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82

2013.04.08

하루 잘 놀고 뒤풀이서 기분 잡칠라

내기 골프

  • 김종업 ‘도 나누는 마을’ 대표 up4983@daum.net

    입력2013-04-08 10:57: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드디어 시즌이 시작됐다. 혹독한 추위에서 스크린을 위안 삼아 갈고닦은 실력을 선보일 시기가 왔다는 말씀이다. 잔디는 아직 노래도 휘두르는 통쾌함은 푸른 잔디 못지않다. 응어리진 공격 본성이 시원하게 분출되는 골프의 진면목을 한껏 즐길 시즌이다.

    나 같은 골선(골프의 신선)은 시즌 적응을 위해 전지훈련을 간다. 2월 말부터 닷새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샷을 가다듬었다. 시즌을 잘 보내려면 푸른 잔디와 따뜻한 계절을 미리 맛봐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일주일 정도 매일 라운딩을 해야 감도 살아난다.

    날씨는 돈을 주고 못 사기에 비행기 타고 날아가서 따뜻함을 익혔다. 하여간 말레이시아 골프장 가운데 가장 좋다는 곳만 골라 다녔는데, 원숭이와 독사가 자주 나온다는 사우자나 골프·컨트리클럽이 특히 좋았다. 어렵기도 하거니와 처음 가는 곳이라 타수가 영 말이 아니었다. 처음 가는 골프장은 그곳 토지신이 제물을 요구하는데, 보통 공 대여섯 개로 대신한다.

    내 핸디캡보다 5타 정도 더 나올 것을 각오했으나 그보다 더 나왔다. 겨우내 굳은 몸이 다시 골프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던 게 주원인이지만, 내기를 하지 않은 것도 이유 가운데 하나다. 집중의 묘미 없이 경치만 감상하다 보니 그리 됐다는 게 내 나름의 분석이다.

    내기 골프는 왜 하는가. 일반인은 내기를 해야 집중력을 발휘한다. 내면에 잠재된 생존 본능이 돈이라는 수단으로 드러나기 때문에 푼돈이라도 지갑에서 나가면 기분 나쁘다. 그래서 집중력을 발휘하는 계기가 되지만, 아쉽게도 과하면 게도 구럭도 다 잃기 십상이다. 어떤 식으로 내기를 해야 집중력을 더 발휘하고 더하여 친구끼리, 또는 모르는 사람끼리도 즐겁게 라운딩을 할 수 있을까. 내기 골프를 할 때의 처신 요령과 인간성을 좋게 보이게 하는 방법을 제시해보고자 한다.



    내 안의 생존 본능 집중력 극대화

    먼저 스트로크 게임. 일반적으로 스크래치라고 알려졌으나 정확한 용어는 스트로크플레이다. 영어 스크래치는 핸디를 뜻하지만, 일본으로 와서 타수만큼 돈을 주고받는 내기 용어로 발전했다. 영어와 일본어가 합쳐져 핸디만큼 돈을 미리 주고 개인 플레이하는 것을 말한다.

    그럼 이 게임을 할 때는 어느 정도 금액을 걸어야 서로 얼굴을 붉히지 않을까. 1000원이 가장 적당하다. 하수에게 실력 차이만큼 핸디를 주더라도 상호 부담이 없다. 잃는 순간은 아무리 적은 돈이라도 기분 나쁘지만 라운드 후 종합적으로 계산해보면 견딜 만하다. 하루 잘 놀았다는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수준이다.

    통상 고수끼리는 ‘오장’이라고 해서 한 타에 5000원, 배판에서는 만 원짜리 게임을 한다. 컨디션이 안 좋으면 크게 잃을 수 있다. 내 친구들은 이렇게 논다. 그날 1등 한 친구는 무조건 밥을 산다. 2등 한 친구는 그늘집 식비를 계산하고 3등과 4등은 공짜다. 밥 사는 1등 친구는 당연히 4등 한 친구에게 “고맙다” “잘 먹었다”는 인사를 잊지 않는다. 돈은 잃어도 친구는 잃지 않는 매너다. 가끔 순위를 놓고 싸우기도 한다. 한 번은 모두가 컨디션이 괜찮아 1등 한 친구가 ‘민족자본’(딴 돈이 아닌 자기 돈)을 내고 밥을 샀다. 기분 좋은 날이었기 때문에 캐디 피는 꼴찌가 내는 아량을 베풀었다.

    두 번째 짝짓기 게임. ‘뽑기 학원’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인기 있는 게임이다. 한 홀 게임이 끝난 후 짝을 정해 돈을 주고받는 규칙이다. 요즘 은행에서 고객에게 주는 사은품 가운데 뽑기주머니도 있는 걸로 봐서 대중화된 듯하다. 내가 잘 못 쳐도 짝을 잘 만나 따는 묘미가 있으니, 멀리건도 남발하고 서로 잘 치라고 격려하는 친선게임이다. 골프의 네 가지 속성(grass, oxygen, light, friend) 가운데 친구끼리 우정을 중시하는 게임이다. 다만 우리 같은 로 핸디는 집중력이 스트로크 게임보다 떨어지는 단점이 있다.

    상하 간 친목을 도모하는 데는 좋지만 어려운 사이끼리 행하기엔 뭔가 찝찝한 면도 있다. 선후배나 상사를 모실 때가 그렇다. 그래서 요즘 새로 접한 게임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친구가 KBS에 근무하는데, 거기서 개발돼 주로 사용하기에 속칭 KBS룰이라고 한다. 한국 표준게임 시스템이란 것이다. 자기들끼리는 이 방법을 써서 서로 말이 없도록 한다는데, 어려운 사이에 사용하는 방법이다.

    이 게임은 어떻게 하는가. 라운드 전 자신의 핸디를 미리 기록한다. 9홀 기준으로 고수는 40타, 하수는 50타 등으로 자기 핸디를 공개한 다음, 전반 9홀에서 자신이 내건 타수만큼 치느냐 못 치느냐로 등수를 결정한다.

    예를 들어 40타로 타수를 공개하고 전반 홀이 끝난 후 42타를 치면 +2가 된다. 50타를 내세운 친구가 48타를 쳤다면 -2가 돼 언더파를 친 것이 된다. 이렇게 해서 등수가 결정되면 순위대로 돈을 낸다. 1등은 안 내고, 2등은 3만 원, 3등은 5만 원, 4등은 7만 원 등으로 정해놓으면 모든 게임이 자신과의 싸움이 되고 그날 경비도 해결된다.

    이어 후반 홀에서는 전반 홀에서 친 점수가 기준이 된다. 핸디를 40타로 부른 친구가 42타를 쳤다면 그것이 후반 홀 기준이 된다. 후반에 40타를 치면 -2가 돼 언더파가 되고 순위에 영향을 미친다. 50타를 부른 친구가 전반에 48타를 쳤으면 후반에서 50타를 쳐도 +2가 된다. 당연히 순위에 변동이 생긴다. 1등이 꼴찌가 되고 3, 4등이 바뀐다. 전반에 한 푼도 안 낸 친구가 후반에 99% 꼴찌를 한다. 실제 해보라. 네 명이 거의 균등하게 그날 경비를 내게 된다.

    딴 사람과 잃은 사람의 수준

    하루 잘 놀고 뒤풀이서 기분 잡칠라

    일러스트레이션·오동진

    이때는 총무 임무가 중요하다. 전반 홀이 끝난 다음 등수를 발표해 미리 약속한 벌금을 정확하게 받아내야 한다. 내는 사람에게 ‘자신과 싸운 결과에 승복하는 것’임을 주지시킨 다음에.

    네 번째는 부부 게임이다. 팀 스트로크 게임인데, 부부가 아니라도 고수와 하수끼리 어울릴 때도 할 수 있다. 두 명이 짝이 돼 타수를 합해 상대 팀과 비교, 타수만큼 내기를 하는 방법이다. 이때 반드시 ‘타수만큼’ 원칙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나이가 많을수록 한 번의 실수로 그 홀을 포기해버리는 경우가 많다. 이 게임을 하면 한 타 한 타 신중하게 치게 된다. 못 치는 사람도 고수한테 미안해 신중하게 칠 수밖에 없다. 물론 부부끼리 하면 라운드 후 싸움의 원인이 될 수 있다. 같은 편을 먹은 사람끼리 싸울 조짐이 보이면 상대를 바꿔 팀을 짜는 것도 한 방법이다. 비록 게임에 져서 돈을 잃어도 나 혼자가 아니라 같이 편먹어서 잃었기 때문에 위안이 되고 즐겁게 뒤풀이를 할 수 있다.

    다섯 번째는 조폭 스킨스 게임. 알려진 것보다 훨씬 재미있다. 이 게임은 원래 버디하는 사람이 싹쓸이해가는 것이지만, 규칙을 조금만 바꾸면 마지막 홀이 끝날 때까지 승부를 예측하기 어렵다. 즉, 기존의 스킨스 게임에 보기를 한 사람은 무조건 토해낸다는 규칙이나, 더블보기를 한 사람은 민족자본까지 내놔야 한다는 룰을 추가하는 것이다. 또는 쿼드러플 보기를 한 사람은 얼마를 더 내야 한다는 규칙을 정해보라. 매 홀 집중력을 발휘할 수밖에 없다. 라운드가 끝난 후 일등 조폭이 딴 돈을 가지고 얼마나 선심을 베푸느냐가 그날 기분을 좌우하는 만큼, 뒤풀이 때 화제가 만발해 재미있다.

    어떤 게임규칙으로 내기를 하든 결론은 딴 사람과 잃은 사람이 구분된다는 것이다. 뒤풀이 수준이 높으면 ‘더불어 법칙’의 격도 높아진다. 나는 마지막 홀쯤 가서 이런 이야기로 돈 딴 녀석이 그냥 가지 못하도록 못을 박는다.

    “인간의 경제활동은 두 가지로 평가된다. 기업가 정신이냐, 장사꾼 정신이냐가 그것이다. 기업가는 자신의 경제활동으로 번 돈을 직원과 나누고 사회에 돌려준다. 장사꾼은 번 돈을 자기를 위해 쓰고 남을 배려하지 않는 특징이 있다. 우리, 최소한 기업가 정도는 돼야 하지 않겠나.”

    “막스 베버란 친구가 있어. 이 친구 명언 가운데 ‘나를 위해 한 일은 내가 죽을 때 같이 죽지만 남을 위해 한 일은 내가 죽어도 남는다’는 말이 있지. 나의 존재 이유는 남을 위해 일하고 돈을 쓰는 거야.”



    댓글 0
    닫기