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82

2013.04.08

히말라야 삶을 바꾼 백만 권의 희망 선물

前 MS 중국지사장 존 우드

  • 고영 소셜컨설팅그룹 대표 purist0@empas.com

    입력2013-04-08 09: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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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말라야 삶을 바꾼 백만 권의 희망 선물
    한국 사회에 은퇴한 베이비부머가 급격히 늘고 있다. 외환위기 후 퇴직 연령이 55세 이하로 하향 조정되면서 집에서 쉬는 베이비부머가 매년 25% 이상 증가하는 것이다. 하지만 베이비부머라고 무작정 손 놓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존 우드는 수많은 베이비부머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 젊은 나이에 마이크로소프트(MS) 호주지사장과 중국지사장를 거치며 승승장구하던 그는 40대에 접어들면서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사내 위치는 높아졌지만 가족과 친구가 자신을 외면한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친구들이 여행을 제안할 때마다 회사 일로 함께 간 적이 없어. 회사는 나를 신뢰하지만 가족은 날 피하기 시작했지. 친구들도 마찬가지고.”

    우드는 회사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끝내고 한 달간 휴가를 얻었다. 그는 친구들의 신뢰를 회복할 요량으로 히말라야-네팔 트레킹을 떠났다. 이렇게 20대부터 동경하던 히말라야를 오르던 그는 새로운 풍광과 맞닥뜨렸다. 그가 가는 마을마다 쓰러져가는 학교가 있었던 것이다. 차마 도서관이라고 부를 수 없는 곳에서 책을 읽는 아이들 모습이 그의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트레킹이 끝날 무렵 그는 문제의식을 품었고 해결책도 찾았다.

    “어떻게 저런 곳에서 공부하지? 정부는 뭘 하고 있단 말인가. 일하느라 바쁘게 살지만, 그래도 시간이 날 때마다 낙후한 공간에서 공부하는 아이들에게 좋은 책을 선물하자.”



    당시 MS 중국지사장이던 그는 중국 시장 매출과 고객 관리에 온힘을 쏟았다. 그러면서도 주말이면 히말라야 청소년을 생각하며 책을 모을 방안을 강구했다. 그리고 월급을 받으면 직접 책을 사서 보냈다. 그렇게 1년 가까이 책을 보내던 그는 불현듯 회사 일에 회의를 느꼈다. 그리고 이래서는 도저히 좋아질 것이 없다는 판단이 들자 결단을 내렸다.

    삶을 새롭게 바꾼 트레킹

    히말라야 삶을 바꾼 백만 권의 희망 선물

    책 바자회에 온 아이들(왼쪽). 아이들과 함께한 존 우드 전 MS 중국지사장.

    “한 번도 남을 위해 내 가능성을 시험해본 적이 없었다. 내 실제 능력과 잠재적 능력이 부족하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 히말라야에 책을 보내는 일을 넘어 도서관을 만들자.”

    하지만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히말라야에 도서관을 짓겠다는 그를 격려하는 이는 드물었다. 가족도 마찬가지였다. 갑자기 돌변한 아들의 모습을 보고 아버지는 충격을 받을 정도였다.

    “과연 네가 프로젝트를 얼마나 오랫동안 할 수 있겠니? 회사를 그만두면 도서관 만들기 운동의 예산은 어디서 마련할 수 있을까. 중요한 일이라는 것은 알겠지만 반드시 존 우드, 내 아들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니?”

    결국 우드는 가족의 미온적 태도를 뒤로하고 본인이 꿈꾸는 일을 시작했다.

    “꿈을 위해서라면 안정적인 삶도 포기할 줄 알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행복한 마음을 갖지 못한 채 후회하며 살 것이다.”

    우드는 인생에는 우선순위가 있으며, 지금은 자신을 믿고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히말라야 청소년에게 꿈을 주려면 먼저 자신이 꿈을 잃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곤 이 사업의 성공 원칙을 세웠다. MS에서 일할 때처럼 흔들리지 않을 원칙을 잡고, 사람을 만나야 한다고 여겼던 것이다. 그 원칙은 다음과 같다.

    1. 베푸는 즐거움을 알려준다.

    2. 결과를 후원자에게 보여준다.

    3. 최소한의 경비를 쓴다.

    4. 열정을 판다.

    5. 사람은 가치 있는 일을 돕기를 좋아한다.

    히말라야 삶을 바꾼 백만 권의 희망 선물

    룸 투 리드 재단 창업자 존 우드.

    자신이 가족과 친구들을 설득할 때 사용하던 ‘선입견을 허무는 방안’을 원칙으로 정리한 것이다. 그는 기부를 이끌어내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았다. 그래서 반드시 최소한의 경비로 사업을 진행하되, 명확한 결과를 보여주면서 더 가치 있는 후원 방식을 찾고 또 찾았다. 그렇게 뛰어다니며 사람을 만나자 개인 후원자가 하나둘 나타났다.

    후원자들은 오지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함께 웃는 우드의 열정 바이러스에 감염돼 그들 자신도 꿈을 실현하기로 했다. 기부뿐 아니라 도서관 건물을 짓는 자원봉사자들이 생기면서 룸 투 리드(Room to Read)라는 재단도 만들어졌다.

    “우리 룸 투 리드는 다른 재단과 차별화된다. 유명 인사만 있고 자원봉사자가 없는 허울 좋은 재단이 돼서는 안 된다.”

    놀라운 변화, 2300개 도서관

    도서관을 설립하고, 학교를 지을 때마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리본커튼 행사가 이어졌다. 아이들과 부모들은 교실 안에 가지런히 놓인 책상과 의자, 빼곡하게 쌓인 책과 컴퓨터를 보자 기쁜 마음에 환호성을 질렀다. 이런 우드의 열정은 MS 최고경영자(CEO) 스티븐 발머를 감동시켰고, 그 결과 더 많은 후원을 얻어냈다. 그 덕에 히말라야는 변하기 시작했다.

    도서관 2300개, 학교 200곳, 컴퓨터 교실 50곳, 장학금 수상 청소년 1700명, 책 100만 권. 이 경이로운 숫자는 용기 있는 도전의 결과물이다. 네팔에서 시작한 도서관 사업은 2001년 베트남, 2002년 캄보디아, 2003년 인도 등으로 확산돼 2006년까지 룸 투 리드 도서관과 학교 4000여 곳이 생겨났다.

    우드는 잠시 눈을 감고 이렇게 다짐했다.

    “룸 투 리드 재단 사업은 수많은 사람과 함께 꾸는 꿈의 일부분일 뿐이다. 내일은 또 다른 아이들을 위해 일할 것이다. 앞으로 리본커팅 행사가 수천 번 열릴 것이다. 개발도상국가 어린이들이 우리를 기다린다. 그들이 너무 오래 기다리지 않게 해야 한다.”

    우드는 2018년까지 빌 클린턴 재단과 협력해 2만 개 이상의 도서관을 지을 예정이다. 인생 황혼기에 꿈을 발견한 베이비부머. 그의 아름다운 노년은 이 시대 수많은 베이비부머에게 은퇴 이후 삶이 더 아름다울 수 있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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