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17

2017.12.13

커버스토리

가상화폐는 21세기 튤립?

거품이라 볼 수 있지만 단순 투기로 단정하긴 어려워

  • 입력2017-12-11 10:2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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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월 4일 정부는 가상화폐 거래에 대한 강도 높은 규제를 마련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 가격은 큰 변동이 없었다. 12월 7일 기준 비트코인 시가총액은 2340억 달러(약 256조 원)에 육박했다. 

    가상화폐 투자는 이미 세계적 현상이다. 일부 국가는 직접 가상화폐를 만들겠다고 나설 정도다. 이 같은 과도한 관심에 시장은 과열되고 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급등락을 반복하는 가상화폐 가격 때문에 가상화폐의 가치 자체에 의문을 갖는 비관론자도 늘어나고 있다. 과연 지금 가상화폐시장은 투기판일까, 아니면 단순히 투자시장의 과열일까.

    암호화폐가 정확한 용어

    국내에서는 비트코인 등 블록체인을 사용한 전자대안화폐를 통칭해 ‘가상화폐’라 부른다. 하지만 영문명은 ‘Cryptocurrency’, 직역하면 암호화폐다. 이 용어가 가상화폐보다 더 정확하다. 암호화 기술이 없다면 가상화폐는 온라인 게임에서 쓰는 게임머니와 크게 다를 바 없기 때문. 

    해외 가상화폐 투자자들은 ‘블록체인이 비트코인을 네트워크 공간의 금으로 만들었다’고 설명한다. 금은 매장량이 한정된 자원이다. 따라서 수요에 따라 가격이 크게 변한다. 비트코인도 최종 공급량이 2100만 개로 정해져 있다. 이 같은 희소성 때문에 현재 비트코인이 높은 가격에 거래된다는 것. 

    문제는 가상화폐 공급량이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데이터로 이뤄진 가상화폐는 귀금속이나 실물화폐에 비해 불법복제가 용이하다. 해킹이라도 당해 복제되기 시작하면 화폐로서 가치는 사라진다. 가상화폐가 시장에서 대안화폐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현존하는 기술로는 해킹이 불가능한 암호가 필요하다. 비트코인은 블록체인이라는 암호화 기술로 이 문제를 해결했다. 현재까지 비트코인을 직접 해킹해 코인 복제에 성공한 사례는 없다. 



    하지만 단순히 전체 통화량이 제한돼 있다는 것만으로 가치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금, 은 같은 귀금속과 달리 가상화폐는 사용처가 마땅치 않다. 그렇다고 일반 화폐처럼 물건을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일부 국가에서는 제한적이지만 비트코인으로 거래가 가능하다. 2015년 유럽연합(EU) 유럽사법재판소는 비트코인을 현금으로 바꾸는 거래는 부가가치세 부과 대상이 아니라고 판결했다. 비트코인은 상품이 아니라 화폐라는 것을 인정한 판례다. 일본은 올해 자금결제법을 개정해 비트코인으로도 합법적 대금 결제가 가능하도록 했다. 총량이 제한된 화폐가 교환가치를 인정받고 있으니 가격이 오르는 것. 

    가상화폐가 새로운 화폐로 인정받게 되면 각국 금융기관의 기능은 크게 축소될 것으로 보인다. 가상화폐는 이를 보증하고 관리해줄 기관이 필요 없어 간편한 자금 거래가 가능하다. 일례로 국제 송금수수료가 사라지게 된다. 굳이 금융기관을 거치지 않아도 일정액의 가상화폐를 인터넷을 통해 보내면 순식간에 자금 거래가 완료된다. 

    전체 발행량이 정해져 있어 정부나 금융기관의 통화정책으로 인플레이션이나 디플레이션이 일어날 위험도 없다. 이 때문에 금융기관이나 정부에 대한 신뢰도가 낮은 일부 국가는 안전자산으로 가상화폐를 사들이기도 한다. 2013년 키프로스 금융위기나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등 일반 화폐의 가치가 요동칠 때마다 비트코인 가격은 크게 상승했다. 

    일부 가상화폐는 거래 수단 이상의 가치를 담을 수 있다. ‘이더리움’은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거래나 결제 외에 계약서, 전자투표 등 다양한 애플리케이션을 운영할 수 있는 확장성을 지닌다. 비트코인에 블록체인 플랫폼 기능을 더한 것이다. 박형중 대신증권 연구원은 10월 발표한 ‘비트코인 투기에서 투자로’ 보고서를 통해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 스마트 계약이나 목적이 세분화된 다양한 가상화폐의 사용이 증가해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등의 가치가 높아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가상화폐가 새로운 형태의 자산으로 세계인의 관심을 끌고 있지만 일부 전문가는 암호화폐가 사기에 가깝다고 주장한다. 가상화폐가 실물자산의 가치를 저장하고 교환의 척도가 되기에는 가격 변동폭이 너무 크다는 이유에서다. 현재 암호화폐의 가격 등락폭은 하루 10%가 넘는 경우가 다반사다. 가상화폐거래소 코인원에 상장된 ‘아이오타’는 최근 변동폭이 가장 컸던 가상화폐다. 12월 1일 개당 1400원이던 아이오타는 4일 2600원으로 올라섰고 6일 9580원까지 상승했다. 김용범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4일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 공청회에서 “현 시점에서 가상화폐는 높은 변동성 때문에 화폐 기능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가치 있다지만 지금 가격은 거품

    12월 4일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열린 가상화폐 거래에 관한 공청회(왼쪽). 가상화폐거래소 빗썸의 전산장애로 손실을 본 피해자들이 12월 4일 서울 강남구 비티씨코리아 본사 앞에서 피해 보상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뉴스1]

    12월 4일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열린 가상화폐 거래에 관한 공청회(왼쪽). 가상화폐거래소 빗썸의 전산장애로 손실을 본 피해자들이 12월 4일 서울 강남구 비티씨코리아 본사 앞에서 피해 보상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뉴스1]

    새로운 가상화폐가 거래소에 상장되는 등 특수 상황에서는 분 단위로 10% 넘는 등락이 반복된다. 한창 등락이 진행 중일 때 이에 대응하지 못하면 큰 손실을 볼 수 있는 것. 11월 12일에는 암호화폐 ‘비트코인 캐시’ 가격이 급등락을 반복할 때 국내 최대 가상화폐거래소 빗썸의 서버가 다운되는 일도 있었다. 이에 피해자들은 인터넷 카페 ‘빗썸 서버다운 집단 소송 모집’을 개설해 소송을 준비 중이다. 12월 4일에는 피해자 20여 명이 빗썸 홈페이지 관리사인 비티씨코리아의 서울 강남구 본사 앞에 모여 피해보상을 촉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피해자들이 승소할 확률이 높다고 보지 않는다. 정부가 가상화폐를 정당한 투자 수단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 

    법조계 관계자는 “(법원이) 서버다운을 빗썸 측 과실이라 볼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가상화폐는 법정화폐나 유가증권이 아니다. 법원이 피해사실을 인정하면 사법부가 가상화폐의 가치를 인정하게 되는 셈이어서 판단이 어렵다. 만에 하나 가치를 인정받는다 해도 가격 등락폭이 너무 커 피해보상액이 많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가상화폐는 해킹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복제 등 공급량을 늘릴 수는 없지만 거래소나 가상화폐가 보관된 전자지갑 등을 공격해 가상화폐를 훔치는 것은 가능하기 때문이다. 2014년 일본 최대 가상화폐거래소 ‘마운트 콕스’가 해킹을 당했다. 이 사건으로 해당 회사는 85만 개 비트코인을 잃었다. 당시 가격으로 3억5000만 달러(약 3831억 원) 규모의 손실이었다. 

    2015년 1월에는 슬로베니아 ‘비트스탬프(BitStamp)’, 지난해 8월에는 홍콩 ‘비피넥스(Bitfinex)’가 해킹 피해를 입었다. 국내 거래소도 안전하지 않다. 올해 4월에는 국내 거래소 ‘야피존’(현 유빗)이 해킹으로 3831개(당시 가격으로 약 55억 원) 비트코인을 잃었다. 야피존이 보유하고 있던 회원들의 총자산 중 37.08%에 해당하는 규모다. 

    문제는 이 피해를 투자자들에게 전가했다는 점. 당시 야피존 측은 ‘이 사건으로 발생한 손실이 모든 회원에게 공평하게 적용돼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야피존이 보유한 회원들의 자산(원화, 비트코인, 이더리움 등)에 대해 사건 직후의 잔고 보유 현황을 기준으로 37.08%를 차감하겠다’고 공지했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가상화폐 거래로 발생한 손실은 제도적으로 보장받기 힘들다. 투자자들은 이를 감안하고 투자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직은 위험한 시장이지만 소수의 가상화폐 투자 성공담이 퍼지며 가상화폐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까지 투자에 뛰어들었다. ‘묻지마’식 투자가 늘어나니 이를 악용한 사기 행각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5월과 7월, 11월에는 가짜 가상화폐를 만들어 이를 판매한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 

    가상화폐거래소 업계 관계자는 “최근에는 ‘가상화폐공개(ICO)’를 악용하는 세력도 있다. 제대로 된 기술도 없는 업체들이 ICO를 한다며 투자자를 현혹하는 사례가 종종 발생한다”고 밝혔다. ICO는 기업공개(IPO)와 유사한 제도로, 새로운 가상화폐를 개발하면 이를 분배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자금을 끌어모으는 펀딩 방식이다. 이 자금으로 가상화폐를 만들어 해당 화폐가 각 거래소에 상장되면 투자자들은 이를 팔아 수익을 낼 수 있다.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의 성공 이후 세계적으로 1000개가 넘는 가상화폐가 등장할 수 있었던 것도 이 제도 때문이다.

    튤립보다 닷컴 버블

    박녹선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 제대로 된 정보 없이 수익이 보장되지 않는 알트코인이나 기타 상품에 투자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가상화폐가 새로운 투자 수단으로 떠오르고 있지만 각각의 특징이나 시장 상황을 알고 시작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일각에서는 최근 가상화폐 투자의 과열양상이 네덜란드 튤립 파동과 유사하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17세기 네덜란드에서 튤립 가격이 급등하자 많은 사람이 투자에 나섰다. 하지만 튤립 자체가 가치가 높은 재화가 아닌 만큼 일정 시간이 지나자 튤립 가격은 폭락했고 투자자들이 큰 손실을 입은 사건이다. 미국 최대 은행 JP모건체이스의 제이미 다이먼 최고경영자(CEO)는 9월 뉴욕에서 열린 투자자 콘퍼런스에서 “가상화폐 열풍은 네덜란드 튤립 광풍보다 심하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꽃인 튤립과 새로운 보안기술의 집합체인 가상화폐는 다르다는 지적도 있다. 한대훈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6월 발간한 ‘주식 애널리스트가 비트코인에 주목하는 이유’라는 보고서에서 ‘가상화폐 열풍은 1990년대 말 정보기술(IT) 버블과 유사하다’고 강조했다. 새로운 사업의 패러다임을 제시했던 과거 IT기업처럼 지금의 가상화폐가 4차 산업혁명은 물론, 세계 통화정책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분석이다. 

    한 연구원은 가상화폐가 세계시장에서 정식 화폐로 인정받는다면 달러가 가진 기축통화의 지위가 흔들릴 수 있다는 진단도 내놓았다. 가상화폐라는 대안 기축통화가 생기면 미국 통화정책에 따라 글로벌 경제가 받는 영향이 줄어들 수 있다는 것. 한 연구원은 보고서를 통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 이후 미국의 달러 약세 유도와 주요국의 통화 강세 속에서 비트코인을 비롯한 가상화폐 가격이 상승한 것은 짚어봐야 할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미 세계 각국에서는 가상화폐가 가져올 변화에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10월에는 러시아가 국가 공인 가상화폐 ‘크립토루블(cryptoruble)’을 발행했다. 중국과 싱가포르도 국가 주도의 가상화폐 발행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가상화폐에 족쇄를 채우기보다 직접 공급자로 나서 시장 주도권을 잡겠다는 심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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