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55

2006.10.10

츄리닝 입히고도 멋 살리는 ‘미다스의 손’

‘친절한 금자씨’에서 ‘괴물’까지 … 영화의상 디자이너 조상경

  • 이미숙 주간동아 아트디렉터 leemee@donga.com

    입력2006-10-09 10: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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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츄리닝 입히고도 멋 살리는 ‘미다스의 손’
    ‘까칠’했다. 까칠하지 않으면 ‘뾰족’하단 말도 대략 통과다. 목소리를 배제한 채 몇 번의‘문자’가 오간 연후에야 겨우 잡을 수 있었던 약속이었다. 휴대전화 문자가 아니면 결코 닿을 수 없는, 통신을 벽 삼아둔 그녀를 만나기까지 조상경이란 인물을 뭉뚱그린 이마주가 그랬다. 허리께만큼 차오른 가을에 어깨 시려지던 저녁, 그녀의 늘어뜨린 잿빛 머플러를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조상경은 얼마 전 포털 사이트의 인기검색어 1위에 이름이 올랐더랬다. 드라마 ‘주몽’과 같은 시간대에 시청률을 겨뤘던 ‘포도밭 그 사나이’ ‘지대 광팬(폐인)’들이 주인공 오만석을 검색하면서 연이어 그녀의 이름이 핫 키워드로 올랐던 터였다. 애초 ‘궁’의 윤은혜 효과를 기대했던 드라마는 뚜껑을 열자 포도밭 사나이 오만석을 향한 ‘쏠림’으로 인기몰이를 했다. “징~ 징~ 징기스칸 어쩌구저쩌구 뭐라고 씨부리쌌노~”, 강원도 사투리 버전으로 개사한 칭기즈칸 노래를 능청맞게 부르던 택기(오만석)를 향한 사모형 댓글들은 첨엔 “오만석이 유부남이라니 ㅜㅜ” 투가 대세였다가, 간단치 않다 못해 비범의 범주에 놓아도 족할 조상경의 이력에 되레 박수를 보내는 글들로 탈바꿈돼 있었다. 요즘 누리꾼들이 누군가. 개미 한 마리도 피해갈 수 없다는 그들의 그물망이 걸러낸 정보 끝에 나온 결론임에랴.

    츄리닝 입히고도 멋 살리는 ‘미다스의 손’

    대개 코디 붙이고 협찬 받아서 영화의상 진행을 해왔던 관행을 깨고 조상경은 맡은 영화마다 태반의

    그랬다. 2001년 영화 ‘피도 눈물도 없이’ 이후 만 6년간 그녀의 손을 거친 영화는 18편. 1000만 관객은 예사가 돼버린 한국 영화의 황금기가 조상경과 호흡을 같이한 건 우연이 아닌 듯싶다. 18편의 작품을 해내기엔 턱없이 부족하다고 여겨지는 시간, 그동안 ‘눈에 띈다’ 싶은 영화는 모조리 그가 옷을 입혔으니 그럴밖에. 조상경의 손을 빌려 코스튬이 아니라 비로소 온전한 ‘옷’을 입은 영화들 ― ‘맛있는 섹스 그리고 사랑’ ‘올드보이’ ‘범죄의 재구성’ ‘쓰리, 몬스터’ ‘얼굴 없는 미녀’ ‘컷’ ‘소년, 천국에 가다’ ‘친절한 금자씨’ ‘달콤한 인생’ ‘미스터 주부 퀴즈왕’ ‘짝패’ ‘괴물’… (숨이 차서, 그래도 빠진 것이 있으려나 몰라), 그리고 곧 개봉할 영화 5편 ‘타짜’ ‘구미호 가족’ ‘미녀는 괴로워’ ‘톰과 제리’, 가수 비가 첫 주연하는 박찬욱 감독의 영화 ‘싸이보그지만 괜찮아’까지를 통틀어, 이를테면 최민식이 오대수고 이영애가 이금자일 수 있는 건 누가 뭐래도 일단은 옷 때문이 아닌가.

    ‘괴물‘(2006)은 어려웠다. “입뽕(첫 작품) 이후 가장 힘들었던 영화”라고 했다. 감독에게 제의를 받고 일주일 고민했다. “귀찮을까봐”서 한 그 고민이 귀찮아져서 작업에 들어갔다. 때로 조상경에게 ‘귀찮다’는 호불호(好不好)의 이분법 위에 있는 ‘등식’이다. 문자로만 연락을 받고, 영화판에서 항용 부딪히는 크고 작은 감정적 생채기에 휘둘리지 않거나, 아내이거나, 엄마이자 동시에 며느리이길 요구하는 사회의 어떠한 틀에도 얽매이고 싶어하지 않는 모두는 일관되게 ‘귀찮다’로 일컬어진다.

    세계 영화계가 새로운 장르의 몬스터영화 출현이라고 호들갑스레 칭찬했던, 그래서 우리나라 1500만 관객이 본 ‘괴물’이 왜 귀찮았냐고? 조상경에게 ‘괴물’은 ‘노가다의 추억’으로 직행하는 영화였다고 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무대미술과 첫해(96년)로 기억한다. 학기 내내 새벽 다섯 시부터 ‘떼’로 모여 해야 했던 공동과제는 망치와 끌, 공업용 본드와 전기톱 따위를 필요로 하는 작업이었다. 그네의 짐작엔 노동 품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그 일이 그렇게 귀찮을 수가 없었다. 하여 안 나간 수업들, 학점은 올 F. 당연히 ‘학고(학사경고)’였다. 휴학계를 냈고 그녀는 생에 가장 완전한 휴식기를 보냈다. ‘노가다’가 만들어준 그해의 여백을 언젠가는 다시 가지려 한다.



    츄리닝 입히고도 멋 살리는 ‘미다스의 손’

    남편 오만석은 ‘헤드윅’으로 2005년 뮤지컬대상 남우주연상을 받고 드라마 ‘포도밭 그 사나이’ 이후 브라운관의 러브콜을 받고 있는 실력파다(위).

    또 다른 이유. 예쁜 배우를 예뻐 보이지 않도록 만드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아는가. 배두나처럼 스타일리시한 캐릭터를 ‘추리닝’ 한 벌 달랑 입혀놓고 배역을 살려야 하는 건 의상 디자이너에겐 고문이나 진배없다. 총 100피스가 들어가고 서른세 번 김혜수에게 옷을 갈아입힌 ‘얼굴없는 미녀‘(2006‘)처럼 색상대비 강한 의상으로 화면에 공을 들이는 영화보다 이런 단벌식 접근이 백 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백수 삼촌 역을 맡은 박해일을 빼고 ‘괴물’은 주·조연 모두 ‘난닝구’ 차림에 허름한 점퍼 등속을 입힌 영화다. 게다가 한낮 한강 둔치란 데를 나오는 ‘그렇고 그런 장삼이사’들을 표현해야 하는 ‘떼 씬’(조상경의 어법이다)의 압박이라니.

    18편의 영화를 찍는 동안 색깔 다른 몇 명의 감독들과 일을 했더라? 봉준호 감독의 시선은 까탈스럽다고 해야 하나. 합동분향소에서 강두(송강호) 일가족이 울부짖는 장면이 있다. 그때 엎드려 오열하는 남주(배두나)의 잔등이 보이자 희봉(변희봉)이 말려간 옷을 내려주는 건 봉 감독의 설정이었다. 그래서 남주의 셔츠를 부러 짧게 만들었다. 희봉의 캐릭터를 그런 미세한 컷에 담는 감독, ‘봉테일’이란 별명은 결국 맞다. 조상경이야 힘들건 말건.

    사실 조상경의 컬러는 ‘괴물’류의 영화가 갖는 무채색 톤보다 강렬한 원색과 닿아 있다. ‘달콤한 인생‘ (2005)에서 그처럼 빛나던 ‘조상경식 표현‘을 본 이는 알고 있으리라. 선우파, 강사장파(김영철), 필리핀 갱, 러시아 갱, 회장단을 합해 줄잡아 50명의 남자가 등장하는 이 영화는 그녀의 입맛 까다로운 ‘까칠함’을 잘 드러낸다. 주인공 선우 역의 이병헌 패턴 뜨는 데만 사흘이 걸렸다던가, 암흑세계에 어울릴 슈트 원단으로 국내엔 잘 없는 1인치 스트라이프를 찾아 헤매다 영국제 홀랜드 셸의 원단을 만났다던가, 빈틈없는 캐릭터여서 셔츠의 깃 간격이 3인치가 아닌 2.27인치여야 한다고 슈트 제작자와 실랑이 벌인 일 같은 것이 그렇다. 백 사장으로 나온 황정민에겐 스스로 핸디캡이라 여기고 있는 휜 다리를 살려 바지를 타이트하게 입히고 굽 높은 신발을 신겼다. ‘갱스 오브 뉴욕’의 대니얼 데이 루이스 걸음으로 걷는 그를 보고 브이 자(字) 사인을 날렸대나 어쨌대나. 자, ‘달콤한 인생’의 양복을 예술의 경지로 부르는 데 누가 딴죽 걸 텐가.

    ‘복수의 전주곡‘인 ‘친절한 금자씨‘ (2005)의 땡땡이 원피스를 보자. 영화를 통해 금자가 입는 13벌의 옷 중에 유일하게 화려한 의상이다. 규칙적인 도트는 세련미를 주므로 빨강과 파랑이 불규칙하게 섞인 천을 골라 재단했다. 알다시피 금자는 13년간 청주교도소에서 복역하고 출소한 여자다. 한겨울, 복수를 다지며 입소 때의 옷을 입고 등장하는 신에 불규칙 도트는 촌스럽고 적당히 불균형한 내면을 나타내는 옷이 되어주었다. 시나리오로 금자를 만난 순간 브라이언 드 팔마(‘캐리’ ‘스카페이스’ ‘팜므 파탈’의 감독)의 ‘자매들’에 나오는 글로리아를 떠올렸다. 금자를 만들기 위해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감독(‘구름 저편에’)의 ‘붉은 사막’도 보았고….

    그런 의미에서 ‘올드보이‘ (2003)는 쉽게 옷이 보인 영화였다. 박찬욱 감독의 시나리오는 읽는 순간 이미지가 줌업 되는 분명한 지점이 있다. 영화 전체를 아우르는 인상은 ‘퍼즐’이었다. 지문을 스치다보면 저절로 화면이 유추되는데, 이 경우 보라색과 격자무늬가 부감됐다. 영화 내내 미도(강혜정)를 공간과 같은 패턴의 컨셉트로 밀고 갔고, 이 점은 유효했다.

    츄리닝 입히고도 멋 살리는 ‘미다스의 손’

    작업실에서 팀원들과 새로 작업 들어가는 ‘톰과 제리’의 의상에 관해 얘기하고 있다.

    오대수와 이우진이 횡단보도에서 대면하는 장면을 기억하는지. 피투성이 대수에게 우진이 다가와 부축을 하는데 다림질 선이 선명한 우진의 흰 셔츠 위로 피가 튀기는 신이다. 의상팀에선 우진의 여벌 셔츠가 준비돼 있지 않은 상황이었다. 한 번 피가 튀길 때마다 벗겨 길 건너 미용실로 뛰었다. 미용실 세면대에서 물빨래를 하고 드라이어로 말리는 시간은 유지태가 박 감독과 모니터링을 할 만큼의 시간이었다. 이 신을 네댓 테이크 반복했다.

    동양화 전공한 미술학도 출신 … 연극원서 만난 오만석과 졸업 후 결혼

    본인은 결단코 자신의 모자람을 강변하건만 조상경의 안목은 확실히 다른 데가 있다. 어려서부터 혼자 그리고 혼자 잘 놀던 아이였다. 그녀는 본디 동양화를 전공했다. 현대수묵화를 많이 그렸다. 졸업 후 미술학원 강사를 하다가 시야를 넓히고 싶어 유학을 가려던 차에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모집공고를 봤는데 커리큘럼이 괜찮았다. 공간디자인, 입체조명, 재료와 소재, 무대제작, 의상제작… 과목들만 보고선 참으로 하고픈 예술을 할 수 있으리라 여겼다. 인생은 다 오해에서 출발하고 오해로 끝난다고 하지 않던가. 그 덕에 한 휴학은 오늘날 조상경의 지적덕목(知的德目)으로 고스란히 남았다. 그 기간 해봤던 희곡 각색이며 사보의 자유기고, 가요 작사는 다 혼자 잘 노는 방법이었다. 이론으로 무장한 해박한 영화지식도 그 자유에서 출발한다.

    그런 그녀가 본 미도는 ‘롤리타’여야 했다. 오디션을 거친 강혜정을 처음 보았을 때 미술을 맡았던 류성희 감독(그를 영화계로 이끈 사람이다)과 내린 결론이었다. 혜정은 예쁜 배우는 아니었다. 소외된 내면에서만 꿈꾸는 아이 미도는 몽환적 롤리타로 조상경의 손에 재탄생됐다. 이 판에 뛰어든 후 제일 기억에 남는 배우로 강혜정을 꼽는 데는 영화상의 성취 외에 개인적 추억이 깃든 배역이어서다. 딱 한 장면, 어린 미도로 조상경의 딸이 등장한 것. 30시간을 일하다가 또 30시간을 대책 없이 자는 엄마를 위해 커튼을 쳐준다는 48개월 된 아이다. 덧붙이자면 조상경의 딸은 누리꾼들이 인정한 아주 예쁜 꼬마다.

    그는 명함이 없다. 13명의 인원으로 작업들을 꾸리고 있지만 회사 이름도 없다. 예의 그 ‘귀찮아서’일 거라고 생각해본다. 결혼도 그랬다. 과정이 힘들까봐 결혼식은 않고 살고 싶었다. “걔(조상경은 오만석보다 세 살 위다)가 막내에다 무지 효자거든요. 부모님에 대한 행사 차원에서 결혼식을 했어요.” 둘이 결혼이란 걸 하자고 맘먹은 하루 만에 결혼 준비를 다 해치웠다. 오전에 양가 상견례하고 식장 예약하러 가는 길에 점심 사먹고 백화점 가서 ‘일체장비’를 마련하고 났더니 그때껏 오후 해가 남았더라고 했다.

    “제가 꼬셨어요, 착해서. 밀레니엄이라고 Y2K 땜에 은행이고 시장이고 문 닫은 적이 있었는데, 기억 나세요? 1월3일부터 공연이 잡혀 있었는데 거기에 쓸 붉은색 원단을 구할 수가 없어서 2000년 12월 마지막 날 갖고 있던 흰 천 40마를 염색했어요. 사람 좋아하고 술 좋아하는 이 친구가 그 밤에 술 먹고 연습실에 들렀다가 새벽내 다리미로 그 천을 다 다려줬어요.”

    도저히 안 꼬실 수 없었겠다. 장동건과 함께 연극원 1기인 오만석은 조상경의 선배다. 그녀가 기획하고 연출한 연극에서 만났고, 졸업 후 결혼했다. 검색어 1위를 기록한 후 인터넷에 “ ‘오만석 이혼’이 떴다”며 전화고 문자고 불이 난 적이 있다. “이혼? 할 수도 있지”, 10년 전의 그녀가 오늘 이 일을 할 줄 몰랐던 것처럼 세상 어느 것도 할 수도 안 할 수도 있는 게 인생이라고 말은 하지만, 진남색 가을저녁이 담긴 눈빛은 그게 아니었다. 재채기처럼 이 사랑을 감출 수 없듯, 그가 입힌 영화는 조상경을 가리지 못한다. 그만큼 빛나는 그녀다.



    사람과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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