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89

2007.06.12

‘칸의 환호성’이 서글픈 이유

  • 유지나 동국대 교수·영화학

    입력2007-06-07 17: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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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칸의 환호성’이 서글픈 이유
    5개 스크린을 보유한 강북의 한 멀티플렉스 풍경화. ‘캐리비안의 해적3’가 4개, ‘밀양’이 1개 스크린을 차지하다 1개 스크린에서 ‘밀양’과 ‘캐리비안의 해적3’가 교차 상영되는 변화가 일어났다. 당연히 ‘밀양’의 전도연이 칸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으면서 일어난 일이다. 실제로 여우주연상 수상 낭보 이후 ‘밀양’은 예매율이 2배 이상 증가했다고 한다.

    올해 들어 한국영화 위기론이 어느 때보다 강력히 대두됐다. 이를 증명하듯 지난해에 이어 한국영화가 줄줄이 스크린에서 밀려나고 있다.

    사실 영화 흥행이 전적으로 영화의 완성도에 따라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마케팅과 배급파워, 스타파워 등이 흥행변수다. 최근 한국영화의 동반 하향세는 얄팍한 기획영화 붐 속에서 관객이 더는 한국영화에 기대를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스타의 안방까지 뒤져내 뉴스로 만들어내는 스타 저널리즘은 나날이 융성해도, 관객 동원에선 스타의 존재가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통계가 나올 정도다. 스타 시스템을 구조조정하자는 의견도 나온다.

    이런 와중에 전도연의 수상으로 ‘밀양’이 국내 흥행에서 역전을 꾀하는 현상은 분명 칸영화제의 시장 효과다. 지난 5년간 세계 3대 영화제로 통하는 칸, 베니스, 베를린 영화제에서 임권택 박찬욱 김기덕 이창동 감독 등이 연이어 감독상이나 작품상을 받았고, 대체로 어느 정도 흥행 성과를 냈다(물론 예외는 있는 법. 김기덕의 ‘사마리아’와 ‘빈집’이 그런 경우다).

    특히 3대 영화제 중에서도 가장 상급이라 평가되는 칸에서 전도연이 여우주연상을 받은 것은 20년 전 강수연의 베니스영화제 수상이나 다른 감독들이 거둔 성과보다 큰 화제를 불러일으킬 만하다.



    1997년 ‘접속’ 이후 10편의 영화에 출연한 전도연은 반짝 기획스타와는 차별화되는 중후함과 연기력을 갖췄다. 배우로서 그가 쌓은 내공은 진정성을 갖춘 치밀한 영화를 만들어온 이창동 감독의 ‘밀양’을 통해 충분히 발휘됐다. 그렇기에 전도연의 수상은 일견 당연한 결과처럼 보일 정도다.

    “흥행을 위해서는 감독상보다 여우주연상이 더 효과적”이라는 세간의 농담은 스타배우의 매혹을 즐기려는 관객의 심리를 대변한다. 그런 점에서 그녀의 수상이 ‘밀양’의 흥행성을 높인 것은 진정성을 지닌 영화도 스크린에서 쫓겨나는 작금의 한국영화 평판에 앰플주사를 놓은 효과가 있었다. 단순한 스타파워가 아닌 국제적으로 공인된 스타배우의 힘으로 수억원대 마케팅 효과를 낸 것이다. 또한 한국영화 시장 부진에 활력을 주면서 국제적으로 한국영화 브랜드 가치를 상승시킨 일시적 효과도 거뒀다.

    연기파 배우들이 스크린서 살아남는 풍토 시급

    그렇지만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여러 국제영화제에서 많은 상이 매해 쏟아져나오는 터에, 칸에서 한 차례 여우주연상을 받은 것으로 침체에 빠진 한국영화가 획기적 변화를 맞을 수 있는가? 기대는 금물이다.

    20년 전 베니스영화제에서 강수연이 ‘씨받이’로 여우주연상을 받았지만, 나이가 들면서 그도 영화를 떠나 TV 속에 이따금 나오는 과거의 ‘월드스타’가 됐다. 칸영화제 이후 전도연을 월드스타라고 떠받들면서 해외작품 출연 가능성까지 예단하는 호들갑은 나이 든 여배우를 명배우로 키워내지 못하는 한국영화의 ‘여배우 조로증’을 감춰버린다.

    나이가 든 전도연이 주·조역을 맡는 영화들이 만들어지는 풍토, 연기파 배우들이 늙어도 스크린에서 살아남는 풍토가 무엇보다 필요하다. 전도연에게 시상을 한 알랭 들롱이나 아카데미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은 헬렌 미렌 같은 명배우가 연륜을 더하며 살아남는 영화세상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는 ‘전도연 효과’가 아니라 ‘세계영화제 효과’로 되새겨볼 만한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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