 준비하고 있다. 또한 손님들을 위한 다양한 종류의 비전화제품과 수제품도 틈날 때마다 제작한다. 메뉴도 커피 외에 핫초코, 밀크티 등 다양하게 선보일 예정이다. 

    후지무라 씨는 아름답고 풍요로운 삶을 이렇게 역설한다. 

    “누구나 손수 만들 수 있어요. 스스로 만든 걸 보며 행복해지는 삶이 가장 소중합니다.” 

    그의 말대로 ‘비전화카페’가 풍요로운 라이프스타일을 함께 만들어가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강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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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주간동아 강현숙 기자입니다. 재계, 산업, 생활경제, 부동산, 생활문화 트렌드를 두루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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