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99

2007.08.21

남북정상회담 지켜야 할 원칙

  • 김태우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

    입력2007-08-14 16: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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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북정상회담 지켜야 할 원칙
    제2차 남북정상회담과 관련한 청와대의 기습적인 발표는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사안이 사안인 만큼 일일이 국민에게 알리면서 추진할 수는 없었겠지만, 상호성의 관례를 깨고 연거푸 평양에서 개최하기로 한 점, 회담을 20일 앞둔 시점에서 “지금부터 의제를 논의해야 한다”라고 말한 점 등이 특히 놀랍다. 또 미국에두 시간 전에 통보했다는 보도는 아마도 사실이 아닐 터다. 미국은 향후 대북지원이나 북한 개방에서 결정적 구실을 해야 하고, 만일의 경우 우리에게 핵우산을 제공할 나라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정부가 대통령 선거를 4개월 남겨둔 시점에서 정상회담에 합의했다는 점은 논쟁을 불러일으킬 만하다.

    남북 관계의 핵심 사안인 핵문제와 관련해서도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핵 해결 이전 정상회담 반대”를 외쳐온 만큼 북한도 이를 의식한다면 정상회담을 계기로 완전한 핵 폐기를 약속하고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한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북한 행태를 종합해보면 그 반대의 경우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첫째, 북한 측의 주 메뉴인 ‘민족공조’ ‘평화체제’ 등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남한 측이 원하는 ‘군사대치 완화’ ‘핵 해결’ 등의 의제를 기피할 수 있다. 둘째, 핵문제를 의제로 다루되 실천 의지가 없는 ‘비핵선언’으로 시간을 벌면서 정상회담을 핵 폐기를 재촉하는 국제여론 회피 수단으로 삼을 수 있다. 셋째, 한국의 대선을 의식해 ‘시한부 핵 평화공세’를 시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2·13 합의가 보유 중인 핵무기, 플루토늄, 농축 활동 등을 규명하는 내용을 포함하지 않은 반쪽 핵 합의에 지나지 않음에도 이라크 수렁에 빠져 있는 미국은 북핵에 대해 왈가왈부할 기력조차 없다. ‘관용적 무시(benign negligence) 정책’으로 선회한 셈이다. 한국 역시 북한의 2·13 합의 이행 약속에 만족해 대북지원을 재개했다. 한국 국민의 상당수는 북한이 2·13 합의를 이행하더라도 여전히 일정 수준의 핵 능력을 가진다는 사실조차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 북한 처지에서는 평화공세를 위한 적당한 조건들이 구비된 셈이다. 즉 2·13 합의를 이행하는 모습과 함께 평화 제스처를 반복함으로써 남한 내부의 보혁 갈등을 부추길 수 있으리라 생각할 수 있다. 이런저런 가능성을 감안한다면, 설사 북한이 정상회담에서 ‘비핵’을 천명하더라도 실천하기 전까지는 ‘감동’받아야 할 이유가 없다.

    핵과 평화공세 등 적당히 넘어가서는 곤란



    물론 정상회담에 임하는 북한의 계산서에 핵 평화공세와 대선 개입만 들어 있지는 않을 것이다. 평화 분위기 조성을 통한 대미 관계 개선, 남쪽으로부터의 대북지원 확보, 주한미군 주둔 명분 약화 및 한미동맹 이완, 남북간 통일 방안 접근, 군사경계선 재설정을 위한 토대 마련 등 다양한 목표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렇듯 복잡한 생각을 하고 있는 북한을 상대하는 일이 결코 쉽지만은 않다.

    그럼에도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것’이라는 확고한 원칙이 요구되는 사안들이 적지 않다. 예를 들어, 북한이 ‘북방한계선(NLL) 등 해상경계선 재설정의 필요성’을 선언에 포함시키자고 해도 절대 응해서는 안 된다. 서해 NLL이 남쪽으로 내려온다면 이미 북한군의 야포에 노출된 수도 서울의 옆구리가 취약해진다. 60년 세월 동안 선조들이 지켜온 바다를 함부로 넘겨줄 권한을 가진 사람은 대한민국에 없다.

    핵문제도 마찬가지다. 북핵은 반드시 폐기돼야 하며, 그때까지는 확실히 억제돼야 한다. 그 이외의 해답은 없다. 북한으로서는 2·13 합의 이행 조건으로 소수의 핵무기를 유지하는 방안, 구두로 ‘비핵’을 약속하고는 실천을 미루는 방안, 핵문제는 미국과 협의할 사안이라며 의제에 포함시키지 않는 방안 등을 구사할 수 있지만, 이 모두 당치 않다. 핵문제를 적당히 덮고 넘어가는 정상회담은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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