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18

2000.01.20

사랑이 우러나는 장독

  • 입력2006-06-21 11:34: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사랑이 우러나는 장독
    2000년 1월 결혼한지 만 삼년째인 나는 가끔 앞 베란다에 놓인 장독들을 정성스레 걸레질하곤 한다.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담근 장이 그 독들 중 하나에 숙성되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삼년 전 결혼으 며칠 앞둔 어느 날 시어머니 되실 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곁에 있으면 장 담그는 법을 제일 먼저 가르치고 싶지만 너희들이 객지에서 살림을 차리니 어쩔 도리가 없구나. 대신 독을 하나 줄테니 거기에다가 뭐든 넣어 먹거라.”

    우리는 팔구십 세ㅌ니미터쯤 되는 보기에 좋을 만큼 배가 볼록한(?) 항아리 하나를 신혼 살림살이 한쪽에 싣고 낮선 도시로 향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들의 살림살이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마치 ‘꿔다놓은 보릿자루‘ 마냥, 공장에서 갓 뽑아 나온 듯한 미끈한 세간들 사이에서 짙은 밤색의 촌스러움은 어쩔 수 없는 불균형이었다.



    나는 부엌 한쪽에 두고 뭔가를 끊임없이 담아보려 했다. 그렇지만 쉽지가 않았다. 그러다가 길고 지루한 장마가 계속되면서 자루 속에 넣어 두었던 쌀 안에서 쌀벌레가 하나 둘씩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초보 주부가 감당하기 힘들 만큼 많은 일을 하기 시작했다.

    친정어머니께 전화를 해서 사정얘기를 했더니, 쌀벌레를 다 골라내고 독 안에다 쌀을 놓으라고 하셨다. 거기다가 숯을 몇 조각 넣으면 쌀벌레 걱정은 없다고….

    내가 독 쓰는 법을 배우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그 때부터였을 것이다. 그해 가을이 깊어갈 무렵, 시어머니께 전화를 넣어 남는 독이 있으면 좀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어머니는 처음엔 의아해 하시더니 ”우리 며느리가 이제 살림꾼이 다 됐구나.” 하시며 흡족해 하셨다.

    벼칠 뒤 김장김치와 함께 보내온 아담하고 예쁜 독을 보고 은근히 우쭐해졌다. 나는 세든 집 뒷마당에 작은 구덩이를 파고 묻었다.

    겨울이 깊어갈 즈음, 땅 속에 파묻은 독을 열고 김치를 꺼내 주인집에 몇 포기 나눠드렸더니 맛이 너무 잘 들었다며 좋아들 하셨다. 그 이듬해 가을, 그 집 뒷마당에서는 구덩이를 파는 곡괭이 소리가 떠들석하게 들렸다. 그러나 그 집에서 세 번째 가을을 넘기지 못하고 우리는 시골에 가까운 지방 소도시로 이사를 했다. 그리고 결혼 삼년만에 우리집을 마렸했다. 만 여섯 달 된 예쁜 딸 지민이도 낳았다.

    이제는 어엿한 장독대라 불릴 만큼 그 숫자가 늘어난 장독들도 우리와 같이 있다. 지금은 아파트에 사는 터라 김장김치를 묻을 구덩이는 없지만 독 한 가득 담긴 김장김치가 어떤 뛰어난 김치냉장고보다도 믿음직스럽기만 하다.

    올 봄에는 독을 몇 개 더사서 남편이 좋아하는 어리굴젓도 담가놓고 가을 즈음에는 감을 저장해서 우리 지민이가 먹을 연시도 만들어봐야 겠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